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24화 (24/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24화>

검호(劍虎)와 진룡(眞龍).

명실공이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가문.

‘육체의 검호, 정신의 진룡’이라는 말처럼, 두 가문은 검술과 마법, 각자의 분야에서 전통의 강호로 칭송받는다.

그러나 산 하나에 주인이 둘이 있다면? 필시 잡음이 뒤따르는 법이다.

그게 호랑이와 용이라면?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는 것을 넘어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용호상박(龍虎相搏).

분야가 다르다고 신경전이 없다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가 양보라고 생각하면 이 또한 큰 착각이다.

인정하기에 더 앞서고 싶고.

상대의 대단함을 알기에 더 지기 싫은 법이다.

좋고 싫고의 영역이 아닌 실력.

오직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 이게 바로 명가의 자존심이다.

진정한 의미로 라이벌,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진룡 가문의 일원이라면 필수적으로 검호를 알게 되고, 알아야만 한다.

“세계에서 진룡에 비견될 가문은 검호뿐이다.”

“세간에는 마법의 진룡, 검의 검호라 알려져 있지만 이는 극히 일부다. 마나를 제어하는 우리 진룡에게 마법이 하나의 수단인 것처럼, 검호에게 검은 일종의 방아쇠다.”

“검 호랑이.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포식자로 변하는 방아쇠인 것이야.”

호랑이, 포식자, 전투광…….

진유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렸을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던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궁금해졌다.

집안 어른들이 그토록 경계하던 검호는 대체 어떨까?

정의에 몸을 던지는 기사? 쉼 없이 스스로를 단련하는 검사?

본능에 충실한 짐승? 아니면 피에 굶주린 살인귀?

분명히 출발은 호기심이었는데, 눈덩이처럼 불어난 호기심이 관심이 됐고, 나중에는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묘한 기대까지 하게 된 그녀였다.

그렇게 진유리가 처음으로 만난 검호, 박기혁.

솔직히 걱정도 했다. 마나 허무증이라 했던가? 그거 때문에 여러모로 논란이 많던 사람이지 않나.

그러나 진유리도 어렸을 때부터 ‘고통’ 받았던 사람이다. 그녀 또한 어렸을 때 세상과 단절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던 상처 많은 소녀였다.

과거의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중요한 건 현재니까.

그래서 기대를 접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박기혁은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와…….’

기대 이상! 상상 이상!

무엇을 상상했던 그 이상!!

2미터가 훌쩍 넘는 신장, 무쇠처럼 단련된 신체, 비현실적인 비율.

또렷한 눈빛에는 야성과 지성이 공존했고, 터프한 얼굴선은 실로 남자다웠다.

‘……멋져.’

유독 미남미녀가 많다는 진룡 가문.

누가 그랬던가, DNA는 위대하다고. 진룡의 피가 들어가면 직계 방계 할 거 없이 다들 뛰어난 외모를 가졌다.

근데 미남미녀에도 종류가 있잖나. 진룡가의 사람들은 선이 여리여리한 전통적인 미남미녀. 흔히들 꽃미남, 꽃미녀라 부르는 부류였다.

실제로 진유리조차도 카페에 앉아 있으면 아이돌이나 배우로 오해받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검호는! 박기혁은!

완전히 달랐다.

이제껏 그녀가 봐 왔던 가문의 사내들은 말라깽이 허수아비로 보일 정도로 사내다움을 만방에 뿜어 대고 있었다.

“와…… 저 근육 봐. 저건 짐승남이 아니라 그냥 짐승…… 아니, 맹수야.”

“페로몬 덩어리야. 눈길이 갈 수밖에 없어.”

“그래서 더 매력적이지 않아? 뭔가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 같잖아.”

평균 이상의 얼굴이 아득히 초월적인 육체와 합쳐지자, 남자다운 미남으로 둔갑하는 기적!

무엇보다 저 남자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저것.

길들여지지 않은 맹수미(美).

그래서 치명적이다. 그래서 자극적이고. 자칫 방심하다간 중독될 것만 같다.

어쩌면 이미 중독됐을 수도…….

“꺄아! 어떡해!!

팡팡, 이불을 박찼다.

그렇다.

진룡의 적통인 진유리도 사실 귀여운 고양이에 껌뻑 죽고, 나풀거리는 낙엽에도 깔깔대는 흔한 십대 소녀였던 것이다.

그래서 외모밖에 없냐고?

검술은? 능력은? 그런 건 어디 있냐고?

그런 걸 굳이 말해야 하나.

모두 알잖아?

*   *   *

재앙이 나타났다!

1학년들 사이에서 박기혁을 부르는 말이었다.

대체 박기혁은 무슨 짓을 벌였기에 인간을 초월한 초인들. 그중에서도 엘리트들만 모인다는 아카데미에서 재앙이 된 것일까.

처음은 14조였다.

“난 14조장 최인수. 네게 도전한다.”

평소 박기혁의 힘이 과대평가됐다 말하고 다녔던 14조장은 자신 있게 코인 20개짜리 결투를 벌였고.

졌다.

단순히 졌다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처참하게 처발렸다.

14조장은 평소 입이 마르도록 자랑했던 ‘마법과 무공을 조합한 연계기’에서 마법의 ‘마’자도, 무공의 ‘무’자도 꺼내기 전에 바닥을 굴러다녀야만 했다.

그래, 여기서 끝났다면 으레 있을 수 있던 흔한 경기였다.

호기롭게 도전했음에도 볼썽사납게 망가진 게 몹시도 부끄러웠지만, 스스로 부끄러울 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때, 패배감에 물들어 있던 14조장에게 박기혁이 속삭이는데.

“너희 코인 몇 개야? 68개? 그거밖에 안 돼? 이대로라면 하위권인데…… 놀리는 거 아니고, 딱해 보여서 그래.”

“그런 의미로 딜을 하나 할까 하는데.”

방식은 네가 원하는 대로, 숫자도 네가 원하는 대로 불러 와도 된다. 어떤 식으로 겨뤄도 상관없다.

그러니.

“다 걸고 한 판 더 어때?”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거부하기에는 앞에 쌓인 68개의 코인이 너무 탐났으니까.

그래서 시작된 13:1의 전투.

탱딜힐 완벽한 대형을 맞춰 14조에서도 가장 호흡이 좋은 멤버로 출전했다. 장비마저도 실전에 쓰이는 아티팩트를 착용. 진짜 실전이라 생각하고 필살의 각오로 임했다.

하지만.

패배.

또 졌다.

마법을 비롯해 원거리 견제가 실드에 분쇄될 때만 해도 할 만하다 생각했다. 탱커들과 근접 딜러들이 개싸움에 휘말려 흙바닥을 뒹굴 때도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스켈레톤이 나올 때만 해도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스켈레톤이 무엇인가. 소환물의 기초를 배울 때나 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난감 아닌가. 우수수 솟아나는 스켈레톤들을 보며 오히려 안심이 될 정도였다.

그래, 14조장은 꿈에도 몰랐다. 그토록 무시한 스켈레톤이 자신의 조를 갈가리 찢을 줄을.

“머, 뭐야! 실드. 실드!!”

“도와줘! 빨ㄹ…… 커억!!”

탱커의 무장에 들러붙어 움직임을 봉쇄, 이어진 기습.

부서진 녀석들은 시야의 사각에서 재생성, 재차 이어진 기습. 급소를 기가 막히게 공략하는 것도 모자라 흙을 뿌리며 기습을 하는 꼼수까지 갖췄다.

이런 놈들이 죽음까지 불사하고 있으니, 게임이 되겠나.

끝이었다.

전투도.

14조도.

“너무 실망하지 마. 그저 운이 나빴던 거니까.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다. 비슷한 친구들이 많이 생길 거거든.”

이른바 ‘박기혁 레이드’는 이렇게 막이 올랐다.

자신의 몸에 120개의 코인을 건 박기혁. 용기 있는 자들이여 도전하라.

120개면 당장 1등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숫자.

포기하기에는 너무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한 6조와 11조가 도전하게 된다.

특히 11조는 1학년 모두를 통틀어 41명으로 가장 많은 숫자를 자랑하는 조.

이들은 박기혁을 잡아 중간고사를 무사 패스하겠다는 일념하나로 검을 들었고.

망했다.

철저히 망해 14조를 따라 먼지처럼 흩어지게 된 것이다.

중간고사가 시작된 지 3일째.

주말을 포함에 일주일 풀 스케줄로 진행되는 중간고사가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은 이 시점.

3개의 조가 해체됐다.

단 한 사람.

박기혁에게.

항거 불가능한 공포에 아이들은 오늘도 그를 향해 말한다.

재앙이 나타났다고

*   *   *

딸랑~

학교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문을 열 때만 해도 왁자지껄 시끄러웠던 식당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지더니, 모두 짠 것처럼 내 쪽을 돌아본다.

음, 인사라도 해 줘야 하나?

“굿모닝?”

꼴깍-

정적.

압도적 정적.

이쪽을 보며 사정없이 떨리는 눈빛.

입은 안 열었지만 말이 들리는 듯했다.

재앙이 떴다! 젠장, 이제 앉았는데! 야야, 빨리 먹어!

코인 없지? 있어? 너 먼저 가. 아냐, 같이 가자.

침묵 속의 아우성이 이런 거려나. 분명히 쥐죽은 듯 조용한데 시장 바닥보다 더 소란스러운 느낌이 들고 잠시 후.

후다닥!!

부리나케 사라지는 녀석들.

홀로 남겨진 학생 식당에 쌩~ 하고 찬바람이 지나갔다.

“역시 인간은 맞아 봐야 안다니까.”

세 개의 조를 해체시켰을 때부터였을 거다. 아이들이 나를 피한 것이.

내가 몇 번을 주장했던가. 나 강하다고.

애초에 힘을 숨길 생각이 없던 나다. 이는 성적이 증명하지 않았나.

하지만 이렇게 당부했는데도 한사코 마나 허무증, 무능자 꼬리표를 놓지 않는 등신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봐, 단번에 정리됐네.

이제 감히 내게 마나 허무증이나, 무능자 꼬리표를 들이밀 간 큰 놈들은 없겠지, 꼬여 있던 매듭을 풀어 버린 것 같아 흡족하다.

“재앙, 재앙. 나름 느낌 있네.”

조용하다. 다 도망갔으니까.

줄을 설 필요도 없다. 당연하지. 나밖에 없으니까.

이 넓은 학생 식당에 홀로 있으니, 사뭇 외롭기도 하지만 두려움은 경외의 또 다른 표현.

무릇 절대자라면 고독을 즐겨야 하는 법.

이 몸은 고독을 즐길 줄 아는 남자였다.

“조용한 게 옛날 생각나고 좋네.”

한때 마왕으로 불릴 때는 이게 일상이었다. 동료들도 나랑 겸상을 피했다.

물론 성녀는 예외. 걔는 특별 케이스니 빼자고.

홀로 남겨진 식당에서 유유히 음식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어머님들.”

“기혁 학생 왔구나. 어쩐지 조용해졌다 했어.”

“기혁이는 오늘도 멋지네. 어째 갈수록 남자답다이. 여자 친구는 있어? 아줌마가 소개시켜 줄까?”

“너는 쓸데없는 말 좀 하지 말라니까. 어서 와 기혁 군. 오늘도 기혁 세트지?”

“네, 언제나처럼 듬뿍 부탁드려요.”

“아줌마만 믿으렴. 꽉꽉 눌러 담을 테니까. 얘들아, 기혁 세트 하나.”

기혁 세트.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별거 없다.

오늘의 메뉴가 전부 나오는 것.

보자, 오늘의 메뉴가…… 두루치기 정식에, 모둠 까스 정식 등 8종류의 메뉴가 보인다.

보통은 여기서 하나를 선택하지만.

나는 그냥 다 시킨다.

겨우 하나 가지고 누구 코에 붙이라고.

이 짓을 학기 시작하고부터 계속하니까, 언젠가부터 아주머니들이 ‘기혁 세트’라고 이름을 붙여 주더라.

물론 여기에는 밖과는 다르게 살가운 내 태도도 중요하다. 자고로 밥 주는 사람한테만큼은 예의를 보여야 하는 법.

기합이 잔뜩 들어간 아주머니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많이 먹어.”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내 앞에 놓인 오늘의 메뉴들.

노릇노릇 먹음직스러운 황금빛 생선 까스와 몽글몽글 곱게 올려진 타르타르 소스가 나를 향해 손짓하는데.

어우, 침 고이네. 당장 먹어야겠다. 먹어서 혼내 주자.

“맞다. 잠깐.”

깜빡할 뻔했네. 들었던 칼을 내려 두고 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왜 요즘 인싸들은 이렇게 음식 사진 찍어서 올리는 게 국룰이라며.

“오.늘.의.아.침.”

#아침은가볍게#대식가NO#미식가YES#잘먹겠습니다.

사실 인싸가 되는 것보다는 순전히 어머니 때문에 올리는 거다. 이렇게라도 내 일상을 보길 원하시니, 아들 된 도리로써 당연히 해 드려야지.

역시나 올리기 무섭게 어머니에게 ‘우리 아들, 먹는 게 줄었더라, 속이 부대껴도 끼니는 거르지 말렴~(하트 든 곰돌이)’ 톡이 온다.

그러면 이제 끝났으니.

먹자!

네 녀석. 아까부터 공격적이었어. 와그작, 생선 까스부터 베어 물었다.

생선 까스로 일견 느끼해질 때쯤 두루치기를 한 움큼 집어 입에 넣는다. 매콤달달 자극적인 맛이 폭죽처럼 터졌다.

이때가 중요하다. 이런 자극에 오래 노출되면 입맛이 떨어질 수 있는 법.

뭐든지 균형이 중요하다. 한껏 화려해진 입을 에그 샌드위치로 식혀 주면.

편안……

생선에 돼지고기에 달걀.

육해공이 완벽히 조화된 실로 완벽한 조합이다.

“좋아, 좋아.”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식도락은 여기가 압승이다.

제국 시절 투박한 음식들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 따로 없다니까. 이런 재미를 놓치고 살았다니, 제국 시절 내 인생이 덧없이 느껴질 정도다.

우걱우걱.

와그작.

촙촙.

나는 아직 배고프다.

먹고 있음에도 배고프다.

순식간에 절반 이상을 먹어치웠음에도 내 수저는 멈출 줄 모른다.

그러는 사이 문이 열리며 아이들이 들어온다.

여기서 아이들은 문 밖에서 힐끔힐끔 내 동태를 살피는 아이들이 아니다.

언제나처럼 명품 티에 레깅스, 슬리퍼, 온통 명품으로 치장한 메리와

“기혁,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도 조용하게 좋네요.”

땡땡이 털 잠옷을 입은 채 재빠르게 그릇 앞에 선 준우.

“모둠 까스, 모둠 까스…….”

난 둘을 보여 유쾌하게 웃어 준다.

“어서 와.”

내 어린 친구들.

……

“이제 밥값 할 시간이야.”

내 손가락이 이쪽 눈치를 보는 아이들을 가리킨다.

“물어 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