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23화 (23/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23화>

10대.

이성보다는 본능이,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시기.

성숙과 미성숙의 경계에서 흔들리던 과도기.

돌이켜 보면 나도 그랬다. 왜 있지 않은가,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이 들 때.

그때가 10대였던 것 같다. 한창 나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생각할 때였다.

온갖 시련이 닥침에도 주인공은 끝내 성공해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로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처럼.

10대의 난 항상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근거는? 없다.

왜? 모른다.

그냥 꿈꿨다. 막무가내로.

지금 돌이켜 보면 참 대책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무모했을까?

그런데 이게 10대인 것 같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세상의 중심인 줄 알고.

다시 하라면 못 할 정도로 무모했고.

똥인지 된장인지 주둥이에 넣어 봐야 아는.

자기 합리화의 덩어리.

그래서 가르쳐 주려고.

어른으로서, 인생 선배로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삶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말이다.

*   *   *

맞잡은 손에서 바들바들 떨림이 전해 온다.

“형이, 시커먼 사내놈 손잡는 취미는 없거든.”

“끄으으으.”

“힘내 봐. 힘에 자신 있다면서.”

“끄아아악!!”

현재 나랑 팔씨름 중인 놈은 8조 부조장.

이름이 김 뭐시기더라. 나도 어지간하다. 그새를 못 참고 까먹었네. 어쨌든, 1학년들 사이에서 제법 힘 좀 쓴다 소문난 놈이다.

얘가 이렇게 빌빌대고 있어도 나름 유망주란다.

패웅의 아들 걔랑 호각을 이룬다고 들었는데, 겨뤄 보니 아예 빈말은 아닌 것 같다.

능력도 좋아, 스펙도 괜찮아. 주위에서 오냐오냐 인정해 줬을 거고, 덕분에 기고만장해졌고, 말하다 보니 눈에 뵈는 게 없을 만하다.

그래서 이 형이 고쳐 주려고.

눈에는 눈, 힘에는 힘으로.

“하음, 지루해서 물어보는 건데 언제까지 이럴 거야?”

“끄으응!!”

“똥 싸냐? 뭘 그리 용을 써. 아주 흠씬 지렸겠구만.”

“끄아아악!!”

“아가야, 막무가내로 힘을 쓰면 너만 손해야. 정확히 타깃을 정하고 힘을 집중해. 체중을 실어. 봐봐.”

미동도 없던 내 손이 움직인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내 몸으로 당기자, 맞잡은 녀석의 손이 마치 N극을 찾는 S극의 자석처럼 자연스럽게 끌려왔다.

젖 먹던 힘까지 주고 있던 녀석의 얼굴이 퍼렇게 썩었다.

평소 힘 하나만큼은 자기가 최고라 으스댔던 녀석 입장에서 이 광경은 굴욕적이다 못해 수치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이야.

“인마, 정신 차려. 굴욕적이다, 수치스럽다고 눈 돌리면 넌 딱 거기까지일 뿐이야.”

“……!!”

“한 번만 더 보여 준다. 잘 봐.”

시작은 관조.

내 안을 관조한다. 근육을 조율하고, 신체를 완벽히 내 제어 안에 놔둔다.

그리고.

“타깃을 정한다.”

왼팔과 왼팔의 근육이 닿는 어깨와 가슴까지.

그리고.

“힘을 집중.”

까지직.

근육 줄기가 쥐어짜지는 소리와 동시에 왼팔의 근육이 폭발적으로 부풀어 오른다.

마지막으로.

“체중을 싣는다.”

멈춰 있던 손이 천천히 안쪽으로 움직인다. 녀석이 바들바들 전신을 떨며 저항해 보지만 손은 평온할 정도로 제 갈 길을 갔고.

끝내.

꿍!

바닥에 닿는다.

“어때, 쉽지?”

손을 뻗었다. 수업료 내놔라.

코인 5개 Get.

*   *   *

다음 대결은 마법 대결.

농담 아니다. 진짜로 나한테 마법으로 비비려는 멍청이가 있다니까.

“역시 10대라니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나는 마법을 쓸 수 있다며, 심지어 내가 검보다 마법에 더 자신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는데, 우습게도 나한테 마법으로 도전해 오는 녀석들이 많다. 심하게 많다.

하루걸러 하루. 너무 많아서 화도 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제일 어이없는 건 뭔 줄 알아?

정말 수준 이하에, 마법사라는 말을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수준 낮은 놈들도 종종 보였다.

지금 날아오는 저거, 엉망이다 못해 끔찍한 윈드 커터가 그 좋은 예다.

날아오는 윈드 커터가 내 실드에 막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말도 안 돼엣!!”

말이 안 되긴 뭐가 안 돼.

울분을 토해 낸 아이가 쏘아 낸 마법은 에어 봄(Air Bomb).

공기를 압축해 터트리는 마법으로 간단한 술식과 즉발에 가까운 시전 속도로 마법사들이 자주 애용하는 마법이다.

그밖에도 윈드 피스트, 윈드 월, 갖가지 마법들이 실드를 때려 왔다.

공통점은 모두 풍 속성 마법이라는 것.

“풍 속성이라.”

풍 속성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근원인 바람을 연상해 보면 쉽다.

바람은 빠르다. 또한 보이지 않는다.

속도와 은밀함.

시전에서부터 발동까지, 속도라는 측면에서는 타 속성을 압도한다. 여기에 바람의 특성상 무색투명이라는 치명적인 무기가 항시 달려 있다.

그야말로 대인간전 특화 속성.

많은 마법사들이 적의 숨통을 끊을 비장의 한 수로 풍 속성을 선택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쟤는.

“무슨 자신감으로 한자리에 들러붙어서 마법을 쓴다니?”

뛰다 못해 날아다녀도 모자랄 판에, 자리에 꿀이라도 발랐는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누가 보면 자기 집 안방인 줄 알겠다.

몸이라도 단련했으면 이해라도 한다.

두툼한 지방질 외에는 볼 것도 없는 몸뚱이. 마음먹고 한 대 때리면 척추째로 부러뜨릴 자신도 있다.

“웃음도 안 나오네.”

기본이 안 돼 있다.

재능이나 실력은 그렇다 치자. 심지어 노력도 재껴 두자. 거기까지도 참아 주겠다.

그런데 최소한 자기가 쓰는 속성에 대한 이해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장점이라면 시전 속도인데, 속도가 빠르면 뭐 해. 눈에 빤히 보이는데.

바쁘게 움직이는 손 좀 봐라. 술식 구성을 저렇게 대놓고 하는데 모르는 바보가 어디 있나. 너무 당당해서 처음에는 속임수인 줄 알았다.

간혹 있거든, 속으로 영창하면서 손으로 페이크 술식을 펼치는 여우 같은 놈들이.

물론 아니었다.

저 반푼이에게 기대한 내가 잘못이다.

저렇게 대놓고 술식을 구성하는 상황에서 은밀함? 개나 줘버린 거지. 언제 마법이 완성될지 아는 시점에서 은밀함은 물 건너간 거다.

그래서 내 결론은.

“넌 좀 혼나야겠다.”

호되게 혼나 봐야 정신을 차리지. 운동도 하고 살도 빼고, 그래야 연애라도 할 거 아니야?

나 너무 착한 거 아닌가.

인간적으로 넌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이제부터 돈 주고도 못 배울 교훈을 내려 줄 테니까.

딱, 손가락을 튕긴다.

그 순간 바닥에 그림자가 비치고.

“저, 저게 뭐, 뭐야.”

“뭐긴 뭐야. 진짜 마법이지.”

허공을 수놓은 다크 애로우 다발.

암 속성 기본 마법인 다크 애로우가 태양을 가렸고, 참교육의 화살 세례가 쇄도했다.

코인 15개 Get.

*   *   *

결투당 베팅의 최소 단위는 5개다.

도전자는 5개 이상의 코인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고, 이를 수락한 방어자가 같은 숫자의 코인을 놓고 결투가 일어나는 게 기본 골자다.

하지만 상대가 약하다면,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다면 더 많은 코인을 걸고 싶지 않을까? 5개가 아니라 10개, 20개…… 더 많은 숫자의 코인을 단번에 벌고 싶지 않겠나.

이 또한 가능하다. 5개는 어디까지나 기본값. 10개를 걸든 가진 걸 다 쏟아붓든, 자유다.

반대로 상대에게 이길 자신이 없다면? 이전에 몇 번 싸워 봤는데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면? 협상을 하거나, 5개를 내주고서 결투를 회피하는 방법도 있다.

여기서 문제.

한 명의 방어자에게 여럿의 도전자가 모여 코인을 모아 도전하는 건 가능한가.

물론 가능하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모습처럼.

“눈을 가려. 진형 짜!”

마법과 화살, 투창 등 원거리 공격들이 날아든다. 고드름을 닮은 아이스 스피어가 실드를 얼게 하고, 화살들은 폭발을 하며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

온갖 마법들이 내 시선을 가리려고 퍼부어지는 동안 탱커와 근접 딜러들이 포위망을 구성했다.

그런데 어쩌나, 다 보이는데.

푸른 하늘 한가운데 이질적인 점. 제3의 눈이라 불리는 관측용 마법.

매직 아이(Magic Eye)다.

“괜찮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듯 전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있는 힘, 없는 힘 모조리 끌어 써 공격을 쏘아 내는 딜러군들이나, 풀 플레이트 아머로 완전 군장을 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는 탱커군들이나.

특이점은 이들만큼이나 구경꾼들이 많다는 것.

안 그래도 주목받던 난데 떠들썩하게 상대를 박살 냈다는 소문이 돌아서일까. 요즘 내 결투는 제법 흥행하는 중이었다.

음, 관심 달달하구만.

흡족하게 웃으며 애들을 내려다보는데.

응? 누가 나를 보고 있다?

“호오, 눈치챘네.”

정확히 내 매직 아이를 응시하고 있는 아이.

1조장 진유리.

한국, 아니, 세계 최고의 혈족을 논할 때 우리 가문과 더불어 언제나 수위에 오른다는 진룡 가문의 아가씨였다.

내 눈을 향해 윙크를 하는 진유리. 물론 여기서 눈은 매직 아이다.

녀석.

“귀여워.”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정면을 본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뒤로 손을 뻗는데.

“커억-!”

“너는 간도 크다.”

어디서 은신질인가? 머리통을 잡아 정면으로 노려보는데 그 순간, 본능적으로 머리를 젖힌다.

쉬익!

코끝을 스쳐 가는 한 발의 화살.

“호오…… 실드를 뚫어?”

내심 감탄하던 때 이것까지 노린 것처럼 바닥이 푹 꺼지며 촤르륵, 쇠사슬들이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달려든다.

곧이어 시작된 총공세.

“이야…….”

알겠다.

이놈 미끼네.

이놈을 희생양 삼아 나를 흔들 생각이구나.

“깜찍한 녀석들.”

그렇다면 참된 어른으로서 재롱에 어울려 줘야겠다. 내 손에 잡혀 있는 녀석을 저 멀리 던져 버리고는 실드마저 푼다.

“드루와.”

놀아 보자고.

쿵!!

정면에서 들이닥친 방패를 어깨로 들이받는다. 금속의 서늘함이 피부로 느껴지기를 잠시, 곧이어 우측에서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탱커. 왼쪽에서는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쪽을 주시 중.

생각 이상으로 정돈된 진형.

확실히 이제껏 멋모르고 달려들었던 멍청이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발가락 끝부터 전율이 몰려왔다.

흥분.

그래, 지금 난 흥분하고 있다.

오가는 주먹에 희열을 느끼고. 날 쓰러트리고 말겠다는 젊음의 패기가 나를 전율케 했다.

“좋구나!”

난타전이 벌어졌다.

가로막는 방패에 주먹을 날린다. 내려치는 망치는 손을 잡아 비틀고, 등을 노린 검은 흘리며 곧바로 돌려차기. 뒤를 노리던 녀석의 갑옷을 박살 냈다.

나가떨어지는 녀석의 뒤에서 창이 뻗어 온다. 이 틈조차 노린 집요한 공격.

급히 피해 보지만 상처는 피할 수 없다. 팔뚝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훌륭해!!”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다시 아수라장으로 몸을 던졌다.

원거리에서 마법과 화살 등 형형색색의 공격이 쏟아지지만, 이미 난 취해 있다.

맨몸으로 마법들을 견뎌 냈다.

순식간에 넝마가 된 옷.

오가는 공격과 둔탁한 충격.

금속이 만든 파열음과 바람 빠지는 비명 소리.

시큼한 땀 냄새, 가파른 호흡, 아찔한 혈향.

피륙이 맞닿은 거리, 두근대는 심장이 맥동하는 이것이야말로.

사나이의 승부 아니겠나!

신난다. 즐겁다. 아, 행복해!

“역시 싸움은 개싸움이 최고라니까! 푸하하하!! 더 덤벼! 더더!!”

그런데 너무 날뛰었나. 이런 내 모습이 부담스럽나 보다.

곳곳에서 허탈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괴물이라는 둥, 인간 맞냐는 둥, 저거는 결투가 아니라 레이드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둥.

온갖 평가가 난무하는 가운데.

저기 조장 녀석도 신음을 흘리며 결국 후퇴한다.

“플랜 B로 가자.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마! 작전대로 간다. 접근전을 피하고 탱커들은 자리만 지켜. 연습한대로만 하면 돼! 힘내자!”

쟤가 누구였더라. 14조 조장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어쨌든 판단이 괜찮네. 파이팅도 있고.

나랑 끈적하게 어울리던 근접군들이 후퇴한다. 시선을 정면으로 둔 채 천천히 뒷걸음질. 훈련이 잘됐다.

그러고는 마치 대형 몬스터를 레이드하듯, 타워 실드로 만들어진 벽이 세워진다.

“훌륭해.”

신속한 움직임에 박수 한 번.

진형의 완성도에 박수 또 한 번.

과연 아카데미는 가위바위보로 들어온 게 아닌가 보다.

갑자기 궁금하네. 방어력은 괜찮을까?

시험해 보자.

통통, 튀듯 스텝을 밟다가, 허벅지 근육이 폭발하듯 부풀어 오르는 순간.

“이 꽉 깨물어라.”

“……!!”

박기혁류!

진심 발차기!

콰아-아앙!!

“이런 미치기기잌!!”

폭탄이 터진 것 같은 폭발음이 들리며 방패 뒤에 있던 녀석의 비명이 들려온다.

“음, 합격.”

밀릴지언정 무너지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진형도 괜찮다. 3명의 탱커로 가로막고 근접 딜러로 틈새를 매워 공격자의 시야를 모조리 막는다. 정보를 차단하겠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귀에 인이어도 보이네. 어쩐지 목이 터져라 외쳐 대던 목소리가 안 들린다 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 아이들, 어설픈 결투는 집어치웠다. 아예 날 보스 몹이라 상정하고 레이드를 준비한 것.

뿌우우- 신호와 함께 대형이 밀려든다.

목표는 나, 나 하나를 사냥하려는 공격대.

“귀여워.”

그렇다면 나도 화답해 줘야겠지.

너희들의 노력에 걸맞게.

공격대에는 공격대로.

“얘들아.”

빠직- 빠지직!!

공간이 부서진다. 평범하던 세계가 부서지며 드러난 어둠.

그 어둠의 끝, 소용돌이치는 무저갱에서 모습을 드러낸 나의 종이여.

스켈레톤.

마왕의 군대가 눈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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