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35화 (35/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35화>

한편 강원도의 어느 산.

갈퀴 손 오크 부락이 있는 3레벨 게이트.

요즘 한창 이슈 몰이 중인 빌런 사건이 일어난 범행 현장으로, 며칠째 경찰 병력들이 물샐틈없이 진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아씨, 이야기 좀 들어 보시라니까요. 시체 회수했지, 범행 현장 기록해 놨지, 증거도 구해 놨지. 경감님아, 인간적으로 여기서 뭘 더 구해요? 엉? 아씨, 더 나올 거 없다니ㄲ…… 잠깐! 잠깐!! 경감님! 형님! 혀엉!!”

뚜뚜뚜…….

박 경위가 허무하게 폰을 바라봤다.

그런 박 경위의 등 뒤로 온순하게 생긴 남자가 다가오는데.

“철수야.”

“……또 들어가라고 하십니까?”

“우리 같이 옷 벗을래? 차라리 치킨집을 내는 게 낫지 않겠냐? 우리 누나가 수원에서 왕갈빗집 죽이게 하는데, 그 양념으로 양념치킨 내는 거야. 대박 날걸.”

“저는 빼 주십쇼. 아직 전세 대출도 못 갚았습니다.”

“젠장! 그놈의 대출! 누가 우리를 민중의 지팡이라 했던가, 은행의 노예인 것을.”

“빨리 가기나 하시죠. 더 늦으면 야근해야 합니다.”

결국 오늘도 현장 조사에 들어가는 두 사람.

푸른 게이트의 입구로 진입했다.

“하아…… 철수야, 형이 의욕이 안 난다. 불 있냐.”

“여기.”

“후우~ 형이 보기에 여기서 나올 거 없거든?”

“그렇겠죠. ‘관리국’이고 ‘집행부’고 탈탈 털고 갔으니까요.”

“내 말이! 그런데 위에서는 더 까라고 한다. ‘진화단’ 놈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 진화단요? 제가 아는 그 진화단?”

작금의 인류는 열등하다. 열등한 인류가 세계를 멸망시키기 이전에, 인류는 ‘진화(進化:Evolution)’에 성공해야만 한다. 그것이 유일한 답이고 진리다.

……라는 기치로, 극악무도한 인체 실험을 일삼는 빌런 조직이 바로 ‘진화단’이었다.

“진화단이든 공진단이든. 여튼, 놈들 때문에 우리는 꼼짝없이 현장 조사를 이어 나가야 한다는 거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퇴근 따윈 없단다. 이제 우린 X된 거야.”

“진화단이 갑자기 왜? 아니. 그렇잖아요, 선배, 진화단이라면 완전 메이저잖아요. 세계 3대 빌런 조직이에요. 걔네들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촌구석까지 오는데요.”

“몰라. 내가 그걸 알면 여기서 뺑이 치고 있겠냐.”

박 경위는 피우고 있던 담배로 새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어쨋든, 하나 분명한 건. 우린 이런 이유로 당분간 이 짓거리를 계속 이어 나가야 한다는 거다. 그러면 이 대목에서 내가 네게 해 줄 말은?”

“대충 짱 박혀서 쉬다 와라?”

“역시, 철수. 이름은 흔해도 눈치는 탁월해. 적당히 자리 잡고 쉬다 오자. 너무 안쪽으로는 가지 말고. 괜히 전투 지원대랑 얽히면 피곤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쉬다 오십쇼.”

“오냐.”

머리 위로 손을 흔들며 숲으로 사라지는 박 경위.

그리고 그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남아 있던 후배의 눈빛이 변했다.

“…….”

손목시계의 시침이 가리키는 곳으로 달려가는 후배 경찰.

첫째도 은밀, 둘째도 은밀.

절대 들켜서는 안 되기에 그는 지난 3일간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찾았다.”

그의 손에 들린 건 돌멩이.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한 돌멩이지만, 실상은 음차원 마나로 이뤄진 흑마법사 전용 ‘메시지 스톤’이었다.

남자는 조용히 돌멩이를 품에 넣고는 발길을 돌렸다.

……

- 현재 7번 작업장이 습격자에게 공격당하고 있다. 습격자의 신원은 밝혀진 바 없다. 개인인지 집단인지도 판단되지 않는다. 식인목은 총 다섯 마리. 그중 셋은 4레벨 마물에 필적……

……다만 소환자들의 각인이 파괴되다 못해 괴사까지 이른 정황을 보아, 식인목이 역소환이 아닌 완전 소멸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습격자의 정체는 ‘항마’가 가능한 프리스트, 혹은 음차원 마나를 다루는 흑마법사로 추정한다. 난 후자에 무게를 둔다.

……만약 이 메시지를 ‘회수’했다면 아마 난 죽었을 거다. 과업을 행하지 못해 한스럽다. 진화는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야 한다.

진화만이 유일한 답이리라.

………

……

*   *   *

빌런 사건이 있은 지 얼마 뒤.

한빛 보육원과 아카데미를 오가던 박기혁은 관심이 시들해질 때쯤 다시 게이트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정령과 환수’ 과목에 필요한 영력석 구하기.

학장이 제시한 의뢰였다.

이걸로 ‘정령과 환수’ 점수를 A호 쳐준다고 하니까, 정령과는 연관 없는 세 사람의 입장에서는 썩 나쁘지 않은 의뢰였다.

그래서 박기혁과 20조는 이 영력석을 구하러 3레벨 게이트 ‘돌산 오크 부족’으로 가게 되는데.

“얘들, 왜 이렇게, 무식해요. 기혁, 교체. 방패 받아요!”

“웃차, 주술만 걸고 숨 좀 돌려. 준우야, 내가 수비.”

“내가 공격. 접수했다.”

돌로 만든 전신 갑옷을 입고 출몰하는 돌산 오크.

방어력도 방어력이지만, 이 돌을 입고도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근력이 더 문제인 몬스터였다.

하지만 경험 많은 20조에게는 그냥 단단한 오크일 뿐.

오히려 이번 기회에 박기혁, 메르헴, 한준우, 올라운더 3인방이 로테이션하는 포지셔닝 ‘삼각 편대’를 연습하며 가뿐하게 의뢰 완료.

이어진 의뢰는 아카데미 점수랑은 상관없는 동아리, 위그드라실의 의뢰였다.

아카데미 인근에 갑자기 생성된 ‘퍼플 게이트’를 클리어하라는 의뢰였고, 박기혁과 20조는 채 하루를 쉬지 못하고 다시 게이트로 향했다.

거기서 20조를 반갑게 맞이해 준 건 ‘톱날 오크’.

날이 톱처럼 생긴 참마도를 쓰는 오크였다.

“준우, 10분 넘었다. 뒤로 빠지고. 메리, 탱커로.”

“조심해라. 어설프지만 검술을 부린다.”

“아예 틀어막아 버리면 돼요. ‘재생의 방패!’.”

“그렇다면 나도. 울어라, 참마도!!”

“……애들이랑 자주 놀더니, 점점 애가 돼 가는군.”

퍼플 게이트의 특성상, 보스를 사냥하지 않으면 클리어가 되지 않는 구조.

그래서 2레벨 게이트임에도 3레벨 게이트 의뢰보다 시간이 더 소요됐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것 외에는 별거 없었다.

섬뜩한 톱을 든 톱날 오크도, 일반 오크의 세 배 이상 몸집이 큰 보스도 현재의 20조에게는 별다른 위험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클리어를 보고하러 아카데미로 향한 박기혁과 일행들.

하지만 보고를 하고 나오는 순간, 바로 의뢰가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검술 훈련에 필요한 목검의 재료인 ‘흑철’을 구해 오란다.

웃긴 건 이 흑철을 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게이트가 ‘그림자 비명 산.’

검은 촉 오크가 나오는 게이트였다.

“으으~ 끔찍하게 싫어요. 저 꽤애애액, 오크 비명 소리! 정신 나갈 것 같아요!”

“또 오크인가.”

“이건 음모예요! 노린 거라고요! 어떻게 매번 오크인가요?!”

“설마…… 우연이겠지. 이 전 의뢰는 위그드라실 거였잖나.”

“으으~ 준우, 눈치 없어요? 어떻게 우연이 4번이나 이어지나요. 다 한통속인 거예요! 모두 우리를 싫어하는 거라고요. 기혁!! 할 말 없어요?”

“……업어 줄까?”

“뭐,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한번 업어 봐요.”

“후우, 망할 학장 놈. 이딴 식으로 복수한다 이거지. 두고 보자.”

갈퀴 손 오크, 돌산 오크, 톱날 오크, 검은 촉 오크.

줄기차게 오크만 사냥한 덕분인가. 이제 세 사람은 오크의 눈만 봐도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오크 사냥꾼이 되었다.

그렇게 4연속 오크 퍼레이드를 끝내고 금요일.

세 사람은 동아리실에서 또 의뢰가 들어올까 불안해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들어오긴 했다.

의뢰가 아닌 사람이.

“여기가 출구 없는 지옥? 반가워. 진유리라고 해.”

*   *   *

출구 없는 지옥.

‘일단 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넌 강자!’라는 모토답게, 우리 동아리 문은 200킬로그램이다.

양쪽 도합으로 하면 400킬로그램.

덕분에 초기에는 준우와 메리가 스스로 문을 못 여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수치스럽게 여긴 두 사람이 한층 더 가열 차게 근력 훈련에 임했다는 후문이…….

이런 악명 높은 동아리 문이 열렸다.

툭 치면 억하고 쓰러질 것 같은 체구.

신비한 검붉은 머리의 미소녀.

1조장 진유리에게.

“여기가 출구 없는 지옥이야? 반가워. 진유리라고 해.”

하지만 이 아이를 표현하는 가장 간단하고 심플한 단어는 따로 있다.

진룡(眞龍)

대한민국 마도의 정점이었다.

난 실험 중이던 플라스크를 닫으며 진유리를 빤히 봤다.

“우와, 애들 대련하고 있구나? 무한 대련이라더니 정말이네. 대단해. 그런데 인사도 없는 거야?”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와서 잠깐 고민 좀 했다. 어서 와. 차라도 내주랴?”

“뭐 있어? 나 커피 못 마시는데. 카페인 알러지 있어. 우유도 못 마셔. 유당불내증 있거든.”

“까다롭구만. 저기, 알아서 먹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각종 음료가 줄서 있는 자판기.

물론 동전은 필요 없다. 그냥 냉장고를 들여놓으려고 했는데 메리가 ‘감성’이 있어야 한다면서 기어코 들여놓은 물건이었다.

“우와, 이런 것도 있어? 멋지다아.”

“이게 멋져?”

“응, 뭔가 두근두근한 게 사진 찍고 싶은 감성이야.”

“그놈의 감성. 대충 뽑고 얼른 와.”

체리맛 탄산을 뽑은 진유리가 내 앞자리로 왔다.

막 본론으로 넘어가려던 때, 진유리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나오는데.

“헤에? 이거…… 정령석이야?”

“……!”

“그런데 이상하네. 내가 알고 있는 정령석은 주관이 뚜렷한 뾰족한 아이들인데, 얘들은 엄청 둥글둥글하다. 찰흙 같아.”

“표현 재미있네.”

찰흙 같다.

아주 정확한 표현이다.

이건 내가 직접 만든 ‘인공 정령석’이니까.

인공으로 만든 정령석이기에 자연의 기운을 받은 정령석보다는 성질이 두루뭉술하다.

이를테면 순백의 종이.

무엇을 쓰든 쓸 수 있기에 사용하기에는 오히려 이놈이 더 좋긴 하다.

이걸 한눈에,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스치듯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고?

“재미있네…… ‘용의 눈’이라는 거야?”

“응, 너희 ‘본능’이랑 비슷한 거야.”

검호가 검을 들면 피에 각인된 검호의 본능이 깨어나는 것처럼, 진룡은 마법을 보면 그 마법이 지닌 정보가 자연스럽게 읽힌다고 들었다.

한 사람의 마법사 입장에서, 이거 미친 거다. 어설프게나마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는 거 아닌가.

“골 때리는구만.”

“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아마 다른 가문 사람들은 이 정도로 못 할 거야. 내가 조금 특별하거든. 너무 내 자랑이었나.”

“아니다. 자기 잘난 거 자기가 자랑해야지. 시원시원해서 마음에 드네.”

“너도야. 남자다워서 마음에 들어.”

겉도는 건 이제 그만.

음료를 마시고는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갔다.

“왜 왔냐?”

“동아리실에 왜 왔겠어, 가입하러 왔지.”

“가입? 너 동아리 있잖아.”

“나왔어. 재미없어서.”

이야기는 이렇다.

진유리가 속했었던 동아리는 ‘대마도사’.

동아리명처럼 마법에 대한 심층 연구와 토론을 하는 동아리였다.

마법을 전문적으로 하는 동아리답게 다양한 라인들이 지원하고 있고, 때문인지 현재까지 입단 경쟁률이 가장 높은 동아리로 불리고 있다.

마법 명가의 자식인 진유리가 이곳에 들어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시끄럽게 정통만 외치잖아. 그래서 물어봤어. 정통이 뭔데요? 그러더니 케케묵은 ‘마법대사전’을 꺼내면서 그게 정통이래. 솔직히 실망스러웠어.”

마법에도 급진파와 온건파가 있다.

급진파는 ‘다양한 마법을 받아들여 마법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적극적으로 마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온건파는 ‘질서 아래 전통의 마법을 갈고닦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원리원칙을 강조했다.

이 중 진유리가 급진파 성향이라면, 불행하게도 대마도사 동아리는 극단적 온건파에 속했다.

둘의 충돌이 예견된 미래란 것이다.

“워 아머 연구하자고 했어. 세계적으로 유행이잖아. 그런데 안 된대. 왜냐고 물어보니까 그건 마법이 아니래. 이해가 돼?”

“확실히 심하네.”

“그치!”

나도 어머니에게 듣기만 했다.

마법과 첨단 기술을 섞은 마도공학. 과연 이 마도공학을 마법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게 몇 년 전부터 마법학계에서 논란이 됐던 주제라고 한단다.

솔직히 웃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거 아니야. 뭘 그렇게 머리 아프게 신경 쓴대.”

“그치이!! 너라면 이해할 줄 알았어.”

“그래서 나왔고, 저기 지옥문을 열었다?”

“예상보다 무거웠어. 4식 마법까지 동원해야 했는걸.”

이유는 알겠다. 납득도 간다.

다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야, 우리 동아리 문제 있는 거 알지?”

“알아. 학장님한테 찍혔잖아. 소문 다 났어.”

“정확하게 아네. 그런데 너까지 오면 그 여우…… 아니, 학장이 뭐라 할 것 같단 말이야.”

“신경 쓰여?”

“나는 괜찮은데.”

내 손이 뒤에 대련장에서 치고받고 있는 메리와 준우를 가리켰다.

“쟤들이 신경 쓰여서.”

“4연속 오크 레이드?”

“어, 알아?”

“위그드라실 님이 가르쳐 줬어. 재미있겠던데.”

“……아줌마 생각보다 입 싸다니까. 여튼,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조금 곤란하다.”

“그럼 쟤들은 넘겨 두고. 넌? 넌 괜찮은 거지?”

“나야 뭐, 거부할 이유가 있나. 내 입장에서도 네 눈은 흥미롭거든.”

“같은 생각이네. 나도 네가 보여 준 ‘아포칼립스’가 흥미로웠거든.”

진유리가 웃으며 종이 한 장을 건넨다.

무심결에 종이를 들어 읽는데…….

“기말고사 조…… 편…… 성?!”

상단에 보이는 ‘1조+20조’.

1조랑 20조랑 왜 같이 편성돼 있는…… 잠깐, 이게 아니잖아. 이거 아직 발표되면 안 되는 건데. 그런데 얘는 어떻게 알고 있어?

진유리는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베에~ 귀엽게 웃더니.

“빼돌렸지~.”

생각을 다시 해 봐야겠다.

대마도사에서 제 발로 나온 게 아니라.

쫓겨난 게 아닐까? 아무래도 이게 맞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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