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4화>
영감이 항상 강조했던 말이 있다.
입장 바꿔 생각해라.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결국 입장의 충돌이다. 그러니 바꿔 봐라. 내가 그 사람이 되어 생각한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린다.
이거 정말이다. 영감의 말대로 입장만 바꿔도 대부분의 문제는 풀리더라.
사람 관계도 이와 똑같다.
메르헴은 몸보다 머리로 세상을 보는 인간이었다. 전형적인 마법사 유형이지. 이런 유형을 설득할 때는 확실한 플랜으로 접근해야 한다.
반대로 한준우는?
머리보다 몸으로 세상을 보는 인간이다. 전형적인 전사 혹은 무인. 이런 유형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몸으로 대화해야 한다. 주먹부터 날리고, 같이 피 좀 흘리며 찐하게 몸으로 대화하면 어느새 설득돼 있더라.
지금처럼.
“방금 어떻게 한 거지?”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라고?”
“이 응용 동작은…….”
“기혁! 나 언제까지 뛰어야 하나요!”
마지막에 이상한 게 섞인 거 같은데…….
어쨌든 평소에는 한마디도 할 수 없던 놈이, 찐하게 한판 하고 났더니 말이 세 배 이상 많아졌다.
이게 바로 몸의 대화란 말이야. 영감, 역시 당신이 옳았어.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자, 이후로는 일도 아니었다. 내가 배웠던 지식을 전해 주면 그뿐이니까.
설마 이제 와서 내가 한준우에게 검을 가르치는 데 의문을 느끼는 똘추는 없으리라 믿는다. 완벽한 네크로멘서는 그 자체가 마법사이며, 전사이고, 지휘관이다.
내가 ‘습득’한 검술이 몇 개인데! 고작 햇병아리 하나 못 가르치겠나!
“가끔 보면 쌍검을 근본 없다고 평하는 검사가 있는데, 개소리야. 쌍검이야말로 검술을 가장 다채롭게 쓰는 방식이거든. 잘 봐. 이쪽은 이렇게, 반대쪽은 이런 식으로.”
“우리 가문 검술은 아니고…… 음, 그냥 내가 만들었다 하자.”
“어, 메리야. 다 뛰었다고? 응, 저기서 스쿼트 10세트 하고 있어.”
기본이라 불리는 ‘제국 검술’부터 용병, 도적, 해적 등 오늘만 사는 놈들이 익히는 ‘게챠르트 살인술’. 오직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엠페러 소드&실드’ 등등.
내 머리에 기억된 무술만 한 트럭이다. 당연히 전부 사용할 수 있고, 너무도 당연하게 스켈레톤 또한 사용할 수 있었다.
내가 왜 마왕이라 불렸는지, 실감이 가나.
그래서 한준우에게 가르친 검술은 ‘별을 담은 검’이다. 다소 유치한 이름의 검술이지만, 이걸 만든 사람은 절대 유치하지 않다.
검성(劍星).
혹자는 ‘검광(劍狂)’으로 부르는, 검에 미친 아저씨가 만든 검법이거든.
번외편으로 지금 메르헴이 하고 있는, 그녀의 말대로라면 ‘무식하고, 저열하며, 고문적인 훈련’은 용병왕 놈의 훈련법이다.
이렇게 둘을 가르치는 가운데, 난 나대로 챙길 건 챙겼지.
“기혁! 당신은 악마예요! 악마라고욧!!”
“……이해가 안 돼.”
“왜? 메리가 훈련하면서 고함치는 게 한두 번이냐.”
“아니, 너 말이다. 그 검술, 보면 볼수록 기형적이다. 기본적으로 검술이라면 공격과 방어에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네 검술은…… 방어가 아예 배제돼 있다.”
“호, 역시 보는 눈이 있어. 힌트를 주자면 난 방어할 필요가 없어.”
“방어가 필요 없다?”
“그런 거지. 음, 이거 이렇게 쓰는 거 맞냐?”
“대체 너희 혈족 계승을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란 말인가.”
“난 이쪽은 처음이잖냐. 얼른 봐봐. 아, 저주 리필 깜빡했다.”
“끄악! 죽여 버릴 거예요!!”
“……혼란하군. 혼란해.”
한준우를 통해 전생의 경험들을 복습했고, 현생의 재능들을 새롭게 습득해 나갔다면, 메르헴을 통해 영혼을 보다 단단하게 갖췄다.
물론 이 과정 속에 약간의 즐거움은 덤이고.
이처럼 여러모로 알찬 시간을 보내던 사이.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카데미 빅 이벤트 ‘동아리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이처럼 창은 거리의 이점을 활용한다면, 검은 편의나 활용을 비롯해 압도적인 범용성을 자랑한다.”
교수가 멈춰 서 창을 뽑는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 앞일까.
“뭐 하나? 얼른 들지 않고.”
“네.”
어깨를 으쓱하며 검을 들었다.
순간 눈에 띄게 당황하는 교수. 아마 창의 리치를 이용해 거리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겠지만, 내 손에 들린 검은 창만큼이나 크고 길다.
“자네, 대검 쓰나?”
“네.”
“음…… 곤란하군.”
교수가 창과 대검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옆으로 갔다. 애꿎은 동기 놈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이쪽을 본다.
그러면 너도 대검 쓰든지, 피식 웃었다.
잠시 뒤, 교수와 동기 놈의 대련이 펼쳐지자 모두가 벌떼처럼 근처로 몰려들었다.
보다시피 이론과 실전을 병행하는 강의라 필수 과목이 아님에도 인기가 많은 수업이었다.
내 입장에서도 꽤 유익한 수업이다.
제국이 대인전에 맞춰 발전한 무기술이라면, 여기 지구는 게이트 레이드에 맞춰 철저히 대괴수전에 걸맞게 발전한 무기술이다.
이런 차이점은 문화에서 나타나는 특징… 다시 말해 난 이 강의를 단순히 무기술뿐만 아니라 이 세계 문화를 연구하는 데 쓰고 있는 것이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후, 오늘 수업은 이상으로 끝내겠다. 그리고 과제는.”
순간, 강의실에 모두가 숨을 죽인다.
“지난 시간과 같이 ‘실전 사냥’이다.”
“아아아아-.”
“교수니임!”
“이번 주에 동아리 모집인데요~.”
아이들이 아우성대지만 교수는 냉정하다.
“동아리 때문에 들떠 있는 건 알지만, 너희들은 아카데미 학생이다. 초인으로서 장차 헌터나 나이트가 될 너희들이 실전을 등한시한다는 게 말이 되는 줄 아나. 조장은 조교에게 게이트 입장 기록 제출하는 거 잊지 마라. 한 명이라도 빠지면 조에 벌점 부과하니 유의하고.”
교수가 빠져나가고, 여기저기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떡해! 나 이번 주말에 동아리 환영회 있는데. 토 일, 전부 사냥 잡혔어.”
“넌 동아리라도 정했지. 난 아직 정하지도 못했다.”
“조장, 어떻게 안 될까?”
“안 돼. 저번에도 대리 사냥했다가 어떻게 됐는지 알지? 전부 참석해. 예외는 없어.”
동아리라…….
중간과 기말고사, 교내 랭킹전, 축제와 더불어 5대 빅 이벤트 중 하나가 이 동아리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친목 모임이나 사교 클럽이었다.
고작 친목질이 아카데미 빅 이벤트라니, 처음에는 나도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이게 제법 재미있단 말이지.
“정말 너 ‘구르미’ 가입했어? 거기 ‘창천’ 라인이잖아. 대박 부럽다!”
“하…… 나 떨어진 것 같아. 제우스 라인 좀 타 보려나 했는데.”
“현주야, 같이 가자. 너랑 오면 가입시켜 준대. 제바알!”
조에서 협동을 기른다면, 동아리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라인에 따라 밀어 주고 끌어 주고, 차후 축제 기간에 치뤄질 ‘영입 시장’에도 도움을 준단다.
얼핏 듣기로는 능력에 따라 자체적으로 장학금을 주는 곳도 있다 하니, 어느 동아리에 드느냐에 따라 미래가 바뀐다는 말이 과언은 아니란 말이다.
“기혁은 동아리 정했나요?”
“글쎄.”
“넌, 옵티멈 쪽 아닌가?”
“그래요, 기혁. 옵티멈은 ‘즐생기아’이잖아요.”
“뭐? 즐생기아?”
“‘즐거운 생활, 기운찬 아침’ 아카데미 유일 밴드부예요.”
“어떤 놈이야? 이딴 구린 이름을.”
“니 형이요.”
“…곱씹을수록 멋진 이름이야. 뭔가 웅장한 기운이 넘쳐 보여.”
짜게 식은 둘을 뒤로하고 모른 척 태세 전환한다.
이야기를 쭉 들어 보니까.
즐거운 생활, 기운찬 아침.
줄여서 즐생기아.
사실은 ‘밴드부’라고 더 많이 불리는 이 동아리를 만든 사람이 박수혁, 우리 형이란다.
그래서인지 옵티멈의 후원이 들어가고, 지원도 두둑하다고 한다.
근데 솔직히 이름, 구리지 않아? 거 얼굴도 못 본 형님한테 막말하는 것 같아 그랬지만, 동아리 이름을 왜 이런 식으로 지은 거지? 이해가 안 되네.
“나는 그렇다 치고 너희들은 어디 갈 건데?”
“음, 저는요. ‘이웃나라’ 생각하고 있어요. 재한 외국인들 모이는 곳이라며 영입하더라고요.”
“준우 넌?”
“난 생각 없다.”
“준우, 그러면 안 돼요. 동아리 활동은 필수예요.”
필수라는 말에 눈살을 찌푸리는 한준우.
이게 문제다.
사실 나도 동아리다 뭐다 할 시간에 여기 준우처럼 게이트나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이 동아리라는 거 강제다. 무조건 하나는 들어야 된다는 거다.
“하는 수 없군. 난 너 따라간다.”
“젠장, 한발 늦었나. 내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메리, 어쩌지? 우리 그냥 너 있는 쪽으로 갈까? 우리는 한 몸이잖냐.”
“한 몸은 무슨! 단어 선택에 제발 신중할 수 없나요. 동아리는 중요한 거라니까욧!”
부지런쟁이 메리가 경기를 일으키며 동아리의 이점을 다시 설명했지만.
음, 나는 그렇다.
아무리 미래를 위해서라지만.
결국 초인이라면 힘, 실력 아닌가.
우리는 초인이다. 강함이 모든 걸 증명하는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본인의 실력에 확신이 있다면 어디를 가든 무슨 상관인가.
라인? 친목? 미래?
이딴 허접한 이유 때문에 무리를 짓나.
쪽팔리게.
“에이, 모르겠다. 난 훈련이나 하러 갈련다.”
“동감. 나도 간다.”
“잠깐만요. 제 이야기 듣고 있었던 거예요? 이거 정말 중요하다니까요. 기혁! 멈춰요! 기혁! 멈추라고!!”
그렇게 우리는 동아리 영입이 한창인 운동장이 아닌 땀 내나는 지하 훈련실로 향했다.
당연히 메리도 함께.
“죽여 버릴 거예욧!!”
하지만 그날 밤 저녁 시간. 난 똑같은 주제로 어머니에게 잡히게 되는데.
* * *
몽글몽글, 먹음직스럽게 끓어오르던 순두부에 막 숟가락을 집어넣으려 할 때였다. 어머니의 말이 들려온 게.
“동아리 어쩔 거야, 아들?”
“음….”
“설마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훈련장으로 직행한 건 아니겠지?”
“……예지?”
“패시브지. 원래 엄마는 자식의 모든 걸 안단다.”
“에이, 엄마는.”
“어머, 얘 봐라? 농담인 줄 아니?”
“그러면 맞춰 보세요. 오늘 제가 뭐 했게요?”
어머니는 물로 입을 행구더니, 마치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처럼 곧바로 입을 열었다.
“보나마나 뻔하지. 수업 마치자마자 훈련장에 갔을걸. 바벨 잔뜩 쌓아 놓고 운동하다가 지루하다 싶으면 공주님 놀려 주고, 다시 운동하다가 배고프면 배달시키고, 메뉴는 간짜장이겠다. 요즘 너 그거에 꽂혔잖아.”
“……!”
……저, 정확해!
“맞지? 얼굴 보니 확실하네. 내친 김에 생각까지 맞춰 줄까? 동아리는 무슨, 내가 난데! 힘이 최고야! 그딴 시간에 게이트 하나 더 뛰는 게 낫지! 라고 생각했겠지.”
“와…….”
짝짝.
밥알을 씹는 것도 멈춘 채 박수를 쳤다.
일말의 의심조차 사라지는 추리다. 마지막에 메리를 놀렸던 것까지 정말 날 감시했나 싶을 정도로 정확한 추리였다.
과연 어머니, 엄청난 능력이군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데 얘 좀 봐. 설마 했는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니. 얘는 이런 거 보면 지 아빠 닮았다니까.”
“생각이야 있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이제 우리 아드님의 생각을 들어 볼까요.”
“음,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 동아리는 작은 사회 같거든요. 라인이나 친분이나 이거 전부 사회생활하면서 배우는 거잖아요. 그리고…….”
아무렴 내가 아무 생각도 없을까.
단지 귀찮을 뿐이다. 내가 살아왔던 인생이 얼마인데 새파란 애송이들처럼 호들갑을 떨겠나.
“……종합해 봤을 때, 아카데미는 이 동아리로 조장의 힘을 제어하려는 거 같아요. 집단 활동을 할 수밖에 구조상, 조장의 힘은 절대적이니까요. 그에 반해 동아리는 개인 활동이니, 혹시라도 조가 마음에 안 들면, 숨 쉴 곳이 생기는 거죠.”
“역시 우리 아들이야. 핵심을 제대로 짚었네.”
“그래서 생각했죠. 숨 쉴 곳이 있으니 나약해지는 거라고요.”
“그렇지 나야ㄱ…… 응??”
“자고로 사자는 새끼를 키울 때도 절벽 아래로 떨어트린다 했습니다. 뒤가 있다는 무른 생각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는 거죠.”
“기, 기혁아.”
‘아니야, 그거 아니야.’ 어머니가 다급히 고개를 저어 보지만, 난 안 보인다. 지금의 난 아들 박기혁이 아니라, 조장 박기혁!
“조장이라면! 조원들을 성장시킬 의무가 있는 조장이라면! 조원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야겠죠.”
설령 그게 사회성을 늘리려는 아카데미의 의도라도, 난 조장으로서 이를 거부하겠다.
오직 강함을 위해 굴리는 참된 조장으로서.
“직접 동아리 만들려고요.”
이름도 지어 놨다.
‘출구 없는 지옥’이라고.
크크.
……
…
부르르~.
“뭐예요. 갑자기 왜 몸이 떨리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