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0화>
아카데미 입학식이 있은 지 벌써 일주일.
시간이 지나자 들끓던 관심도 한풀 꺾였다. 이번 입학시험 수석이 나라는 것이나, 내가 맡은 20조에 대한 논란도 거품처럼 가라앉은 지금.
첫 수업을 하루 앞둔 이 시점에 나를 포함한 20조는 아카데미에 와 있었다.
“갑자기 오늘 심사를 보라니요! 이게 무슨 예의예요? 최소한 하루 전에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네? 말해 보세요, 준우!”
“몰라.”
“모르면 다인가요?! 준우는 세상이 쉽나요?! 기혁이 말해 보세요. 기혁은 조장이잖아요.”
“왜 가만히 있는 우리한테 그러냐. 흥분하지 말고. 뭐 바쁜 일이라도 있어?”
“바쁘냐고요? 바빠요! 기숙사 때문에 정리할 게 산더미라고요. 왜 1학년은 기숙사가 의문인가요! 이건 불공평해요. 짜증 나요.”
“의문이 아니라 의무.”
“준우, 눈치 없어요? 지금 그게 중요해요?”
“시설 좋던데. 몸만 가면 되겠더만.”
“어쩜 이렇게 매너를 모르나요, 기혁. 당신은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몰라요.”
“머, 뭘 몰라? 푸핫!”
“웃지 마요. 열 받으니까요.”
씩씩대는 메르헴을 보며 더 크게 웃는다.
솔직히 나도 어젯밤 뜬금없이 심사 공지를 받고 황당하긴 했다.
‘내일 비공개 심사가 있을 예정이니 참석하십시오.’
무슨 심사를 하루 남겨 두고 알려 줘? 졸속 처리에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말씀해 주시길, 이게 내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단다.
일개 조가 고작 세 명이라니. 이게 소꿉놀이가 아니고 뭔가.
라는 반대파와.
조원의 영입은 조장의 고유 권한이다. 결국 책임도 조장이 지는데 무슨 상관이랴.
라는 찬성파.
둘이서 극렬히 대립하다 보니 결정이 차일피일 미뤄졌고, 끝내 수업 하루 전, 막판에 막판까지 와서야 결론이 난 것이었다.
“그런데요, 기혁. 심사는 어떻게 치르는지 알아요?”
“대충?”
“……!! 알고 있다니요. 기혁답지 않아요.”
“알고 싶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어제 저녁 내내 말해 주셔서.”
농담 조금 보태서 10번은 똑같은 말을 들어야 했고, 덕분에 달달 외우는 수준까지 됐다.
“역대 ‘조 수행 평가 심사’는 총 12번. 그중 절반인 6번은 게이트 사냥을 통해 이뤄졌고, 5번은 필기와 면접. 그리고 나머지 한 번은.”
“교수와의 대결이었어요. 기혁도 잘 아는 남자고요.”
맞다.
나처럼 소수 정예로 조를 짜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알려진 사람.
박수혁.
바로 나의 형이었다.
“그래도 안심하세요. 기혁의 형처럼 저희가 교수들한테 미움 받는 건 아니잖아요. 대결까지는 안 갈 거예요.”
“글쎄.”
내가 알기로 형은 다섯으로 조를 구성해, 논란을 몰고 왔다. 그 탓에 교수들에게 밉보였고 심사에서 교수랑 칼을 맞대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셋이란 말이지. 다섯보다 둘이나 작은 셋.
교칙을 준수해야만 하는 교수로서는 우리가 싫지 않을까?
나는 그럴 것 같은데.
그리고 역시나.
내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 * *
심사 장소로 도착한 우리를 맞아 주는 건.
날 선 눈빛의 교수들.
2층에 앉아, 마치 우리의 모든 것을 살펴보겠다는 것처럼 이쪽을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었다.
“휘유우. 다 모였구만.”
“입조심해요.”
“다 모였습니다?”
“훌륭해요. 그런데…….”
메르헴이 소리를 죽이더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우리 잘못된 것 같아요.”
“아까 괜찮을 거라며.”
“설마요. 저는 주의하란 말이었어요.”
“허…….”
말 바꾸는 거 봐라. 낯짝도 두꺼워라.
그건 그렇고, 분위기가 무겁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심사장이 아니라 추궁장 같다.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네, 속으로 웃음을 삼키는데.
교수 한 명이 잔뜩 무게를 잡으며 걸어오는 모습에 참았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어? 늦어 놓고 뭐가 즐거워서 웃나?”
“아, 죄송합니다. 사레가 들려서. 그런데 늦었다니요. 5시 아닙니까? 10분 전, 오히려 빨리 왔는데요?”
“교수님들이 기다리는 자리다. 최소한 30분 전에 도착해서 인사드리는 게 예의가 아니고 뭔가.”
……그럼 초면에 인사도 없는 건 어느 나라 예의일까?
난 노려보는 교수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얼굴만 보니 30대로 보이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벌써부터 꼰대가 다 됐다.
“전투학개론 황준엽 교수예요. 역대 최연소 교수로 유명해요.”
“게으른 것치고는 많이 아네?”
“게으르다고 무지한 건 아니니까요. 조심이나 하세요. 최연소 교수로 유명한 분이에요.”
“최연소 교수라…….”
대충 상황이 그려지네.
교수들은 감히 아카데미의 교육 이념에 어긋난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고, 저 새파랗게 젊은 교수를 이용해 기를 죽이려는 게 틀림없다.
꽤 실력도 있어 보이는데, 아예 작정하고 나온 모양인지 기파가 찌릿찌릿 내 뺨을 때린다.
위기감을 느끼라는 거겠지. 그런데 어쩌나.
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데. 저쪽에서 대놓고 삐딱하게 나오면 이쪽도 마음 편하게 막나갈 수 있잖나.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에 황준엽 교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는 학생을 심사하는 자리다. 진지하게 임해라.”
“제가 진지하면 웃는 버릇이 있어서요.”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것 같군. 쯧, 제 형이랑 똑 닮았어.”
“오오, 형을 아세요?”
“모를 리가 있나. 아주 건방진 후배였지…… 선배로서 충고하자면 눈치를 키우는 게 좋을 거야. 자네 형처럼 아카데미에 찍히고 싶지 않다면.”
“하하하!”
아, 새롭네.
이런 기분이었구나.
가족 욕을 면전에서 듣는 게.
왜 친구들이 가족 욕하는 놈들을 반으로 접었는지 항상 이해가 안 됐는데, 가족이 생겨 보니 알겠다.
‘상당히 기분 더러운걸?’
아직 얼굴도 못 본 형이라도, 내 형이다.
니가 뭔데 내 가족을 건드려?
내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어머니 체면도 있고, 좀 덜 시끄러운 아카데미 생활을 추구하고자 적당히 하려 했지만, 그 마음은 이 순간 버렸다.
그래, 생긴 대로 살아야지. 언제부터 내가 이것저것 쟀다고.
들끓는 투기를 갈무리하는 가운데, 또 다른 교수가 나와 설명을 이어 나갔다.
“……본 심사는 20조장 박기혁 학생이 아카데미 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심사입니다. 심사는 투표로 진행되고요…… 안전 수칙을 준수해 주시고…… 교수들의 참관 아래 진행합니다.…….”
교수를 뚫어져라 노려본 채 “동의합니다.”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다 필요 없고, ‘빨리 심사가 시작되면 좋겠다.’ 생각하며.
“심판은 제가 볼게요. 양측 앞으로 나오세요.”
뚜벅, 뚜벅…….
앞으로 나서자,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온다.
왜냐하면 나만 나섰거든, 메르헴과 한준우는 조용히 뒤로 빠졌다.
그 모습에 일그러지는 황준엽의 얼굴.
“……감히 교수를 기만하는 건가?”
“설마, 그럴 리가요.”
“건방진!”
아아, 뜬금없지만 옛날 생각난다. 첫 만남에 나한테 건방지다고 한 놈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주제 파악을 하라며. 감히 천민 따위가 무릎 꿇지 않는다며.
걔들 어떻게 됐게?
무릎을 부숴 놨어. 무릎 꿇기 편하게.
“바포메트.”
부서진 공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바포메트.
드디어 ‘마왕’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 * *
사방에서 쏟아지는 도끼 세례에 가까스로 몸을 피한 황준엽.
하지만 안심하길 잠시, 어둠 속에서 기척도 없이 날아온 발차기에 허리가 접혔다.
“커억!”
어째서 이렇게 됐나.
언제부터 잘못됐는가.
마나 허무증이 마법을 쓰다니.
사방을 뒤덮은 어둠은 무엇이고.
저 스켈레톤 같지 않은 스켈레톤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바닥을 구르는 찰나의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까마득한 후배였던 박수혁. 당시 학생회장이던 황준엽은 그 찬란한 재능에 열등감을 느꼈다.
격이 다르구나…… 억울했다.
왜 자신에게는 저런 재능이 없는지! 자신이 검호 가문의 피를 이었다면!
박기혁의 심사에 앞장선 것도 이 열등감 때문일 거다.
감히 쫓지 못하는 상대의 동생을 자신의 손으로 꺾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착각이었다.
내려쳐지는 도끼에 다급히 몸을 피했다. 뒷덜미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저 녀석, 진심이다.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 한다.
황준엽은 다시금 깨달았다.
그때, 박수혁과의 대결에서 느낀.
절대 쫓지 못하는 격의 차이를.
스윽-
“……!!”
불현듯 느껴지는 기척.
화들짝 놀란 황준엽이 검을 내려친다.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느껴지는 기척. 다시 반대쪽 검으로 베어 냈다.
그가 자랑하는 쾌검이 빛을 흩뿌리며 어둠을 난도질했다.
하나, 본래라면 빛살처럼 쏟아 내는 연격으로 적을 굴복시켜야 했을 황준엽의 쌍검이건만, 겨우 적의 공세를 막기에도 급급하다는 게 현재의 상황을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그럼에도 황준엽은 최연소 교수로서의 명성이 거짓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맹렬히 쌍검을 휘둘렀다.
스켈레톤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진다. 하나, 둘, 황준엽의 검이 기척을 가르며 어김없이 머리가 떨어졌다.
그렇게 착실히 숫자를 줄여 갔지만.
소용없다.
중과부적(衆寡不敵).
부서지는 스켈레톤보다 재생성되는 스켈레톤의 숫자가 훨씬 많은데 공격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게다가 이 녀석들, 터무니없이 빠르고 날카롭다.
평소의 황준엽이 알고 있는 스켈레톤이라면 코웃음을 치며 무시할 법한 공격도, 절대 허투루 볼 수 없단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황준엽을 위협하는 사실은.
저 어둠 속에 진짜 ‘괴물’이 숨어 있다는 거다.
“뒤를 조심해야죠.”
“……!!”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순간, 주먹이 검을 뺄 새도 없이 날아든다.
퍼억!
* * *
“커억!!”
나동그라지는 황준엽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분명히 황준엽은 현재의 나보다 강하다. 마나의 총량만 놓고 보면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그럼에도 지금 바닥을 뒹구는 사람은 내가 아닌 황준엽이다.
시각을 제한하는 어둠과 정신을 건드는 몇 가지 저주, 그리고 스켈레톤.
기초적인 마법만으로 이뤄진 지극히 기초적인 압박 전술이다.
이걸로 황준엽의 발을 묶었다. 정신부터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발을 활용했다면, 어둠을 뚫고 나와 전장을 고를 수 있는 판단력만 지녔다면 내 입장에서는 꽤 골치 아팠을 거다.
이게 내가 여기 와서 놀란 것 중 하나다.
여기 사람들은 지닌 힘에 비해 너무도 나약하다.
정신도, 육체도, 모든 게.
제국보다 과할 정도로 높은 ‘마나 분포도’.
심지어 마나가 가진 ‘의지’조차 옅다.
간단히 말해 입맛대로 색을 입히기 쉽다는 말이다.
처음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난 경악했다.
내 입장에서는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아나.
힘에 대한 이해도를 1부터 10으로 치면 제국에서는 8, 최소한 7은 알아야 힘을 가졌다. 그런데 여기는 절반인 5, 혹은 그보다 적은 4만 알아도 충분히 힘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이다.
이게 사기가 아니고 뭐야?
그야말로 마나를 쌓기에 최적의 환경.
덕분에 너무 쉽게 힘을 얻는다.
오러, 마법, 주술, 무공 등등. 힘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도 적성만 ‘알고 있다’면 강해지는 데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너무 쉽게 얻은 힘이어서 일까.
깊이가 없다. 핵심이 비었다.
강해지겠다는 집념도, 무언가 이루겠다는 간절함도.
그 경지에 걸맞은 정신력은 물론이고, 육체마저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어린아이가 명검을 든 꼴이라고나 할까?
그 부조화가 이 결과를 만든 것이다.
이건 비단 황준엽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저기 단상 위에서 멍청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교수들이나, 흥미로운 눈으로 이쪽을 구경하고 있는 메르헴과 한준우도.
모두 똑같다.
반쪽짜리.
나의 솔직한 평가다.
그래서 바꿔 보려고.
영감이 나를 거둔 것처럼.
그래서 악명보다는 존경을 받아 보려 한다.
존경받는 마왕.
폼 나잖아!
“스, 승자! 박기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