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36)
왕울이에게 동물적 감각을 최대치로 넓히라 이르고는 자리를 이동했다.
“꽤 멀리 왔구나?”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최고의 경계 상태로 이동하는 터라 시간은 더욱더 오래 걸렸다.
무사히 장소에 도착했다.
발키리들의 시체는 없었다.
싸움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저깄다.”
린이 말했던 진 발키리의 검이 눈에 들어왔다.
검을 회수하고는 다시금 자리를 이동했다.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다.
자리를 잡고, 진 발키리의 검을 천천히 확인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외형이었다.
“호오!”
검집은 진 발키리가 입고 있던 갑옷처럼 고급스러운 은빛과 시원한 파란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진 발키리의 검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검의 가드 부분에는 발키리의 상징인 한 쌍의 날개가 장식되어 있었다.
농담이지만, 그대로 두면 날개를 펄럭여 날아갈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손잡이 역시, 은빛과 파란색의 조화가 이어졌다.
마름모꼴로 마감된 손잡이 끝도 이름 모를 파란색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외형을 모두 훑어보고는 검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이 좋았다.
작은 탄성과 함께 검을 뽑았다.
스르릉….
부드럽게 검이 뽑혀 나왔다.
장인의 손길이 물씬 느껴지는 듯했다.
여전히 시뻘건 하늘의 미약한 빛에도 은빛의 검날이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와우, 장난 아닌데?”
늘씬하게 뻗은 검 날의 영롱한 자태에 다시금 탄성을 뱉어 냈다.
별다른 검증 없이도 굉장히 좋고, 값도 좀 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한 번….”
작게 말을 흘리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손에 들린 검을 의식하며 최대한 집중했다.
지직거리는 느낌과 함께 머릿속으로 뭔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머릿속을 장식한 연속된 물음표에 눈을 떴다.
손에 들린 검을 내려다보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쩝… 역시 안 되는구만.”
진 발키리의 검을 린에게 넘겼다.
“린, 감정 좀 부탁해.”
“네, 주인님.”
내게서 검을 받아든 린이 이내 눈을 감았다.
집중하는 표정에서 이따금 나오는 미간과 눈썹의 꿈틀거림이 귀여워 보였다.
잠시 후, 린이 눈을 떴다.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어서 말해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린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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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영광의 검(진 발키리 전용)
타입: 검
등급: A
공격력: 100
오딘이 진 발키리에게 하사하는 영예로운 검.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추가 옵션
B: 스킬 '웨폰 브레이커' 확률 5% 상승.
A: 스킬 '웨폰 브레이커' 확률 10%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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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진 발키리의 검이 맞았다.
공격력은 무려 100이나 된다.
몇 년간 줄곧 사용하면서 불만 하나 없던 아수라 스워드의 공격력이 30인 것을 생각한다면, 그냥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웨폰 브레이커?’
추가 옵션 부분에서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스킬의 이름을 봐서는 대충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는데, 도통 쓸모가 없는 까닭이었다.
나에게는 웨폰 브레이커라는 스킬이 없었으니까.
‘설마, 검을 들면 스킬이 생기는 건가?’
바로 시도해 봤다.
전혀 반응이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다가 리나를 불렀다.
“리나야.”
“네!”
“웨폰 브레이커라고 알아?”
“네, 알고 있어요.”
“아, 그래? 뭔데?”
“음… 중급 검술에서 배울 수 있는 스킬이에요. 상대가 들고 있는 무기를 부수거나 날려 버리는 등 무용지물로 만들어요.”
웨폰 브레이커라는 스킬의 이름만으로 내가 생각했던 것은 단순히 상대의 무기를 부순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리나의 얘기를 들어 보니 그 범위가 좀 더 넓은 듯했다.
뭐, 그건 지금 딱히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일단은 패스.
“중급 검술이라… 넌 아직 초급이지?”
“네….”
“언제쯤 배울 수 있지?”
“스무 살… 성인이 되어서요. 초급 검술을 전부 익혀야 하지만요.”
“흠… 그럼, 고급은?”
“고급 검술은 아무나 배울 수 없어요.”
“그럼?”
“진 발키리에 올라야만 배울 수 있어요. 역시나 중급 검술을 완전히 익힌 다음에 가능해요.”
리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말해 순차적으로 배워야 하며, 그냥 발키리는 중급까지고, 진 발키리만이 고급 검술을 익힐 수 있다는 소리였다.
내 반응을 살피던 리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도 들은 소문이기는 한데요….”
“응? 뭔데?”
“진 발키리가 되어 고급 검술을 모두 익히면, ‘소드 마스터’의 비기를 익힐 수 있다고 했어요.”
“소드 마스터? 와우….”
“음… 익힌다기보다는 도전이라고 해야 하나?”
“…?”
“고급 검술을 완벽하게 익혀 어느 경지에 오르게 되면, 소드 마스터의 자리에 오를 기회가 열리고, 그것을 통과하면 검을 다루는 이의 최고봉이 된다는 그런 얘기에요.”
“그렇구나….”
“확실치는 않아요. 저도 오며 가며 들은 얘기라서요.”
리나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크게 상관은 없었다.
아직 그때를 바라보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었으니까.
때가 되어, 그 얘기가 사실이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고, 아니어도 이미 충분히 강한 상태가 아닐까?
“그래,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든가, 생각해 볼 일이고… 일단, 이것부터 받아 봐!”
진 발키리의 검… 영광의 검을 리나에게 내밀었다.
리나가 나와 영광의 검을 번갈아 쳐다보며 머뭇거렸다.
“뭐 하고 있어? 얼른 받아 봐!”
“그게….”
리나가 계속 쭈뼛거리며 머뭇거림을 이어 갔다.
답답함에 다그치려다가 잠시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리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아직 이 검을 받을 수준이 못 돼요. 죄송합니다.”
말이 좀 이상하게 들렸다.
검을 처음 접하는 것도 아닌데, 수준을 운운하며 받기를 거부하다니 말이다.
해서, 핀잔을 섞어 말했다.
“여기서 수준을 왜 따지니? 그냥 사용하면 되지.”
그에 더욱더 주눅이 들어 고개를 푹 숙인 리나가 간신히 대답했다.
“그게 검을 받기가 두, 두려워요. 죄, 죄송해요. 흑… 흑흑….”
리나가 또 울먹거렸다.
누가 보면 내가 검을 강매하거나 억지로 떠맡겨서 애를 울린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었다.
난감함에 씁쓸해지는 입맛을 다시고는 앞으로 내밀었던 검을 거둬들였다.
“야야, 뚝 그치지 못해? 알았어, 안 줄 거야! 그러니 그만 울어.”
“네, 네… 흑흑….”
“으이그! 울 일도 참 없나 보네… 너, 나중에 가서 달라고 하면, 오늘 일 가지고 내가 겁나게 놀려 줄 거야! 얼레리 꼴레리, 울었으면서, 겁냈으면서, 하고 말이야! 알았어?”
분위기를 바꾸고, 리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농담까지 했다.
다행히 그것이 먹혀들었다.
“네… 히히! 훌쩍! 히히!”
콧물을 훔치고, 애써 웃으려 노력하는 리나에게 한 번 더 농담을 던졌다.
“너 말이다, 이제 큰일 났다.”
“네? 왜, 왜요? 훌쩍….”
“옛말에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이 난다는 말이 있거든. 너 지금 울다가 웃다가 아주 난리 났어. 이제 어쩌냐? 흐미….”
“헉! 지, 진짜요?”
리나가 진심으로 내 말을 믿었는지, 무진장 심각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조금 더 놀려 줄 생각으로 키득거리는데, 옆에 있던 린을 향해 리나가 도움을 요청했다.
“언니, 진짜예요? 울다가 웃으면… 그래요?”
평소에 진중한 린이 어찌 대응하나 기대가 됐다.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좋았겠지만, 나름 진중한 린의 표정이 일말의 기대감을 들게 했다.
역시나 내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응, 사실이야.”
“헉! 지, 진짜요? 아앙, 나 어떡해….”
린의 진지한 거짓말에 완벽히 속아 넘어간 리나가 끝내는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쯤에서 놀리는 것을 그만두자는 마음에 마무리를 하려는데, 린이 먼저 나섰다.
“처음엔 나도 주인님이 농담하시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진짜더라고….”
엥?
내가 린한테도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있었던 것도 같고….
그나저나 린은 왜 여전히 진지하게 말하는 걸까?
누가 들으면 진짜 그런 줄 알 것만 같게 말이다.
“그래도 괜찮아…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고, 이따금 길어졌다 싶을 때, 그냥 뽑아내면 되거든. 별로 아프지는 않아.”
평소와 다르게 끝까지 리나를 놀려 대는… 그래서인지, 어째 진심이 아닐까 싶게 느껴지는 린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해 버렸다.
‘에이, 설마… 에이, 아니겠지… 흐음….’
그냥 넘기기에는 분위기나 상황이 확실하게 애매했다.
그에, 한동안은 뇌리에 박혀 미칠 듯한 궁금증을 자아냈고, 린의 엉덩이만 봐도 엉뚱한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고생 아닌 고생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결코, 진실을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에이, 그럴 리가… 킁!”
* * *
던전 마을을 향해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오버라고 여겼지만, 상황을 좀 살피는 것도 좋을 듯해 내린 결정이었다.
“왕울!”
동물적 감각을 최대한 넓힌 채 앞서 걷는 왕울이를 불렀다.
녀석이 걸음을 멈추고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많게는 열 걸음, 적게는 서너 걸음마다 이어지는 짓이었다.
꽤 마을과 가까운 거리까지 왔지만, 다행히 아무런 기척이나 반응이 잡히지 않고 있었다.
‘뭐지?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설마, 끝난 건가?’
기척이나 반응 없이 이만큼이나 조용하다는 것은 뭔가 마무리가 됐거나 상황이 끝났다는 의미였다.
그게 좋은 쪽일지 나쁜 쪽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조심은 해야 해.’
한층 더 경계심을 높이고는 조금 더 마을을 향해 다가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더 거리를 좁혔을 때였다.
“…!”
앞서가던 왕울이가 걸음을 멈췄다.
나와 다른 녀석들도 얼음이 된 듯 곧장 멈춰 섰다.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들이마신 숨도 뱉어 내지 못하고, 자세도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낮춘 상태였다.
“왜 그래? 뭐가 잡혀?”
속삭이듯 물었다.
곁에 바짝 붙어 있는 린에게도 겨우 들릴까 말까 한 크기였다.
하지만, 후각만큼이나 발달한 왕울이의 청력이었기에 곧장 반응이 날아왔다.
끄덕끄덕….
녀석의 반응에 다시금 조용히 속삭였다.
“너희는 여기서 대기!”
신중한 내 명령에 다들 대답 대신에 고개만 끄덕였다.
한껏 낮춘 자세를 유지한 채, 왕울이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이어, 동물적 감각을 최대한 넓히며 왕울이가 감지한 것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런 기척도 찾을 수가 없었다.
녀석과 내 동물적 감각의 범위와 감도가 꽤 큰 격차를 보인 까닭이었다.
“조금 더 다가가도 될까?”
내 물음에 왕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먼저 앞으로 나섰다.
적당한… 안전하다고 여긴 거리까지 가서야 멈춰 섰다.
빠르게 왕울이 곁으로 다가갔다.
그제야 내 동물적 감각에도 기척들이 잡혔다.
“헉!”
기척이 잡힌 순간,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놀라 버렸다.
미친 듯이 흔들리는 파장과 기척 때문이었다.
열이 넘을 것처럼 많은 수에 빠르기도 장난이 아니었다.
난잡함… 눈으로 볼 수 없기에 더욱더 정신이 혼란스러워졌다.
“안 되겠다, 돌아가자!”
바로 후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 봐도 뻔한 아비규환에 일부러 빠질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
빠르게 이동해 발키리들과 싸웠던 곳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에는 숲의 안쪽으로 향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그토록 가면 안 된다고 위험과 경고의 신호를 보냈던 바로 그곳으로 말이다.
그리고 얼마 뒤.
불길함을 열심히 고하던 경고의 신호가 말하고자 한 불운과 마주해야만 했다.
“헐….”
보통의 불운과는 차원이 달랐다.
대체 어디서 쏟아져 나온 것인지 가늠조차 안 되는 많은 수의 발키리 부대와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