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8화>
“박민지! 박미인지!!”
“…….”
한창 검을 정돈하던 박민지가 친구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대박! 민지, 너희 동생 또 사고 쳤어!!”
“그래서.”
“그래서라 말하기 전에 표정 관리부터 하지. 너 동공 커졌어.”
‘동생’이란 단어에 반사적으로 반응했나 보다.
호들갑을 떨던 친구는 그럴 줄 알았다며 폰을 코앞까지 내밀었고.
“봐봐!”
박기혁 ‘인성 문제 있어?’ 시험을 빙자한 구타!
피해자 K모 씨 “보호구 던져 주더니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렸어요.”
‘조장’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주어진다. 전문가 비난 잇따라.
……
…
한국 아카데미 이대로 괜찮은가.
“미치겠다! 스물여덟을 때려눕혔대. 맨손으로! 무기도 없이 말이야! 캬! 남자다잉!”
“…….”
“아카데미에 다니는 동기한테 물어보니까. 다들 마법이고, 능력이고 모조리 다 썼다더라.”
힘을 모두 개방한 채 28:1로 싸운 동생.
그럼에도 기사 반응을 보면 모조리 때려눕힌 것 같다.
“저번에 네가 말했잖아. 걔 천재 위에 천재라고. 너희 오빠도 인정한 괴물이라면서.”
“……내가 언제.”
“3일하고도 7시간 전. 우리 자주 가던 또리 치킨에서 잔뜩 취해서 했어. 막내가 마나 허무증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나 따위는 상대가 안 됐을 거라면서.”
“…….”
“또 뭐라 했더라. 어렸을 때부터 동생이 그렇게 귀여웠다면서, 엄마가 업고 있으면 뺏어서 자기가 업고 다녔다면서.”
“그만! 그마안!!”
“헤에~ 민지 빨개졌다.”
“젠장.”
하여튼 이놈의 술이 문제야.
또 주사로 속마음을 말했나 보다. 박민지의 마음을 아는지 친구는 짓궂게 웃으며 어깨를 툭툭 건든다.
“이제 그만 용서해 주지 그래.”
“…….”
“기혁이가 너랑 가족에게 잘못한 건 사실인데 걔도 오죽하면 그랬겠어. 거기다 기억 상실이라잖아. 정신 차렸더니 기억도 없는 일에 미움 받고 있는 거잖아. 아구, 불쌍해라.”
“그만해. 남의 가족 이야기야.”
“헤에~ 우리가 남이야? 그랬구나, 나는 우리가 가족이라 생각했는데, 남이구나?”
“아, 아니. 그건 아니고.”
“킥, 민지 당황하는 것도 귀여워.”
친구는 박민지를 부둥켜안고는 차분히 말했다.
“노력하는 것 같더라. 아카데미에서도 소문났어! 훈련장에서 산다고.”
“…….”
“다른 누굴 위해 용서하라는 게 아니야. 민지 널 위해서지. 너 동생 좋아하잖아.”
“몰라. 관심 없어.”
“알았다, 알았어. 그만할게. 그만한다.”
친구가 두 손을 들자, 박민지는 다시 무뚝뚝한 얼굴로 검을 정돈했다.
“그런데 기혁이 얘 ‘심사’는 어떻게 할 생각이래? 보니까 조원도 부족한 것 같던데…….”
움찔!
“헤에~ 민지 움찔했다.”
* * *
이건 그러니까, 옛날 영감과의 추억이다.
빈민가를 굴러다니던 내가 칠흑 마탑의 마탑주였던 영감에게 선택받고 하루아침에 신분이 달라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인생 역전이라 생각하겠지만.
인생사 그렇게 쉽던가. 마탑에 들어서며 온갖 구설수가 흘러나왔다.
“여기가 어디라고 미천한 놈이 감히!”
“젠장, 누구는 종자로 몇 년간 수발들었는데, 누구는 길가다 탑주 제자 되고. 젠장. 젠장!”
시기, 질투, 무시……
이 추억은 당시, 차별의 시선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내게 영감이 해 줬던 대화였다.
“……그래서 겨우 도련님들 뒷담화에 상처 받아 질질 짜고 있냐?”
“우, 우는 거 아니거든! 먼지 들어가서 그런 거야.”
“괜찮아. 네 나이 때는 울면서 크는 거야. 암, 그렇고말고. 크헐헐!”
“아니라니까, 영감탱이야!!”
“크, 녀석. 귀여운 거 보소.”
슥삭슥삭.
영감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미 알았잖냐. 환영받지 못할 것쯤은. 저번에 이 스승이 말해 준 거 잊은 건 아니겠지?”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고.”
“영특한 너라면 알 거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왜 널 배척하고 차별하는지.”
“알아도 억울해.”
“맞아. 억울하지. 억울하고말고. 아닌 말로 넌 내게 선택된 죄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생각만 하라는 거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흥…… 두고 봐. 콧대를 눌러 줄 거야.”
“아주 훌륭한 자세다. 내가 네게 바란 게 그거야.”
“……?”
“난 말이다. 재능 있는 이들은 많이 봐 왔다. 거상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영약을 물 먹듯 자란 놈도 있었고, 귀족가의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날 때부터 정령의 가호를 받은 놈도 있었다.”
“…….”
“수재, 영재, 천재. 수많은 재능들을 마주했지. 그들은 내 제자가 되려고 산더미만큼의 금을 들고 찾아왔다. 그런데 난 그들을 제자로 맞이하지 않았어. 왜일까?”
“……왜야?”
“재능이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달았거든.”
“……?!”
“물론 네가 지닌 ‘마법’은 진짜다. 의심하지 마라. 이 몸이 선택한 재능이니까. 이제껏 봐 왔던 재능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지.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널 높게 평가하는 게 재능만이 아니란 거다.”
“그럼 뭔데?”
“독, 기.”
“독기?”
“그래, 독기! 최악의 현실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독기! 온갖 시련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는 독기. 지금 네 눈에 비친 그 독기가 날 매료했단다.”
결국 인간의 일이다.
꿈을 이루는 것도, 재능을 완성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 해내야 할 일이리라.
그때부터 난 마법에 미쳐 살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시도 마법서에서 눈을 때지 않았고,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수면 시간마저 아까워 ‘가수면’ 마법을 만들면서까지 공부했다.
누군가는 포기하고, 누군가는 타협할 때, 난 멈추지 않았다. 세간의 시선, 차별의 굴레, 모두 무시하고 앞만 바라봤다.
간절하게 책장을 넘겼고, 절박하게 마법을 찾았다.
독기 가득 찬 눈으로 살아가길 10년.
정신을 차려 보니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더라.
그렇게 난 칠흑 마탑의 대공자가 돼 있었다.
* * *
“……눈…… 보세요.”
“…….”
“조장, 눈 떠 보라니까요.”
“……!”
감미로운 음성에 눈을 떴다.
“5시. 시간 됐어요. 한 명도 안 왔어요.”
“그런 것 같네.”
눈을 감았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우려 섞인 눈으로 이쪽을 보는 공주님과 첫 만남과 다름없이 책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내놈.
끝.
이게 다다.
딱 둘뿐이다.
우습다. 거의 30명이나 되던 숫자가, 겨우 주먹 한 번에 이 꼴이 날 줄이야.
영감에게 배운 대로 했으면 신고 들어갔겠네.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웃을 때가 아니에요. 심각해요.”
“심각해?”
“그럼요. 나, 너, 너, 세 명뿐이에요. 세 명인 조는 없어요. 지금이라도 전화해야 돼요.”
“음, 게으를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적극적이네?”
“나 게을러요. 그런데 너, 너는 나보다 게으름뱅이에요.”
발음은 괜찮은데 어순이 어색하다.
그러니까, 본래 게으름뱅이인데 우리가 너무 답답해서 움직인다, 이거지?
얘가 의외로 귀엽네. 빙긋 웃는다.
“웃어요? 정신 못 차렸어요. 이대로라면 심사 봐야 돼요!”
“알았어, 알았어. 움직일게, 움직이면 되잖아.”
떠밀리다시피 폰을 들었다.
그 모습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생각 잘했다는 듯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잠시 뒤 우리가 마주한 건.
“……이게 뭐예요?”
“밥이지. 저건 돈까스, 이건 짜장면. 된장도 있어. 치킨은 후라이드.”
“저도 알아요. 조원들한테 전화한 거 아니었어요?”
“내가 걔들한테 전화를 왜 해. 얼른 먹자. 너희들이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쟤는 벌써 먹고 있네.”
책에 집중하던 녀석은 이미 돈가스를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순발력이다. 그러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감각까지.
전에도 느꼈지만, 이 녀석 제법이다.
한편 이쪽은 정신을 못 차리는 중.
“나, 난 모르겠어요. 조에 우리뿐이에요. 우리는 세 명이고, 이대로라면 1학기는 세 명이서 보내야 해요. 그런데 조장은 밥 시켰어요. 많이 시켰어요. 혼란스러워요. 한국 사람들은 모두 너 같은가요?”
“먹으면서 대화하자는 거지. 자.”
치킨 다리 하나를 건넨다. 한눈에 봐도 바삭함이 살아 숨 쉬는 치킨에 동공이 흔들리던 그녀는 결국.
바삭!
굴복하고 만다.
나도 둘을 흐뭇하게 지켜보고는 짜장면을 슥슥 비벼 단숨에 털어 넣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이렇게 될 줄 예상했어.”
“넴? 무슨 말이에요?”
“너희만 남을 줄 알았단 말이야.”
붙어 보면 감이 온다. 상대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내 앞에 서 있는지.
영감은 이걸 ‘몸의 대화’라 불렀는데, 다년간의 경험상 꽤 정확한 검증법이다.
왜 그런 말도 있잖나. 몸은 솔직하다고.
입은 거짓을 말할 수 있어도, 본능은 거짓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호구도 줬어. 글러브도 꼈지. 그런데도 한 방에 뻗더라. 분명히 달려들 법도 했을 건데, 포기해 버렸어. 싸울 의지가 없단 말이지.”
“너가 강해서…….”
“그건 변명이 안 돼, 걔들은 일반인이 아니잖아.”
본질만 보자.
초인돼서 뭐 하는데?
살생(殺生). 죽이는 거다. 온갖 미사어구를 붙여도 이게 본질이다.
그러면 아카데미가 뭐 하는 곳인가.
강해지는 곳, 적의 숨통을 끊는 살육 기술을 배우는 곳이다.
“그런데 적이 강하다. 무섭다고 굴복해? 이건 심각한 거야. 힘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는 거니까. 그때 알았지. 아, 얘들은 명확한 목표가 없구나.”
“너, 너무 어려운 걸 요구해요. 너가 말한 건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거예요. 보통은 다 그래요.”
“맞아. 그래서야. 그래서 걔들이 오늘 오지 않았고, 그래서 너희들이 나랑 밥 먹고 있는 거지.”
자기들이 왜 강해져야 되는지, 실력을 쌓아야 되는지 모르는 아이들.
반면 이 둘은 다르다.
“너희들은…… 계속 너희라 부르니까 조금 그러네. 간단하게 통성명부터 하자. 난 박기혁. 너희들 조장.”
“난 셰이크 메르헴. 그냥 메르헴이라 불러 주세요. 중동에서 왔어요.”
“한준우.”
“좋아. 메르헴, 한준우. 너희들은 나한테 맞고 어떤 생각이 들었어?”
“……불쾌했어요. 제 ‘모래’를 부술 줄 몰랐어요.”
“다음에는 다를 거다.”
“그래, 그거야.”
메르헴은 불쾌해하고 한준우는 부정한다.
그만큼 자기 실력에 자부심이 있다는 말이고, 자부심을 가지도록 오랜 세월 노력해 왔단 것이다.
그런데 순순히 인정한다? 말이 안 되지!
자신을 증명하는 건 결국 자신뿐이다.
적어도 내겐 이들이 정상이고, 한 대 맞았다고 꼬랑지를 말고 도망친 저들이 비정상인 것이다.
“난 기본조차 돼 있지 않은 햇병아리들까지 끌고 갈 자신 없다. 굳이 할 필요도 못 느끼겠고.”
“잠깐만요, 기혁. 제가 잘못 이해한 건가요? 설마 이렇게 셋으로 조를 완성하겠다는 건가요?”
“제대로 이해했네.”
“신이시여……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심사’는요? 심사는 어떻게 하려고요?”
여기서 심사는 ‘수행 능력 심사’다.
실기 과제 및 각종 시험을 게이트에서 치러야 하는 교과 과정 특성상,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무력을 평가하는 심사.
본래라면 이 심사는 유명무실하다.
개인이 치르는 게 아니라, 조 전체의 무력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역대 1학년 조원 평균 숫자는 13.3명이에요. 이 평균 숫자만 채워도 심사는 패스예요. 그런데 이걸 셋이서 하잔 말이에요?”
그렇다.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통과했다는 말은 기본은 한다는 말.
정원만 채우면 심사 자체가 패스란 거다.
그러나 보다시피 우리는 셋.
셋이서 최소 13명분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간단하네.”
웃으며 손가락으로 메르헴을 가리킨다.
“너 하나.”
다시 한준우를 가리키고.
“너 하나.”
마지막으로 내 가슴을 가리키며.
“나 열하나.”
도합 열셋.
“됐지?”
문제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