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4화>
시간이 흘러, 한국 아카데미 입학시험 날.
난 손안에 든 마석을 달그락거리며 벌떼처럼 모여 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중이다.
“휘유우. 사람 많네.”
아무리 위험하다 위험하다 말해도 매년 초인 지망생들은 증가한다더니, 그 말대로다.
“하긴, 그럴 만도 해.”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직업이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국이나 지구나.
변치 않는 가치가 있다면, 그건 돈이다.
결국 인간을 움직이는 건 욕구이고, 욕구 중 으뜸은 돈. 정확히는 더 좋은 곳에서,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누리고 싶은 욕구 아니겠나.
누군가는 천박하다며 손가락질하지만, 개인적으로 난 이런 욕구 자체가 좋다.
저게 다 폼 나게 살려는 노력 아니겠나.
노력하는 자.
이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달그락, 달그락.
난 손안에 있는 마석을 굴리며 끊이지 않는 행렬을 지켜봤다.
그런데 말이야. 다 좋은데 관심이 조금 지나치다?
아무래도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크니까 눈길을 피할 순 없겠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관심은 이런 눈길 따위가 아니다.
“야, 저기, 저기 봐봐. 정말 검호 가문 막내야. 진짜 나오나 보네.”
“불능자면서 무슨 배짱으로 아카데미 시험을 치는 거야. 초인이 우습나?”
“설마 마나 허무증 고쳐진 건?”
“에이, 그럴 리가 있냐. 그랬으면 벌써 뉴스에 떴겠지. 검호 가문 막 마나 허무증 극복! 한국의 경사! 이렇게.”
치졸한 악취가 풍겨 온다.
시기, 질투, 혐오…….
마치 시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나를 향해 썩은 내 나는 이를 드러내고 있는데.
솔직히
같잖다.
시험에 가진 불안을 해소하려고 나를 제물로 삼은 건 좋다.
자신의 모자람을 감추려고 남을 깔아뭉개는 건 인간의 종특 같은 거니,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니다.
원래 성공 스토리보다 재미있는 게 유명인의 몰락이잖나. 저들의 입장에서 나만큼 괜찮은 제물도 없을 거다.
알아, 다 이해하는데 말이야.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수준이 저열하잖아.’
여기서 수준은 말이나 행동 따위가 아니다.
가진 바 실력이다.
한때는 칠흑 마탑의 대공자였던 나다. 내 손을 거쳐 간 인재들만 채워도 여기 운동장을 가득 매울 거다. 당연히 슬쩍 봐도 각이 나온다.
폐급과 상급이.
“대표적으로 저놈.”
나를 보고 과녁 운운하던 놈. 그러면서도 나랑 시선이라도 마주칠까 봐, 내 눈치를 슬슬 보는 저 녀석은 폐급이다.
일단 몸 관리부터 빵점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반면 저쪽은 제법이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구릿빛 피부의 여자아이.
한눈에 봐도 국적이 외국인인 것 같은 저 아이는 꽤 한다.
중동 쪽 사람 같아 보이는데 팔이나 다리나 신체 균형만 봐도 훈련이 잘된 게 보인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무던히 노력했을 테다.
“그런데 희한하게 제국의 황족 느낌이 난단 말이야.”
때마침 그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방긋 웃어 주자, 저쪽도 방긋 웃어 줬다.
임기응변도 괜찮네. 플러스 점수 추가.
그렇게 제 수준도 모르고 이를 드러내는 같잖은 하이에나와 몇몇의 원석들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고 어느새 시간이 됐다.
“곧 한국 아카데미 2차 입학시험이 있을 예정입니다. 입학 희망자들은 신청서 지참하시고 이쪽으로 모이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자를 따라 게이트로 향했다.
응, 게이트. 정말 게이트다. 푸른 마나로 이뤄진 타원 형태의 마나장.
문이란 단어처럼 그곳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호, 이게 게이트구나.”
울창한 숲.
보이는 건 나무요, 푸른 녹음밖에 없는 곳.
옛 제국의 대수림이 연상되는 숲이 날 반겨 주고 있었다.
‘차원 이동? 공간 변형? 어느 쪽이든 인간이 만든 건 아니야.’
재미있네. 웃음이 나온다.
그러는 사이 입학 희망자가 모두 들어왔고, 안내자가 “지금부터 진행은 이분이…….”라는 인사를 남기며 한발 뒤로 빠지길 잠시.
쿠아아아앙!!
천지가 진동하며 굉음과 함께 땅을 뚫고 등장한 건.
나무, 커다란 나무였다.
-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번 입학시험을 총관할 ‘세계수 위그드라실’입니다.
감독관이 세계수라…….
“역시 이 세계는 재미있다니까.”
* * *
수호령 위그드라실은 지난 200년간 한국을 지켜 왔다.
그녀는 아카데미의 창립에 누구보다 앞장섰고 한국이 초인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매년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리는 수많은 인재들은 출발선에서 그녀를 마주했다.
시험은 단순하다.
필드 중심에 있는 세계수에 도달하는 것.
수단과 방법은 자유다.
최선을 다해 도달하기만 하면 되고, 합격 여부는 오롯이 위그드라실의 몫이었다.
100점 만점에 10점.
고작 10점만 채우면 합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5차까지 치러지는 입학시험에서 합격률은 겨우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이건 졸업시험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아카데미의 졸업시험은 악명 높기로 유명했고 그 중심에는 위그드라실이 있었다.
이처럼 이 땅의 수많은 인재들의 시작과 끝을 함께해 온 위그드라실.
그런 그녀에게도 이번 기수는 제법 눈길이 갔다.
- 이렇게 빛나는 재능이 많았던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아주 기쁜 일이에요.
패웅의 기상을 이어받은 사내.
적봉의 날갯짓을 쫓는 여아.
저 먼 나라인 중동에서 유학 온 공주나, 미국 최고로 손꼽히는 타이탄의 독자,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가문인 진룡의 막내까지.
평범한 기수였다면 눈부신 재능을 자랑하며 응당 으뜸이 되었을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반짝이는 샛별을 보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는 위그드라실에게 이런 장난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그런 그녀를 특히 즐겁게 만들어 주는 인물은 바로.
박기혁
검호 가문의 인물이었다.
- 정말 신기하네요. 어떻게 저런 존재가 나타날 수 있죠?
경이로운 육체, 압도적인 힘.
주저하지 않는 용기와 명쾌한 판단력.
- 과연 호랑이는 호랑이를 낳는 건가요. 박건 군도 뛰어났지만 그 자손들은 정말 말을 잃게 만드네요.
8년 전, 입학시험 82점으로 박수혁은 놀라운 재능을 보여 줬다.
그뿐인가? 검호 가문의 둘째인 박민지의 점수는 80점.
리더십이 결여됐다는 점에서 감점을 당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극강의 스피드는 장남인 박수혁마저 위협할 정도였다.
이런데 장남, 둘째에 이어 막내까지!
실로 놀라운 혈통 아닌가!
위그드라실은 피로 이어진 이 경이로운 재능에 전율마저 느꼈다.
- 그런데요. 누가 저 아이 보고 마나를 사용하지 못한다, 그랬죠?
방금 환상 마법을 파훼한 건.
- 아무리 봐도 마법인데요?
* * *
난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
듣기로는 요즘 대세가 힘을 숨긴 주인공이라는데, 그건 내가 추구하는 폼이 아니다.
숨긴다는 것 자체가 모양 빠지는 짓.
내가 추구하는 폼은 말이다.
물러섬이 없고.
콰직!
눈치 보지 않으며.
우지끈!!
전력을 꺼낼 수 있는 당당함.
쿠웅!!!
이게 내가 생각하는 폼이며 멋이다.
후두둑.
부서진 인형의 잔해가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순간, 곧바로 도약했다.
목표는 고블린 인형들.
떼로 지어 다니며 마비 침을 쏘는 게 고블린을 훌륭히 재현해 냈지만.
제게는 한 입 거리죠.
우지끈!
선두에 있던 놈이 일격에 분쇄됐다. 피 대신 나무 조각들이 비산한다.
인형이라 타격감이 마음에 드네.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고블린 인형들.
순식간에 고블린 인형들을 정리하자, 이번에 앞을 가로막는 건 오크 인형들이다.
살벌한 몽둥이를 휘휘 돌리는 게.
녀석…… 마음에 들어!
“신나게 놀아 보자고!”
와지직, 와직! 쿠직!
부순다. 팬다. 박살 낸다.
손, 발, 무릎, 팔꿈치, 어깨, 머리, 모든 신체를 이용해 가로막는 모든 적들을 분쇄했다.
오크 인형, 다이어 울프 인형, 트롤 인형, 우드 골렘…….
위그드라실이 만든 각종 인형들이 앞을 가로막지만 굴하지 않고 전진, 또 전진했다.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나네.
영감이랑 했던 첫 모의 전투. 수천의 스켈레톤들이 격돌하는 대결에서 난 선두로 뛰쳐나가 스켈레톤의 대가리를 도끼로 찍었더랬다.
그때 영감 얼굴 볼만했지. 네크로멘서란 녀석이 돈독 오른 용병처럼 싸워 댔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나.
잔소리도 많이 들었다.
전략만 배우랬지 왜 네가 직접 골통을 부숴! 이것아, 기품 있게 싸워라 좀! 제발, 물어뜯는 건 아니지 않냐! 차라리 흑마법을 써, 이 웬수야!!
내 전투 스타일에 학을 뗐던 영감이었다.
하지만 뭐 어때서.
이게 내 스타일인걸.
숨지 않고 앞장서는 마법사.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으며, 누구보다 절실하게 승리를 원하는.
투쟁의 마왕.
이게 나란 인간이다.
“더! 더! 더 없어!!”
넘실대는 투기 한복판에서 포효한다.
이에 호응하듯 흔들리는 숲. 곧이어 인형들이 등장했다.
좋다. 정말 좋다.
이번에도 난 이를 드러내며 달려든다.
목표는 선두에 선 저놈.
단숨에 도약해 두 동강 내는데.
그 순간.
“응?”
이상한데?
머리를 갸웃거리며 다음 놈의 허리를 쪼갰다.
역시 이상하다?
손끝에 걸리는 감각이 미묘하게 비틀렸다.
일부러 틈을 보였다.
환장하며 달려드는 인형들,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들이 내 몸을 강타하고.
밀려드는 고통 속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분명히 고통은 고통인데, 뭔가 감각이 빗나간다.
내 오랜 경험상, 이런 경우는 하나다.
“환영이잖아?”
일말의 의심이라도 가진다면 지금 밀려드는 고통이 순식간에 ‘진실’이 되는, 꽤 수준 높은 환영 마법.
반대로 ‘거짓’으로 확신하면 환영은 절대 실제가 될 수 없으니.
날뛰던 호흡을 정리한다.
“후우…….”
어느 순간부터 인형들의 공격이 내 몸을 통과해 갔다. 나는 어지럽게 들러붙는 인형들을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내가 아무리 전투를 좋아해도 환영에 주먹질을 할 정도로 무식하지는 않다.
그건 그렇고, 이건 이거 나름대로 재미있다.
구현율이나, 동화율이나, 보면 볼수록 잘 짜인 환영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환영 마법, 절대 입학시험에서 나올 수준은 아니란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주목받은 모양이네.”
위그드라실이라 했던가, 그 양반의 눈에 띈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이 읽힌 것일까.
순간 천지가 개벽했다.
밟고 있던 땅이 뒤집힌다. 세상이 반전하며 등장한 건 바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그 바다가 맞다. 망망대해 한복판에 내가 서 있었다.
찰랑찰랑 물결치는 수표면 위를 밟고 있는 나의 발.
투명한 바다 아래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역시나 이것도 ‘진실’이라 의심하는 순간 환영은 실제가 되고 난 당장 수중으로 곤두박질칠 거다.
“거참, 적당히 합시다. 좀.”
초면에 선 넘으시네.
그렇다고 손 놓고 당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마침 보여 주고 싶은 것도 있고.
내가 말한 적 있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마나 홀이 부서진 마법사들에 대해.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거나, 혹은 전투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법사들이 과연 순순히 마법을 포기할 수 있을까?
장담할게. 그런 경우는 없다.
마법사가 마법을 포기하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다.
마법이 만든 기적을 경험한 이라면 절대 이 기적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마법은 마약과도 같거든.”
내 손에 세 알의 마석이 들려 있다. 마나가 모조리 방전되어 돌멩이랑 전혀 다를 바 없는 이 마석들. 오늘 하루 종일 만지작거려 ‘나’가 각인된 마석들이.
마나 허무증이란 거인의 천형을 극복할 열쇠였다.
“깨어나라.”
마석에 빛이 일렁인다. 텅 빈 마석에 마나가 밀려들며 마석들이 떠오른다.
허공에서 유영하는 세 알의 마석.
순간 환영뿐이던 내 시야가 반전됐다. 점과 섬으로 이뤄진 은하의 세계.
마나의 공간이었다.
“이로써 접촉은 끝.”
시작해 보자.
목표는 환영 마법.
오랜만에 느낀 마나가 반갑다며 인사한다.
내가 할 일은 이 마나의 언어 속에서 환영을 찾으면 된다.
‘찾았다.’
여기 있네.
배치도 구성도 촘촘하다. 아마 웬만한 이들은 손도 못 대리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기, 지구의 기준이고.
마왕이었던 내게는.
“손쉬운 일이지.”
추적한다.
역설계한다.
마법을 마나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비록 호두만 한 마석 세 알로 구성한 한 줌의 ‘마나 홀’이지만 공명만 잘하면 이렇게…….
“파훼할 수 있죠.”
바다 한가운데 생겨난 틈.
겨우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있는 그 틈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다.
그래도 실망 마라.
이건 겨우 첫걸음일 뿐이니까.
걸음을 내딛는 순간.
세상이 다시 반전하더니.
눈앞에 있는 건.
나무.
시험 시작 전에 봤던 나무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
세계수가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게 네 본체야?”
내 물음에 대한 답이 뒤에서 들려온다.
“네, 그렇습니다. 이게 저의 본체, 위그드라실의 진체입니다.”
월계관을 쓴 여인이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박기혁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