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9화>
“친구…….”
게이트행도 없는 말끔한 주말 오전.
모처럼 본가로 돌아온 나는 어제 두 아이가 뱉었던 ‘친구’란 단어를 곱씹고 있었다.
“함께하기에 친구라…… 새롭네.”
가족만큼이나 생소한 말이다.
다만, 가족이 내게 허락되지 않은 축복이라면, 친구는 내가 허락하지 않은 관계였다.
이를테면 수동과 능동의 차이라고나 할까?
곰곰이 돌이켜봤다. 지난 생에서 내가 왜 친구를 만들지 않았지?
사람이 없었나?
고개를 저었다.
내게 다가온 사람이 없을 리가 있나. 마왕이었던 시절 난,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어느 하나 모자랄 게 없는 완벽한 인간이었는데.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 않느냐고?
인간은 숨을 쉬어야 한다. 이 사실을 입에 올리며 민망한 사람 있나? 이게 꼭 그렇다. 당연한 일이라는 거다.
재능, 능력, 배경, 어느 하나 빠질 게 없다. 하다못해 외모까지도 부족함이 없었다.
어느 잡지사에서는 날 일컬어 ‘보호 본능을 자극하지만 그 속에는 무엇이 들었을지 모를 나쁜 남자. 이 남자 그래서 매력 있다.’라며 아주 금칠을 해 주더라.
덕분에 난 귀족가의 결혼 시장에서 특S급으로 통했다. 그 망할 놈의 황제가 날 콕 집어 사윗감 삼으려 했을 정도다.
이렇게 만인이 탐내는 내게 친구가 되자며 찾아온 이가 얼마나 많겠나.
그럼에도 없었다.
내게 친구는.
이유? 생각해 보니 별거 없네. 그저…….
“앞만 봤기 때문이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난 평민도 취급하지 않던 천민이었다. 뒷골목을 전전하던 천민. 이 천민이 ‘폼 나게 살겠다.’란 자기의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면 얼마나 능력이 있어야겠나.
속된 말로 생각나는 대로 씨불이고, 내 꼴리는 대로 행동하려면.
일례로 앞서 말한 귀족가의 청첩장을 불쏘시개로 썼다. 황제 앞에서도 ‘당신은 답도 없이 무능해.’라며 꼬박꼬박 독설을 퍼부을 정도였다.
과연 이 정도로 막 나가려면 얼마나 능력이 있어야 할까?
보통의 능력으로는 목이 달아난다. 겨우 천재만으로는 설명도 안 된다.
대체 불가능한 힘. 대항 불가능한 압도적인 힘.
그래서 힘이 필요했던 거다.
그래서 마왕이 됐던 것이고.
“그래서 메리와 준우가 친구라고 말했을 때 어색했던 거지.”
친구란 단어가 어색한 게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나’가 어색했다.
만약 지난 삶처럼 정신없이 힘을 쫓고 있었다면 둘이 말한 친구란 단어에 이토록 흔들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내가 할 일 했겠지.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이상하게 마음에 든다니까. 그 ‘친구’라는 게.”
분명히 지난 삶과는 달라졌다.
무엇이 날 이렇게 변화시켰나.
그릇이 달라져서? 가족이 생겨서? 환경이 달라져서?
그래, 그게 이유가 될 수도 있지. 하지만 결정적인 답은 아니었다.
이를 밤새 고민해 봤고, 지금에서야 답을 찾은 거 같다.
“결국은 힘이지.”
돌고 돌아 힘이다.
당당할 수 있는 힘.
내 꿈을 좇을 수 있는 힘 말이다.
새로 생긴 가족에 서슴없이 기뻐할 수 있는 것도 이 행복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거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이 힘이 있기에 그만큼 여유가 생겼고 친구란 말에 반응한 거다.
무력만능!
역시 힘이야말로 전지전능하시다!
“강해져야 할 이유를 하나 더 찾았다.”
실로 값비싼 깨달음이었다.
난 후련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귓가로 어머니의 “기혁아, 그거 아니야!”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일 거다.
암, 그렇고말고.
힘이 틀릴 리 없잖아.
……
…
값비싼 깨달음을 얻은 뒤.
본가 지하. 어머니가 마련해 주신 연구실로 들어선 나는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무슨 작업?
당연히 강해지는 작업이다.
“애들한테 너무 집중하느라 나한테 소홀했던 감이 있어.”
사실은 적응 기간이 필요했던 거지만, 그래도 변명하지 않는다.
남 탓만큼 모양 빠지는 일은 없으니까.
나태했던 어제의 나를 반성한다. 그리고 오늘의 나를 채찍질하자.
일해라, 박기혁!
“우선 기본부터.”
내가 누차 강조하지만 힘의 기본은 나를 객관적으로 알아야 하는 법.
나는 내 자신을 관조에 들어간다.
현재 내 몸을 이루는 힘은 이렇다.
마도의 마왕(魔王)
육체의 거인(巨人)
혈족의 검호(劍虎)
이 세 가지 힘이 균형을…….
“균형이란 표현은 너무 온건하나? 영역 싸움, 이게 맞겠네. 그리고 처음에 우위에 섰던 힘은.”
화이트보드에 크게 ‘마왕’이라고 쓴다.
내가 가장 많이 사용했고 가장 자신 있는 내 본래의 힘, ‘마왕’이었다.
거인의 육체로 발생한 사소한 핸디캡인 마나 허무증을, 바포메트라는 ‘외형 마나 홀’을 구축하며 극복했고, 그 후로는 일도 아니다.
단련, 습득, 지휘로 스켈레톤을 강화하는 것이나, 네크로멘서표 주술 저주를 발현하는 것이나.
통에 들어 있는 사탕을 꺼내먹는 것처럼 평생을 갈고닦았던 공부를 그저 풀어내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어렵겠나.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번에는 마왕의 아래에 ‘거인’이란 네모를 그려 넣는다. 그것도 거인과 마왕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모습으로.
우스운 그림이지만 당시 상황을 이것만큼 찰떡처럼 표현한 것도 없으리라.
내 안의 마왕의 힘이 강해질수록 거인의 존재감도 커져 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밀리지 않으려고 힘을 기르는 줄 알았다. 이를테면 메기 효과처럼 말이다. 정체된 생태계에 갑작스레 포식자가 생겨나면 균형이 무너지며 살기 위해 발악하고, 생태계 전체가 활력을 띠는 현상.
이 메기 효과처럼 마왕이라는 힘이 거인을 자극해서 키워 주는 걸로 좋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더라.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이 두 힘은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이게 꼭 무슨 느낌이냐면, 마치 삼류 로맨스에서나 나올 법한 삼각관계의 주인공이 된 기분?
내 안에 있는 거인이.
‘네깟 놈이 나를 놔두고 저런 힘이랑 놀아나?’
라고 말하듯 질척대며 나를 들들 볶으면.
또 마왕이 나와서.
‘흥, 저딴 힘이랑 놀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라면서 존재감을 뿜뿜.
나 참, 이제는 힘이랑 유사 연애까지 해야 될 판이니 우스울 따름이었다.
문제는 이 웃기지도 않은 코미디가 반복됨에 따라 점차 내 몸의 밸런스도 망가져 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익숙한 힘, ‘마왕’에 손을 들어 주려고 했다. 아무래도 함께한 세월이 있는 만큼 조강지처가 좋지 않겠나.
때마침 메리에게 주술을 가르치며 영혼의 격이 상승됐고, 나의 방법은 얼추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래, ‘검’을 들기까지는.
“쩝, 그때 검을 들지 말았어야 했나.”
준우와의 대련.
처음으로 준우가 가진 ‘무희’의 힘을 보고 흥이 차올라 검을 들었고, 난 처음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내 피에 잠들어 있는 미친 호랑이를.
“미친놈이었지.”
슥슥-
화이트보드에 검을 그린다. 이놈은 날 선 레이피어처럼 뾰족한 삼각형이다.
원에, 네모에, 삼각형.
도형 놀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이에게는 도형 놀이처럼 보이겠지만.
지금 난 몹시 심각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저 뾰족한 부분이 내 몸을 사정없이 난도질 치고 있는데, 어느 인간이 심각하지 않을 수 있나.
이 ‘검호’는 그만큼 위험한 힘이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본능을 자극한다는 면에선 마왕이나 거인보다도 훨씬 더.
“신체가 가진 모든 잠재력을 폭발, 적을 살해할 최적의 경로로 검을 휘두른다.”
이때 비롯된 살기는, 인간이 절대로 지닐 수 없는 종류의 살기다.
흡사 피식자를 앞에 둔 포식자의 기운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기준 이하의 적들은 이 살기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무력화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상대의 정보 및 심리마저 꿰뚫는다.
이 인간 같지 않은 힘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소모값은.
놀랍게도 0.
전혀 없다.
조건은 단 하나.
“검을 잡는다.”
이거 하나면 된다.
농담 조금 보태서, 검을 잡기만 하면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검이 최적의 경로로 적을 죽이더라.
이른바 고성능 살인 머신이랄까.
묘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내가 알던 검술이었는데 전혀 새로운 형태로 바뀌는 것이나, 기상천외한 검술을 즉각 즉각 만들어 내기도 하더라.
이토록 파괴적인 힘인 ‘검호’.
하지만 반대급부로 조절이 힘들다.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조금만 방심하면 이 힘에 먹혀 내가 내 몸을 구경하는 꼴이 되어야 할 정도다.
전직 마왕이었던 나조차도 정신을 붙들어야 할 판인데. 평범한 사람은 다룰 수나 있겠나. 어림도 없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메리랑 준우와 대련할 때 검을 못 든 것도 이 때문이다.
혹시 죽일까 싶어서.
고백하자면, 처음 그때 목검을 들었을 때도 위험했다. 골 때리더라. 자칫 잘못하다간 본능에 먹혀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처럼 검호는 여태껏 내가 경험했던 힘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힘이었고, 때문에 현재로써는 100% 조절한다고 자신 못 하는 거다.
“마왕, 거인, 검호.”
이 세 가지 힘이 내 몸이란 영역을 한 줌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서로를 향해 거침없이 이를 드러내는 게 현재 나의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내 몸의 균형은 점점 깨지고 있는 것이고.
이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말 해 뭐하나. 그때는 어디 하나 고장 나는 거지.
그러면 해법은 무엇일까. 난 크게 ‘해법’이라고 써봤다.
“제일 손쉬운 방법은 시간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인간의 몸은 높은 적응력을 지닌다. 적절한 휴식과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내 안에서 싸우는 세 힘의 싸움도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균형을 이룰 것이다.
다만 이 방법은 안정적인데 반해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마냥 손 놓고 기다리는 게 내 스타일에도 맞지 않고.”
나 알잖나. 성질 죽이며 살 수 있겠나.
턱도 없지.
두말할 것 없이 패스.
“그러면 다음 방법은.”
이건 며칠 전, 집 앞에 있는 놀이터에서 깨달은 방식이다.
조막만 한 꼬맹이 셋이 싸우더라. 내 눈치를 보느라 주먹질만 하지 않았지, 돌아가는 분위기는 꽤 험악했다.
그렇게 죽어라 목청을 높이던 애들인데 나중에는 어깨동무를 하고 편의점으로 갔다.
그런데 이 이유가 걸작이다.
배고파서.
목이 터져라 싸우다 보니 배고프고, 배고프니 눈앞의 싸움이 더 이상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단다.
그때 생각했지.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화끈하게 지지고 볶고 싸우면 내 안에 사고뭉치들도 지쳐 이 꼬맹이들처럼 컵라면이나 먹자 하지 않을까.
“그래,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지. 너희도 그게 좋지?”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악동처럼 웃는다.
“판은 내가 만들어 줄게. 맘껏 날뛰어 보렴.”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주마.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이런 내 선택을 도와주기라도 하듯 며칠 뒤.
나는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잡게 되는데.
“이, 이걸 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