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27화>
아카데미로 몰려든 구급차들!
매년 축제처럼 벌여졌던 ‘중간고사’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기자들을 막아선 경비원
……
…
<속보> 의문의 마법진과 아카데미 폭파 사건!!
(단독 보도) 올해 1학년 중간고사 10개 조가 사라졌다?!
아카데미로 찾아가는 학부모들의 행렬 <사진> 그중에는 대한초인협회 부회장도 있어…… <사진>
피해 학부모 대표 “자세한 사정을 물어봤지만 답변을 회피했다.” 법적 조치 불사하겠다!
……
…
<특종> 익명의 관계자 제보! “이번 사태는 한 명에 의해 벌어졌다!” 왜 소식을 은폐하냐는 질문에……
교수들이 입을 닫은 이유! ‘신개념 마법’의 등장?
모든 질문에 아카데미는 ‘묵묵부답’
대체 아카데미에서는 무슨 일이?
……
…
* * *
“예상보다 시끄럽네.”
중간고사가 끝난 지 얼마나 됐는데, 아직도 밖은 중간고사 이야기로 시끌시끌 소란스럽다.
10개조가 해체된 중간고사. 역대 기수 중 이 정도로 최악의 결과가 나온 기수는 없다며 경악하는 기사들.
개중에는 나를 표적으로 잡은 눈치 빠른 기자들도 있었다.
재조명 받는 ‘백호’ 박민지의 기행! 중간고사 8개조를 단신으로 해체시킨 과거……
혹시 이번에도 검호가?
“……홀로 8개조를 해체시켰다. 과연 검호는 다른가…….”
백호 박민지.
우리 누나의 과거와 나를 비교하며 이번 중간고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범인이 내가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인데.
“이 기자 누구야. 날카롭네.”
그건 그렇고 우리 누님, 8개 조를 썰어? 그것도 단신으로?
하긴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았다.
심상에 예리한 검날을 품은 검사.
일련의 모든 행동에서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수 있는, 그야말로 검을 위해 태어난 인간.
제국 시절을 통틀어도 이 정도의 재능은 보기 힘들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검성하고 비슷하다고나 할까.
“휘유우~ 어머니 말씀대로야. 어째 이 집안은 평범한 사람이 없다니까. 괜히 형님이 기대되네.”
이 밖에도 여러 이야기가 많았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주목받는 루키들 이야기였다.
최고의 세이프티, 타이탄이 아들을 한국 아카데미로 보낸 이유는 ‘위그드라실’?
패웅 강만희 “타이탄의 아들? 내 아들도 만만치 않아!”
진룡의 은둔자 드디어 몸을 일으키나.
진룡가가 숨겨 왔던 비밀 병기. ‘진유리’의 행방을 주목
새삼 느끼는 거지만 여기 사람들은 초인에게 관심이 깊은 것 같다니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작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쯧.”
하지만 이번 중간고사가 유난히 시끄러운 건 내 책임도 없지 않다. 실제로 기사에서 중간고사 다음으로 많은 것이 그날 아카데미 허공에 출몰한 ‘정체불명의 마법진’ 이야기니까.
그래. 저거, 내꺼다.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죄악.
교만, 질투, 나태, 분노, 탐욕, 식탐, 색욕
여기서는 7대 죄악이라 불리는 것들.
이 죄악들의 정수를 한곳에, 모아 나만의 ‘진리’로 재해석한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펼칠 수 있는 고유 마법.
아포칼립스(Apocalypse)
“뭐, 일단은 아포칼립스이긴 한데…….”
이걸 아포칼립스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솔직히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진에 걸려 있는 아포칼립스는 진짜 아포칼립스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이다.
살짝 맛만 보여 준 정도.
굳이 수치화하면 1퍼센트?
이것만으로 최미정과 16조를 무장 해제시키는 데는 충분했다.
여기서 무장 해제는 단지 말뿐인 해제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갑옷, 무기…… 무장한 모든 장비들이 아포칼립스에 먹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도 모자라 운동장의 절반이 소실되고 건물 일부가 박살 났다.
뒤늦게나마 아카데미를 둘러싼 대마법 방어진이 발동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이미 ‘침식’됐던 운동장과 건물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리라.
이 모든 게 고작 1퍼센트의 아포칼립스가 펼쳐 낸 여파다.
그래서 주위의 반응은?
당연히 난리가 났지.
그래도 굳이 하나만 꼽자면 시선이랄까? 기사나, 인터뷰, 여러 관심들이 집중되며 나를 보던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다.
무능자나 마나 허무증, 비운의, 망가진 등등 끈질길 정도로 내 주위를 귀찮게 했던 온갖 부정적인 소문들이 단방에 사라진 것이다.
대신 빈자리를 채운 것이 천재라는 수식어.
아니, 내 상황은 다시 되찾았다고 해야 맞으려나.
“여기도 천재, 저기도 천재. 여기나 제국이나 천재란 말 참 좋아해. 덕분에 개고생을 했는데도 따라붙던 꼬리표가 한번에 없어졌으니, 역시 무력 만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포칼립스는 규격 외의 마법이다.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펼칠 수 있고, 나만이 해석할 수 있는 마법.
술식 무시, 방어 무시, 무한 좌표, 연산 불가능, 형태 추정 불가.
심지어 속성마저 단정 지을 수 없다.
일단 한번 침식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존재’ 자체가 흔적도 없이 ‘멸망’하는 이 정체불명의 마법이, 아카데미 상공에 출몰했다.
심지어 그 자리에 있던 교수들마저 이를 본 상황.
한 사람의 학자라면, 마법사라면 이유 불문 탐구욕이 생길 수밖에 없다. 농담 조금 보태서 싸움이 끝난 순간, 전부 연구실로 달려갔다.
아포칼립스를 해석하기 위해.
그러나 일주일? 여하튼, 며칠도 안 돼서 전부 내게로 찾아왔다.
당연히 모두 해석하려다 포기하고 손가락만 빨다 온 거다.
“애초에 ‘고유 마법’을 해석하겠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인데.”
난 그들에게 ‘마나 허무증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창안한 마법’이라고 대충 둘러댔다.
이 답변 하나로 난 마나 허무증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이 마법이 무엇인지를 말할 필요가 없어진 거다.
천재라는 수식어와 함께.
이걸 노린 것이다.
관심이 아니라 천재라는 명성을 말이다.
일단 천재라고 확정되면 사람들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랑 저 사람은 다르다고 규정하고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져도 ‘저 사람은 천재니까.’라며 그냥저냥 넘어간다.
누군가 그랬던가.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네가 똥을 싸도 박수를 칠 거라고.
실제로다. 내가 경험해 봤거든.
제국 시절 내가 벌였던 수많은 기행들.
예를 들면 마법사란 놈이 기사들에게 도전장을 보내 하루가 멀다 하고 얻어터지거나, 자연 마나를 느낀다며 팬티 바람으로 몇 년을 보내거나.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친놈이라 손가락질 받을 행위가 내가 하니까 찬사와 박수로 돌아왔다.
내가 노린 건 낯 뜨거운 찬사 따위가 아니다. 이제 와서 영웅 놀이나 할까.
단지 내게 필요한 건 이해다.
굳이 내가 만든 성과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이해.
앞으로 나아가기 바쁜데, 이것저것 설명하고 있으면 귀찮으니까.
이게 내가 아포칼립스를 꺼내 든 진짜 이유였다.
패드를 끄고는 소파로 툭 던지는데, 동아리 문이 열렸다.
메리와 준우였다.
“기혁!! 성적 나왔어요!! 나 9등!! 9등이에요!!”
“찢어라. 당장.”
“준우는 풋, 3등이래요! 2등 한다면서 3등이래요! 2등할 거라면서 그렇게 큰소리쳤으면서요. 푸힛.”
“……훈련이다.”
기쁜 듯 총총 뛰는 메리와 대뜸 윗옷을 벗더니 바벨에 원판을 꽂아 넣는 준우.
난 메리가 주술로 날린 성적표를 받아 들고선.
“여러모로 첫 단추를 잘 끼운 것 같네.”
웃었다.
상쾌한 첫 걸음이었다.
* * *
<아카데미 1학년 중간고사(개인평가)>
1등-박기혁(20조)
2등-진유리(1조)
3등-한준우(20조)
……
……
9등-셰이크 메르헴(20조)
……
……
* * *
바짝 조여졌던 긴장이 풀렸다. 성적이 발표되며 사실상 중간고사가 끝나자, 아카데미 분위기는 늘어진 고무줄처럼 축 늘어졌다.
“놀고 싶다. 지금도 놀고 있지만 더 격하게 놀고 싶다.”
“조장, 나 대출(대리 출석) 좀 해 줘. 오늘은 공부할 기분이 아니야.”
“연희쓰, 이 오빠 알아? 뭐?! 같은 동아리!! 소개 좀! 소개!!”
“흐흐. 이번 생은 망했어. 흐흐, 즐기자. 어때, 한잔 콜??”
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로 안심하고.
성적이 나쁘면 나쁜 대로 포기하고.
온갖 구실을 붙여 의욕 없는 나날이 이어간다.
학구열에 불타던 눈동자는 온데간데없다. 이 지루한 일상을 타파하기 위해 흥미를 찾아 나서기 바빴다.
원래라면 이때쯤 교수들이 나서 팍 죽어 버린 학생들의 눈빛을 되돌려 놔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잡아 줘야 할 교수들조차 상황은 좋지 못했다.
박기혁이 보여 준 아포칼립스 때문에.
“……정말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이 술식이 이어지는 거죠?”
“젠장! 분명히 합쳐졌단 말이야! 그런데 왜 안 돼! 왜 안 돼냐고!!”
“……안 되겠어. 기혁 군에게 물어봐야겠군. 조교, 1학년 무슨 수업이지?”
교수들도 기본적으로 교육자이기 이전에 마법사다.
아포칼립스란 미지의 수수께끼에 잔뜩 흥분한 상태인데 학생들을 돌볼 의지가 있을까.
마음 같아선 수업도 빼먹고 연구만 하고 싶을 정도. 이러니 수업이라도 빼먹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본의 아니게 박기혁이 쏘아 올린 아포칼립스란 공이 아카데미 분위기를 망치는 데 도움을 준 상황.
그런데 정작 이 소란의 원흉인 박기혁은 아카데미에 없었는데.
“궁금한 게 있다. 우리 조 봉사활동은 언제 하나? 중간고사 끝나고 할 줄 알았는데, 말이 없잖나.”
“보…… 봉사활동?”
“맞아요. 학기 초에는 바빴으니까 넘어가지만요. 지금부터 해야 해요. 안하면 스케줄 꼬일 거예요.”
“그…… 그래?”
“설마.”
“기혁…… 계획 없는 건 아니지요? 아니라고 해 주세요.”
“…….”
“…….”
“…….”
“……죽어욧!!”
한국 아카데미는 초인의 기본적인 인성 교육의 일환으로 상당량의 봉사활동을 의무화했다.
봉사활동 시간이 모자라면 학년이 유급될 정도.
그래서인지 각 조장은 미리미리 봉사활동 장소를 섭외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사회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박기혁이 이를 알 리 만무했다.
하지만 괜찮다.
왜냐하면 그는 몰랐어도 그의 어머니는 잘 알았으니까.
“어머, 봉사활동이 있는 건 알았네? 기특해라. 보자, 우리 훈련밖에 모르는 아들이 알 리는 없고, 공주님이 가르쳐 줬구나. 그래서 계획은 있고? 없어? 그럴 줄 알았단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있잖니.”
김연희는 자식 모두를 아카데미에 보낸, 심지어 자식들을 모조리 1등으로 졸업시킨 배테랑 학부모다.
배테랑 학부모는 모두 계획이 있는 법.
이미 플랜이 완벽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렇게 박기혁과 일행은 봉사활동을 위해 김연희가 가르쳐 준 곳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렇게 도착한 곳은.
* * *
한빛 보육원
“이거 내가 한 거야.”
“에에에?”
“거짓말하지 마요!!”
“진짠데? 봐봐. 여기. 맞지?”
난 오른손으로 폰을 내민 상태에서 왼손으로 마법진을 펼쳐 보였다.
아이들이 기사 속 마법진과 허공에 떠 있던 마법진을 번갈아 본다. 콩알만 한 아이들이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보는데, 제법 귀엽다.
한참이나 기사와 마법진을 번갈아 보던 아이들이 속닥거리며 모인다. 눈이 커서인지, 머리가 작아서인지, 정말 눈밖에 안 보이네.
“같아.”
“응, 아무리 봐도 같아.”
“정말이에요? 이거 오빠가 한 거?”
“그럴 리 없어! 한글 몰라? 여기에 ‘마법’이라고 써 있잖아. 그런데…… 이 형은 전사잖아!”
“맞아! 오빠는 마법보다 ‘우아악!’이 어울려요!”
“맞아! 맞아! 우아악!!”
우아악은 뭐야……
강하고 과격하다는 건가. 역시 아이들의 발상이란.
“이것들아, 전사는 마법 못 쓰냐? 잠깐 생각해 보니 질문부터가 잘못됐잖아. 너희는 뭘 보고 내가 전사라고 생각하는 거야?”
“오빠는 크잖아요.”
“맞아. 형은 대따 커!”
“크면 다 전사야?”
“응!!”
“그, 그렇군.”
크면 몽땅 전사였구만.
무척 당당해 오히려 내가 민망할 정도다.
“당연한 거지.”
“오빠 바보야?”
“……우아악에서 바보인가?”
쿡, 소리 죽여 웃었다.
귀엽다.
앞뒤 없는 천진난만함이나, 똘망똘망한 눈빛, 쫑알쫑알 떠드는 입술도.
무엇보다 힘든 환경에서도 이토록 티 없이 맑게 웃을 수 있는, 저 순수함이 대견해 절로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치유가 된다.
“좋아, 마법 쓰는 거 보여 주마. 이리 와 봐.”
“나! 나! 보여 줘!”
“헤헤. 내가 1등이지롱!”
“그럼 나 2등.”
“으악, 3드ㅇ…….”
“줄 안 서도 되니까. 저기, 저기 하늘 봐봐.”
왼편에 떠오른 마법진이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다. 청명한 하늘에 떠오른 검은 마법진.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마법진의 문자들이 꿈틀대더니.
움직이다.
배치된다.
그리고.
폭발하는 순간.
펑! 퍼엉!!
“오오!!
나타난 건.
형형색색의 불꽃.
태양 아래 수 놓은 폭죽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