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20화 (20/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20화>

헌터(Hunter).

돈에 미친 사냥개들.

돈이 되는 곳이라면 설령 그곳이 지옥이더라도 제 발로 기어갈 만큼 세속적인 초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왜 뜬금없이 헌터가 나오는지 궁금한가.

현재 내가 있는 이곳이, 헌터들이 모여 만든 ‘헌터 연합’에서 주최하는 경매장이었다.

이른바 ‘로얄 마켓(Royal Market)’

“‘스톤 오우거의 핵’! 그렇게 찾았는데 연합 놈들이 가지고 있었네.”

“어? 박 회장 왔나. ‘리커버리 포션’ 때문이겠지. 하하하. 자네나 나나 뻔하지 않나. 어서 가세.”

“아무리 그래도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는, ‘블리자드 스킬 북’지. 빙 속성 범위 마법에, 동결이라는 상태 이상까지. 크으, 죽인다. 이거 누가 가지려나.”

“응? ‘저주받은 마검?’에 ‘아수라 시체?’ 이딴 물건도 경매하나. 쯧…… 요즘 연합 상태가 왜 이래?”

말끔한 정장 같은 드레스 코드를 갖춰 입은 사람들이 저마다 와인을 즐기며 경매 물품을 확인하는 가운데, 나와 어머니는 한 발짝 뒤에서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경매장을 산책로 삼아 거닐고 있었다.

“훈련하는데 갑자기 불러서 놀랐지? 미안해, 아들. 얘네들 일 처리가 이래. 게릴라 경매라고 하잖아.”

“신경 쓰지 마시라니까. 어차피 할 일도 없었는걸요.”

“에이, 할 일이 없기는. 거짓말하지 말렴. 곧 중간고사잖니. 엄마도 첫 번째 중간고사가 얼마나 긴장되는지 안단다. 수혁이랑 민지를 봤잖니.”

“괜찮아요. 제게는 메리가 있잖아요.”

“그렇지, 모름지기 일 잘하는 노ㅇ…….”

“……!”

“어머머, 내가 뭐래니.”

어머니, 방금 본심이 나온 것 같으신데…….

“잊으렴.”

“…….”

“잊어.”

“넵!”

“큼큼, 공주님 너무 부려 먹지 말렴.”

“부려 먹기는요. 친구잖아요, 친구.”

“으이구.”

어깨를 으쓱하는 날, 어머니가 얄밉다는 듯이 때렸지만.

난 알아요, 어머니. 내심 뿌듯해하시는 거. 한층 짙어진 저 미소에 숨겨진 의미는 ‘얘는 날 닮았다니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 좋다. 오랜만에 아들이랑 데이트라니, 엄마가 너무 좋아~.”

“저도요.”

“기분이다.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오늘 엄마가 쏘는 날이니까.”

“오! 약속이에요.”

“그러엄. 시간 남았으니까 아래로 가 볼까? 상설 매장인데 가끔은 저기서도 괜찮은 물건이 나오기도 하거든. 엄마만 따라오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헌터, 연합, 경매장.

헌터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만든 헌터 연합.

그들은 연합에 등록된 헌터에게 회비를 얻는 대신, 헌터의 권익을 정재계에 대변하고 증진시킨다. 제국으로 따지면 용병 길드랑 비슷한 역할.

따지고 보면 여기 ‘로얄 마켓’도 이 헌터 권익 증진의 연장선이다.

게이트를 사냥하면서 얻은 희귀한 물품이나 아티팩트. 이 밖에도 실생활에 유용한 신제품들을 경매라는 행사를 통해 팔아넘기고, 이게 헌터의 영향력을 증진시키는 거다.

막말로 이런 거지.

헌터가 있으니까 이런 걸 살 수 있는 거 아니야? 돈만 주면 다 구해 줄 수 있어. 이런 판매자가 어디 있냐. 어때, 우리 쩔지? 유용하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함과 동시에 홍보하는 것이다.

매우 훌륭한 방식이야.

특히 사냥할 능력이 모자란 사람들. 그럼에도 돈과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이런 비즈니스는 잘 먹힐 수밖에 없다.

마침 그 적당한 예가 여기 있네.

“응? 힐링 팩터? ‘힐링 피부에 양보하세요.’ 이게 뭐예요?”

“미용 제품이야. 봐봐? 노화 방지, 주름 개선. 맞지? 여기 버튼을 누르고 자면 피부가 재생되는 원리야.”

이 힐링 팩터라는 물건, 전투로 생긴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턱 없이 마력이 모자라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기준 미달의 아티팩트란 말이다.

다만 멀쩡한 피부에 활기를 넣어 주는 데는 충분했고, 이를 젊음을 갈구하는 부자에게 파는 것이다.

불량품도 없애고, 돈도 벌고, 인맥도 만들고.

이 얼마나 알뜰하냐.

돈에 환장했다는 말이 농담은 아닌지, 비범한 장삿속이었다.

이밖에도 능구렁이 같은 의도들이 어렴풋이 보이지만, 그만하기로 한다.

어차피 즐기는 입장에서야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내가 헌터 연합이랑 얽힐 일도 없는데 눈만 즐거우면 된다.

어머니의 안내에 따라 처음 들어간 곳은 무기 상점.

외관이 마음에 들어 들어간 곳이었는데, 주인은 이미 어머니의 정체를 아는 듯 부리나케 문 앞까지 나와 인사를 건네더라.

“크, 우리 어머님.”

“뭘 이런 걸로 그러니.”

훗, 코웃음 치셨지만 아들의 인정이 기분 나쁘지는 않으신지 미묘하게 어깨가 들썩이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좋은 물건 있어요?”라는 멘트에, 주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무슨 대단한 보물이라도 숨긴 것처럼 눈치를 슬슬 보며 대표님한테만 특별히 보여 준다는 식상한 멘트와 함께 검 한 자루를 내어 놓는데.

결과적으로.

콰직!

“……?!”

“……??”

“……부서졌는데요?”

불량이었다. 내려치니 부서지더라.

두 동강 난 검을 보며 “이게 그럴 리 없는데.” 실성한 듯 중얼거리는 주인을 뒤로하고, 우리는 조용히 가게를 나와야만 했다.

다음은 옆 가게, 잡화점.

역시나 문 앞까지 마중 나오는 주인.

이번에도 “대표님에게만 특별히 보여 드리는 겁니다.”라는 식상한 멘트를 하고는 주인이 우리 앞에 내어 놓은 건.

스킬 북(Skill Book).

“아드님이 마나 허무증을 극복했다는 말 들었습니다. 여기 기초 마법 스킬 북입니다. 이 스킬 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용’만 하면 파이어, 워터, 윈…… 드, …… 디ㄱ…….”

주인은 차마 설명을 다 하지 못했다.

눈앞에서 자기가 말한 마법이 펼쳐지고 있었거든.

그래도 내심 ‘스킬 북’이라는 것에 관심이 가긴 했다.

사용과 동시에 기술을 익힌다? 내가 알고 있기로 이런 방법은 단 하나인데. 그렇다면 이곳 지구의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깊이 없는 마법 수준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되니까.

이외에도 우리는 다른 곳을 돌며 아이 쇼핑했다. 잠시 라운지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준우의 선물을 사려다 검을 몇 자루 더 부수기도 했다.

중간에 크고 아름다운 철퇴가 눈에 띄어 메리한테 선물하려 했는데, 엄마가 내 손을 붙잡으시더라. 그러시며 “아들, 그거 아니야.” 고개를 저으셨고, 그 옆에 있는 마나 회복이 달린 꽃핀으로 대체해야만 했다.

그렇게 즐겁고 알찬 쇼핑을 끝낸 뒤, 우리 모자가 경매장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을 때.

어느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전혀 상상조차 못 한 보물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게 왜?”

먼지 가득한 유리병 안에 든 기분 나쁜 초록색의 액체.

독극물로 분류된 곳에서도 저기 구석탱이에 박혀 눈에도 띄지 않는 저것.

“아들, 왜 그래? 응? ‘괴수 불순물’이잖아.”

“뭐라고요? 불순물?”

이게 왜 불순물이야?

“괴수나 몬스터를 잡으면 아주 가끔씩 나오는 물질이야. 아무짝에 쓸모없어서 우리는 ‘찌꺼기’ 혹은 ‘꽝’이라고 불러.”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이게 여기서는…….

“……쓰레기네요?”

“아마도? 장복하면 중독도 된다고는 하는데, 이게 쓰레기인데도 워낙 희귀해서 독으로 사용하기에도 애매하다고 해.”

“구할 수는 있나요?”

“글쎄…… 얼만큼?”

“최대한 많이요.”

야만족 놈들은 성인식과 함께 한 가지 시술을 받는다.

곰의 신체와 매의 지혜를 얻으려는 시술.

신체를 재구성해 잠재력을 전부 끌어내는 시술로, 무인들에게는 ‘벌모세수(伐毛洗髓)’라 알려진 게 이거다.

그리고 이 물건은 이 시술의 핵심이었는데.

이름하여.

‘진화액.’

찌꺼기, 꽝, 괴수 불순물이라 불리는 이 물건의 진정한 정체였다.

*   *   *

안일했다.

왜 난 전생의 정보를 썩히고 있었는가.

제국에서 별것도 아닌 게 여기서는 귀할 수도 있고, 여기서는 하찮은 게 제국에서는 없어서 못 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전자가 대표적으로 ‘정령석’이다.

전에 바포메트 업어 올 때 변호사가 그러던데, 여기서는 정령석이 엄청 귀하다고 했다. 제국에서는 정령사를 제외하고는 사용할 일도 없는 돌멩이인데 말이다.

반면 후자는 오늘 획득한 진화액이다. 제국에서는 억만금을 줘도 구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인데, 여기서는 먼지 더미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안일했다, 안일했어.

강해지는 데 정신이 팔려 사방에 굴러다니는 보석을 놓쳤다!

반성하자, 어제의 나여. 노력하자, 오늘의 나야.

경매장이 시작되고 이런 내 생각은 믿음. 아니, 확신으로 바뀌었다.

“엄마! 엄마!”

“아니, 얘가 왜 이래.”

“저거 사야 돼요! 무조건 사야 돼요!”

“아들, 저거 저주받은 무기들이야. 그럴싸해 보여도 정작 사용 못 한다니까. 쓰레기나 나름 없어.”

“저주도 저주 나름이죠. 속는 셈치고 사 보세요. 빨리, 빨리. 제가 엄마 부자로 만들어 드릴게요.”

“하아- 얘가 갑자기 안 하던 짓을…… 으이구, 알았어. 하여튼 고집은 지 아빠 판박이야.”

어머니가 룸에 마련된 전화를 들자, 곧바로 화면 속 사회자가 역동적으로 반응했다.

- “5000만! 5000만 나왔습니다. 중국에서는 삼두육비의 악신이라 불리던 ‘아수라’. 그 아수라의 여섯 손에 들린 검 중 세 자루가 5000만! 후에 나올 저주가 걸리지 않은 아수라의 검 시작가가 100억인 것을 감안하면, 세 자루를 전부해서 5000만! 5000만 더 없습니까!!

사회자가 목에 핏대까지 세워 보지만 반응은 민망할 정도로 싸늘하다.

이유? 간단하다. 저주를 풀지 못하기 때문에.

처음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말이야 똥이야. 고작 저주를 못 풀어서 저런 명검을 버려?

잘해야 관상용이란다. 부자들의 수집품이 되어 창고에 박힐 운명이란 거다.

그마저도 저주의 성질에 따라 불가능한 경우가 태반이라네.

“하아, 낙찰됐어. 내가 이걸 왜 샀지, 미쳤나 봐.”

“잘하셨어요.”

“어휴, 아들이 원하니까 사 주긴 했는데, 이거 위험한 거야. 자그마치 ‘아수라’의 저주가 담긴 검이라구. 함부로 가지고 놀면 안 돼.”

“에이, 걱정 마시라니까요. 오늘의 선택, 후회하시지 않을 거예요.”

훗. 저주라고? 나의 전문 분야다.

그, 리, 고. 자그마치 악신의 저주? 저게 악신이라고? 나 좀 웃어도 되나?

저게 악신이면 지나가는 똥개는 펜릴이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어.

내가 신을 좀 아는데, 신이란 종자들은 자존심 때문이라도 저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생각해 봐라. 인간이 개미를 보며 분노하고 저주하나? 이와 비슷한 거다.

간혹, 만에 한 번 정말 신이 극대노해서 저주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래도 굳이 물건에 저주를 걸지는 않는다. 영혼에 하면 더 확실하고 효과도 좋은데 신이 뭐가 아쉬워서 바보처럼 물건에 저주를 걸어?

나중에 봐야겠지만 중국에서 잡아 왔다는 ‘아수라’라는 놈은 최대로 잡아 봐야 대악마 정도일 거다. 바포메트랑 비슷한 수준 정도.

즉 다시 말해.

‘내겐 좋은 영양분이란 거죠.’

추릅, 입맛을 다신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야지.

“엄마, 나중에 아수라 시체도 부탁할게요.”

“시체는 또 왜?”

“상태 보고 ‘왼팔’ 만들려고요.”

“왼팔?”

“네, 오른팔도 있는데 왼팔도 만들어야죠.”

“머리야…….”

“돈은 아까 마검 한 자루 드릴게요.”

“……엄마는 이제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나중에 나올 아수라의 시체와 곁가지로 나온 오염된 마석처럼 모두가 외면하는, 하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반짝이는 보석들을 야무지게 주워 집으로 돌아왔다.

“하하.”

돈 벌기 쉽구만.

*   *   *

며칠 뒤, 김연희는 복잡한 눈으로 앞에 놓인 검을 본다.

“진짜였어.”

며칠 전, 로얄 마켓에서 박기혁이 했던 말.

“제가 엄마 부자로 만들어 드릴게요.”

농담인 줄 알았다.

그저 그녀의 막둥이가 떼를 쓰는 줄만 알았다.

김연희에게는 생소한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박기혁은 얌전하다 못해 소심했으니까.

항상 말을 주저하며 눈치를 보던 아이.

김연희에게 막둥이는 언제나 아픈 손가락이었고, 그래서 떼를 쓰는 모습이 한편으로 기꺼웠다.

그녀가 의문이 들었음에도 가타부타 말없이 선물을 사 준 것도 이 때문이다.

막둥이가 가지고 싶다잖아. 용기가 얼마나 귀여워.

겨우 푼돈에 막둥이의 기를 죽일 수 없지 않는가.

그런데, 이틀 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도착했다.

그녀의 막둥이, 박기혁에게서.

촤륵-

검집을 벗어난 검날이 예리하게 빛난다.

이건 진짜다. 진짜 명검이다.

이 자리에서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명검,

확실한 건 저주가 걸린 검은 아니라는 말이다.

“정말, 저주가 풀렸잖아…….”

자신감 넘치던 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엄마를 부자로 만들어 준다더니, 진심이었니?

기특하고, 대견하고, 고맙다.

“역시.”

막둥이는 날 닮았다니까.

순백의 검날에 비친 김연희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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