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2화 (2/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2화>

“야, 야, 특종! 특종!!”

동료의 호들갑에 한창 밥을 먹던 간호사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놀라지 마! 3호 병실 환자 말이야. 그 며칠 전에 깬 환자. 기억 상실증이래!”

“헐. 미쳤다.”

“대박! 대박 사건!”

“그치? 장난 아니지?”

모두가 경악하던 때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선배를 향한다.

“선배님, 3호 병실이라면 VIP 병실이잖아요. 거기 누가 있는데 그래요?”

“응? 너 몰라? 거기 환자 박기혁이잖아. 옵티멈 에이전트 대표 아들, 검호 가문 막내!”

“아!! 마나 허무증!! 거기 환자가 그 환자였어요?!”

마나를 못 받아들이는 희귀병.

세계 최초로 발견된 케이스라 한때 떠들썩했다. 더군다나 확진자는 그 유명한 옵티멈 에이전트 대표의 아들이자 검호 가문의 막내.

천재의 몰락이다 뭐다 해서 한동안 한국이 떠들썩했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그런데 선배, 마나 허무증으로 입원했으면 제가 모를 리 없을 텐데요.”

“미연이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3호 환자 마나 허무증으로 입원한 거 아니야.”

“그럼요?”

“놀라지 마라.”

선배가 뜸을 들이더니.

“마석을 삼켰대!”

“……마석을.”

“삼켰지!”

“생으로요?”

“완전 생짜로!”

“말도 안 돼엣!!”

마석은 몬스터에게서 추출된다.

때문에 가공하지 않은 마석은 몬스터 특유의 광기(狂氣)를 비롯해 다양한 기운으로 오염돼 있었고, 인간이 이를 사용하려면 정화 및 가공은 필수였다.

“더 어이없는 건, 한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섭취했다는 거야. 어떻게 됐겠어. 뻥!! 터진 거야. 3호실 입원할 때 의식 불명이었을 걸 아마.”

“왜요? 대체 왜 그런 미련한 짓을…….”

“왜긴 왜야. 마나 허무증 치료될까 싶어서 아니겠어.”

“그러고 보면 걔도 딱해. 어릴 때는 아빠와 형을 뛰어넘을 천재라 하지 않았나.”

“한동안 역대급 신동이 태어났다고 추켜세웠지. 신의 실수로 만들어진 육체라면서.”

“아? 기억나요! 그때 아주 언론에 대서특필됐잖아요. 그러고 보면 언론은 믿을 게 못 되는 것 같아요.”

“맞아. 맞아.”

“꼭 그런 것만은 아닐걸.”

“……?!”

“……??”

동료의 수다에도 묵묵히 밥을 먹던 간호사가 말을 잇는다.

“3호 환자, 봤어? 엄청 크다. 인간 아닌 것처럼 커.”

“그, 그 정도예요, 선배?”

“엉, 대충 봐도 2미터는 넘겠더라. 거기다가 비율은 또 얼마나 좋고. 삐쩍 곯았는데도 무슨 모델 같더라. 초인처럼 위험한 거 하지 말고 모델 했으면 벌써 성공했을걸. 정말 신이 실수한 몸이었어.”

“와…….”

“나도 보고 싶다.”

“그 뿐인 줄 알아. 3호 환자, 벌써 걷는다더라.”

“……?!”

“……네?”

“에이, 농담이죠? 선배, 박기혁 환자 의식 불명으로 6개월간 누워만 있었어요. 그런데 일주일 만에 걷는다고요?”

“믿기지 않지? 나도 믿기지 않아. 그런데 어쩌겠어. 진실인데. 먼저 간다.”

“선배! 선배에!”

“같이 가요, 선배!!”

*   *   *

“움직여 보세요.”

박기혁이 움직인다.

“그렇죠. 조금만 더 걸어 보죠.”

박기혁이 걷는다.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조금만 보폭을 늘려 볼까요.”

박기혁이 발에 힘을 주며 걸음을 내딛는다.

키만 크고 비쩍 곯은 몸으로 보행기에 의지한 채, 겨우 걸음을 내딛는 이 몸이.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내딛는데도 땀방울이 우수수 떨어지는 이 박기혁이란 몸이.

나다.

나의 새로운 그릇이었다.

“좋았습니다. 오늘도 훌륭하시네요. 잠시 쉬죠.”

“후우, 감사합니다.”

재활 치료사가 문을 열고 나서자, 투명한 창으로 이곳을 지켜보던 여자가 치료사를 향해 걸어갔다.

내가 박기혁이라면, 반듯한 머리의 점잖게 생긴 저 여성분의 성함은 김연희.

의식이 돌아온 날, 숨이 터질 만큼 헐떡이며 달려와 나를 향해 눈물짓고, 지금껏 온갖 궂은일을 손수 해 주신 나의 어머니 되시겠다.

“아직도 어색하네.”

전혀 새로운 세계에, 듣도 보도 못한 가족이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지만 별수 있나.

걸음조차 제대로 걷지 못하는 내가 뭘 가릴 처지인가. 얌전히 보살핌당해야지. 의외로 나쁘지도 않고.

몸은 그렇다 치고 기억이라도 있으면 답답함이 덜했을 건데, 이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망령이라도 남아 있다면 기억이라도 빼냈겠지만, 이 몸의 주인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내가 몸을 차지했을 때는 완전히 무(無)로 돌아간 뒤였고, 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어머니를 맞이해야만 했다.

그래도 말이야. 내가 센스가 있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어머니를 향해 “누구세요?”라고 말할 뻔했다.

그렇게 멍청하게 닥치고 있으니, 의사들이 알아서 ‘기억 상실증입니다.’라고 좋은 구실을 만들어 주지 않나.

역시 모르면 닥치는 게 최고야.

영감 말은 틀린 게 없다니까.

의외인 건 김연희…… 아니 아니, 어머니의 반응.

아들이 기억을 잃었다는데 오히려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시더라.

그러며 “잘됐어, 기혁아. 안 좋은 기억 따윈 훌훌 털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 엄마가 도와줄게.” 이러지 않나.

안 좋은 기억이라…….

눈치 빠른 나는 이 대목에서 단번에 알아챘다. 원래의 몸 주인에게 뭔가 사연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박기혁은 박기혁이고 나는 나다.

사연이 있으면 어떻고 미련이 있으면 또 어떤가.

지금 이 몸의 주인은 난데.

난 알지도 못하는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낭비할 바보가 아니다. 하늘이 내려 준 기회를 잡지 못하는 병신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런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서 우물쭈물하고 앉아 있으면.”

그것만큼 쪽팔리는 일이 어디 있나.

폼 나게 살아야지, 안 그래?

난 웃으며 당차게 몸을 일으켰다.

……

우당탕탕!

“선생님! 기혁아!!”

“환자분! 괜찮으십니까!!”

“하, 하…… 저 좀 일으켜 주시겠어요.”

일단 몸부터 만들어야겠다.

*   *   *

병실로 돌아와 겨우 숨을 돌리자, 담당의가 찾아왔다.

보호자랑 이야기를 나눌 게 있다며 문밖으로 나간 두 사람.창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이 보인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두 분.

다 들린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장기로 전이된 오염된 마나는 모두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

분명히 말하는데, 듣고 싶어서 듣는 게 아니다.

그냥 처음부터 들리는 걸 어쩌라고.

정신을 차리고서 제일 처음으로 황당했던 게 이 기이할 정도로 발달된 감각이었다니까.

“……상상 이상으로 경과가 많이 좋습니다. 재활 의지도 뛰어나고요. 다만 기억에 관한 부분은…….”

“괜찮습니다.”

항상 고맙다 허리를 숙이다가도 기억 얘기만 나오면 딱 잘라 말하는 어머니.

의사도 괜한 말을 꺼냈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어머니도 참, 보는 내가 다 민망하네. 창 너머로 이쪽 눈치를 보는 의사에게 빙긋 웃어 준다. 괜찮아요, 선하게 웃는데 오히려 표정이 더 어색해졌다.

……그렇게 내 웃음이 이상한가.

“퇴원은 언제쯤 하실 생각인가요?”

“의사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글쎄요, 가급적 환자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입원해 있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흠…… 아까와는 말이 다른데요. 아까는 차트만 보면 정상인이라 해도 상관없다고.”

“아, 아!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차트랑 실제 상태는 다르니까요. 오늘도 재활 중에 발을 헛디뎠다고 그러더군요. 오래도록 의식 불명에 있던 환자분들이 가끔…….”

이야기가 길어지지만 언제나처럼 끝은 비슷하다.

경이로운 신체라며 낯 뜨거운 찬사를 뱉어 내다, 몇 가지 검사를 해도 되겠느냐는 물음.

며칠째 계속되는 패턴이었고.

이에 어머니는.

“고민해 볼게요.”

단호하게 말을 돌렸다.

그런 반응에 의사가 똥마려운 개처럼 몸을 배배 꼰다.

재미있네.

확실히 이 몸이 특이하긴 하나보다. 피 한 방울이라도 뽑으려고 저렇게 굽실거리는 것을 보면. 하긴 들어 있는 나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인데 쟤들은 얼마나 궁금하겠나.

그런데 어쩌나, 내가 보기에 저거 다 헛수고다.

내 짐작대로라면 이 몸은 겨우 피 몇 방울로 꿰뚫어 볼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더라도 인간의 기술이고, 마도가 아무리 발달했더라도 인간의 마도다.

내 짐작이 맞다면…….

“이 몸은 인간의 영역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곧이어 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들 앞이라 최대한 표정을 풀려고 했지만 굳은 얼굴은 다 숨기진 못한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표정이 왜 그러세요. 또 피 뽑자고 해요?”

“아니야, 그냥 상태만 말하고 갔어. 우리 아들 많이 좋아졌다더라. 의사 선생님이 놀래시던데. 기특해, 아들.”

“어머니.”

“엄마.”

“그래요, 엄마. 저번에 뭐라 하셨어요. 우리끼리는 절대 거짓말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거짓말이란 말에 잠시 멈칫한 엄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후우…… 미안해, 아들. 네 말대로야. 의사들이 계속 검사하자고 하네.”

“까짓거 해 주시죠. 저는 괜찮은데.”

“아냐, 이건 아닌 것 같아. 남의 귀한 아들을 무슨 실험체로 보나. 말할수록 열 받네. 조용히 있으니까, 이것들이 사람 간 보는 것도 아니고.”

“워, 워, 엄마. 여기 물 드시고 진정하세요.”

단숨에 물병을 들이켠 엄마는 결심한 듯 말했다.

“아들, 아무래도 병원 옮겨야겠어.”

이에 난 고개를 마주 끄덕이며.

“그냥 퇴원하죠.”

“퇴원? 괜찮겠어.”

“슬슬 지겹기도 하고요”

“그래도 너 아직 걷는 것도…….”

“혼자 걸을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뜬금없는 퇴원 선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엄마를 향해, 나는 마냥 웃어 줬다.

이틀, 이틀 본다.

이 몸이 보행기 없이 혼자 걷는 데 걸리는 시간.

그렇게 이틀 뒤.

나는 아무런 보조 없이 내 발로 직접 병원 정문을 나서고 있었다.

*   *   *

퇴원 후에도 나의 기행은 계속됐다.

퇴원 후 3일.

동네 한 바퀴를 혼자 돈다. 도중에 구토를 하긴 했지만 완주했다.

퇴원 후 4일.

잠들어 있던 소화 기관이 제 기능을 찾으며 죽 대신 밥을 먹기 시작한다. 된장찌개 맛있더라.

퇴원 후 7일.

새벽마다 조깅을 하며 몸무게 10킬로가 붙는다. 처음보다는 볼만하지만 그럼에도 지나가는 유치원생에게 멸치라 놀림 받았다. 모욕적이다.

퇴원 후 10일.

점심 운동이 추가되며 5킬로가 추가로 불어난다. 헬스장에 나타난 나를 보며 모두 놀랐다.

물론 나쁜 쪽으로.

퇴원 후 20일.

하루 9끼, 아침, 점심, 저녁 운동이 가능해진다. 장기가 모두 정상으로 돌아가자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퇴원 후 30일째.

혼자서 걸음조차 내딛지 못하던, 굴욕적이었던 모습은 이젠 없다. 내 눈앞에 있는 건 항우의 재래(再來).

모두 나를 보며 놀란다.

물론.

좋은 쪽으로.

……

“후!”

나는 한강 산책로를 질주하는 중이다.

정면에서 느껴지는 맞바람이 기분 좋게 나를 어루만지며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만나 상쾌함을 남기고 스쳐 갔다.

벌써 1시간째 멈출 줄 모르는 질주에 자연스레 주위의 시선이 모이는데.

“와…… 진짜 크다. 저 키에, 저 비율이 말이 돼?”

“키가 보여? 쯧, 아직 뭘 모르네. 남자는 하체야, 하체! 난 허벅지밖에 안 보이는데. 저기 갈라진 거 봐라. 조각이야, 조각.”

“쟤는 지치지도 않나. 난 자전거 타는데도 지치는데.”

“헉헉. 쫓아가지도 못하겠어. 저게 말이야, 인간이야.”

그밖에도 모델이냐 배우냐를 두고 싸우는 여자들이나, 나의 중요한 분신(?)이 작을 거라는, 아무튼 작을 거라며 저주를 일삼는 무리들.

형태는 다르지만 여러모로 관심 받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하긴 말해 뭐해. 내가 봐도 눈에 띄는데.

일단 큰 키가 자연스레 눈길을 사로잡고, 이상적인 비율에 두 번 놀란다. 마지막으로 비현실적인 운동 능력에 놀라며 저마다 확신할 것이다.

내가 초인이라고.

마나를 쓰고 있다고.

마나를 사용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퍼포먼스라며.

누구는 아니면 성을 갈겠다며 호언장담하기까지 하는데, 미안하다. 성을 갈아야겠는데?

난.

현재.

한 방울의 마나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재미있네.’

오롯이 신체 능력만으로 마나로 무장한 초인과 비교되다니.

불과 20일 전만 해도 ‘멸치’, ‘좀비’, ‘허수아비’ 등과 비교된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로부터 장작 1시간을 더 달린 난,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벤치에 앉았다.

몸에서 하얀 김이 피어난다.

2시간을 전력으로 달렸으면 지칠 만도 한데, 잘게 찢어진 근육들은 저마다 아직 부족하다며, 나를 사용해 달라 아우성치는 중이다.

얘들은 대체 언제쯤 지치려나.

이젠 내가 봐도 내가 무섭다.

“한 달 만인가…….”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지 한 달.

새로운 가족이 생겼고, 알쏭달쏭한 몸에 들어선 지 딱 한 달이 지난 이 시점에.

비로소 난 확신이 든다.

“이 몸의 정체에 대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