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21화>
오가는 카드에 소리치는 사람들. 쾌락에 눈이 돌아가고, 버튼에 인생을 담는다.
카드 한 장에 울고 웃으며 칩 하나에 인간임을 포기하는 곳.
추악한 욕망과 들끓는 광기의 개미지옥.
이곳은 불법 카지노였다.
“깨워.”
촤륵!
차가운 물에 죽은 듯 쓰러져 있던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기,김 사장. 사, 살려 주게. 살려 주십시오.”
“시간 없으니까, 본론으로 가자. ‘아수라의 마검’ 어디 갔어?”
“그, 그건, 내 잘못이 아닙니다, 오, 옵티멈이 가져가서…….”
순간, 김 사장의 구둣발이 남자의 손가락을 찍었다.
“끄아아악!!”
“시간 없다 했지? 아는 거 말해서 시간 낭비하지 마라. 계속.”
치익, 김 사장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가운데, 고통에 찌든 남자가 두서없이 말을 뱉어댄다.
우연히 바뀐 경매 일정. 때마침 부산으로 출장을 떠난 남자.
저주받은 검이 유찰될 것이라 확신했던 남자.
한데 김연희가 돌발행동을 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박기혁.
“……박기혁? 검호 가문 막내? 확실해?”
“하, 확실합니다! 녀석이 마검을 사 달라 했고, 옵티멈의 마녀가 마검을 선물해 줬다고. 연합 측 직원에게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리…….”
“닥쳐 봐.”
말을 자른 김 사장.
“이상하네. 검호의 도련님이 왜 마검을 탐냈을까. 목적이 있나? 단순한 호기심? 옵티멈이 우리처럼 ‘실험’을 할 리는 없고, 아니면…….”
조용한 지하에 뚝뚝,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을씨년스럽게 울렸다.
왜? 무엇을 위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가능성들이 떠오르지만, 어느 하나 정확한 건 없다. 그저 온갖 추측의 부스러기만 있을 뿐.
“더럽게 꼬이네.”
이렇게 되면 할당량이 아슬아슬하다.
두통에 인상을 찡그리던 김 사장이 몸을 일으켰다.
“취조는 끝입니까.”
“됐어. 시간 낭비야. 이 새끼 아무것도 몰라. 하필이면 옵티멈이라 애들 붙일 수도 없고. 지랄 맞게 꼬였네.”
“……”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너도 뒷정리하고 와라.”
“알겠습니다.”
“기, 김 사장! 김 사자앙!!”
검을 빼 든 부하가 돌아서는 김 사장을 스쳐 갔다.
이미 남자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절규를 뒤로하고 문이 닫혔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가능성 하나.
‘설마 저주를 해주할 수 있는 건…….’
잠깐 고민하던 김 사장이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 * *
이 세계 사람들은 저주에 대해 대단히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저주는 말이야.’
흉터랑 비슷하다. 깊은 상처는 흉터를 남기고 이 흉터는 평생 각인처럼 새겨지는 거다.
그런데, 이곳 지구에서는 이 저주의 흉터를 아예 생기기 전으로 ‘되돌리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단순히 복원이 아니라, 아예 시간을 되돌리는 것, 다시 말해 ‘회귀’를 추구하고 있다.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거다.
처음 이 꼴을 봤을 때, 기도 안 찼다. 고작 저주를 푸는 일에 신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니, 미친 거 아닌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아니, 상식적으로 인간한테 걸린 저주는 풀면서, 아티팩트에 걸린 저주를 못 푼다는 게 말이 되나?
물론 아티팩트 같은 무기체에 건 저주를 되돌리기 힘들다는 건 인정한다. 무기체는 최소한의 방어 기제가 없기에 저주가 흉터 정도가 아니라 각인처럼 새겨지니까.
하지만 이것들아. 니들이 마법사면 고찰을 해 봐야 할 거 아니야.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오염’이라고 거창하게 붙이며 마냥 포기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건 그냥 게으른 거다.
저주를 해석할 생각은 않고 무식하게 마나만 들이부으면 된다고 생각한 거다.
그 꼴이 이 말 같지도 않은 짓거리를 하는 이유고.
마법의 깊이가 모자라서 벌어진 폐단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저주는 풀 수 없는가. 아니지. 그랬으면 내가 마검을 왜 주웠을까.
방금 흉터를 예로 들었으니, 이번에도 그러자.
얼굴에 보기 싫은 흉터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백이면 백 병원에 간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은 뒤, 치료하면 된다.
여기서도 불가능한 흉터는? 예를 들면 화상 같은 거.
이럴 때는 화장이나, 옷, 액세서리. 정 안 되면 문신을 써서라도 덮으면 된다.
참 쉽죠?
당연하다고? 그럼 마법이 별거야?
당연하지 못한 걸 당연하게 만드는 이적 혹은 기적이 있지만, 확실한 건 저주를 푸는 데 그 정도 거창한 방식은 필요 없단 말이다.
약물 치료로 하든, 수술을 하든, 문신을 입히든, 어쨌든 흉터를, 저주를 덮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렇듯 한 번 저주를 거친 검은.
더욱 날카롭고.
촤륵!
더욱 예리하며.
푸식!!
한층 더 짙은 영성을 띤다.
우우우웅-!!
핏빛 태도가 울어 댔다.
다이어 울프를 양단하며 그 피를 흠뻑 머금은 태도. 녀석이 흡사 전율하는 것처럼 검신을 떨어 대자, 내 검호의 기운도 이에 맞춰 춤추고 있다.
“귀여운 녀석들.”
풀어놓자.
녀석들이 원하는 대로.
시야가 반개하고, 내 안의 검호가 깨어난다.
늘어져 있던 근육이 수축하며 정면에서 달려드는 다이어 울프를 양단한다.
이렇다 할 단말마도 없이 죽어 버린 다이어 울프.
태도는 멈추지 않고 곧바로 옆에, 옆에, 그 옆에, 전방에 있던 다이어 울프까지 모조리 절단한 뒤에야 멈춘다.
학살(虐殺).
마구잡이로 베어 냈다. 보이는 족족 죽였다.
가장 먼저 이를 드러낸 놈의 아가리에 검을 꽂았고, 틈을 노리는 녀석의 머리를 동강 냈다. 나중에는 꼬랑지를 보이며 도망가는 녀석들의 목숨까지 거두어들였다.
시체가 쌓일수록, 내 검이 피를 머금을수록.
혈관에 흐르는 ‘본능’이 요동쳤다.
“그르르르.”
나도 모르는 새 본능의 울음이 입을 뚫고 나왔다.
이게 너다.
이게 검호다.
녀석은 내게 자신이야말로 ‘나’란 사실을 강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우우웅-
울음과 함께 등장한 건, 오른팔 바포메트.
그리고 새롭게 왼팔이 된 아수라가 양쪽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불길한 어둠 뒤에서 눈을 뜬 두 대악마.
주인인 마왕의 충실한 종이 된 두 놈은 검호의 흉성을 정면으로 가로막는다.
끈적하고 불길한 검은 안개는 까불지 말라는 듯 핏빛의 태도를 잡아먹었다.
잔뜩 흥분했던 근육들이 이완됐다. 넘실대는 살기도 차분해지고, 들끓던 검호의 피가 찬물이라도 맞은 것처럼 차갑게 식는다.
‘까불지 마라. 이 몸은 내 거다.’
‘더 이상의 폭주는 용납하지 않는다.’
라고 근엄하게 부르짖는 마왕의 힘.
그러나 명검을 든 검호의 흉성이 순순히 질 리가 없다.
붉은 기운이 형태를 갖추며 흡사 이빨처럼 날카로워지더니, 와직! 검은 안개를 깨물었다.
마왕과 검호의 힘겨루기.
이 싸움에 비하면 달려드는 저 집채만 한 다이어 울프는 애들 장난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두 기운이 폭주할수록 시체는 쌓여 갔다. 대지는 붉게 물들고, 숲은 난도질당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뭐 해? 너도 놀아야지.”
나의 한마디에.
혈관들이 돋아난다. 근육들이 크게 숨을 토해 내고.
잠자던 거인의 신체가 깨어났다.
‘명검’을 잡은 검호.
‘아수라’를 깨운 마왕.
‘진화액’으로 성장한 거인.
비로소 시작된 세 힘의 힘겨루기.
형이 말했지? 판을 마련해 주겠다고.
“어디 마음껏 놀아 봐.”
허락이 떨어졌다.
폭주하는 힘.
초토화되는 숲.
그리고 도망치는 다이어 울프들의 절규까지.
보채지 말렴.
싸움은 이제 시작이니까.
웃으며 검을 내려쳤다.
* * *
“와…… 말도 안 나와요.”
“지금 말했다.”
“……준우, 눈치 없어요? 이 타이밍에 끼어들어야겠어요?”
핀잔을 주면서도 메르헴의 눈은 한 남자를 쫓고 있다. 한준우도 마찬가지, 시답지 않은 말을 하면서도 그의 모든 감각이 저 남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파괴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을 절단 내고 있는 인간.
아니, 인간이라는 말보다는 괴물에 가까운 존재.
박기혁을 말이다.
“잘 보고 있으라더니 이런 짓을 하다니요. 기혁답다면 기혁다운 일일까요.”
“…….”
“솔직히 알고 있었어요. 기혁이 우리 때문에 참고 있는 거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아무것도 숨기지 않은 기혁의 본모습이요.”
“동감이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역시 동감이다.”
메르헴과 한준우.
자는 시간 외에는 붙어 있는 두 사람이 박기혁의 강함을 모를 리 없다.
첫 만남부터 주먹을 들이민 것도 모자라, 심사 날에 교수를 바닥에 패대기치고.
듣도 보도 못 한 스켈레톤에, 대뜸 주술을 가르치고, 검술도 손봐 줬다.
현재 둘에게 박기혁은 친구이며, 동료였고, 스승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설사 알고 있더라도.
눈으로 마주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2레벨 몬스터 중에서도 무리 생활 때문에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다이어 울프를 간단히 짓밟고 있다.
불쌍할 정도로.
“물어볼 게 있어요, 준우. 저기에 휩쓸리면 살 수 있겠어요?”
“……자신 없다.”
“나도예요. 자신 없어요. 그래서 짜증 나요.”
두 사람은 생각했다.
며칠 전 친구를 운운했던 때를.
“부끄러워요. 함께하기에 친구라 큰소리쳤는데 지금 우리 꼴이 뭔가요. 함께요? 오히려 발목만 잡을 거예요.”
“…….”
“더 부끄러운 건 뭔지 알아요?”
“뭔가.”
메르헴이 입술을 들썩이던 힘겹게 뱉은 말.
“무서워요.”
“……!”
“솔직히 무서워요. 알아요. 저기 있는 게 기혁인 건 알아요. 기혁이 나를 해칠 리 없다는 것도요. 그런데 손이 떨려요. 이것 봐요. 멈추지 않아요.”
“…….”
“준우도 그렇잖아요.”
그래.
한준우도 떨고 있었다.
이를 악문 채 필사적으로 진정시켰지만 눈앞에 펼쳐진 괴력은 인간이라면, 이 땅에서 숨을 쉬는 인간이라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힘이었다.
“인정해야 돼요. 나나 너나, 이러면 친구가 될 수 없어요.”
“……인정한다. 더 노력해야지.”
메르헴이 머리에 꽂힌 꽃핀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는요 누군가의 도움이 됐지, 도움 받은 적 없어요.”
한준우 역시 선물받은 검에 손을 얹으며 말한다.
“나도다.”
오늘만이다.
오늘만 놀랠 것이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 것이다.
“두고 보세요.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뱉은 말을 어긴 적 없으니까요.”
“이하동문.”
오늘따라 이 둘에게 친구란 단어가 무겁게 다가오고 있었다.
* * *
며칠 뒤, 수업을 마친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지트인 동아리실로 향했다.
업자의 실수로 한 쪽씩 200킬로그램이 돼서 총합 400킬로그램이 넘어가는 문. 우리는 ‘지옥문’이라 부르는 정문을 가뿐하게 열고 들어서자.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후우!”
리듬에 맞춰 빛살 같은 검격을 내뻗는 준우와.
“기다려요. 기다려요…….”
정신없이 내려치는 와중에 방패에 숨어 때를 기다리는 메리였다.
“호오~.”
준우야 연습 벌레지만, 메리 쟤가 웬일이래?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뽑아 스파링 코트 앞에 앉았다.
형세는 한준우의 우위.
순발력과 민첩성, 검술 이해도. 그리고 무희의 힘. 종합적으로 따져 봤을 때 메리가 준우를 꺾기는 요원하다.
사실 이건 메리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전에도 한 번 말했는데, 준우 저 녀석과의 1:1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대는 1학년에는 없다.
1조장 진유리, 2조장 헨리.
그나마 이 정도가 동수겠다.
나? 나는 빼야지. 아무리 그래도 이 몸이 애들 노는 데 끼어드는 건 모양 빠지지 않나.
잡생각을 하며 구경하는데 마침 메리가 반격의 기회를 잡는다. 온갖 주술로 무장한 뒤 전력으로 철퇴를 내려친다.
깔끔한 일격. 하지만 상대는 한준우.
당연히 물 흐르듯 유려하게 피하는 녀석이지만.
순간, 메리의 입에서 “크어억!” 걸쭉한 비명이 터져 나오더니, 낙하하는 철퇴를 중간에서 횡으로 그었다.
“이햐!”
크다.
‘ㄴ’자로 꺾이는 공격.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건 정말 크다.
중병기가 괜히 중병기겠나. 일격 일격이 태산 같기에 중병기다. 덕분에 민첩성과 변칙이 떨어지는 거지. 그런데 철퇴로 저렇게 군더더기 없는 방향 전환을 이룬다?
이것만으로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프다.
“크윽!”
이것 봐라. 벌써 일격을 허용하지 않나.
검을 양쪽으로 들어 막아 보지만 이미 체중을 실은 철퇴는 검을 가볍게 뚫더니 준우의 옆구리에 작렬했다.
여기서 중병기의 또 하나의 장점이 나오지.
한 번의 우위라도, 잡기만 한다면 그대로 기세를 타 몰아치기 쉽다는 것.
“죽어욧!!”
쿵! 쿵!! 쿵!!!
이제껏 비축한 힘을 마음껏 폭발시키는 메리.
물, 나무, 흙 등등.
사방에서 치솟는 주술이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이에 질세라 한준우도 눈을 뒤집으며 진심 모드로 달려들었다.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전력을 다하는 두 사람.
눈부시다.
반짝이는 저 재능이, 저 눈동자가, 저 의지가 새벽의 태양보다도 눈부셨다.
“나도 질 수 없지.”
귀여운 친구들에게 모범이 돼야 하지 않겠어.
나는 구경을 그만두고 동아리실 한편에 마련된 바벨을 들었다.
“가볍게 300부터 가자.”
그렇게 저마다 다른 이유로 땀 흘리는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우리 앞에 대망의 중간고사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