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2화>
과거 칠흑 마탑의 대공자였던 시절.
영감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마법과 주술의 차이는 무엇인가?
“마법과 주술의 차이? 허허, 녀석. 열심히 공부한 모양이구나. 제법 심오한 질문을 던질 줄도 알고.”
실은 녹색 마탑 할멈이 주술이 더 멋지다며, 이쪽으로 넘어오라고 꼬드겨서 물었던 거지만,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마나를 식과 법칙에 맞춰 발현시키는 게 마법이라면, 영적 소통으로 되는 것이 주술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여기 이 초에 불을 붙인다 치자.”
“마법은 ‘X+Y’ 같은 식에 마나를 대입하는 거다. 물론 마법사의 능력에 따라 결과값은 천차만별이지만 확실한 식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지.”
“반면 주술은 매우 주관적이다. ‘따뜻한 불’, ‘초에 붙일 만큼 자그마한 불’처럼 소통이 어떻게 되냐에 따라 결과값이 완전히 달라진단다.”
마법은 객관화된 법칙, 주술은 주관적인 영혼.
같은 불을 붙여도 과정은 전혀 다르다.
“뭐?! 우열을 가려? 당연히 마법이지! ……는 농담이고, 솔직히 모르겠구나. 장단점이 분명하거든.”
“차라리 잘됐어. 이번 기회에 가르쳐 줄 테니 네가 판단하려무나. 그래, 주술 가르쳐 주겠다고. 뭐? 마법사인 내가 어떻게 주술을 아냐고? 크헐헐!!”
“이 녀석아, 네크로멘서는 죽음과 영혼을 다루는 마법사다. 영혼을 다루는데 주술을 모르겠느냐. 괜히 녹탑 할망구가 널 탐내는 게 아니란다.”
“보여 주마. 네크로멘서표 주술. ‘저주(Curse)’를.”
* * *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백견이 불여일행이라.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고, 보는 것은 행동하는 것만 못하다. 어제 책에서 읽은 구절인데. 어때, 직접 당해 보니 감이 와?”
“으으…….”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충혈된 두 눈, 메마른 사막처럼 갈라진 입술.
저주로 피폐해진 메르헴의 몰골이었다. 이 꼴로 런닝 머신 위에서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데, 모르는 이가 봤으면 당장 구급차를 불렀을 정도였다.
“하윽, 이…… 게, 효과…… 가 있는 거예요?”
“어, 확실해. 이것만큼 영혼을 효율적으로 강화시키는 방법은 없어.”
“젠…… 장. 그 말, 책임, 져야 할…… 후우…… 거예요. 하윽.”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 메리 양.”
나도 당한 거야. 효과는 확실하단다.
네크로멘서표 주술. 저주(Curse).
당시에는 저주가 주술이라는 점에서 많이 놀랐다. 소환과 함께 네크로멘서의 한 축을 이루는 분야 아닌가.
그렇다면 모든 네크로멘서가 마법과 주술을 모두 배웠다는 건데, 이게 가능한가 싶었다.
결론적으로 내 의문은 맞았다.
일반적인 네크로멘서의 저주는 ‘마법’이다.
영감이 내게 알려 준 이 저주는 영감의 깨달음이 담긴 아주 특별한 저주였다는 것이다.
영혼에 타격을 주려면, 나 자신의 영혼을 걸어야 한다. 주술이 가진 ‘등가 교환’의 원칙으로 강화된 영감만의 저주.
현재 메르헴은 이 저주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이다.
“영혼을 강화하는 방법은 두 가지야. 경험과 극복.”
“후…… 후윽.”
“흔히들 여행을 하며 시야를 넓힌다고 하지? 여기서 말하는 시야가 사실 영혼이야. 새로운 경험은 그만큼 영혼의 크기를 늘려 주지.”
“경…… 험.”
“극복은 단어 그대로 극복. 고통, 위기. 혹은 난관을 극복한 인간은 깊이가 생기지. 주술사는 이를 영혼이 단단해진다고 표현해. 지금 네가 하는 훈련도 이 극복이지.”
“극…… 복.”
“이 외에 편법으로 ‘계약’이 있긴 한데, 그쪽으로는 관심도 두지 마. ‘이형의 존재’랑 얽히는 것만큼 골치 아픈 것도 없거든. 이제 5분 남았다. 힘내.”
메르헴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걸음을 내딛는다.
자유를 위해 강해지고 싶다는 말이 그냥 해 본 말이 아니라고 내게 말하는 것처럼 독하게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5분.
마침내 시간이 됐고, 내 입에서 “끝!” 소리가 나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철퍼덕 쓰러지는 메르헴.
난 바닥에 닿기 전의 메르헴을 안아 들어, 다음 작업을 위해 준비된 매트에 눕힌다.
“이제 말 안 해도 알지? 정신 줄 똑바로 쥐고 있어.”
“허억, 허억.”
메르헴이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고. 내 오른쪽 어깨 위에 어둠이 뭉치길 잠시.
다시 저주가 펼쳐졌다.
“하…… 하윽…… 아아…….”
메르헴의 동공이 풀리더니 얼굴 위로 홍조가 피어난다.
내가 펼친 ‘몽마의 유혹’이란 저주 탓이다.
극한의 쾌락을 보여 주며 대상을 착란 상태에 빠트리는 저주.
마치 온탕에서 벗어나자마자 냉탕에 들어간 것처럼, 절망에서 벗어나자마자 맛보는 쾌락은 더욱 달콤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잘하고 있어. 정신 똑바로 챙기면서, 이름을 찾아. 네 이름을 뭐야? 너는 누구야.”
“하윽, 하윽.”
“이름은 영혼의 또 다른 얼굴이야. 이름만 꽉 쥐고 있으면 영혼이 중심을 잡을 수 있어. 네 이름은 뭐야.”
“셰이…… 알…… 메르헴.”
“잘 안 들려. 다시. 눈 감지 말고 다시!”
눈을 감으려는 메르헴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다.
얼마나 힘든지는 잘 안다. 나도 당해 봤으니까.
극한의 절망과 쾌락을 오가는 훈련. 영혼이 탈수기에 쥐어 짜이는 느낌이리라. 하지만 마왕의 이름으로 맹세컨대 이 훈련만큼 영혼을 빨리, 단단하게 키우는 방법은 없다.
그러니 참아라. 강해지려면.
조금만, 조금만…….
계속 이름을 묻기를 3분 21초. 어제보다 10초나 더 했다는 것을 확인한 난, 곧바로 저주를 거뒀다.
동시에 “허…….”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며 메르헴이 곧장 쓰러졌다.
나도 마찬가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와, 이거 장난 아니네.”
저주에 먹히지 않게 조절하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몇 시간을 한 것만 같다.
“어쩐지 영감 얼굴이 홀쭉해지더라니.”
보통 정신력으로는 시도조차 못 할 훈련이다.
“그런데 영감이 했던 말이 빈말은 아니었어.”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너도 제자 생기면 꼭 해 보라고 신신당부하더니.
“정말이잖아.”
웃으며 눈을 감자.
순간.
어둠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 * *
“드루이드.”
메르헴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말이다.
뜬금없이 집으로 쳐들어온 박기혁이 “너는 드루이드다!”라며 못 박을 때만 해도 미친놈인 줄 알았다.
제정신인가? 이제껏 배운 마법을 포기하고 갑자기 주술을 배우라고?
주술과 마법은 완전히 궤가 다른 분야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주술이나 마법이나 비슷할 수도 있지만, 둘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 줄 알 것이다.
당연히 거절해야 했다. 실제로 거절하려 했다.
그런데 결정의 순간, 메르헴의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저게 맞다고. 저 말이 맞다고.
넌 고작 모래 따위만 쓰는 마법사가 아니라고.
이성은 분명히 거절이었는데, 그녀 안의 본능이 맹렬할 정도로 박기혁을 따랐다.
신기한 경험, 생애 처음으로 겪은 본능의 울림에, 메르헴은 미친 척 동의해 버렸다.
그리고 시작된 지옥 같은 훈련.
“망할 놈. 죽일 놈. 너는 미친놈이에요.”
주술이라고 해서 이론부터 배울 줄 알았더니, 대뜸 주술을 걸더라.
뭐라더라?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겪는 게 낫다던가.
그러면서 사람을 절망에 빠트리더라. 이뿐인 줄 아나, 겨우 견뎌 냈더니 곧바로 쾌락의 구렁텅이에 담그지 않나?
그때 이 주둥이에서 나온 신음 소리는…….
“……으아악! 죽어! 죽어!!”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사람 감정이 장난감인가! 왜 가지고 놀아!
나중에 찾아봤더니, 어딜 찾아봐도 이딴 훈련은 없었다.
이런 인권 모독적인 행태에 당장 때려치울까 몇 번이고 고민했지만, 참았다.
효과가 좋아도 너무 좋았으니까.
욕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3일 만에 영혼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법을 깨우치더니, 일주일이 지나자 허공에 물을 만들어 냈다.
메르헴은 훈련 방법을 찾으면서 주술사에 대해 여러 가지 알아봤다.
주술사의 기본인 영혼의 눈을 뜨는 방법은 정말 재능이 뛰어나도 족히 한 달은 걸린다 했다. 속성을 덧입히는 건 반년 이상이고.
그런데 이 어려운 걸 박기혁은 일주일 만에 해낸 것이다.
아마 이 성과를 주술 학계에 공개하면 단순히 소란 정도로 끝나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런 눈부신 성과에도 메르헴이 꾹 참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그날도 저주에 몸부림쳤고 까무룩 잠들었다 눈을 떴을 때, 본 것이다.
지쳐 있는 박기혁을.
탈색된 얼굴로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집채만 한 거구가 불쌍하게 쪼그려 누워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짠하던지 안쓰럽기까지 하더라.
그때부터 메르헴의 불만은 사라졌다.
날 위해서 저렇게 애쓰고 있는데, 힘들다고 어리광을 부릴 정도로 철없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절치부심으로 훈련받기를 한 달 반.
드디어 메르헴은 ‘드루이드’로서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키륵?!
넝쿨에 발목을 잡힌 고블린이 놀라는 순간, 메르헴의 발차기가 날아든다.
주술 ‘곰의 분노’가 입혀진 신체. 당연히 그 힘은 고블린 같은 하위 종이 견딜 리 만무하다.
콰직!
그대로 목이 뜯겨 나가고.
곧바로 메르헴이 양손을 마주쳤다.
오른손에는 ‘팔콘의 날갯짓’, 왼손에는 ‘사막의 울림’.
이 두 가지가 합쳐진 순간.
“모래 폭풍.”
휘이이-!
몰아치는 모래 폭풍에 숲이 분쇄되기 시작한다.
나무도, 숲도, 돌도,
물론 고블린도.
* * *
“저게 드루이드?”
“괜찮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메르헴을 보며 경악하는 한준우.
하긴, 내가 봐도 놀라운데, 쟤가 보기에는 완전히 다른 수준일 거다.
‘확실히 재능 있다니까.’
영혼 강화로 순환계를 다 갖추고 처음으로 하는 실전. 그럼에도 메르헴은 펄펄 날아다녔다.
고치를 뚫고 날개를 펴는 나비처럼, 마치 이게 자신에게 맞는 옷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지금의 메르헴은.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은 보이네.”
“어디가?”
“한번 찾아봐. 너도 보면 알 거야.”
내 말에 한준우가 메르헴을 뚫어져라 보더니.
“움직임이 어색하다.”
“정답.”
단번에 알아채네. 역시 이 녀석도 보통은 아니라니까.
“몇 주간 영혼을 성장시켰어. 그런데 영혼이 당초 예상보다 성장하며 몸의 밸런스가 망가진 거야. 이를테면 워낙 재능이 출중하다 보니 생긴 부작용이지.”
“그러면 이 어색함이…….”
“영혼과 영혼을 담는 그릇인 신체의 조화가 깨지며 발생한 어색함이야.”
“해결 방법은 신체를 강화하면 되나?”
“일단은.”
1차로 영혼의 그릇인 신체를 강화하고, 2차로 다양한 경험으로 영혼과 그릇을 단단하게 묶는다.
여기까지만 오면 성공이다.
그 이후는? 알아서 해야지.
내가 엄마 아빠도 아니고 언제까지 보살펴 줘야 하나. 조언 정도야 해 줘도 이다음은 스스로 개척해야만 하는 영역이다.
사실 별로 걱정도 안 되고.
‘저 정도 재능이면 무리 없이 답을 찾아낼 것 같은데 뭐.’
‘곰의 분노’, ‘늑대의 하울링’ 같은 신체 강화 계통의 주술이나, 방금 본 ‘팔콘의 날갯짓’, ‘사막의 울림’ 같은 속성 변환 주술.
심지어 각각의 주술을 합치는 연계 주술마저도 훌륭하다.
이 모든 것을 오늘 첫 실전에 보여 주고 있다.
내게 배운 주술을 모두 활용하는 것을 물론이고 응용까지 하는 재능인데, 자기가 갈 길도 못 찾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나지.’
메르헴이 의외의 성장을 이룬 것만큼이나, 이쪽도 상상 이상으로 성취를 이뤘다.
다시 말해, 이쪽도 영혼과 그릇의 균형이 흔들린 상태.
‘거인의 육체가 튼튼한 그릇이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흔들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걸.’
워낙 담긴 게 많다 보니 조금만 흔들려도 후폭풍이 크다. 한동안 쉬엄쉬엄했던 육체 훈련을 다시 시작해야 할 판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가는 가운데, 전투도 막바지에 다다른다.
이제 서 있는 고블린이 셋도 남지 않은 상황.
저걸로 오늘 게이트는 끝이다. 나가서 뭘 먹을까 생각하던 그때.
“…….”
뚫어져라 메르헴을 보던 한준우가 입을 움찔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고민하는 게 역력하다.
짜식이 귀엽게. 대충 뭔지 알지만 짐짓 모른 척 먼저 물었다.
“할 말 있냐?”
“……나도.”
“응?”
“나도, 너한테 배우면 저렇게 성장할 수 있나?”
오케이.
너도 견적 한번 뽑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