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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화 (1/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검술 명가의 마왕님 1화>

폼 나게 살고 싶었다.

비록 부모에게 버림받은 채, 시궁창 같은 빈민가를 전전해도 난 폼 나게 살고 싶었다.

이런 날 모두가 비웃었다.

빈민가에서도 최하층인 어린놈이, 하루 종일 동냥질해도 하루 한 끼를 겨우 먹는 네가, 세상이란 먹이사슬 가장 밑바닥에 깔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너 따위가, 폼 나게 살고 싶다고? 헛소리하지 말라 했다.

나도 안다.

가당치도 않은 꿈이란 걸.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는다. 비난 속에서도 고집스럽게 꿈을 좇았다.

왜냐하면 이게 전부였으니까. 비록 모두가 비웃는 꿈이라 해도, 이 우스꽝스러운 꿈마저 사라진다면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닐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난 독하게 공부했다.

이 또한 폼 나게 살기 위해서다.

애초에 빈민이 성공할 수 있는 문은 턱없이 좁으니까.

빈민가에서 성공이라고 해 봤자, 주먹 좀 쓰다 뒷골목 건달 무리의 눈에 띄어 암흑가의 수장이 되는 게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경우다.

그다음이 군인으로 전공을 세워 출세하는 정도.

암흑가의 수장은 폼 나지 않으니 패스.

남은 건 군인인데, 전쟁에 나서기에 나의 몸뚱이는 심히 비루했다. 전공을 세우려다 전공이 될 확률이 월등히 높아 보였다.

결국 돌고 돌아 믿을 거라곤 머리 하나뿐.

여기에 내 모든 것을 걸자!

결심을 세우고 행동에 나섰다.

동냥질한 돈으로 책을 사고, 가끔은 상납금을 빼돌리면서까지 책을 샀다.

구역장의 발길질이 뒤따랐지만 품속의 책을 보고 웃을 수 있었다. 먹을 것도 아까워 곰팡이가 잔뜩 핀 흑빵을 녹여 먹으며 어떻게든 배움을 갈구했던 나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렸던 나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이게 마지막 동아줄이라고, 이 비참한 인생에서 벗어나 폼 나게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룰 유일한 길이란 것을 말이다.

그렇게 절박하게 놓지 않은 배움은 끝내 보답받는다.

우연히 읽은 마법서, 아니, 마법서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흔한 기초 교재로 마나를 느낀 것이다.

마법(魔法)

하늘이 내게 준 단 하나의 재능이었다.

현실에 안주했더라면, 꿈을 잃었더라면.

난 내 본래의 재능을 구경도 못 한 채 빈민가의 거렁뱅이1 혹은 소매치기3으로 생을 마감했으리라.

이때부터였을 거다.

폼 나게 살겠다.

이 우습다면 우스운 꿈이 어느 정도 실체를 가지게 된 것이.

이후로 내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어느 학자가 말하길 행운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던데, 내가 이 경우였다. 이제껏 그토록 원했음에도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던 행운이란 놈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

그리고 이 행운 중 가장 큰 행운이라면 나의 스승, 영감탱이를 만난 것일 거다.

마탑의 수장인 영감의 제자가 되며, 자연스럽게 난 칠흑 마탑의 대공자가 됐다.

불과 며칠 전까지 빈민가를 굴러다니던 흔한 빈민에서 제국 7마탑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칠흑 마탑의 대공자까지.

이야말로 인생 역전 아닌가?

드디어 지긋지긋한 절망 탈출! 행복 시작!!

그토록 꿈꾸던 폼 나는 삶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착각이었다.

아주 큰 오산이었지.

폼 나는 삶?

개뿔! 빌어먹을 영감탱이는 나를 한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뭐라더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말하며 나를 들들 볶았다.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영감 말대로라면 황제는? 쓸데없이 정벌 전쟁 일으켜서 서부를 아작 내 놓은 황제 자식은 왜 책임을 안 지는데?

억울했다.

이제야 폼 나게 사나 싶었는데.

고오급 식당에서 교양 있게 포도주란 것도 마시고, 공원에서 친구들과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고, 차갑지만 나한테만큼은 따뜻한 여자 친구도 사귈 줄 알았는데!

내가 있는 이곳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실험실에, 고오급 식당은커녕 삼시세끼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약물들을 주둥이에 넣으며, 속내를 터놓을 친구들 대신 진짜 속(?)을 훤히 드러낸 시체들과 부대껴야 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여자 친구를 운운하는 똘추는 없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실험실에서의 축축한 20년을 보내고 나왔을 때.

세상은 날 일인군단(一人軍團).

마왕(魔王)이라 불렀다.

그래, 드디어!

드디어 내게도 폼 나는 삶이 찾아온 것이다!!

……

“……는 개뿔.”

쿨럭.

기침에 피가 흘러내린다.

계속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흘러내리는 핏물을 따라 아래를 보자, 인간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 틀렸네.”

틀렸다. 이건 천신 할아버지가 와도 못 살린다.

다가온 죽음을 느끼고 체념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영감 말이 틀린 게 없다. 포기하면 편하다더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네.

하긴 시작부터 웃기긴 했다.

마왕이란 놈이 성녀의 꼬드김에 넘어가 악룡을 잡겠다고 함께한 것부터가 난센스였다.

뭐, 선택에 후회는 없다.

폼 났으니까.

폼생폼사인 내가 이런 빅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어림도 없지.

그렇게 난 세상을 구원할 원정대에 함께하게 된다.

세상을 도탄에 빠트린 악룡 타일루스를 멸하자!

원정대는 깃발을 앞세우며 악룡의 레어로 진격했다.

힘겨운 여정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희생으로 이어진 길.

뜻을 달랐지만 끝은 같았다. 미래를 위해, 다음을 위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내던져 길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 피의 카펫을 지르밟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의 바람대로 악룡 타일루스를 멸하기에 이른다.

보이나, 저기 굴러다니는 녀석의 대가리. 저거 내가 자른 거다.

그래, 우리의 원정은 멋지게 성공한 것이다.

“흐흐…… 상처뿐인 성공이라도 실패보단 폼 나지. 쿨럭.”

원정은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었다.

제국 제1검이라 불리던 검성은 두 동강이 났고, 용병왕은 원정 내내 입이 부르트도록 자랑하던 도끼질을 실컷 보여 주는 것까진 좋았으나 끝내 산화했다.

엘프족 대표인 세계수의 수호자도 제법 활약했다. 300살이란 나이는 헛먹지 않았던지, 마지막까지 악룡을 괴롭혔다. 과연 늙은 생강은 맵더라.

다만 나이가 나이니만큼 체력이 딸렸고, 전투 막바지에 곤죽이 돼서 저기 잠들어 계시다.

또 나이 하면 꿀리지 않는 드워프 어르신도 잘 싸웠다. 워낙 짧으셔서 제일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내 우려를 비웃듯 펄펄 날아다니시더라.

그래도 결국 마지막 일격을 피하지 못했던 것은 똑같았다. 저기 사이좋게 누워계시네.

술 좋아하는 어르신이라 마지막 가는 길 술 한잔 올려 주고 싶은데 미안하게 됐다.

잠시만 기다려. 곧 따라갈 테니까.

그 옆으로 야만족 쌍둥이, 그 옆에는 제국 1기사단, 또 그 옆으로 7마탑의 대표들.

모조리 죽어 있었다.

이 땅에 사는 모두의 찬사를 받던 원정대가 저기에 신원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다.

그래, 악룡을 물리치며 영광을 누려야 할 원정대는.

모두 죽어 버린 것이…….

“으으.”

취소. 저기 한 명 있네.

시체들 사이에서 부스스 일어서는 여자.

세계의 사랑을 받는다는 성녀였다.

그런데 깔끔쟁이가 꼴이 말이 아니다. 왼팔은 어디 놔뒀는지 보이지 않고,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얼굴은 반쪽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팔은 어쩔 수 없지만 얼굴은 조금 안타깝네.

몸을 일으킨 성녀도 방금 전 나랑 비슷한 감상을 느꼈는지, 절망에 찬 눈으로 주위를 바라본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고.

“여, 쿨럭.”

“아아…….”

성녀가 반가운 얼굴로 달려왔다.

“살아 계셨군요.”

“응, 잠깐이지만.”

씩, 웃으며 눈으로 밑을 가리킨다.

성녀는 생명을 다루는 만큼, 죽음을 다루는 나만큼이나 치료에 빠삭하다. 당연히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겠지.

그 증거로 저 표정 봐라. 당장이라도 울 것 같지 않나.

“……희망을 잃지 마세요. 당신이라면, 마왕, 당신이라면 살 수 있어요.”

“퍽이나 가능하겠다. 쿨럭, 거짓말할 거면 표정 관리나 하고 해. 쿨럭!”

피식 웃는데, 오히려 저쪽은 눈물이 터졌다.

정말 끔찍할 정도로 거짓말을 못 하는 여자다.

그러고 보면 이 여자랑 참 많이 싸웠더랬다.

성녀와 마왕

딱 봐도 각이 나오지 않나. 우리는 앙숙이었다.

녀석은 나를 보며 예의와 도덕을 모르는 구제불능 짐승이라 욕했고, 나는 녀석을 보며 융통성은 개나 줘 버린 현실 감각 없는 멍청이라 답해 줬다.

백옥 같던 볼이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한 모습은 꽤 귀여웠지.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정이라더니, 영감, 당신은 늘 옳구나.

이 여자랑 미운 정이라도 들었는지, 마지막 가는 길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저 반쯤 녹아 버린 얼굴만 어떻게 하면 좋겠는데. 얘가 성격이 좀 꼬장꼬장해서 그렇지 미모는 딱 내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마침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야, 쿨럭. 조금만 치료해 봐. 쿨럭! 말이 안 나와.”

“자, 잠시만요.”

성력이 들어서자, 한결 낫다.

물론 반대되는 기운이라 속이 메스껍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지, 나는 씨익 웃으며 하고 싶을 말을 했다.

“저기, 저놈 가슴팍 가르면 드래곤 하트 있을 거야. 그거 빼서 치료하면 손은 무리라도 얼굴은 어찌할 수 있을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해요?”

“그럼 뭐가 중요한데.”

“후우, 당신은 정말 마지막까지…….”

내가 장난스럽게 웃자, 성녀도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 웃어. 보기 좋잖아. 갈 놈은 가는 거야.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괜히 우리한테 속죄한답시고 드래곤 하트 모셔 두지 말고, 빨리 써라. 내가 대표해서 허락하마.”

“하지만…….”

“아, 그리고 저거, 네가 안 쓰면 망할 황제 놈이 틀림없이 탐낼걸. 그 꼴 보고 싶어?”

“절대 안 되죠. 꼭 쓸게요.”

“좋아, 간만에 마음이 맞았구만.”

참 잘했다고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쓰다듬어 줄 팔이 없다.

이제 시간이 됐나 보다.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시야가 희미해지고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려 한다.

정말 갈 시간이다.

그래서인가, 마지막으로 확인받고 싶다.

“성녀야.”

“네, 말씀하세요.”

“나…… 폼 나게 살았냐.”

내 물음에 눈물을 흘리던 성녀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당신은 누구보다 폼 나게 살았어요. 제가 보증할게요. 아니, 이 세상의 누구도 당신이 제일 폼 난다고 할걸요.”

“……고맙다.”

무던히도 노력했던 삶이다.

절망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꿈이 있었으니까.

폼 나게 살고 싶었으니까.

악룡을 죽이고 세계의 내일을 비췄다.

그리고, 성녀가 이 마왕을 인정해 줬다.

이보다 폼 나는 인생이 또 있겠냐.

실로 나다운 최후였다.

마왕 아그네스 리차드. 여기서 퇴장이다.

난 그렇게 눈을 감았다.

*   *   *

환생(還生).

육체는 죽고 영혼이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개념.

인간이라면 후회는 필연적이다. 한낱 거지부터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황제조차도 삶의 마지막에서 후회한다.

그리고 이때 인간은 간절히 원한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꿈을 위해, 때로는 복수를 위해…

우리 모두 후회를 되돌릴 기회를 꿈꾼다.

이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여기! 여기!!”

“정말 눈을 떴…… 환자님, 여기 한번 보세요. 정신이 드십니까? 저 보이세요?”

꿈뻑꿈뻑.

환한 불빛, 거추장스러운 기구.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

환생.

아무래도 내가 이 기회를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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