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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3화 (13/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3화>

‘습득’이란 과정이 있다.

‘단련’이 스켈레톤의 뼈대, 외부를 강화시킨다면 ‘습득’은 스켈레톤의 동작, 행동 양식을 강화시킬 수 있다.

이 덕에 스켈레톤은 각종 체술, 수십 가지의 무기술, 전략에 맞는 패턴 등을 배워 가며 걸어 나니는 시체에서 차츰 죽음의 병졸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게 말은 간단하지만 엄청난 거다.

스켈레톤은 지능이 없다. 지능이 없으므로 공포를 모른다.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군대. 그야말로 이상적인 군대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인데 얼마나 대단한가.

그런데 실제로 이 ‘습득’을 제대로 익히는 사람은 제국에서도 몇 없다.

왜냐고?

힘드니까.

더럽게 힘드니까!

습득의 방법 자체는 별게 아니다.

머리와 몸으로 익히면 된다. 그렇게 행동을 완전히 익히면 아무리 지능이 없는 소환물이라도 주인의 몸에 각인된 행동을 따라 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하지?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소환을 하는 주체는 제법 된다.

마법사, 주술사, 정령사 등등.

그런데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몸 쓰는 거랑은 담 쌓은 놈들이라는 거다.

안 그렇겠나? 몸 쓰는 데 자신 있으면 소환을 왜 해? 자기가 싸우지.

분위기 있는 로브나 입고 소환물 뒤에서 마법으로 지원이나 하던 놈들인데, 얘들이 체술을 배워야 해. 상상이 되나?

그뿐인가.

체술은 말 그대로 기본이다. 몸을 쓰는 방법을 깨우쳤으면 무기술을 배워야지. 다음에는 방패술을 비롯한 진형에 맞춘 움직임도 배워야 한다.

이 행동들을 몸에 배일 정도로 완벽하게 배운다?

답 나왔지.

이 ‘습득’이란 과정을 견딜, 아니, 애초에 가능한 마법사가 몇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난 이 몇 없는 마법사 중 하나였다.

남들이 습득을 포기하고 고위 소환 마법을 배울 때, 난 무기를 휘둘렀다. 비루한 신체가 울어 댔지만 난 무기를 휘둘렀다.

힘들고 지난한 과정임에도 매일같이 무기를 휘둘렀고.

난 죽음의 군대를 거느린 마왕이 되었다.

이제 나는 다시 마왕이 되려 한다. 다시 그 길을 걸어가려 한다.

그런데 한 번 갔던 길. 똑같이 가면 심심하잖아.

새롭게, 더 완벽하게.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습득’을 위한 스파링 파트너가.

그러니……

*   *   *

“날 더 즐겁게 해 달라고!”

휘익, 광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박기혁의 발차기가 허공을 갈랐다. 한 뼘 차이로 공격을 피한 한준우가 검을 뻗는다.

섬광 같은 찌르기, 그러나 박기혁도 조금 전 한준우처럼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흘려냈다.

칼날이 귀 옆을 스쳐 가는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빛나더니.

콰지직!!

목검과 글러브가 충돌했다.

그냥 목검이 아니다. 철심을 박아 실제 검처럼 중심이 잡힌 목검.

역시 그냥 글러브가 아니다. 몬스터의 가죽을 이어 붙여 진검도 막을 수 있는 글러브.

그런데.

일격에 목검이 두 동강 났다. 글러브가 찢어졌다.

둘은 신경질적으로 목검과 글러브를 뒤로 던져 버리고 외쳤다.

“메리!!”

“메르헴!!”

한발 떨어져서 구경하던 메르헴이 목검과 글러브를 던졌다.

“벌써 세 개째예요. 보는 눈도 많은데 적당히 해요.”

인간적으로 이 정도 날뛰었으면 힘이 빠지지 않나요?

하지만, 이런 메르헴의 속도 모르고 박기혁과 한준우는 던져진 무기를 착용하며 즉시 대결을 재개했다.

콰직! 파직! 퍽! 쇄액!

괴력이 담긴 주먹이 파공성을 내고.

서슬 퍼런 칼날이 삭풍을 불러낸다.

일진일퇴(一進一退).

막상막하(莫上莫下).

마치 일생일대의 대적을 만난 것처럼 둘은 서로를 향해 미친 듯이 공세를 퍼부었다.

그리고 이 모습에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건 관중들. 소란에 운동장을 찾은 이들이었다.

“바, 방금 봤어? 손날로 공격 흘리던 거?”

“공중에서 방향 전환하면서 검격 뿌리는 건 봤다.”

“미쳤고, 돌았네. 박기혁은 그렇고, 한준우 쟤는 뭐임.”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20조에 남아 있을걸.”

동기들은 둘의 결투에 질투와 경외를 보였다면.

“내가 뭘 본 거야. 1학년 맞아?”

“쟤들 ‘동아리’ 있겠지?”

“어? 쟤, 박기혁 아니야! 신문에 오르락내리락하던 하던 애.”

“내 말 맞지? 역대급 기수라 했잖아. 당장 영입해야 해. 하나라도 건져야 한다고!”

선배들은 학기 초반 빅 이벤트 중 하나인 ‘동아리’ 영입에 혈안이 됐다.

이처럼 모두의 관심이 모였지만, 정작 두 전투광에게 그딴 건 관심 밖.

오직 눈앞의 상대만이 있을 뿐.

챙!!

한준우의 검이 내려쳐지고, 박기혁이 손을 교차해 막아 낸다.

“제법이야.”

“너도.”

튕겨 나가는 것처럼 둘이 거리를 벌렸다.

잠깐의 소강상태. 하지만 언제든 달려들 수 있게 둘의 자세는 한껏 긴장돼 있었다.

“기본기가 완벽하네.”

“너도.”

“솔직히 손댈 곳이 안 보여. 기본기는 말이야.”

“너도 기대 이상이다. 몸 쓰는 건.”

둘은 서로를 보며 씨익 웃는다.

“궁금했어. 네가 왜 내 조에 왔을까. 그런데 알겠네. 너 늑대구나.”

늑대는 자기보다 약한 개체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한준우가 보기에 다른 조장들은 다 자신 아래란 말이었다.

“나도 궁금했다. ‘산군’과 ‘백호’를 뛰어넘는다는 새끼 호랑이가.”

산군과 백호.

박기혁의 형과 누나다.

그 힘이 왕의 기세를 품었다고 해서 붙여진, 산군(山君) 박수혁.

신속의 검이 신수의 발톱과 같다고 하여 불리는, 백호(白虎) 박민지.

세계에서도 탑클래스에 속하는 두 사람. 이 두 사람을 능가하는 재능은 무엇인가. 한준우는 늘 궁금했다.

“그래서 궁금증은 풀렸어?”

“거의.”

“거의? 어째 답이 미적지근하다.”

의문을 표하는 박기혁을 보며 입꼬리를 올린 한준우가 뒷발을 찼다. 차여진 발에 목검이 걸리며 묘기처럼 휘리릭 돌아 그의 왼손에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한준우의 기세가 달라졌다.

이전의 한준우가 명문의 검사라면, 지금 그는.

도살자(屠殺者).

인간을 죽이려는 병기의 눈이었다.

“조심해라.”

한마디였다.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한준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눈으로 쫓기 힘든 스피드. 분명히 보고 있었는데 한순간 한준우를 놓쳤다.

위험하다!

박기혁이 본능이 가리키는 데로 주먹을 뻗지만.

휘릭!

유려하게 주먹을 피하는 한준우. 그것도 모자라 매서운 반격이 턱 끝을 노렸다.

박기혁이 화들짝 놀라 반대쪽 손으로 검을 막았는데.

그 순간.

쉬익!

어깨가 베이며 핏방울이 허공으로 뿌려졌다.

“……!!”

분명히 막았다.

막았는데, 당했다.

한 번은 우연일 수 있다. 이번에는 박기혁이 먼저 짓쳐 들어갔다. 역시나 또 허상을 남기며 흩어지는 한준우.

재차 교차되는 검격과 권격.

전과 비슷한 패턴.

그리고 그 결과는.

역시나 옆구리가 베이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제야 박기혁은 한준우의 검을 눈치챈다.

“……감각 제어?”

한준우의 검은 감각을 비틀고 있다. 자신도 아닌 타인의 감각을.

“이게 네 ‘혈족’이야?”

마법과 검술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힘.

오직 혈통을 타고 전해지며, 명가가 명가인 이유.

혈족 계승이었다.

“무희(舞姬). 내게 이어진 피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준우가 다시 자취를 감춘다.

곧이어 베어지는 박기혁의 팔뚝. 다시 반대쪽 어깨가 베어지고, 뒤로 후퇴하자, 이번에는 허벅지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소리도, 바람도,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는다.

모든 감각이 비틀렸다.

“젠장, 상성이 안 좋잖아.”

현재 박기혁은 거인의 육체 덕에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상태. 이 상태에 감각 제어는 가히 치명적이었다.

순식간에 박기혁의 옷이 넝마가 됐다. 잘려진 옷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방울. 그 모습에 저쪽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대결을 말려야 된다는 소리였다.

“시끄러워!!”

이 세계에 눈을 뜨고 처음 대결 같은 대결이다.

이제 한창 재미있는데 간섭은 사절이다.

“네가 보여 줬으니, 나도 보여 줄게.”

박기혁은 악동처럼 웃으며 두 손을 모아 강하게 바닥을 내려쳤다.

비산하는 모래 더미.

일순간 시야가 가려진다.

“얕은 수.”

그러나 한준우는 무희다. 무희의 눈은 손짓이며, 몸짓이니, 한준우가 눈을 감으며 감각에 몸을 실었다.

보인다.

저곳, 한 발짝 깊숙이 모래를 파고들어가 그가 자랑하는 ‘춤추는 검’을 펼쳤다.

그런데.

깡!

“……?”

이제와는 전혀 다른 타격음.

때마침 먼지가 걷히며 드러나는 박기혁의 인영.

“이쪽도 가문이라면 어디서 안 빠지거든.”

거기에는 처음으로 검을 잡은 박기혁이 있었다.

*   *   *

한편 옵티멈 본사에서는 김연희가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있었는데.

“공주님에 이어 이번에는 이 아이인가요. 한준우. 지난 ‘부산 테러’에 희생당한 무희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

부산 테러 사건.

5년 전, 온갖 미치광이 집단이 연합한 ‘빌런 연합’이 벌인 잔학무도한 학살 사건이었다.

“무희 가문은 대대로 뛰어난 검사였죠.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우리 기혁이랑 이어지네요. 수고하셨어요, 비서실장님. 앞으로도 특이 사항 있으면 바로 부탁해요. 아, 그리고 효정 씨라 했나요? 입사 축하드려요. 다음에 회식 자리에서 봬요.”

비서실장이 허리를 숙이며 물러나자, 신입도 허겁지겁 상사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수고했어요, 효정 씨.”

“네, 넵!”

신고식을 무사히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최효정이 긴장이 풀렸는지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녹아갔다.

“흐으으아악~ 내가 대표님을, 내가 김연희 대표님을…….”

“신기해?”

“엄청요!!”

김연희가 누구인가. 단신으로 옵티멈 에이전트를 세계 정상으로 캐리한 인물!

에이전트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아이돌!

성공했다! 최효정! 장하다 최효정!!

그렇게 한창 감동하며 업무를 하던 중, 탕비실로 온 최효정은 주임에게 숨겨 뒀던 호기심을 털어 놨다.

“그런데 주임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해 봐.”

“제가 이번에 박기혁 군 담당이잖아요.”

“내가 시켰지. 그래서 궁금한 게 뭔데.”

“그러니까, 진짜인가 묻고 싶어서요. 이게 가능해요?”

신입이 처음 맡은 업무는 ‘박기혁’ 전담 조사였다.

단순히 대표님의 아들이라서가 아니다. 옵티멈에는 별도의 스카우트 부서가 있지만 비서실 자체적으로 인재 발굴에 힘썼고, 그에 따라 특급 유망주는 따로 관리했다.

“그, 그 사건으로 혼수상태 되고 6개월 만에 깨어났잖아요. 그런데 두 달도 안 되는 시간에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그렇지.”

“여기까지는 이해했어요. 박기혁 씨잖아요. 신체 스펙은 워낙 유명하니까. 그런데 여기 보세요. 제가 조사한 거. 입학시험 수석, 위그드라실 추천.”

“조원들도 팼지.”

“28:1! 전설의 사건이었죠! 또 심사도 문제없이 통과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보니까, 만장일치더라고요. 심지어 문제로 지적되던 마법적 소양도요! 이 말은 마법을 사용한다는 거잖아요! 그 증거로 이렇게 조원들도 키우고 있어요.”

“그래서 효정 씨.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상하지 않아요? 어떻게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죠? 혹시…….”

말끝을 잔뜩 흘리던 신입이 무슨 비밀처럼 속삭였다.

“영혼이 바뀐 거 아닐까요?”

“……효정 씨, 영화 좋아해?”

“많이요. 어제도 봤죠.”

“되도록 줄여라. 망상이 지나쳐.”

“헤헤.”

“영혼을 바꿔? 성녀를 앉혀 놔도 불가능한 일이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야지.”

“그러면 저주라도…….”

주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신입을 물끄러미 봤다.

“효정 씨.”

“넵?”

“여기가 어디야.”

“옵티멈!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에 우뚝 선 에이전트입니다! 참고로 이번 신입 경쟁률은 6000:1!!”

“오버하지 말고. 여튼 옵티멈이야. 그런데 우리가 그딴 거도 조사 안 했을까 봐?”

“아, 했어요?”

“진즉에 했지.”

주임이 커피를 다 마신 종이컵을 버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리고 네가 말한 의문들…… 음, 그건 네가 신입이라 든 의문이야.”

“신입이라서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래, 우리 비서실이 초인을 나누는 기준이 있어.”

“그게 뭔데요?”

“일반 초인과 검호.”

“……!!”

주임도 한때는 이 가족들을 보며 ‘이게 말이 되냐?’라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었다.

박수혁이 18살, 고작 1학년에 자신만의 기사단을 꾸린 것이나, 같은 나이의 박민지가 빌런 집단 하나를 도륙 냈다거나.

하지만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건 비단 주임뿐만 아니라 비서실 전체에 해당하는 말이다.

‘검호가 검호했을 뿐이다.’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나.

무슨 짓을 하든, 얼마나 경악스러운 일을 벌이든 받아들일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거든. 검을 든 검호를.”

*   *   *

“만족했냐.”

“그래.”

내려다보며 손을 내미는 박기혁과 쓰러진 채 후련하게 웃고 있는 한준우.

그리고.

둘을 중심으로 망가진 운동장.

마치 짐승이 할퀸 것처럼 대지가 도륙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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