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34화>
솔직히 말하겠다.
난, 이번 사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쁜 놈들 한두 번 보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악인이 없는 세상은 없다.
그냥 임무를 받았고, 게이트에 들어갔는데, 하필 거기에 쓰레기. 여기서는 빌런이라 부르는 놈들이 있었던 것뿐이다.
똥 밟은 거나 다를 바 없다는 거지.
내겐 이 사건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근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달랐나 보다.
강원도 3레벨 게이트에서 ‘빌런’ 출몰!
확인된 희생자만 47명. 가족들 오열하다.
정부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 했나! 성토 이어져.
경찰청 대변인 “빌런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리. 철저한 수사에 착수하겠다.”
기억이 없는 난 몰랐는데, 이 빌런이란 놈들이 이 사회에서는 절대 악으로 분류된단다.
폭행, 협박, 살인, 인신매매 등등, 각종 강력 범죄에 안 끼는 곳이 없을 만큼 흉악한 놈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의 주 업무가 ‘빌런 척결’일 정도니 말 다한 셈이다.
이런 빌런 조직이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으니 불안하지 않겠나.
일반 시민들의 빌런에 가진 불안감은 내가 상상한 것 그 이상이었고, 그 결과 신문, 기사, TV에서도 유난을 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난 이 빌런의 작업장을 털었단 말이야?
빌런도, 염동석도, 한 톨도 남김없이 탈탈.
당연히 이를 알게 된 우리 김연희 여사님은?
“으이구! 내가 못 살아!!”
내 등짝을 후드려 팼지.
아주 탈탈.
“미쳤어! 걔들이 뭔 줄 알고 혼자 때려잡아!”
“아! 아! 준우랑 메리도 있었…… 아파요!
“아파야지! 아프라고 때리는 건데! 도망칠 수 있었잖아! 무시하고 엄마한테 전화 한 통만 했으면 엄마가 어련히 알아서 처리해 줄까.”
“엄마 귀찮을 것 같아서…… 그냥 제가…… 아, 악!!”
“시끄러웟!”
이런 적이 없을 정도로 흥분한 김연희 여사님.
꽤 오래도록 어머니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등짝이 한여름 더위에 익은 듯 벌게질 정도로 맞았으니까.
기운도 좋으셔라.
물론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 손길이 매서운 거 보니 건강하신 거 같아 내심 기뻤다.
어쨌든, 흥분을 가라앉힌 어머니가 곧바로 수습에 나서셨다.
세계 5대 에이전트 옵티멈의 대표 김연희로 변신한 어머니.
“국장님, 저 김연희예요. 잘 지내셨죠. 요즘 격조했어요. 다름이 아니라 강원도 건에 대해…….”
“청장님, 저 김연희예요. 호호. 그럼요. 잘 지냈죠. 이번에 강원도 빌런 사건요. 네, 네. 제 아들이 엮인…….”
“시장님, 저 김연희예요. 큰 사고가 터져서 걱정돼서 연락드려 봤어요. 어머?! 그런가요. 안 그래도 저희 아들이…….”
누구누구 님, 저 김연희예요.
단조로운 레퍼토리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어머니는 이 사건에서 내 이름이 완전히 배제되길 원하셨다. 어린 나이부터 괜히 빌런과 얽혀 봤자, 좋은 꼴 못 본다는 것이다.
괜찮다며, 김연희 님 아들이 그딴 쓰레기들한테 당할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고 항변해 봤지만.
돌아오는 건 한 뭉텅이의 잔소리와 등짝 스매싱.
“다음부턴 무슨 일 터지면 경찰보다 엄마한테 먼저 연락해. 알았어? 이번만 해도 봐. 네가 생포한 놈들 경찰한테 넘기기 전에 엄마한테 전화했으면 손쉽게 해결될 일이었어.”
“죄송해요.”
“후우, 정말…… 장남은 용돈 벌겠다고 현상금 사냥하러 다니고, 딸내미라고 있는 건 신들린 것처럼 빌런 썰고 다니더니, 이제는 너까지.”
“훗.”
“우쭐하지 마. 칭찬 아니거든? 하여튼 이게 다 박건 자식 때문이야. 아빠가 돼서 모범이 돼도 모자랄 판에 지가 먼저 정의의 사도 놀이나 하고 앉아 있으니 애들이 뭘 배우겠어. 이번에 들어오면 죽었다 넌.”
참고로 여기서 박건은 나의 부친 되시겠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의리남.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약자에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이 시대의 낭만 사나이.
……가 땡무위키에서 검색한 내용이다.
이렇듯 미담이 끊이지 않는 아버지였지만, 어머니의 말대로라면 호구도 이런 상호구가 없으시단다.
“의리남? 낭만 사나이? 웃기고 자빠졌네. 말이 좋아서 그렇지 이게 호구랑 뭐가 다르니?”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한테 호구는…….”
“호구야. 엄마 말이 맞아.”
“넵…….”
그렇게 어머니는 이런저런 아버지 흉을 보는 가운데, 이번 사건에서 나와 두 친구에 대한 정보를 깔끔하게 삭제시켰다.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옵티멈의 대표다운 깔끔한 일 처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온 나.
그래서 지금 뭐 하고 있냐면……
* * *
밥 먹으러 왔다.
애들이랑.
뷔페에.
“우와, 여기가 뷔페야? 대단해. 신기해.”
“오빠, 저거! 돈까스으!! 나 돈까스 먹을래에!”
“여기, 여기! 탕수육이야. 형, 나 저거 먹어도 돼?”
“힝, 아저씨. 김밥 없어요? 초바압? 초밥이랑 김밥이랑 같은 거예요?”
“봐봐. 이렇게 접시에 먹고 싶은 걸 담으면 되는 거다.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으니까, 괜한 욕심 부리지 말고 먹을 만큼만 먹어.”
“네에!!”
왜 느닷없이 뷔페냐면, 나름 사연이 있다.
망할 놈의 빌런 때문에 한동안 게이트행은 금지.
붕 떠 버린 주말 타임에 뭘 할까 잠깐 고민하다, 보육원에 왔다. 애들 얼굴도 어른거리고 해서 말이야.
틈 날 때마다 찾아온 덕분인지 아이들도 방실방실 웃으며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나 자신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동화책도 읽어 주고 보육원 잡일도 도와주며 시간을 보내던 중, 드디어 찾아온 문제의 점심시간.
1층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던 중, 얼음 공주님 머리를 한 현지가 흘리듯 말했다.
“오빠는 뷔페 가 봤어요?”
“갑자기 뷔페?
“그게…….”
이야기는 이렇다.
이번에 초등학교 1학년에 올라간 김현지 양.
반 친구가 생일잔치를 뷔페에서 한단다. 아이들이 우와, 하며 그 친구의 곁으로 모여드는데, 뷔페가 뭔지 몰랐던 현지는 이야기에 낄 수 없어서 슬펐다는 이야기.
하긴 보호자가 있고 없고가 가장 극단적으로 차이 나는 시기가 현지의 나이일 거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8살.
가족의 품을 벗어나 학교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디디면 좋든 싫든 나와 다른 친구와의 차이를 극명하게 깨닫게 되니까.
아직 이 시기가 오지 않은 아동들은 현지의 말에 ‘뷔페? 뷔페가 뭔데?’ ‘식당인가 봐.’ ‘맛있겠다.’처럼 그저 순수하게 호기심을 표현했다면, 이미 이 시기를 겪었던 아이들은 우물쭈물하는 현지를 우울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아마 자신의 모습을 봐서겠지. 반 친구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의 경험들이, 부모가 없는 자신에게는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을 테니까.
짠했다.
눈치를 보는 현지의 모습에서 옛날, 쓰레기통을 뒤지던 내 모습이 보였다.
참을 수가 없었다. 거 얼마나 한다고.
내가 돈이 없나 능력이 없나.
이런 일로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폼 나지 않는 일이었다.
“전부 옷 입어. 오늘 점심은 뷔페다.”
이런 이유로 뷔페에 온 것이다. 보육원 아이들을 모조리 데리고서 말이다.
음식을 가지고 룸으로 들어왔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맛있게 식사하는 아이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애들이 눈치 보지 않고 먹으려면 룸이 있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예측이 정확했다.
과연 어머니, 당신은 다 아시는군요.
“여기 천국이야? 진짜 맛있어! 행복해라!”
“와, 새우튀김 봐! 커! 무지 커!”
“고기, 고기. 고기가 좋아요. 이거 봐라. 나 이거 한입에 먹을 수 있다. 앙!”
“야, 조용히 좀 하고 먹어.”
“베에에~ 정인이 누나는 또 잔소리해.”
“맞아. 여기 우리밖에 없는데에!”
“형, 여기 짱 좋아. 맨날 맨날 여기서 밥 먹고 싶어. 원래 뷔페가 이렇게 맛있는 거야?”
“그렇긴 한데, 여긴 뷔페 중에서도 엄청 비싼 데야.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쌀걸?”
“징짜? 우와아…….”
“기혁 형한테 고마워해.”
“고맙습니다아아아.”
뜬금포 감사에 난 손을 휘휘 저으며 밥이나 먹으라 한다.
평소 보지 못한 음식에 잔뜩 흥분한 아이들. 상급생들은 그런 아이들 사이에 중간중간 앉아 먹는 것을 도와줬다.
기특해라, 나갈 때 식사권이나 몇 장씩 챙겨 줘야겠다.
비싸고 안 비싸고가 뭐가 중요한가. 안 그래도 게이트행만 줄기차게 나가서 통장 잔고가 썩어 나고 있었는데. 저 웃음을 볼 수 있는 비용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그러면 나도.”
본격적으로 식사를 해 볼까나.
수저를 들었다.
우선 탄수화물부터.
초밥으로 가득 찬 접시부터 없앤다. 초밥으로 가려져 있던 접시에 빈틈이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클리어.
단백질은 너다.
다른 접시에 가득 쌓여 있던 육회를 국수처럼 흡입했다. 데코레이션 풀떼기 몇 조각도 남김없이 비웠다.
“이 집 재미있네.”
블로그 보니까 육회 잘한다더니, 쫀득한 육질이나 과하지 않은 양념이나, 이 집 육회 맛집 인정이다.
한 접시 더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세 번째 접시에 젓가락을 옮기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
시선을 옮기니 애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쪽을 보고 있다.
그것도 크게 입까지 벌리며.
“우와아아-!”
“형, 대따 잘 먹어.”
“먹방 보는 거 같아요.”
“키다리 오빠, 오빠처럼 먹어야 오빠처럼 커지는 거야?”
대답 대신 엄지를 치켜세워 줬다.
그러자, 남자애들은 너도나도 ‘나도 커질 거야.’라며 접시에 집중했다.
그렇게 소소하게 1차전을 클리어.
새로운 기분으로 2차전에 들어간다. 아까 말한 육회를 포함한 새 접시를 들고 문을 여는데.
응? 내 자리에 인형이 앉아 있네?
“봄아?”
“삼쵼.”
백옥 같은 피부.
보석을 옮겨 담은 것 같은 눈망울.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모아 놓은 인형 같은 소녀.
박봄.
봄에 온 선물이었다.
“봄이가 왜 왔을까?”
“봄이 삼쵼이랑 이쓸래.”
“그래? 그럼 그럴까? 삼촌 무릎 위에 앉자.”
보육원에서 가장 막내인 봄이.
이름처럼 화사한 외모와는 반대로, 한겨울 얼음장처럼 차가운 성격의 아이였다.
여기 아이들이 그렇듯 봄이도 사연이 있는 아이이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약간 문제가 있는 아이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아이.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 봄이가 나는 유독 잘 따랐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냥 첫 만남부터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마치 아기 오리가 엄마 오리를 따라다니듯이.
“삼쵼은 많이 먹어.”
“삼촌은 원래 이 정도 먹어.”
“많이 먹으면 돼지 돼. 꿀꿀.”
“그러면 삼촌은 오늘부터 돼지다. 꿀꿀꿀~.”
나도 봄이가 싫지 않다.
아니, 좋다.
많이 좋다.
전생에 유일하게 내가 정을 줬던 한 아이를 추억하게 만들거든.
“소피아예요. 소. 피. 아. 삼촌이라고 불러도 되죠?”
“이겼다! 약속했죠? 소원 들어주기로! 으응…… 당장은 없는데…… 나중에 소원 빌게요.”
“삼촌, 소원 빌게요. 행복해야 해요. 소피아 몫까지…….”
착한 아이였다. 어쩌면 내가 아이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어 준 아이.
그래서 소중했고, 지켜 주고 싶었다.
결국 지켜 주지 못했지만.
“삼쵼, 표정 나빠. 슬퍼? 아파?”
“아파, 봄이 때문에.”
“……봄이 때문에?”
“응, 심장이 아파아아~.”
“꺄르르륵~.”
부둥켜안고 둥가 둥가 흔들어 주자 자지러진다.
“봄이가 웃는 거 신기해.”
“그러게. 우리랑 있을 때랑은 완전 달라.”
“봄이는 오빠를 찐으로 좋아하네요.”
“원래 애들 눈이 정확한 법이야. 이 몸의 진가를 아는 거지.”
내 능청스러운 말에 상급생 아이들이 ‘뭐래~.’ 하며 비웃었다.
“너희들은 문제없지? 학교생활은 괜찮고? 선생님들이 눈치 주지 않든?”
“에이, 괜찮아요.”
“저희 보육원을 옵티멈이 후원한다고 소문났잖아요. 누가 옵티멈을 건드려요.”
“맞아요. 저희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운이 좋긴,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애들한테 선물 줬으니까 너희도 선물받아야지. 뭐 해 줄까. 말만 해.”
“에이, 형은 또 그러신다.”
“됐어요. 정말 괜찮아요. 저희도 같이 먹었는걸요.”
“여기 엄청 비싸다고 하던데, 잘 먹었습니다.”
답변 하나하나가 사뭇 의젓하다.
중학생부터 보육원을 퇴소하는 18살까지의 아이들.
평범한 가정에서는 여전히 어리광을 부릴 나이지만 이곳 보육원에서는 상급생으로 보호자 겸 형, 누나가 된 아이들이다.
저들이 철이 들고 싶어서 들었을까.
아닐 거다.
들판에 핀 잡초가 온갖 풍파를 맞으며 억세지는 것처럼 현실이 그들을 철들게 만든 거겠지.
그래서 뭐라도 더 챙겨 주고 싶어 보육원에 갈 때마다 “필요한 건 없냐.”며 물어보지만 한사코 없다고만 한다.
하지만 오늘은 어림도 없지.
나는야 한다면 하는 남자다.
“거부는 거부한다. 필요한 거 말해. 내가 이번에 엄청 벌었거든. 꼭 뭐라도 사 줘야겠어.”
“괘…… 괜찮은데.”
“필요한 거 없어요. 정말요. 진짜예요.”
“맞아요. 원장님이 용돈까지 주시는데요.”
“계속 튕기면 내 마음대로 정한다. 오는 길에 백화점 보이던데, 오늘 백화점 한번 털어 볼까?”
“진짜 없는데…….”
“돈 아깝잖아요.”
아이들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을 때,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입을 여는데.
“뽄.”
“응? 봄아 뭐라고 했어?”
“뽄. 오빠 언니들 뽄. 피료해.”
내 무릎에서 내가 씻어 준 떡볶이를 오물거리던 봄이었다.
폰이라……?
그러고 보니, 얘들이 가진 핸드폰…… 다들 낡았다. 이 낡은 핸드폰마저도 있는 애들이 몇 없다.
“봄이가 그러는데? 폰 필요하다고.”
“그게…… 애들하고 연락이 안 돼서.”
“……요즘 주위에 이상한 사람들도 돌아다닌다고 해서, 불안하잖아요. 폰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은 했죠.”
“허허~.”
건방진 것들. 감히 어른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안 되겠다. 아주 혼구녕을 내줘야겠어.
“가자.”
그날, 희망 보육원 전부에게는 자신만의 폰이 생겼다.
폰을 들고 화사하게 웃는 아이들.
이거면 됐다. 뭐가 더 필요한가.
내겐 저 웃음이 최고의 힐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