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33화>
한편 박기혁의 사역마들이 식인목을 맛깔나게 꿀꺽(?)하는 가운데, 게이트 중심부에서는 복면인 조직과 갈퀴 손 오크 부족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끄, 끄어어억!!”
“야! 정신 차려!”
“왜 그래?”
“갑…… 갑자기 쓰러졌어요.”
“갑자기? 야, 야. 일어나 봐. 뭐가 문제야.”
대장이 쓰러진 부하의 뺨을 때리며 물어보지만, 부하의 상태는 더 심각해졌다. 입에는 게거품이 바글바글 올라오고, 눈은 얼마나 까뒤집었는지 흰자밖에 보이지 않는다.
안 되겠다.
대장이 손짓한다.
“‘칵테일’있냐? 있으면 내놔 봐.”
혹시나 모를 비상 상황을 대비해 간부에게만 지급되는 ‘칵테일’
부하는 품에서 주사기를 꺼내 건넸다. 대장이 더 볼 것도 없이 주사기를 쓰러진 부하의 목에 꽂아 넣었다.
바늘이 혈관에 박히는 순간, ‘허헉!’ 숨을 몰아쉬며 부하의 몸이 새우처럼 펄떡거렸다.
잠시 뒤, 의식이 돌아온 부하.
“누, 누가, 내 시…… 식, 식…… ㅇ…….”
하지만, 부하는 끝내 말을 완성하지도 못한 채 다시 혼절하고 만다.
식이? 식인목? 식인목에 문제가 생긴 건가?!
‘그렇다면?’
대장이 쓰러진 부하의 옷을 우악스럽게 찢어 버렸다. 지이익, 섬유가 뜯겨 나가는 소리가 나고, 곧이어 드러난 부하의 왼팔은.
“헉!”
“……!!”
죽어 가고 있었다. 검게 괴사하고 있었다.
왼손부터 시작된 괴사가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었다.
“세상에, 대장! 이게 무슨…….”
“젠장, 지랄 났네.”
대장이 욕을 뱉고는 곧바로 부하의 왼쪽 어깻죽지를 잘라 냈다.
“……이거 얘, 식인목에 문제 생긴 거 맞죠? 그런데 왜 저 꼴이에요. 아무리 식인목이 역소환당했다 해도, 저렇게…….”
“아가리 닫아라. 안 그래도 골 아프니까.”
마수, 마물, 혹은 악마처럼 사역마를 다루는 흑마법사를 악마술사라 한다.
악마술사들은 소환에 필요한 제물 외에도 일부러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제물로 바쳐 사역마를 효율적으로 제어하는데, 이 사역마가 죽거나 역소환당하면 각인이 부서지며 반대급부로 대미지를 입는다.
하지만 부하의 말대로 그 대미지가 이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이렇게 괴사가 됐다는 말은 단순한 역소환이 아니라.
‘아예 소멸당한 거야.’
죽이는 게 아니라 완전히 존재 자체를 말소당한 거다.
이런 대장의 예상은 맞았다.
오래도록 생기를 빨아들여 토실토실 살이 오른 식인목은 이미 박기혁의 바포메트와 아수라에게 먹혀 근원째로 사라진 상태.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대장으로서는 오해할 수밖에 없는데.
‘……이건 일반 초인이라면 할 수 없는 짓이야.’
마법이란 단어를 같이 쓰지만, 여타의 마법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게 흑마법이다. 일반 초인들이 마수를 소멸시키는 건 굉장히 힘들단 말이다.
‘당장 생각나는 건 항마가 가능한 수준 이상의 프리스트. 아니면…….’
‘같은 흑마법사이거나.’
대장은 후자에 무게가 실렸다.
바쁘기로 유명한 프리스트가 쓸모없는 염동석을 구하러 올 리가 없잖나. 고로 자연스럽게 이 염동석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활용할 수 있는 동종 업계만 남는다.
“야, 저번에 레드 써클 쪽에서 우리 작업장 노린 적 있었지?”
“그…… 그런 일이 있었죠. 갑자기 왜요?”
“아니야.”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단순히 의심일 수도 있잖나.
그래, 아직은…….
하지만 이런 대장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소식이 곧 전해지는데.
“대장! 21호가!!”
“…….”
또다시 쓰러진 부하.
녀석의 왼손도 전과 마찬가지로 실시간으로 괴사되고 있었다.
“……간나 새끼들이!”
* * *
두 번째 식인목을 처리하고, 세 번째 식인목 앞에서 난 어린 친구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약간의 전투 뒤 쓰러지는 식인목.
역시나 이번에도 시작된 포식의 시간.
내 ‘양팔’ 바포메트와 아수라가 게걸스럽게 식인목을 소화시켜 나갔다.
“뭐야 저거…… 쟤들 뭐 하는 거예요?! 나무가 빨려 들어가고 있어요! 저 큰 나무가요!”
“소리 줄여. 식사 중이잖아.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이야. 매너를 지켜야지.”
“저건 개가 아니잖아요!”
“개만큼 귀엽잖아.”
메리와 준우가 뚫어져라 나를 노려본다. 마치 ‘제정신이에요?’라고 묻는 것 같은 심히 불손한 눈빛.
왜, 귀엽지 않아?
난 머리를 긁적였다.
“실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저거 몇 마리째지?”
“세 마리째. 기감에 걸리는 건, 당장은 한 마리가 전부네.”
“한 마리 남았어요? 그러면 준우와 내가 본 게 마지막일 것 같아요.”
“위치 기억한다. 저쪽으로 가면 된다.”
우리는 식인목이 완전히 삼켜지는 걸 확인하고는 마지막 식인목을 향해 출발했다.
“그래서, 실전은 충분히 경험했어? 준우는 눈빛에 여운이 남아 있는 게 한바탕 날뛴 것 같네.”
“…….”
“훗. 복수는 달콤한 법이지.”
툭툭, 고생했다 준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데, 메리가 도끼눈으로 날 겨눈다.
“하여튼, 기혁! 기혁은 배려를 몰라도 너무 몰라요. 준우한테는 첫 살인이었다고요. 그런데 안 그래도 충격 받은 애한테 실전이 뭐요?!”
“그래에? 오구오구, 우리 준우. 충격 받았쩌요?”
“기혁!!”
“아, 알았어. 알았어. 인정. 내가 섬세하지 못했네. 미안해.”
틀린 말은 아니다. 첫 살인은 배려받아야 하는 법이지.
그 거친 용병단에서도 첫 살인을 마친 신참에게 술을 주는 전통이 있을 정도니까.
다만 살인이란, 어디까지나 같은 인간을 죽였을 때 붙는 단어다.
“인간 이하의 쓰레기들을 상대로 ‘살인’이란 단어를 붙이는 건 좀 어색하지 않아? 난 그런데.”
“무슨 뜻이에요. 이해 못 하겠어요.”
“말이 어려웠나? 이런 거야. 너 몬스터 죽이면서 죄책감이 들어? 안 들지. 그런데 우리가 죽인 놈들은 저 몬스터보다도 더 쓸모없고 무익한 존재거든.”
메리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괜히 죄책감 가지지 마. 이번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마찬가지야.”
괜한 말이 아니다.
난 쓸데없는 죄책감으로 골로 가는 사람 여럿 봐 왔다.
내가 맞냐. 옳았냐. 이 방법밖에 없었나. 과연 나는 정의인가. 저들의 죄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결정적 순간에 몸이 어는 것의 대부분은 이 죄책감이란 놈이 던진 의문 때문이다.
“일단은 널 공격한 적 앞에서 의문 갖지 마. 너희는 아직 의문을 논할 때가 아니야. 너희들의 뜻을 세우는 건 후일, 너희들이 충분히 강해진 뒤야. 정의나 자비, 명분. 이딴 건 모두 승자의 권리거든. 명심해.”
“……알았다. 조언 고맙다.”
“새겨 둘게요.”
“그래, 곧 있을 실전에서 잊지 마라.”
“……?”
“네? 실전이요?”
“갑자기?”
그러면 내가 굳이 이 바쁜 상황에서 이런 말을 꺼낸 이유가 있겠나.
바로 지금 저기서 날아오는 화살 때문이지.
손을 뻗어 메리를 향해 날아든 화살을 잡아챘다.
“상대는 23명. 아까 말했지. 흑마법사를 상대할 때는 마법을 최대한 피해야 해. 될 수 있으면 둘이 떨어지지 말라는 거 잊지 말고.”
내 충고에 두 사람의 눈이 비장해진다.
양손에 검을 뽑는 준우.
내가 한 말을 잊지 않았는지 속도 위주의 장검과 세검을 나란히 들었다.
메리도 마찬가지.
타워 실드를 아공간에 넣고는 버클러로 대체했다.
꽤 만족스러운 전투태세다.
그런 애들에게 난.
“가 봐.”
툭툭, 등을 떠민다.
무서운 속도로 숲으로 사라지는 준우와 메리.
자, 어디 마음껏 날뛰어 봐.
경험치 이벤트의 시작이었다.
* * *
생각 이상으로 치열한 전투였다.
대뜸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햇병아리 두 명이 달려왔을 때만 해도, 복면인 조직은 내심 이번 일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두에 선 동료가 이렇다 할 반격도 해 보지 못한 채 한준우의 단검에 목이 날아가는 것을 목격하자, 비로소 위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기민하게 움직이는 복면인들.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한준우와 메르헴에게는 나쁜 소식이었다.
그들이 상대하는 건 개인이 아니다.
몬스터는 더더욱 아니다.
지성을 가진 인간.
집단화돼 있는 전력.
게다가 피를 묻히는 것을 서슴지 않는 악인.
둘의 입장에서는 상대해 보지 못한 부류였고, 초반에 잠깐의 우위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점차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둘.
한준우와 메르헴 쪽은 의외의 선공이 성공하며 우위를 잡았다면, 복면인 조직은 빠르게 위기감을 깨닫고 자신들의 장점, 수적인 우위를 잘 살리며 현명하게 주도권을 되찾는 형세.
이런 초반 전투 양상을 보던 박기혁의 평가는.
“갈 길이 머네. 초반 럭키 펀치가 악수로 작용했어. 오히려 전력을 감추고 역습을 노렸으면 이렇게 초반부터 수세에 몰리진 않았을 텐데…… 확실히 대인전 경험이 모자라긴 하다.”
이런 기묘한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먼저 움직인 건 한준우와 메르헴 쪽이었다.
원래라면 메르헴이 주술을 통해 보조하면 한준우가 결정타를 날리는 게 이 둘의 전투 방식이었지만, 이대로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둘은 이 전투 방식을 완전히 비틀었다.
빗발치는 마법의 세례로 몸을 던지는 한준우. 자연스레 복면인들의 공세가 한준우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피한다.
모조리 피해 버린다.
유려한 턴으로 아이스 스피어를 벗겨 내고, 단 한 걸음에 플레임 버스트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타깃 마법은 검을 들어 쳐 내며, 범위 마법은 보법만으로 사각에 숨어든다.
사각이 없다면? 검이 섬광을 뿌리며 사각을 만들어 냈다.
화려한 장미처럼, 때론 우아한 백합처럼.
마치 한 떨기 만개한 꽃처럼 아름답게 춤을 춘다.
한준우의 혈관에 흐르는 무희의 피가 만개했을 때, 그가 피하지 못할 공격은 없다.
무희 가문의 ‘감각 제어’가 얼마나 사기적인지 잘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메르헴은 착실히 준비하고 있었다.
이 전장을 뒤집을 결정타.
대단위 주술로.
뿌리를 이용해 적을 속박하는 ‘속박의 뿌리’. 마나로 만든 들개를 소환해 적을 물어뜯는 ‘들개의 턱’. 흥분 상태에 빠트리는 ‘광분하는 피’.
세 가지 주술이 섞인 대단위 연계 주술.
만월의 늑대
Moon Wolf
지천에 널린 나무뿌리가 쇄도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뿌리에 복면인들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지만, 애초에 선택지가 잘못됐다.
피할 곳이 없었으니까.
지천에 널린 게 나무고 뿌리니까.
쇄도한 뿌리가 적에게 닿을 때쯤 늑대의 머리로 변형,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리고 늑대한테 물린 순간, 상처를 타고 ‘광분하는 피’가 발동된다.
‘광분하는 피’는 적당히 쓰면 모든 면에서 유익한 버프지만 과용되면 상대를 흥분에 빠진 짐승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 말인즉, 공격을 허용한 복면인 절반이 짐승이 됐다는 것.
복면인 절반 이상이 발작하며 제어 불가 상태에 빠지자, 순식간에 전장은 난장판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런 난전에서 누구보다 빛나는 남자.
한준우.
마지막 무희가 춤춘다.
핏빛 무대 위에서.
그렇게 검날이 번쩍이고, 아릿한 혈향이 풍기는 전장에서, 한준우와 메르헴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 * *
뭐, 그래도 아직은.
“……무리지. 괜찮아?”
“허억, 허억.”
“……아, 안…… 안 움직여요. 다리가 안 움직여요.”
지친 메리와 준우가 바닥으로 허물어지고, 난 재빨리 전장에서 둘을 회수해 등 뒤로 던져 놓았다.
“고생했다. 대단해. 기대 이상으로 잘해 줬어.”
정말이다.
본래라면 5명 정도만 처리해도 칭찬해 줄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살의를 가진 인간을 상대하는 거니까.
그런데 봐. 8명을 베고, 2명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다.
지금 서 있는 것은 절반인 13명. 절반에 가까운 숫자를 줄인 것이다.
얼마나 기특한가.
백점 만점에 백점이다.
“편히 쉬고 있어. 뒤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웃으며 앞으로 나선다.
시야에 이쪽을 경계하는 녀석들이 보인다. 두 명에게 당한 게 어지간히 굴욕적이었나 보다. 눈에 독기가 번들거렸다.
마음에 들어.
오히려 좋아.
“몇 가지만 충고할게. 첫째, 너희들 도망 못 간다. 괜한 헛수고하지 마라.”
말을 하며 생각한다.
검으로 상대할까, 마법으로 상대할까.
“둘째, 저기 쉬고 있는 내 친구들 건드리지 마라. 시도라도 하다 실패하면, 약속할게. 제발 죽여 달라고 부탁하게 만들어 준다.”
마법이 좋겠다.
검을 집어넣고 마법진을 띄운다.
“셋째, 이건 충고보다는 배려인데.”
눈 깜짝할 새 주위를 집어삼키는 마법진.
“최선을 다해 달려들어.”
어차피 너희는 여기서 죽는다.
흑마법? 제물?
남은 생기까지, 쓸 수 있는 건 다 써라.
그래야 마지막 가는 길, 덜 억울하지 않을 텐가.
나도 재미있고.
“시작하자. 덤벼.”
빛을 발광하는 마법진.
치솟는 검은 불길.
지옥이 이곳에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