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11화 (11/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1화>

아카데미에는 수많은 강의들이 존재한다.

검, 권, 창 등의 무기를 처음 잡는 이를 위한 ‘종합 무기술’

아예 몸을 쓰는 것이 어색한 학생들을 위한 ‘기초 체술’

마법에 대한 이해를 돕는 ‘마법학개론’ 등

이런 전투 관련 과목 외에도 ‘공략을 위한 마인드 컨트롤’ 같은 비전투적인 교양 과목도 있다.

이런 수많은 과목 중에서, 조장들은 조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강의를 정하고 수강 신청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싸움이 참 많이 일어난다.

안 그렇겠나. 한 조당 평균 13.3명이지만 이건 말 그대로 평균이다. 가장 숫자가 많은 조는 11조고, 정원이 무려 41명이라더라.

41명! 걔들 중 육체를 쓰는 무투계도 있을 거고, 마법을 쓰는 마법계도 있을 거다. 또 그 안에서도 육체를 쓰는 이들 중에서는 무기에 따라 갈릴 테고, 마법은 속성에 따라 갈라질 테고…….

사람은 많고, 각자 듣고 싶은 강의는 있는데, 하루는 24시간이고 들을 수 있는 강의는 한정적이다.

벌써 눈에 선하지 않나.

개판이 되는 모습이.

실제로 팀 케미스트리가 제일 많이 망가지는 시간이 이 첫 수강 신청이란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니 팩트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20조는 복 받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 조는 고작 3명.

여기에 한준우는 혼자서도 잘하는 자습형, 난 뭐든지 상관없는 잡식형.

이렇게 되자, 우리 조 중 가장 부지런한 메르헴만 남는데.

“아니에요. 난 부지런하지 않아요! 게으르다고요!”

난 지엄한 조장의 권한으로 선언했다.

“너에게 전권을 주겠다.”

“싫어욧!! 쉬고 싶다고요!!”

“거부는 거부한다.”

*   *   *

“……전통적으로 레이드의 포지셔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요. 탱커, 딜러, 서포터. 어느 나라는 포지션의 위치를 보고 전열, 후열, 지원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왜일까요?”

“둘 다 똑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해요.”

교수가 화이트보드에 탱커, 딜러, 서포터의 위치를 그린다.

“보세요. 몬스터를 기준으로 탱커가 전열, 딜러가 후열, 서포터가 지원에 포함되는 거죠. 그러면 첫 시간이니만큼 가볍게 맛만 볼까요.”

교수의 지시봉이 탱커를 짚는다.

“탱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공략대를 지키는 방패죠. 최전선에 서는 만큼 기민한 판단력과 체력이 요구되는 포지션이에요. 여기서 파생되는 역할 중 대표적인 게.”

쭉쭉, 선을 긋는다.

“디펜시브, 라인배커, 세이프티. 이 세 가지가 있겠네요. 이에 대해 아시는…… 아! 마침 전문가가 손을 들었네요. 2조장 헨리 학생.”

2조장이자, 현존 최강의 세이프티라 불리는 타이탄의 독자인 헨리가 입을 열었다.

“탱킹을 하는 건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다르다. 디펜시브는 ‘공격을 막는다.’에 올인한 정석적인 탱커. But 라인배커는 공격이 아니라 ‘라인을 유지한다.’에 포커스를. and 세이프티는 ‘동료를 지킨다.’에 포커스를 둔다.”

“정확해요. 헨리 학생이 핵심을 짚었어요.”

화이트보드에 ‘디테일(Detail)’이 쓰인다.

“디테일, 전통의 포지셔닝과 현대의 포지셔닝의 차이는 이 디테일. 이게 전부예요.”

막고, 견디고, 지킨다.

전통적인 탱커의 역할이라면.

어떻게 막고, 어디서 견디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이런 디테일이 추가된 게 현대 레이드의 포지셔닝인 것이다.

“그래서 현대 레이드의 맹점은 이 디테일을 어떻게 추ㄱ…… 어머! 내 정신 좀 봐! 맛만 본다 했는데 본격적으로 넘어갈 뻔했네요. 제가 이렇게 정신이 없답니다. 자, 빠르게 ‘딜러’로 넘어가 볼까요. 오, 거기 자신감 있는 학생 일어서 보세요. 이름이 뭐…….”

*   *   *

“신선하네.”

수업이 진행되면 될수록, 난 인정해야만 했다.

지금 듣고 있는 이 수업이 ‘포지셔닝의 이해와 활용’이라 했던가.

솔직히 과목명만 들었을 때는 이걸 왜 들어야 하나 의문이었다. 그래서 메르헴에게 묻기도 했다. 덕분에 필수 과목이라 무조건 들어야 한다며 온갖 짜증을 감당해야 했지만.

그래서 마지못해 들었는데.

신선하다. 사냥에 대한 이곳의 접근 방식이.

‘각자의 포지션에 맞춰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한다라…….’

쉽게 말해 ‘분업’한다는 거다.

이로써 얻을 수 있는 건?

‘효율’이다.

여기서 효율은 작게는 ‘시간당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의 양.’이고 크게는 ‘공략대의 안전’을 말한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신선하고 훌륭하다.

잠깐만 상상해 봐도 답이 나온다. 아주 간단한 개념임에도 확실한 성과를 낼 것이다.

그러면 이게 제국에서는 없는 개념이냐 묻는다면.

음, 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근데 비주류겠지, 흔히 말하는 용병들이나 사용할걸.

한때 제국민으로서 변명하자면 저 포지셔닝이란 개념, 제국에서는 대중화되기 힘들다.

왜냐하면 저 개념이 가능하려면 자신의 실력을 철저히 비즈니스로 여기는 인식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 하니까.

이해하기 어렵나.

예를 들면 쉽다.

제국에는 야만족이 있다. 이들은 몬스터에 버금가는 피지컬로 상대를 짓누르는 전사 중의 전사다. 이러하니 이 야만족에게 포지셔닝을 정해 준다면 틀림없이 탱커일 거다.

그런데 이 녀석들을 방금 교수가 말한 탱커 자리에 세워 두면.

망한다.

틀림없이 망한다.

‘피를 흘리지 않는 전사는 전사가 아니다! 끼요옷!’라며 닥치고 돌격할 게 뻔하다.

이렇다.

이게 제국과 지구의 근본적인 차이다.

제국에서 초인의 강함은 정신적 가치로 여겨진다. 마법사에게는 ‘진리’이며 기사에게는 ‘명예’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런 역할을 강요하는 게 자신이 가진 ‘긍지’를 침해 한다고 여길 확률이 매우 높다. 아니, 틀림없다.

나조차도 이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으니까.

‘이제야 이해가 되네.’

이 세계는 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제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힘을 추구하는 것이다.

‘잘못 봤어.’

하긴 정신 상태부터 글러먹은 애들이나, 검보다 책이 더 익숙한 황준엽 같은 반편이들만 보고 이 세계가 느슨하다고 판단한 건 성급하긴 했다.

작은 인정이지만, 이어지는 깨달음은 결코 작지 않다.

기분 좋은 청량감이 온몸을 감쌌다.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세상이 또 달라 보인다. 편협한 시각을 거두면서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것이다.

“장점과 장점을 섞으면, 멋진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자,작품이요? 기혁, 뭐 만들어요?”

고개를 돌리니 메르헴이 이쪽은 보고 있다. 뺨에 눌린 자국이 보이는 게…….

“잤냐?”

“자, 자긴 뭘 자요!”

잤네, 잤어.

자국을 따라가다 그녀의 눈에 시선이 고정된다.

메르헴이 내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견적 뽑는 중이야.

어떤 작품으로 만들지.

메르헴에 동공에 비친 내가 웃고 있었다.

*   *   *

시간이 흐른다.

정신없이 수업을 듣다 보니 벌써 주말이다.

그리고 주말은, 힘차고, 활기차게 게이트 가는 날!

코볼트의 화살을 손으로 쳐 내며 전진한다.

“끼릭끼리릭!”

수풀 여기저기에서 시끄러운 고함이 들린다. 대충 해석하자면 “독이 통하지 않아!”쯤으로 해석될 것이다.

조잡한 독을 쓰는 게 코볼트라는 종의 특성.

때문에 하급 몬스터임에도 생각보다 까다로운 녀석들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냥 난쟁이일 뿐이다. ‘거인’의 육체에게 조잡한 독 따위는 통하지 않으니까.

파앗!

단숨에 수풀을 뛰어넘자, 벌써 꼬리를 감춘 상황. 과연 고블린보다 높은 지능을 가진 몬스터답게 눈치가 빠르다.

“퉤, 성질 같아선 스켈레톤으로 짓누르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지금 난 사냥을 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중. 훌륭한 명작을 만들 때 인내는 필수다.

코볼트의 흔적을 뒤쫓으며 나의 예비 명작님에게 무전을 넣었다.

“메르헴, 코볼트 산개했다.”

곧이어 인 이어로 들리는 메르헴의 목소리.

- 숫자는요.

“13마리.”

- 13마리. 확인했어요. 지금 처리할게요.

잠시 후, 수풀에서 들리는 소리.

푸쉭! 푸쉭! 푸쉭!…….

마치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어김없이 코볼트의 처절한 비명이 이어졌다.

난 가까운 소리의 진원지로 발길을 옮긴다.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

흙바닥이 파인 구덩이. 그 밑에 촘촘히 박혀 있는 모래 가시에는 코볼트 두 마리가 꿰뚫려 차가운 시체가 되어 있었다.

“휘유우~ 확실히 재능 있다니까.”

꽤 먼 거리임에도 제대로 적을 찾아내 요격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주목한 점은 다른 부분이다.

바로 여기 구덩이의 크기. 너무 깊지도 크지도 않은, 정확히 코볼트를 가두기 안성맞춤인 크기였다.

“역시 마나 컨트롤이 탁월해.”

문득 녹색 마탑의 아줌마가 매번 제자, 제자, 제자 타령하던게 생각난다. 아줌마, 당신이 찾던 인재가 여기 있네. 내가 잘 키울게.

다른 구덩이를 확인한다. 적절한 크기에 구덩이들.

게다가 몇 마리가 들어갔느냐에 따라 크기의 차이도 분명하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그때, 귓가를 때리는 무전.

- 13마리, 모두 처리했어요.

“훌륭해.”

짝짝짝.

무심결에 박수를 쳤다.

이로써 메르헴은 완전히 파악됐다.

- 얼른 와요. 준우도 왔어요. 밥 먹을 시간이에요.

“간다.”

밑 준비가 끝났으니 본격적인 작품을 만들 차례.

그날 밤, 난 메르헴의 집으로 향했다.

*   *   *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내가 편식하고 있다니요?”

“말 그대로야.”

호록호록 차를 마시는 박기혁.

메르헴이 그런 박기혁을 기가 막힌 눈으로 바라봤다.

사냥을 마치고, 박기혁이 대뜸 집으로 쳐들어왔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며 차에 타더니, 어느새 할아범이 내준 야식까지 야무지게 먹고 있다.

“알아듣기 쉽게 말해요. 나 외국인이에요. 한국말 어려워요.”

“아참, 우리 ‘메리’ 공주님은 외국인이지.”

“아악! 메리라 부르지 마세요! 그건 아이 때나 부르던 말이라고요!”

메르헴이 표독스러운 눈으로 할아범을 노려본다.

이게 다 할아범이 ‘메리 공주님’이라 불러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눈으로 불을 뿜어 보지만 할아범은 어깨를 으쓱하며 문밖으로 사라진 뒤였다.

그녀는 알았다.

……이 집에 내 편은 없다는 걸.

“후우, 빨리 본론부터 말해 보세요. 약속도 없이 숙녀의 집에 쳐들어오는 건 예의가 아니에요. 난 기혁이 예의 없는 인간이라 여기지 않아요.”

“메리가 원한다면.”

“메리는 그!! ……후우, 빨리요. 저 쉬고 싶어요.”

“알았어.”

잔을 놓은 박기혁의 눈이 진지하게 변한다.

“우선 하나 물어볼게. 너 얼마나 강해지고 싶냐.”

“얼마나요? 질문이 잘못됐어요. 강함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요.”

“좋아, 그러면 질문을 살짝 바꾸자. 강해지기 위해서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데?”

“기혁, 오늘따라 이상하네요.”

“답부터 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어.”

메르헴은 잠시 생각해 본다.

자신이 왜 한국까지 왔나.

힘이 필요해서다.

왕족이라는 새장에 갇혀 있던 스스로가 싫어서, 자유롭고 싶어서, 힘이 필요했다. 철없는 왕족이 무책임하게 내뱉는 투정 따위가 아닌, 자유를 주장할 수 있는 힘 말이다.

고심 끝에 결론을 낸 메르헴이 손가락 하나를 펴며 말하는데.

“자유.”

이어서 두 번째 손가락을 피며.

“치킨. 이 두 개를 빼면 모두 포기할 수 있어요.”

“음, 인정. 치킨은 인정이지.”

“이제 말해 주시겠어요. 편식에 대해서요.”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차를 말끔히 비운 박기혁이 메르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너 왜 ‘모래’ 마법만 사용하는 거지?”

“에? 설마 그걸 말하려고 온 거예요? 당연히 제가 가장 잘하는 거니까요!”

“다른 속성은? 물은? 바람은? 나무는? 안 써 봤어?”

“물요? 바람요? 난잡하게 그런 걸 왜 써요?

“한 번도?”

“네, 당연한 거 아니에요? 설마 ‘편식’이라는 게 제 속성인가요?”

“어, 왜 모래만 쓰는지 궁금했거든. 겨우 그런 이유라면 넌 재능을 썩히고 있는 거야.”

“……!!”

현대 마법사에게 주 속성은 하나다. 난잡하게 여러 개를 배우면 오히려 성장이 막힌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지금 박기혁은 이 상식을 부수려 했다.

“모래는 ‘죽음’을 상징해. 물은 ‘생명’을 상징하고. 이 둘이 합쳐진 흙은 ‘어머니’. 죽음과 생명을 모두 짊어진 우리의 어머니를 상징하지. 그러면 흙에서는 뭐가 자라지?”

“아까 말한 나무인가요?”

“정확히는 씨앗. 이건 ‘잉태’야. 그 씨앗이 자라 나무가 ‘성장’하고, 나무는 꽃을 피우지. ‘탄생’인 거야.”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변해 가며 만개한 꽃은 시들고, 지고, 썩어 간다.

그렇게 다시 ‘죽음’을 맞이해 모래의 일부가 되고, 그 모래는 다시 비를 만나 흙이 되고 씨앗을 잉태한다.

이 무한의 굴레.

“우리…… 나는 이걸 ‘순환’이라 불러.”

“순환.”

“그래, 순환. 이게 너의 재능이야.”

“……!!”

단일 속성? 선택과 집중?

안다. 일반적으로 주 속성 하나만을 성장시킨다는 것.

인간이 가진 그릇은 쉬이 변하지 않고 가진 바 그릇에 맞춰 성장하는 게 효율이 높다는 것, 잘 안다.

“하지만 넌 아니야. 넌 특별해.”

특별한 인간에게 일반적인 잣대를 붙이면 안 된다. 그건 낭비다. 안주이며, 스스로에게 하는 타협일 뿐이다.

“모든 걸 할 수 있어. 내가 처음 가르쳐 준 게 뭐지?”

“고정 관념을 깨라.”

“다음으로 넘어가자.”

스텝 2.

한계를 두지 마라.

“지금부터 넌 이제부터 앞서 말한 모든 속성을 다뤄야 돼.”

물, 흙, 바람, 나무. 이 순환의 고리를 깨우치고.

최종적으로.

“드루이드가 되는 거야.”

“……드루이드요? 그거 주술…… 설마?”

“맞아, 주술. 마법을 포기하는 거지.”

박기혁이 짓궂게 웃고 있었다.

……

“재미있는 거 가르쳐 줄까. 너 게으른 거, 그거 모래만 사용해서야.”

“무슨 말이에요?”

“순환이 재능인 네가 모래만 단련하니 네 안의 기운이 죽음 쪽으로 치우지는 거야. 그러니 정신이 무겁고, 나른해지지. 너 잠도 많지?”

“…미인은 잠꾸러기예요.”

“이로써 확실해졌군. 넌 미인이 아니니까.”

“……죽어 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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