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34)
말을 뱉어 냄과 동시에 지면에 닿아 있던 엉덩이를 포함, 온몸이 무거워지며 바닥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 내 몸 주위로 강력한 바람이 치솟듯 일었다.
파아아아핫!
내게 검 끝을 겨누고 있던 진 발키리가 거센 바람의 직격탄을 맞고는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내 자세를 가다듬고는 다시 달려들 태세를 갖췄다.
처억!
그러나 곧장 공격을 가할 수는 없었다.
치솟던 바람이 한곳으로 모이며 회오리바람이 되었고, 이내 더욱더 단단하게 뭉쳐지더니만, 하나의 창이 되어 나를 호위하듯 진 발키리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휘리릭!
둥둥….
내 앞의 진 발키리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그냥 발키리 둘이 가장 먼저 흠칫하며 놀라워했다.
갑자기 나타난 바람의 창을 알아본 것이 분명해 보였다.
“…?!”
이어, 몇 개의 시선들이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의 창이 대놓고 뿌려 대는 강렬한 기운을 감지한 탓이리라.
“훗!”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피식하고는 눈앞에 있는 진 발키리를 노려봤다.
진 발키리도 나를 향해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스으윽….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게 한 채,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자연스럽게 손목을 안쪽으로 굽히다가 앞에 있는 것을 쳐 내듯 손목을 빠르게 비틀었다.
오른손의 동작에 맞춰 바람의 창이 움직이다가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 나갔다.
쐐애애액!
퍼어억!
나를 노려보던 진 발키리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바람의 창이 꿰뚫고 지나간 자리였다.
진 발키리의 경악으로 가득 찬 눈빛과 표정을 잠시 감상했다.
그러다가 아직 들고 있던 오른손을 다시금 비틀었다.
진 발키리의 몸을 뚫고 나간 뒤, 저만치 떨어진 허공에 머물러 있던 바람의 창이 이내 방향을 바꾸며 또다시 맹렬한 속도로 움직였다.
쐐애애애액!
“…?!”
“…!”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넋을 놓고 있던 두 명의 발키리가 움찔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그 외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바람의 창이 먼저 발키리들을 덮쳤다.
투하아악!
퍼어어억!
먼저 바람의 창에 당한 발키리는 목이 잘렸다.
허공에 잠시 뜬 발키리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 나머지 발키리도 명을 다했다.
앞서 바람의 창에 당했던 진 발키리처럼 가슴께를 관통당하면서였다.
둥둥….
다소 끔찍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더없이 굉장하고, 놀라운 위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선보인 바람의 창이 유유한 자태를 뽐내며 허공에 떠 있었다.
마치, 나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스으윽….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얼마간의 거리 차를 두고서 놀라운 광경에 잠시 소강상태를 이룬 두 무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훨씬 더 시선을 잡아끄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2미터의 거한과 화려함이 돋보이는 이가 속한 그룹이었다.
찌릿!
목표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어, 오른손의 손목을 빠르게 움직였다.
휙! 휙! 파앗!
내 명령을 기다리던 바람의 창이 즉시 반응했다.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허공을 가른 바람의 창이 목표로 삼은 진 발키리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쐐애애애애액….
피할 틈은 없어 보였다.
간신히 들고 있던 검으로 앞을 막아서는 게 고작이었다.
“훗! 그따위로 막히겠냐?”
가소롭다는 듯이 혼잣말을 작게 흘려 냈다.
결과는 아직인 상황이었지만, 왠지 모를 자신감과 믿음이 있었다.
직후, 바람의 창과 진 발키리의 검이 부딪쳤다.
투카아아아앙!
번쩍이는 불꽃과 함께 강렬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주변의 공기가 흔들렸고, 바로 곁에 있던 오식이도 충격파에 뒤로 반걸음쯤 밀려날 정도였다.
그만큼 엄청난 충돌이었다.
결과 또한 엄청났다.
바람의 창을 막아선 진 발키리의 양쪽 어깨가 돌아갔다.
양쪽 팔도 마찬가지였다.
얼핏 가능은 해 보이지만, 제법 괴이하고, 기이한 형태로 꺾여 있었다.
격돌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거나 꺾이고, 돌아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진 발키리가 들고 있던 검이었다.
전사에게 있어 전투 중에 검을 놓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그마저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뒤틀리고, 꺾인 손에 꼭 쥐어진 검 끝이 진 발키리의 목을 찌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목의 1/3쯤을 옆에서 베고 파고들어 간 상태였다.
부들부들….
진 발키리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어 댔다.
목에 박힌 검을 빼기 위함인지, 고통에 의한 반응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 얼른 끝장을 내 주마.’
나름의 배려심을 발휘해 고통에 차 괴로워하는 진 발키리의 숨통을 한시라도 빨리 끊어 주기로 했다.
해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움찔….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보다 훨씬 더 짙게 느껴지는 묵직함.
본능적으로 시선을 내려 오른손으로 가져갔다.
내 오른손은 축 늘어진 채 아래를 향해 있었다.
“…?”
착각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금 오른손을 들었다.
직전에 느꼈던 묵직함이 일었다.
역시나 오른손은 움찔하는 수준에서 멈추고, 축 늘어진 채, 더는 반응하지 않았다.
‘뭐지?’
진한 의문이 머릿속을 감돌았다.
뒤이어 더욱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오른손뿐만 아니라, 온몸이 묵직해졌다.
의문을 품고, 놀라움을 느끼는 머릿속도 둔감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어, 어… 이거 왜 이래….’
당혹스러운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언제 끊어졌는지도 모른 채,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
정신 줄을 놓은 지 얼마나 됐을까?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에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이어, 내 몸을 흔들어 대는 느낌에 더욱더 빠르게 깨어났다.
“으으….”
“주인님, 괜찮으세요?”
“오빠, 정신이 좀 들어요?”
눈을 떴다.
시뻘건 하늘이 한가득 들어왔다.
다음으로 린과 리나의 얼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온갖 걱정으로 가득 차고, 울상이 된 얼굴이었다.
“괘, 괜찮….”
“아아앙! 다행이다아… 흑흑!”
리나가 크게 울음을 터트리며 대뜸 내 품에 안겨 왔다.
통증은 없었지만, 묵직함에 조금 답답했다.
“비, 비켜, 인마… 히, 힘들다….”
“아아아아앙!”
리나는 막무가내였다.
더욱더 큰 소리로 울어 댔다.
보다 못한 린이 리나를 달래며 나에게서 떼어 냈다.
그제야 답답함이 좀 가시며 숨쉬기가 편해졌다.
일부러 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몸 상태를 체크했다.
특별히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다만, 몸이 무겁고, 피곤했다.
몇 날 며칠을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힘든 노동을 한 것만 같은…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런 몸 상태였다.
“어, 어찌 된 거지?”
내 물음에 린이 즉시 상황 보고를 했다.
바람의 창과 격돌해 기괴하게 팔이 꺾이고, 자신의 검에 목까지 찔려 버린 진 발키리가 괴로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어 대던 직후.
갑자기 나도 온몸에 경련 같은 것을 일으키다가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단다.
당장에 나를 구하거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앞을 가로막고 있는 발키리들의 방해에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에는 오식이와 린이 서둘러 발키리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이미 바람의 창에 호되게 당해 버린 진 발키리는 오식이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1/3쯤 파고들어 간 검을 이용해 진 발키리의 목을 완전히 베어 버렸다.
남은 발키리의 숫자는 여덟.
우리 팀의 숫자는 넷.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 리나와 다소 부족한 왕울이가 껴 있기에 솔직히 셋이라 하기에도 좀 뭣한 상황이었다.
누가 봐도 수적으로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
하지만, 전력과 실력의 수준은 불리한 수 싸움을 압도하고도 남음이었다.
“정말로 끝내줬어요. 린 언니의 멋짐은 말할 것도 없고요. 오식 오ㅃ… 덩치도 굉장했어요. 왕울이도 절 지켜 주느라 고생했고요.”
리나가 호들갑을 떨며 진심으로 감동한 듯이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발키리들을 정리하고, 쓰러져 있는 나를 챙길 수 있었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 외상은 없는 듯해, 린의 진두 하에 오식이가 나를 안고서는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이후, 회복 물약을 먹여 가며 상태를 지켜봤고, 1시간 정도 지나서야 내가 깨어났다고 했다.
“그랬군….”
상황을 모두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린을 쳐다봤다.
“린, 잘했어. 내 부재에도 팀을 잘 이끌어 주었구나.”
“뭘요, 다 주인님의 가르침 덕분인걸요.”
린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이어, 오식이를 향해서도 칭찬했다.
“오식이도 잘했다. 네가 있어 늘 든든해, 알지?”
“하하하! 안다, 형님! 으하하하하!”
기분 좋게 웃고, 어깨까지 으쓱이는 녀석의 모습에 나도 웃고 말았다.
다음으로는 왕울이를 향해 말했다.
“왕울이도 수고했다.”
“크륵!”
녀석이 고개를 끄덕하고는 다시 배를 깔고 누웠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조금 더 휴식을 취할 생각을 하는데, 리나가 다급하게 말을 걸어왔다.
“저, 저는요? 저는요, 오빠?”
사실, 리나에게 해 줄 말은 딱히 없었다.
칭찬을 잊어버렸다기보다는 그다지 활약한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쯤 되니 뭐라도 하나 해 줘야 할 분위기였다.
살짝이 난감한 눈빛으로 리나를 쳐다보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어… 너, 너는… 아, 그래! 무사해 줘서 고맙다. 잘 버텼어.”
“네! 다른 분들 덕분이에요. 히히!”
딱히 칭찬 같지 않은 칭찬임에도 리나는 매우 기뻐했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던 린이 조용히 웃었다.
너무 했나 싶은 늦은 후회에 입맛이 씁쓸해지려 했다.
….
조금 더 휴식을 취했다.
가만히 누워서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솔직히 뭐를 떠올리고, 뭐를 정리하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잡생각에 엉뚱하고, 쓸데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 게 옳을 터였다.
그러던 중, 의문이 하나 생겼다.
곧장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는 리나의 프로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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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리나
타입: 인간형
속성: 무
레벨: 15
견습 발키리.
좋아하는 것: 수련. 강함. 명예. 인정.
싫어하는 것: 치욕. 굴욕. 패배.
스킬: 검술의 기초.
호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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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그대로잖아? 어라? 이건 언제 올랐데?’
언제 올랐는지 모를 호감도의 하트 표시가 두 개의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제 겨우 하루 반나절쯤 지난 것 같은데, 다른 녀석들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빠른 상황이었다.
그보다는 전혀 오르지 않고, 변함이 없는 레벨에 다시 집중했다.
그랬다.
리나의 레벨은 처음과 같은 15레벨 그대로였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정확지는 않지만, 60레벨로 추정되는 진 발키리 둘과 그보다는 약하지만, 50레벨로 예상하던 발키리 열을 잡았다.
45레벨로 현재 만렙을 찍은 왕울이나 65레벨로 웬만한 경험치로는 간의 기별도 가지 않을 우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겨우 15레벨인 리나는 무조건 레벨이 올랐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살짝 모자랐나?’
99.9%에 머물러 레벨 업을 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야 너그럽게 이해하고, 다행이라 여기겠지만, 어째 좀 불길하고, 억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지… 쩝!
“에휴, 모르겠다.”
이상하다 여기고, 아쉬워 해 봤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미련을 버리고 다시 벌러덩 누워 버렸다.
곧장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왜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걸까?’
영문을 알 수 없고,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던 현상에 자못 심각해졌다.
그러다가 지금과 비슷했던 일을 겪었던 것이 떠올랐다.
“앗!”
이어진 생각들….
퍼즐처럼 뭔가 들어맞기 시작한 가설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