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9화>
20조
조장 : 박기혁
조원 : 셰이크 메르헴, 한준우
끝이다.
세 명이 전부였다.
정말로.
아카데미가 발칵 뒤집혔다.
이게 말이 되나? 겨우 세 명뿐인 조를 조라고 부를 수 있는가?
협력과 팀워크를 강조했던 교육 이념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행태였고, 많은 교수진들은 인정할 수 없다는 쪽이었다.
“3명입니다! 세상 천지에 3명인 조가 어디 있습니까!”
“이게 다 박기혁이 주제도 모르고 시험을 치른 결과 아닙니까! 이거야말로 조장의 독선이자, 월권이에요!”
“저희 한국 아카데미의 교육 이념이 뭔가요. 협력, 협동, 조직적인 사냥을 지향하지 않나요? 이건 잘잘못을 떠나 인정할 수 없는 영역이에요.”
하지만 이에 반박하는 관계자들도 있었는데.
“이게 논란이 될 이유가 있나요? 3명이든 2명이든, 조장의 재량이잖아요. 선택에 따른 책임만 진다면 저는 괜찮다고 보는데요.”
“맞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제껏 이런 사례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박수혁’의 조가 대표적이잖습니까.”
“다섯, 여섯, 여덟. 소수 정예를 주장하며 조를 이룬 경우는 제법 있었어요. 물론 대부분 ‘중간고사’를 넘지 못하고 해체됐지만, 혹시 아나요? 박기혁이 제 형처럼 성공적으로 팀을 꾸릴지.”
조에 부여된 책임은 고스란히 조장이 지는 것이다.
협력만큼이나 주도적인 성장과 개개인의 창의성을 중시하는 한국 아카데미인데, 과도한 간섭은 이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던 것이다.
그리고 메르헴은 처음만 해도 압도적으로 전자를 지지했다.
고작 세 명인 조? 이 무슨 농담 같지도 않은 이야기인가.
이건 미친 짓이야! 아무리 위그드라실이 박기혁을 추천했어도 이건 아니다! 정말 아니란 말이야!
‘두고 보세요. 오늘이라도 당장 때려치울 거예요!’
……라고 다짐하며 집을 나섰던 메르헴이다.
30분 전, 박기혁이 섭외했다는 게이트에 들어설 때만 해도 이 다짐은 변치 않았다.
15분 전, 박기혁이 놀 몇 마리를 도륙할 때만 해도 나가는 순간 “여기까지네요.”라며 우아하게 인사하려 했다.
그런데 ‘저것들’이 일어서며 상황이 달라졌다.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앙상한 뼛조각들.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뼛조각들이 놀 군단을 사냥…… 아니, 사냥이라는 표현조차 아까울 정도로 학살하고 있었다.
음…… 어…… 그러니까…….
인정하기 싫지만…….
“가, 가능할 것 같네요.”
* * *
키에엑!!
시끄러운 비명 소리가 귀를 찌른다.
내 귀를 위해서라도 조용히 시켜야겠다.
우득.
녀석의 목이 돌아간다. 쓰러지는 놀을 뒤로하고 몸을 일으키자, 십여 마리의 해골 병사들이 내 옆을 스치며 달려가 놀 부대를 향해 칼을 찔러 넣는다.
스켈레톤(Skeleton)
네크로멘서의 시작이자 기본인 마법.
그럼에도 외면받는 마법. 더 고위의 소환 마법을 배우기 전 디딤돌로 여겨지는 비운의 마법.
하지만 그거 아나?
그저 거쳐 간다고 생각하는 저 기초 마법이, 나를 마왕의 자리에 올려놓았단 사실을.
콰직!
놀의 도끼질에 스켈레톤이 부서진다. 비산하는 뼛조각들, 그렇게 스켈레톤은 먼지처럼 사라지나 싶었지만.
천만의 말씀.
흩어지던 뼛가루들이 사각(死角)에서 재조립되더니, 자신을 부순 놀의 목덜미에 칼을 꽂아 넣는다.
키에에엑!!
그 옆의 스켈레톤은 놀과 1:1로 대치 중인 상황.
아마 여기 사람들이 이 상황을 보면 저기 메르헴처럼 놀랄 거다.
스켈레톤이라면 닥치고 돌격이 아닌가? 그런데 내 스켈레톤은 마치 결투에 나선 기사처럼 자세를 낮춘 채, 거리를 재고 있으니까.
달려 나갈 듯 말 듯, 보폭을 줄였다 늘렸다 했고, 끝내 긴장감을 견디지 못한 놀이 달려들자.
푸쉭!
백 스텝을 밟으며 목을 베어 냈다.
곧이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말도 안 돼요. 저게 스켈레톤이라고요?!”
“……!!”
메르헴은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경악하고 있었고, 한준우도 말은 안 했지만 턱이 땅까지 추락할 지경이었다.
놀랄 만도 하지.
내가 이 세계에 적응하려고 많이 본 게 영상이다. 클릭 한 번으로 온 세계 영상을 다 볼 수 있더라.
그렇게 보다 보면 어김없이 인기 영상으로 초인 영상들이 떠오른다.
거의 수백만에 달하는 조회 수, 웬만한 연예인 뺨치는 인기. 여담이지만 이 세계 초인의 지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여하튼, 그러다 우연찮게 본 영상.
바로 ‘네크로멘서’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영상이었다.
스켈레톤과 구울을 소환해 적을 상대하는 영상이었는데……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스켈레톤이 완전히 깡통인 것이다!
‘단련’은커녕 ‘습득’조차 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네크로멘서란 놈이 ‘지휘’조차 안하더라.
전직 마왕으로서 믿기지가 않았다.
저게 무슨 스켈레톤인가. 걸어 다니는 시체지!
그런데 말이다, 며칠을 조사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세계, 지구에서는 소환물에 놀랍도록 무지했던 것이다.
그냥 방치하는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이러니 소환물은 약하고 둔하다 평가받고, 자연스럽게 비주류 계열로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내 스켈레톤은 달랐다. 누가 봐도 날렵하고 민첩하다.
아직 단련 상태가 좋지 못해 방어력이나 공격력 자체는 스켈레톤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지만, 급소를 노린다거나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노련한 전투법으로 놀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
이제껏 깡통만 봐 왔던 쟤들에게는 스켈레톤이 저렇게 싸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화 충격일 거다.
얼핏 보기로는 내가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충격인 모양이다. 특히 메르헴은 다리에 힘조차 없는지 자리에 철퍽 주저앉아 스켈레톤의 싸움을 구경만 하고 있다.
본의 아니게 놀라게 해 준 것 같은데, 또 이게 즐겁단 말이지.
“더 날뛰어 볼까.”
입술을 혀로 핥으며 오른팔을 ‘부른다.’
검은 연기가 팔목을 타고 올라온다. 축축하면서도 끈적한 연기는 점차 형체를 갖추고.
곧이어 등장한 건.
내 충실한 오른팔, 바포메트.
“눈을 떠라.”
명령에 반응한 바포메트가 눈을 뜨고.
그 순간.
죽음의 병졸들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 * *
전장이 정리되고 잠깐의 휴식 시간.
피를 닦아 내고는 초코바를 꺼내 무는데, 아까부터 시선이 따갑다.
“…….”
“그만 좀 쳐다봐라.”
“……기혁, 속였어요. 마나 쓸 줄 알아요.”
“내가 언제 마나 못 쓴다고 한 적 있었어?”
“그치만 기혁은 마나 허무증이잖아요. 당연히 못 쓸 줄 알았어요.”
“당연하다, 당연하다…… 공주님, 마법사의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단다.”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야. 여기 앞에 앉아 봐.”
잘됐다. 안 그래도 둘이 완전히 반대되는 성향이라 우선순위가 필요했는데, 우리 공주님이 적극적으로 나와 줬으니 순서가 정해졌다.
“마법사란 무엇일까?”
“마법사요?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
“그렇다면 마법만 사용할 줄 알면 모두 마법사겠네?”
“그렇지 않나요?”
“응, 아냐. 마법사는 말이야, 마도의 길에서 진리를 찾는 존재야.”
진리는 어디에나 있다. 흘러가는 바람에도, 내려치는 폭포에도, 요동치는 심장에도. 진정한 마법사라면 마도의 길을 통해 이 진리를 찾고 궁리해야만 한다.
“마나 허무증.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신체. 그런데 과연 이게 가능한 현상일까? 생각해 봐? 우리가 사는 모든 세계에는 마나가 있는데, 나만 없는 게 가능해?”
“…….”
물론 ‘거인’이라면 가능하지만, 이를 모르는 메르헴에게는 나라는 존재가 훌륭한 사례일 것이다.
한준우도 은근슬쩍 우리 곁에 앉는다. 향상심만큼은 진짜배기인 녀석. 때문에 혹시 뭐라도 얻을 게 있나 싶은지 아닌 척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스켈레톤도 볼까? 너희들이 본 스켈레톤은 둔하고, 느리고, 돌진밖에 못하는 샌드백이나 다름없었을 거야. 그런데 오늘 본 스켈레톤은 어때, 메르헴?”
“빨랐어요. 맹수 같았어요.”
“한준우, 너는.”
“전투를 이해한 모습이었다.”
“완전히 달랐단 말이지?”
둘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봐봐. 당연한 건 없어. 당연하다 여겨지는 것뿐이야. 그래서 시작이 질문인 거야. 항상 질문해 봐. 우리가 사용하는 그 힘이 어디서 오고, 마나는 대체 무엇이며, 이 게이트는 무엇일까.”
“그 질문 누구에게 하는 거지?”
한준우의 물음에 난 빙그레 웃으며.
“그것도 질문해 봐. 답은 이미 네 안에 있으니까.”
스텝 1.
고정 관념을 깨는 것.
내가 이들에게 가르쳐 줄 첫 지도였다.
‘그건 그렇고.’
얘들만 가르쳐 줄 게 아니라 나도 ‘작업’에 들어가야겠다.
생각보다 너무 형편없었으니.
내 시선이 스켈레톤에 고정되어 있었다.
* * *
다짐대로 게이트행 이후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스켈레톤을 강화하는 작업은 총 세 가지다.
처음은 ‘단련(鍛鍊).’
스켈레톤을 구성하는 골격을 강화하는 것으로 공격력과 방어력 등 기본 스펙 자체를 높일 수 있다.
다음은 ‘습득(習得).’
스켈레톤에게 검술이나 창술 같은 각종 전투 기술을 입력하는 작업으로, 단련으로 상승시킨 스펙을 한계까지 활용하게 만들 수 있다.
마지막 ‘지휘(指揮).’
앞서 말한 두 가지가 스켈레톤 개별의 스펙을 올리는 것이라면 지휘는 단체, 군집을 이룬 스켈레톤을 수족처럼 활용하는 작업이다.
셋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 바로 이 지휘였다.
한두 마리일 때야 가뿐하지. 백 마리쯤도 할 만하다. 그런데 수천이 되면, 수만이 넘어가면?
술자가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난 이걸 ‘격이 침몰된다.’라 표현한다. 영혼의 격이 마법을 담지 못하고 역으로 먹히는 것이다.
그러면?
바스슥, 부서지는 거지.
네크로멘서들이 ‘데스나이트’에 그토록 목을 매는 이유도 이거다. 자체적으로 지휘가 가능한 데스나이트가 있으면 굳이 골치 아픈 지휘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련, 습득, 지휘로 강화되는 스켈레톤.
지금 내가 하는 ‘기본형 제작’은 단련을 위한 뼈대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우득!
누워 있던 스켈레톤의 정강이를 뜯어내 살펴본다. 똑똑? 손가락으로 뼈를 두드리고 냄새도 맡아 본 결과.
“인간이네.”
인간의 뼈다.
완전히 기본 형태의 스켈레톤이란 말.
더 볼 것도 없다. 뼛조각을 뒤로 던졌다.
대신 아공간에 손을 넣는데, 곧이어 손에 들린 건 뼈다귀.
놀의 정강이뼈였다.
“놀은 하급 몬스터치고는 하체가 단단하지.”
놀의 뼈를 스켈레톤에 끼워 넣는다.
하체를 모두 놀의 뼈로 바꾼 다음, 상체로 올라간다. 이번에는 오크 뼈를 꺼냈다. 지금 내가 가진 아인종 몬스터 중에서 그나마 쓸 만한 놈이기에 아쉬운 대로 작업에 들어갔다.
우득, 우드득.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이게 의외로 심오한 작업이다. 인간의 뼈대에 몬스터를 이식하는 건데, 각 개체에 대한 이해도가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거든.
갈비뼈의 숫자나 팔의 길이, 각종 관절에 가장 중요한 척추까지.
모자란 부분은 이어붙이고, 과한 부분은 깎아 내서 완벽한 스켈레톤으로 완성한다.
이러면 1단계는 끝.
이제 2단계다. 아공간에서 단검을 빼 든다.
순수 마석으로 만들어진 세공용 단검. 솔직히 이런 기술적인 부분은 제국보다 여기가 좋은 것 같다.
단검을 이용해 완성된 스켈레톤의 뼈에 마법진을 그려 넣는다.
서걱…… 서걱…….
점과 선, 원, 꼭짓점을 그려 넣으면.
‘강화’와 ‘탄성’이 완성된다.
생각 같아서는 신경계 작업까지 하고 싶지만 아직은 무리. 깔끔하게 여기까지만 하자.
마법진 작업이 끝나면 2단계도 끝.
3단계는 장비!
장인은 연장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내 경험상 개소리다. 장인일수록 장비빨은 더 심하더라.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어머니 협찬, 장비 세트!
“키야, 이 빛 영롱한 것 봐라.”
극강의 강도를 자랑하는 싸이클롭스의 뼈로 만들어진 도끼와 방패.
이 정도면 중반 이후까지 써먹어도 남겠다. 어머니,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장비를 스켈레톤 손에 들려주면, 3단계도 끝.
이제 마지막 4단계.
이 작업의 핵심. 영혼 각인이다.
슥!
칼을 들어 손바닥을 그었다.
뚝뚝, 흘러내는 피가 스켈레톤으로 떨어진다. 떨어진 핏방울이 그려 놓은 마법진의 홈으로 스며들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워 있던 스켈레톤에 기괴한 붉은 문양이 떠올랐다.
“후우.”
이제 마나가 필요한 때다.
“바포메트, 나와.”
오른팔, 바포메트가 허공에서 머리를 드러냈고.
“먹어.”
검은 연기가 누워 있던 스켈레톤을 감싸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걸로 모든 작업은 끝.
한번 확인해 볼까.
“나의 종이여 너의 주인이 명하노니.”
깨어나라.
순간, 검은 연기가 장막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장막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스켈레톤들.
핏빛의 마법진이 문신처럼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