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3화>
이 몸에 대한 단서는 크게 3가지다.
1. 불가사의한 감각.
2. 압도적이라는 표현도 모자란 육체.
그리고 마지막.
3. 마나 허무증.
모든 마나가 차단되는 희귀병.
대체 연관도 없어 보이는 이 세 가지가 가리키는 비밀은 무엇일까.
“첫 번째, 불가사의한 감각.”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머릿속은 이미 온갖 감각들의 전쟁터였다.
청각은 의사의 외침, 다급했던 간호사의 숨소리, 후각은 누군가가 마셨을 법한 술 냄새, 간호사의 샴푸 향기, 수술실의 알코올 냄새.
촉각은 타인의 숨결마저 느껴졌으며 내리쬐는 수술대의 조명에 발달된 시각이 한순간 마비되기도 했다.
남은 미각은? 그 맛대가리 없던 입원실 미음에서도 탄수화물의 단맛을 찾을 만큼 탁월했다.
솔직히 말하면 만약 이 몸에 깃든 게 마왕이었던 내가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미쳐도 벌써 미쳤을걸.
휘몰아치는 감각의 격류에 매몰되어 나도 몇 번이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으니까.
이처럼 시각에서부터 미각까지, 내 감각은 불가사의했다.
지금도 봐라. 저기 사랑을 소곤대는 연인이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과음한 샐러리맨들, 마나가 없음에도 전방 50미터 이내에 존재가 모두 감지됐다.
이는 전생의 나도 마나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마 검성 녀석이 살아와도 맨몸으로는 불가능할걸.
전직 마왕으로써 단언컨대, 이건 절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각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압도적이란 표현도 아까운 육체.”
이 또한 몸소 증명했다. 알아본 바 이 몸이 의식 불명으로 누워 있던 시간이 반년이다.
근육은 말라비틀어졌고, 피부는 얇디얇은 종이처럼 투명해졌다. 장기는 점점 퇴화되고, 몸은 생명 유지 장치에 적응해 천천히 죽어 갔다.
자그마치 반년, 난 산송장으로 지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린 지 두 달도 안 되는 시간에 난 뛰고 있다. 이 경이로운 회복력을 뭐라 표현해야 하나.
근골 또한 마찬가지다. 하루가 다르게 활성화되는 근합성, 골격근의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 등.
이 정도 육체는 비교 대상을 인간에서 찾기보다는 트롤 혹은 오우거 같은 몬스터에서 찾아야 될 정도였다.
다시 말해 감각처럼 육체도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서이자, 가장 결정적인 단서.
“마나 허무증.”
마나는 세계의 에너지다.
즉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는 마나가 깃든다는 것이다.
저기 한창 짖고 있는 개나, 전봇대 위에서 바람을 즐기는 참새 같은 동물을 포함해, 흐드러지게 솟아오른 잡초. 심지어 지금 내가 앉아 있는 벤치조차도 마나가 깃들어 있다.
왜냐하면 세계의 에너지니까. 이것들은 이 세계에 실존하는 존재들이니까.
이렇게 생물, 무생물 상관없이 모두 가지고 있는 마나가.
나는 없다.
분명히 마나는 세계의 에너지인데, 세계에 살고 있는 난 없다.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마나가 깃들어야 하는데, 이 세계를 밟고, 뛰고, 숨 쉬고 있는 내가 마나가 없다.
마치 홀로 세계의 질서에서 벗어난 것처럼.
나만 마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난.
‘이런 존재를 알고 있지.’
신을 제외한다면 세계의 질서에서 벗어난 존재는 단둘뿐이다.
“하나는 드래곤.”
마법의 지배자. 드래곤(Dragon).
마법의 지배자라는 수식어답게 그들은 살아 있는 마법 그 자체.
자연에서 마나로 숨 쉬고, 의지만으로 마나를 진동시킨다. 식도 필요 없다. 영창도 필요 없다. 흔한 배열조차 필요 없다. 그들에게 마법은 언어에 불과했으니까.
용언(龍言)
세계의 질서를 벗어난 힘.
이 용언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우리가 아는 마법이다.
‘그래서 마법의 정의가 ‘세계가 허락한 힘’이지. 질서 안에서의 힘이니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용은 태초의 시대에 살았던 용을 말한다. 현재의 용…… 아, 지금은 전생이라 해야 하나, 전생에 나를 포함한 원정대가 처치한 용은 이 정도로 신화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브레스를 사용함에도 용언을 잃어버린.
우리와 같은 필멸자인 반편이 용이었다.
그런 반편이 놈한테도 원정대가 몰살당했으니, 태초의 용이 얼마나 고강했는지 상상이나 되는가.
하지만 내가 용일 가능성은 0이다. 용이 마나가 없을 리 없지 않나. 걔들은 날 때부터, 하다못해 알 껍질조차도 막대한 마나 덩어리로 구성된 놈들이다.
마나가 한 방울도 없는 난 해당 사항이 없단 말이지.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인데.
어쩌면 이제부터 본론이다.
세계의 질서를 벗어난 존재는 둘뿐이다. 그중 드래곤이 제외됐으니, 하나밖에 남지 않은 셈.
이 존재라면 앞서 말한 불가사의한 감각, 압도적인 육체란 조건에도 정확히 부합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토록 신중한 이유는, 나조차도 들어만 봤지 보지 못한 존재라서 그렇다.
아니,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만약 그대가 신이 아니라면 이 존재를 실제로 봤을 리는 없다.
왜냐하면 이 녀석은 드래곤과 더불어 태초의 세계를 지배했던 절대자니까.
최초의 인간이자, 최강의 인간.
필멸자이면서도 불사자였고, 신의 피조물이었음에도 신을 꿈꿨던, 그럼으로써 신의 형벌에 멸족된 신화 속 지고의 존재.
드래곤이 마법의 지배자라면, 이쪽은 폭력의 화신.
모든 것을 죽이고 세계를 종말시켰으며.
그럼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었던 존재.
창세기의 균형자.
“거인(巨人:Giant).”
이 몸의 정체였다.
……
…
“이제 정체도 알았으니, 점검만 하면 되는데.”
마땅한 기회가 없네. 하긴 이 몸을 보고 어느 미친놈이 시비를 걸겠나, 내심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있어났습니다.
“어이, 불능자 새끼!”
이 깜찍이는 뭐지?
* * *
10분 전, 오늘도 난 헬스장에서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특히나 오늘의 종목은 하체. 진정한 남자의 멋은 바로 이 하체에서 나오는 법!
120킬로 바벨 앞에서 하늘에 기도하고는 12개 5세트를 경건한 마음으로 조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막 4세트를 시작하던 때.
“어이, 불능자 새끼!”
……불능자 새끼? 이거 아무래도 날 부르는 것 같은데?
예상대로였다. 시선이 돌아간 곳에는 짝다리를 짚은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이제야 보네. 하여튼 불능자 새끼 여전히 둔해요. 그치?”
“마나를 못 쓰면 눈치라도 빨라야지. 큭큭.”
“사실은 두 개 다 없는 거 아닐까?”
자기들끼리 뭐가 좋은지 키득대는 녀석들.
나는 생각했다.
이 깜찍이는 뭐지?
“이 깜찍이는 뭐지?”
“뭐?! 깜찍이? 이게 돌았나?”
“어, 너무 황당해서 생각이 바로 나와 버렸네. 미안해, 깜찍이.”
빼빼 마른 홀쭉이 하나에, 후덕한 뚱뚱이 하나. 마지막으로 대장으로 보이는 깜찍이.
이거 너무 상투적인 양아치 클리셰 아닌가?
내 깜찍이 멘트에 깜찍이 녀석도 당황했는지 잠깐 흠칫했지만, 꼴에 친구라고 둘이 다시 용기를 충전해 줬다.
“새끼야, 동네에 복귀를 했으면 형님한테 보고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음, 내가 기억이 별로 없어서 그러는데, 우리 아는 사이였나?”
“허?! 아는 사이? 나 몰라?? 나 연재훈을 몰라??”
“이 불능자 놈이 돌아도 제대로 돌았네. 얘 연재훈이야! 연재훈!! 네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연재훈!!”
“연화 중학교 최우수 특기생! 한국 3대 그룹 칠성 그룹 귀공자 연재훈!!”
“이뿐이야. 아카데미 조기 입하ㄱ…….”
“그만! 닥쳐!!”
얘네들 뭐지, 부끄러움이 실종됐나?
“후우. 정리 좀 하자.”
보자…… 그러니까. 대충 흘러가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저 수치를 모르는 깜찍이가 중학교 때 마나가 조금 많아서 특기생으로 뽑혔고, 그걸 내가 부러워했다. 그런데 마나 허무증으로 좌절했고 얘들이 그걸로 재미 좀 봤다는 거네?
내가 이 말만은 안 하려 했는데.
“……박기혁 이 한심한 놈아. 저딴 놈들한테 처맞고 다녀?”
“뭘 속닥거려, 불능자 새끼가. 그래도 친구라고 좋게 인사나 하러 왔더니, 이게 날 조롱해?”
“참아, 재훈아. 쟤가 뭘 알겠어. 그냥 가자.”
“그래, 아카데미 조기 입학한 너하고 저런 구데기랑 어울리는 게 말이 되냐. 겜방이나 가자.”
“아, 놔 봐. 놔 보라고.”
“야, 놔줘 봐라. 재미있네. 무슨 짓하는지 한번 보자.”
“……!!”
“재미? 이 불능자 새끼가. 야, 이 몸이 호의를 베풀었으면 감사는 못할망정. 아, 생각할수록 화나네! 야, 야, 잠깐 놔 봐. 아, 놔 보라니까.”
그렇게 홀쭉이와 뚱뚱이가 못 이기는 척 놓자, 깜찍이 녀석이 기고만장한 얼굴로 말하길 잠시.
“넌 죽었어.”
스파크가 피어난다.
지지직!
한눈에 봐도 마법이다.
그것도 파괴력만큼은 화 속성과 더불어 최고를 자랑하는 뇌 속성 마법!
“왜? 쫄았어? 늦었어, 새끼야. 지금 와서 빌어 봤자, 안 봐줄 거니까.”
뚱뚱이와 홀쭉이가 이쪽을 향해 “빨리 무릎 꿇어.”라며 잔뜩 겁준다.
그런데 어쩌나.
난 오히려 이 순간이 반가운걸.
“오……!!”
마법이다! 내 입꼬리가 귀 끝까지 올라간다.
안 그래도 점검이 필요했는데 이게 웬 떡이야!
“웃어? 이 새끼가 웃어?”
“재훈아, 가자. 능력 쓰면 안 되잖아.”
“비켜! 넌 시발 죽었어!”
“재훈아!!”
“야, 둘 다 비켜 봐.”
씨익, 내 입꼬리가 귀 끝까지 올라가고.
번개가 내리쳤다.
* * *
옵티멈 에이전트 본사.
세계 5대 에이전트라는 명성에 걸맞은 마천루의 최정상. 이곳이 제국 옵티멈의 대표, 김연희가 자리한 곳이었다.
대표실 한쪽에 마련된 대형 화면으로 영상이 송출되고, 김연희는 말없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영상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파지지직! 파직!
“죽어! 죽으라고!!”
파지지직!!
카메라가 번쩍일 정도로 고전압의 번개가 내려쳤다.
정확히 그녀의 아들을 겨냥해서.
차마 보기 힘든 장면임에도 눈을 돌리지 않는 김연희.
오히려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영상에 집중했다.
그때.
똑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비서실장.
김연희가 화면에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묻는다.
“일은요.”
“칠성 그룹 법무팀과 이야기 끝났습니다. 저쪽도 저희처럼 일이 크게 번지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뿐인가요?”
“아닙니다. 언론도 완전히 통제하리라 밝혔습니다. 또한 이후에 박기혁 군의 신체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긴다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흐음…….”
똑똑, 똑똑.
김연희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린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의 버릇이었고 예상대로 그녀의 입에서 차가운 분노가 나오는데.
“감히, 칠성 그룹 따위가 우리를 건드렸어요. 기혁이가 한 말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주르륵.
비서실장의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 미친놈아,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그 아이를 건드려……!’
세상은 의외로 이 집안의 실체를 모른다.
이들이 진정으로 분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후우.
심호흡에 분노를 갈무리한 김연희가 입을 열었다.
“계산이 맞지 않네요. 심사숙고해서, 다시 접촉하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이고는 나갔다.
다시 혼자가 된 김연희. 그녀는 아직도 제 아들의 머리로 떨어지는 번개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그 번개를 맞으면서 웃고 있는 박기혁만 보고 있었다.
“저게 뭘까. 신기하네…….”
옵티멈 에이전트는 세계 5대 에이전트다. 당연히 대표인 김연희도 초인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을 지녔다.
그런데 이건 모르겠다. 내 아들 일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모르겠다.
“마법 저항? 아니야, 말이 안 돼.”
마법 저항이라면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달 전 아들의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연희다. 걸음조차 제대로 못 걸었던 아이에게 훈련이란 단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그렇다면 ‘마법 면역’이란 소리인데.
“설마 내 아들이 ‘타이탄’에 버금간다고?”
타이탄이라면 미국을 대표하는 히어로.
마법 완전 면역으로 사상 최강의 ‘세이프티(Safety)’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박기혁이 이 타이탄에 버금간다? 아직은 섣불리 확신하기 힘들다.
“그건 그렇고.”
이제 영상은 마지막 장면에 이른다.
“오, 오지 마.”
“이 꽉 깨물어.”
콰직!
“으아아아아아악!!”
“강해져서 돌아와라.”
“풋. 강해져서 돌아오라니.”
얘는 유머 감각이 날 닮았다니까.
잠깐 아들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었던 김연희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연재훈의 다리를 부순 일격. 흠잡을 데 없는 일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김연희가 궁금한 건 아들의 타격 스킬이 아니다.
연재훈.
칠성 그룹 차남.
에이전트 사업에 기웃거리는 칠성 그룹답게, 둘째에게 사활을 걸다시피 지원을 쏟아부었다. 덕분에 나이에 맞지 않은 마나를 소유했고 중학교 때는 특기생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렇듯 어렸을 때부터 영재 교육을 받은 연재훈이 마나로 몸을 보호하는 법을 몰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그런데 그런 연재훈의 다리를 깨끗하게 부쉈어.”
마나 한 방울 없는 우리 기혁이가.
이에 에이전트 내 실력자들에게 자문을 구해 봤지만 아무도 답을 명쾌한 답을 내려 주지 못했다.
그나마 제일 그럴싸한 답이라면.
“순수한 힘이 마나를 상회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툭툭, 툭툭…….
김연희가 손가락을 두드린다.
“기혁아, 이게 너의 답이니?”
그녀의 걱정 어린 눈동자에 웃고 있는 박기혁이 맺혀 있었다.
다음 날, 한국 아카데미로 입학 신청서가 접수된다.
이름 칸에 써 있는 세 글자.
박기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