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36화 (36/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36화>

아카데미는 각 학기마다 두 번의 시험을 친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사실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는 내용이다. 비단 아카데미만이 아닌 초중고, 정규 교육 과정을 밟아 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니까

아카데미의 1학기 첫 중간고사는 이미 겪은 대로 ‘코인 쟁탈전’.

다른 조와 싸워 코인을 빼앗는다.

시험이 끝나는 날 코인의 수만큼 성적이 나뉜다.

이 심플한 규칙 안에서 학생들은 개개인의 능력과 조와 얼마나 섞일 수 있는지를 보여 줘야 하는 것이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벌써 눈치챘겠지. 그래, 우리가 치른 중간고사는 실상 개인을 평가하는 시험이었다.

입학하고 3달도 안 되는 시간, 친해져 봐야 얼마나 친해지게? 어색한 사이에서 팀 케미스트리가 나올까?

택도 없는 소리. 쌀이 익지도 않았는데 밥을 내놓으란 꼴이다.

설령 조장이 작전을 지시했다 해도 이를 수행할 능력이 뒷받침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 작전다운 작전이 나온다?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교수들도 잘 알걸. 그 증거로 중간고사는 개인 순위만 발표한다.

하지만 이제부터 말할 기말고사는 앞서 말한 중간고사의 성격과는 정반대다.

전통적으로 아카데미 기말고사는 학기 불문, 학년 불문, 전부 통일된 방식으로 치렀다.

방식은 이보다 간단할 수 없는데.

게이트 공략. 즉, 레이드(Raid)였다.

1, 2학년은 4레벨 게이트.

3학년은 5레벨 게이트.

졸업반인 4학년은 6레벨 게이트.

이렇게 각 학년에 맞게 주어진 게이트를 클리어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냥’이나 ‘채집’이 아니라, ‘클리어’다. 보스까지 완벽히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사전 준비, 보급 체계, 사냥 동선, 진지 구축, 휴식…….

시작부터 마지막 클리어까지, 교수들은 레이드 전부을 보며 점수를 매긴다.

교수들이 원하는 바는 명확하다. 조장의 지휘 능력을 검증하겠다는 뜻. 왜냐하면 조장의 지휘 능력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상황이 레이드니까.

여담이지만 내가 미친 듯이 게이트를 드나들었던 것도 기말고사 때문이 크다.

우리 조의 인원은 겨우 셋.

숫자가 적은 만큼 사전 준비, 예를 들면 보급 같은 부분에서는 한없이 자유롭다. 대충 쑤셔 넣어도 굳이 물자 분배 따위 신경 쓰지 않고 펑펑 써도 여유가 넘칠 정도였다.

하나, 장점은 이게 다다.

전투의 피로도란 측면에서는 절대적으로 불리.

메리와 준우에게 올라운더라며 멀티 포지션을 가르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면 전투 피로도를 효율적으로 나눌 수 있으니까.

이런 의도로 탄생한 포지셔닝이 ‘삼각 편대’였고.

한데!

그런데!

그렇게 준비까지 하고 있었는데에!

눈앞의 진유리가 건넨 한 장의 종이가 이제껏 내가 했던 모든 준비를 부정하고 있었다.

“우리 조가 너희 조랑 같이한다…….”

“응.”

“게다가 4레벨이 아니라 5레벨 게이트를.”

“어쩜, 마법도 잘하더니 이해도 빨라.”

혼란하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나는 침착하게 나 자신에게 이 상황에 대해 ‘왜?’라고 물어본다.

그리고 내린 답은.

“……설마 너희랑 우리랑 평가에서 제외된 거냐?”

“통찰도 있었네? 맞아. 너희 조랑 우리 조는 1학년 수준을 넘어섰다고 평가에서 제외됐어.”

“대신 둘이 합쳐서 3학년 수준의 시험을 치르는 거고.”

“하나만 말해도 척척 아네. 또 알겠어?”

“너희랑 우리 조가 합쳐졌으니, 이걸 다른 조에도 적용하면…… 그거네, 해체된 애들도 다시 기회를 주려는 거겠지.”

짝! 짝! 짝!

“우와…… 진심으로 감탄했어. 말이 통하는 게 이렇게 편한 거였구나. 너 보면 볼수록 매력 있네? 욕심나.”

이 종이쪼가리가 보여 주는 바는 명확하다.

검호와 진룡을 잔뜩 추켜세우며 슬쩍 경쟁에서 제외한다. 시험은 치지만 그건 성적과 아무 상관없는, 보여 주기 식의 시험.

특혜라면 특혜인데.

이를 무마하려고 만든 장치가 기가 막히다. 3학년 수준의 시험을 치르게 해서, 뒷말을 잠재우겠다는 것.

그리고 이게 중요한데.

슬그머니 유령들, 조가 해체된 인원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천수만이 유령들의 부모님에게 시달리는 것은 유명한 일이니까.

물론 대놓고는 말 안 하겠지. 스마트하게 은근슬쩍 말이 나오게끔 할 거다.

저기 놀고 있는 유령들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자고.

안 나와도 천수만 그 여우가 알아서 나오게 만들 거다.

틀림없이 말이다.

이로써 천수만은 명분상 나를 강제하지 않고도 원하는 결과를 냈다.

솔직히 조삼모사지만 한때 칠흑 마탑을 운영해 본 내 경험상, 한 단체를 이끌 때 이런 조삼모사는 분명 필요하다.

리스크를 줄일 수 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대련을 마친 준우와 메리가 스파링 코트에서 나왔다. 강화 유리벽으로 밀폐된 구조다 보니, 이제야 진유리를 보게 된 두 사람.

난 애들을 앉혀 놓고 이 기막힌 사정을 설명해 줬다.

“……장난해요? 그럴 거면 아예 중간고사 결과를 물리지요?”

“이미 정해진 성적을 뒤로 물리는 건 아무리 학장님이라도 불가능해.”

“이렇게 배배 꼬는 건 괜찮고요? 그리고 당신, 언제 봤다고 반말이에요?”

“나이도 똑같은데 반말하면 안 돼? 외국에서는 다 반말하잖아.”

“여기 한국이거든요. 동방예의지국, 예의를 갖추세요.”

“알았어요. 근데 너 피부 좋다. 화장품 뭐 써?”

“훗. 저희 집안에서 내려오는 천여ㄴ…… 잠깐만요. 또 반말했잖아요!”

“칫, 이래서 눈치 빠른 아이는 싫어.”

“기혁! 나 얘 싫어요!”

“기혁! 나 얘 싫어요!”

“왜 따라 해욧!”

“좋아서. 헤에~.”

“웃지 마요!”

차가운 외모지만 의외로 마음 약한 메리와, 온순한 외모에 그렇지 못한 똘끼를 가진 진유리.

둘을 붙여 놓으니, 이건 이것대로 재미있다.

일방적으로 메리가 당하는 구도이긴 한데, 진유리한테 악의가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오히려 좋다며 들러붙으니 마음 약한 메리가 쉽사리 떼어 내지도 못한다.

“여기 진짜 재미있다! 마음에 쏙 들어!”

“기혁, 말해 봐요. 이 무례한 여자를 동아리에 들일 생각이에요?”

“일단은, 너희 생각을 들어 보려고 했지.”

“반대! 절대 반대예요!!”

“아, 왜~.”

“준우는?”

“준우도 반대일 거예요. 그렇지요?”

“난…….”

그때 진유리가 준우 앞으로 물약 하나를 내밀었다.

“뭐지 이건?”

“진룡 가문 특제 활력 포션. 마셔.”

뇌물인가? 그런데 뇌물로 영약도 아니고 포션이라니. 게다가 마시래.

우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는데, 진유리는 화사하게 웃으며 스파링 코트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어진 진유리의 행동에 한준우는 홀딱 넘어가고 마는데.

“마시고 들어와. 내가 이기면 여기 가입하는 거고, 네가 이기면 깨끗하게 포기. 콜?”

한준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단방에 활력 포션을 들이켜고는.

“콜.”

그날, 우리 동아리에 새로운 멤버가 생겼다.

진유리, 여러모로 재미있는 아이였다.

……

……잠깐.

“생각해 보니까, 쟤가 가입하는 거랑 기말고사 시험이랑 무슨 상관이었던 거지?”

이거 제대로 말렸네.

여러모로 재미있는 아이다.

피식, 웃으며 잠이 들었다.

*   *   *

3일 뒤.

진유리가 빼돌린 기말고사 일정을 박기혁에게 보여 준 일이 있은 후 3일이 지나서야 공식적으로 기말고사 일정이 공개됐다.

“역시 레이드네. 우리는 준비한 대로 하면 되겠다.”

“조용해 봐. ‘1조와 20조. 위의 조는 입학 이후 우수한 성적을 보여 줬기에, 교수들이 논의한 결과 굳이 경쟁이 필요 없다고 판단. 이례적으로 3학년 시험을 치른다.’ 이거 무슨 말이래?”

“밑에 보니까 1조하고 20조하고 합쳐서 5레벨 게이트 보내는 것 같은데?”

“진룡과 검호가 함께? 히야아, 이건 못 참지.”

하지만 이 공지에 진짜 본론은 따로 있었으니.

……예외가 적용된 이상, 이번 시험에 한해 조를 합치는 행위를 허용함. 단 지도 교수에게 허락을……

조를 합친다? 조에 인원을 추가해도 되는 건가?

그렇다면 우리도?

충격과 공포의 중간고사 이후, 하루하루 우울한 얼굴로 아카데미를 배회하던 유령들의 얼굴에 희망이 일렁였다.

그들은 당장 담당 교수들에게 달려갔고, 결과는.

설마가 맞았다!

예외적으로 이번 시험에 한해, 조가 해체된 유령들도 시험을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단, 조장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지만, 그게 대수인가.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변했는데.

물론 이 유례없는 상황에 반발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특히나 원칙을 중요시하는 몇몇 교수들은 학장을 찾아가 진심으로 성토해 댔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지 못하는 것처럼 이미 내려진 공지를 번복하기에는 반응이 너무 뜨겁다.

이런 말고 많고 탈도 많은 상황이 겹치며, 비교적 주목도가 낮은 기말고사임에도 올해 1학년 기말고사는 역대 기말고사 중 가장 시끄럽고도 주목받는 행사가 되고 있었다.

*   *   *

한편 우리는 기말고사 일정이 발표되며 쓸데없이 시끄럽기만 한 아카데미에서 벗어나 피, 땀, 눈물, 열정과 광기가 가득한 게이트에 와 있었다.

다만 평소의 게이트행과 다른 점이라 하면, 셋이 아니라는 것일까.

“쟤들이 1조라 했나.”

“흐음, 처음이에요. 남이 싸우는 걸 구경하는 건요. 근데 왜일까요. 기분이 이상해요. 더 이상한 건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다는 거예요. 분명한 건 썩 유쾌하지 않아요.”

“심심하다.”

“좀이 쑤신 건 알겠는데 참고 봐봐. 의외로 보는 것도 공부된다?”

조원을 뽑는 건 전적으로 조장의 권한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구성된 조에 조장의 색채가 짙게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일례로 2조장 헨리는 타이탄의 아들답게 탱커 위주의 정통 포지셔닝을 선호했다.

그렇다면 1조장 진유리의 조는 어떨까.

그녀가 추구하는 바는 명확하다.

“오네. 막아.”

코뿔소를 탄 채 괴성을 지르는 트롤과 그를 뒤따르는 트롤 무리 앞으로 벽이 세워졌다. 순식간에 완성되는 성채. 그것도 모자라 골렘들이 몸을 일으켰다.

“탐색 조는 이상 상황 보이면 보고해 주고, 선일이는 혹시 모르니까 장애물 하나쯤 설치해 줘.”

안개가 깔린다. 눈처럼 새하얀 안개.

아이스 포그(Ice Fog)

대기의 온도를 빙점까지 내려 상대를 봉쇄하는 제어 마법.

특유의 재생력과 뛰어난 육체를 지닌 트롤이 아이스 포그만으로 봉쇄될 리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 ‘정령들’이 추가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령들 출발.”

물에 얼음. 뇌전까지.

최악의 덫이 탄생했다.

“준비 끝. 이제 공격대 준비하자.”

하늘이 순식간에 마법으로 가득 차고.

“벽 내리고.”

진로를 막던 석벽이 모래가 되어 무너진다.

미친 듯이 달려드는 트롤 무리. 순식간에 아이스 포그로 몸을 던지고 하얀 안개에 자취를 감추길 잠시.

“팡.”

폭격이.

마법 폭격이 작열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마도의 정점. 진룡의 혈통을 잇는 마법사.

진유리가 추구하는 바는 단 하나.

마법의, 마법에 의한, 마법을 위한.

오직 마법으로만 움직이는 전투 집단.

마법 군단

이게 1조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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