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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5화 (5/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5화>

2차 입학시험이 끝나자마자, 아카데미가 초토화됐다.

1등 박기혁

* 위 학생은 위그드라실의 추천으로 ‘조장’ 확정

박기혁?! 그 박기혁이라고?!!

모두가 눈을 의심했다.

박기혁이 누구인가. 마나 허무증 환자다.

타고난 육체로 천재라 칭송받다, 한 톨의 마나조차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한순간에 몰락한 비운의 천재.

사실상 초인으로서 사형 선고를 받은 불능자가 바로 박기혁이었다.

그런데 그런 박기혁이, 눈앞에 있다. 떡하니 입학시험 성적 최정상에!

대체 어떻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어쩌면 아카데미로 수많은 문의가 빗발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리라.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사람부터, 부정을 의심하는 사람, 자료를 요구하는 사람까지.

아카데미 게시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끝내 아카데미 학장, 천수만이 움직여야만 했다.

*   *   *

“위드,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박기혁이 수석인 겁니까!”

“1등으로 도착했으니 1등이겠죠. 흥분하지 말고 앉으세요.”

천수만이 씩씩대며 앉자, 나무 덩굴이 솟아올라 테이블이 만들어진다.

위그드라실은 찻잔을 내놓았다.

천수만이 차로 입을 축이며 말을 이었다.

“상황이 심각합니다 위드. 항의가 빗발치고 있단 말입니다. 제가 어제 몇 통의 전화를 받았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언제나 느끼지만 인간은 피곤하게 살아요. 왜 그리 의심하며 살죠?”

“의심할 수밖에요! 박기혁이지 않습니까. 그 아이는 마나 허무증 확진자입니다. 마나를 사용하지 못 한다고 판정된 불능자란 말입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네, 그래서요.”

“이보세요, 위드!!”

“저는요, 제가 본 것만 믿는답니다. 이번 2차 시험에서 박기혁 군은 1등으로 제게 도달했어요. 오롯이 혼자 힘만으로요.”

“그게 가능……! 후우…… 아니, 그렇다면, 최소한 설득할 증거라도 주십시오. 지금 사태가 심각합니다.”

“설마 학생의 정보를 내놓으라는 말인가요? 천수만 군, 시험의 전권은 제게 있어요.”

“하지만 이대로라면 아카데미의 신용에 문제가…….”

“그건 여러분의 사정이죠. 저는 여러분이 박기혁 군을 뭐라 부르든지 상관하지 않아요. 마나 허무증, 불능자. 이 모든 게 인간의 시각이니까요.”

“……당신이 의심당해도 말입니까?”

“물론이에요. 인간의 의심이잖아요. 전 상관없답니다.

“…….”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인간이란 종을 무시하는 건 아니랍니다. 여러분을 존중해요. 좋다, 싫다, 이분법적 관점에서 보자면 좋아하는 편이고요. 하지만.”

위그드라실이 무심한 눈으로 천수만을 바라본다.

“나라는 존재를 인간의 잣대로 평가하지 마세요. 인간의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 또한 허락하지 않아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제가 매우 기분 나쁠 것 같네요.”

“……제가 경솔했습니다. 다음부터 조심하지요.”

세계 최고라는 한국 아카데미의 초석을 다진 위그드라실.

때문에 보다시피 아카데미의 학장이라도 그녀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이것만 가르쳐 주십시오. 추천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건 단순히 1등을 한다 해서 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역시 앞에 했던 이야기대로예요. 저는 박기혁 군을 시험했고, 박기혁 군은 훌륭하게 시험을 통과했죠.”

“그게 다입니까?”

“그거 외에 뭐가 필요하죠.”

“……위드, 저는 당신을 존중하고 또 존경합니다. 한때 저도 당신의 제자였지 않습니까.”

“그랬죠. 후후. 어린 천수만 군은 꽤 귀여웠죠. 아, 그때가 그립네요.”

“커흠, 여튼! 조장을 덜컥덜컥 선임하면 제 입장이 곤란해집니다. 당신도 알 거 아닙니까, 1학년에게 조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죠. 제가 만든 시스템인걸요.”

조장, 팀장, 대장으로 이뤄지는 한국 아카데미만의 협동 교육 커리큘럼.

공략대가 일반적인 전투 형태가 된 현대에서 개인의 용맹만큼이나 중요한 게 지휘관의 카리스마였고, 위그드라실이 만든 커리큘럼은 이상적인 지휘관을 만들어 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아직도 믿을 수 없지만 당신 말대로 박기혁 군이 1등으로 도달했다 칩시다.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며 홀로 입학시험을 찢었다고 치자고요. 그래도 조장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조장은 동료들을 케어해 줘야 하는데, 그 아이는 결정적으로 마나가 없습니다. 아예 마법을 모른다고요.”

“풋. 그거 아나요, 천수만 군. 당신의 방금 발언으로 인간의 신용도가 한층 더 낮아졌다는 걸요.”

박기혁이 마나를 모른다고?

고작 한 줌의 마나로 그녀가 작정하고 만든 환상을 완전히 파훼한 아이가 마나를 모른다?

우습다.

이래서 위그드라실은 자기가 본 것만 믿는다.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니까.

“99점.”

“……!!”

“제가 평가한 박기혁 군의 점수예요. 이제 됐나요?”

한국 아카데미가 생긴 이래 최고 점수.

이게 위그드라실이 내놓은 논란의 답이었다.

*   *   *

“끄응.”

“왜 그래, 아들? 귀 아파?”

“아픈 건 아니고 가려워서요.”

“어머, 누가 우리 잘난 아들 이야기를 하나 보다.”

그거라면 인정.

불능자라 평가받던 내가 1등으로 입학시험을 통과했다. 뒷말이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하지.

“엄마 면봉 있어. 파 줄까?”

“괜찮아요. 식당에서 예의 없잖아요.”

때맞춰 똑똑, 노크와 함께 음식이 들어온다. 오늘의 메뉴는 중식 짜장면과 탕수육이다. 지구에서는 시험 치면 이 조합이 국룰이라며? 나도 흉내 좀 내 봤다.

“이걸로 되겠어? 엄마가 더 좋은 거 시켜 줄 수 있는데. 지금이라도 다른 거 시킬까?”

“에이, 됐어요. 겨우 시험 통과한 걸로 뭘. 이 정도면 충분해요.”

“어머, 애 좀 봐. 그냥 시험이니? 아카데미 입학시험이야. 이번에 합격률이 얼마인지 알고 있니?”

“얼마나 되는데요?”

“7.3퍼센트. 네가 치른 2차 시험에서는 합격자가 30명도 안 나왔단다. 우리 아들은 거기서 당당하게 1등을 한 거고. 내가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자랑스러웠는데.”

“1등보다 그게 기쁘네요.”

“뭐?”

“엄마의 자랑이 된 거요.”

“당연하지. 넌 내 아들이야. 자식은 언제나 부모의 자랑이란다. 식겠다. 얼른 먹어.”

뭉클하다.

가슴이 간질간질하면서 따뜻한 게. 가족이라……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단어다.

그깟 1등보다 더.

내 성적을 두고 밖에서 많이 떠든다는 건 안다. 나도 귀가 있고 눈이 있는데 모르겠나. 당장 이 폰이란 물건만 들춰 봐도 온통 내 기사로 도배돼 있으니 말 다한 거지.

웃긴 건 좋은 소리는 없다는 거다.

하나같이 의심이고 불신이다. 입학시험에 문제가 있다며 아카데미 자체를 부정하는 놈도 종종 보이더라.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우습겠나.

그렇게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 천재였던 내가 마나 허무증으로 몰락했다는 대목에서는 왜 의심하지 않는가?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 불리던 천재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난 그게 더 이상한데.

그러면서 몰락한 천재가 다시 비상하니까 온갖 의심의 잣대를 들이댄다.

결과가 떡하니 있는데도 증명하란다.

내가, 내가 만든 결과를 증명해야 해.

‘같잖네.’

됐다. 신경 끄자, 생각만으로도 뇌가 썩을 것만 같다.

양파를 춘장에 듬뿍 찍어 입에 넣는다. 아삭, 상큼한 맛이 입에 퍼지고, 마지막 남은 짜장면을 후루룩 들이켰다.

“한 그릇 더 시켜 줄까?”

“네, 양이 적네요.”

“있어 봐.”

한 그릇에 25,000원 짜장. 맛은 괜찮은데 양이 시원찮다. 그래서 세 그릇 더 먹었다. 탕수육도 한 접시 더 먹고.

엄마는 내 먹는 모습만 봐도 좋으신지, 그저 싱글벙글하시고.

“그런데, 엄마. 입학시험 1등이 제가 처음은 아니잖아요. 형도, 누나도 모두 수석이라던데.”

“응, 맞아. 그건 누구한테 들었니.”

“위그드라실요. 대를 이어 재능이 반짝인 건 우리 가문이 처음이라고 엄청 좋아하던데요. 아! 아빠랑 엄마 안부도 물었어요.”

“그분도 참…….”

가능하면 넷째도 부탁한다는 말은 뺐다.

그 양반, 세계수답게 시간 감각이 영 꽝이더라. 인간이 무슨 200년을 사는 줄 알아.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가족이 칭찬받는 건, 내가 칭찬받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파병 나간 아빠하고 수혁이 복귀하면 전부 모이자. 민지도 그때 되면 한풀 꺾일 거야.”

“너무 애쓰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아니야…… 기혁이 네가 노력하는데, 모두 노력해야지. 그게 가족인걸.”

정확히는 모르지만, 박기혁으로 인해 이 가족이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안다. 특히 누나 박민지는 그 상처가 심해 내 꼴도 보기 싫다며 집까지 나갔다고 한다.

의식불명일 때는 자주 찾아왔다는 것을 보면 나를 아예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모두 내가 짊어진 업보고 풀어야 할 매듭이다.

그래서 난, 앞으로도 내 능력을 아낌없이 드러낼 생각이다. 가족의 걱정이었던 과거를 완전히 지우기 위해서라도.

“여기 짜장면 맛있네요. 이제부터 축하할 일 많아질 것 같은데, 괜히 번거롭지 않게 여기서 식사해요.”

“풋. 우리 아들 멋진걸. 꽤 남자다웠어.”

“남자라면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죠. 앞으로 기대하세요.”

“그래그래.”

농담인 것 같으시죠.

이미 한 번 가 봤던 절대자의 길이다

마왕의 경험에 거인의 육체까지 지닌 현재.

솔직히 나도 내 성장치가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확실한 건 지금의 논란은 우스울 정도로 모두가 경악하리란 것이다.

기대하시라.

진짜 폼 나게 사는 게 뭔지 보여 줄 테니까.

“아! 맞다! 깜빡할 뻔했네. 기혁아, 칠성 그룹에서 연락 왔어. 저번 일로 한번 보고 싶다네. 가 보는 걸 추천할게.”

“설마, 제가 생각하는……?”

“네가 생각하는 게 보상이라면, 아마도?”

“호, 기대되는데요.”

선물은 언제나 환영이지.

그렇게 즐거운 저녁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   *   *

며칠 뒤, 난 칠성 그룹이 마련한 자리로 나갔다.

그런데 변호사를 대동한 채 도착한 자리는 전혀 의외의 장소였다.

“휘유~ 크네요. 우리 집보다 큰 건 확실하네요.”

“명색이 칠성 그룹입니다. 저희 옵티멈이 힘을 가졌다면, 칠성을 비롯한 3대 그룹은 돈을 가졌습니다. 그들의 역사를 무시할 수는 없죠.”

“동의해요.”

“그렇다고 움츠러들 필요는 없습니다. 대표님이 물욕이 없으셔서 그렇지, 원하신다면 이딴 물질적인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검호 가문의 힘은 고작 그런 것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기혁 님의 그…… 경우도 확실한 방법만 있었다면 벌써 해결하시고 남았을 겁니다.”

혹시나 내가 기죽을까 봐 변호사가 딱딱한 말투로 배려해 줬다.

마음 씀씀이는 고맙지만, 쓸데없는 배려다.

작은 성이나 다름없는 규모의 저택이다. 이 세계에 온 이래 크기만으로는 가장 큰 집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여기 기준이지, 제국에서 이런 저택은 널리고 널렸다. 하다못해 내게 짓밟힌 성 중에는 작은 소도시만 한 규모도 있었는데.

겨우 이런 집에 쫄릴까.

오히려 내가 신경 쓰는 이유는 다른 거다.

회장이라면 그룹의 우두머리, 제국으로 치면 귀족 가주쯤 되려나. 그런 사람이 날 왜 초대한 것일까? 설마 순진하게 사과하려고 초대했다는 말을 믿는 건 아니겠지?

“예상은 가는데…….”

“무엇이 말입니까?”

“이 사람들이 여기에 절 초대한 이유요.”

“역시, 대표님의 말씀대로 명석하시군요. 맞습니다. 기혁 님이 입학시험을 수석으로 통과해서일 겁니다.”

말이 길어졌지만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입학시험을 수석으로 통과하며 힘을 증명한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보겠다는 것.

덤으로 옵티멈 에이전트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금상첨화고.

“사실, 칠성 그룹 입장에서는 이번 사고가 기회이기도 합니다.”

“왜죠?”

“에이전트 사업에 적극적인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건 힘이고, 입학시험 수석으로 확실한 유망주로 거듭난 기혁 님을 사전 접촉할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이득이니까요.”

“민망하네요.”

“민망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겨우 이 정도로 민망하시면 안 됩니다.”

“무슨 뜻이죠?”

“옛 고사에 왕은 수치를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재벌들도 비슷합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변호사가 백미러로 이쪽을 보며 말했다.

“수치를 마다하지 않죠. 민망한 시간은 이제부터일 겁니다.”

그리고, 변호사의 말은 한 치의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미안하다!”

“연재훈.”

“미안합니다!”

“더 크게.”

“미안합니다아!!”

다 큰 사내놈이 무릎 꿇은 채 머리 박고 울기까지 하니.

……부끄러움은 내 몫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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