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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232화 (232/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32)

사실, 알고 있었다.

앞서 벌어진 이상하고, 끔찍한 일이 나 때문이란 것을 말이다.

예상은 진작부터였다.

발할라를 빠져나온 직후, 처음 하늘이 시뻘겋게 변했을 때부터였으니까.

아니, 훨씬 더 전부터였나?

아무튼, 그랬기에 서둘러 도망을 친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조그만 가능성이나 기대 같은 것도 있었다.

이번 일이 나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닐 것이라는 다소 안일하고, 무책임한 그런 마음 말이다.

인간은 원래 그런 동물이다.

실수나 잘못 등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걸렸을 경우 일단은 회피부터 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내가 그랬다.

지금도 그런 마음이 컸다.

‘설마…’, ‘에이,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분명, 다른 이유가 있겠지!’ 등등….

하지만, 아무래도 나 때문인 듯싶었다.

정확히는 내가 피라미드 최상층 석실에서 들고 나온… 우연히 얻게 된 ‘궁니르’ 때문일 듯싶었다.

더불어 날개 문양의 금속판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

정확지는 않지만, 상황을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오딘이 주최하는 발키리 선발 시험이 치러지고 있다.

그것을 기리고, 축하하는 축제도 한창이다.

이날을 위해 발할라의 모든 발키리들이 발 벗고 나서서 열심히 준비했고, 수많은 외부인의 축제 참여도 흔쾌히 허락했다.

발할라의 상징이라고 하기에는 솔직히 뭣하지만, 일단 눈에 띄고, 웅장하며, 신비롭기까지 한 피라미드.

그 안에는 합격자의 포상이라 여겨지는 금속판과 주최자 오딘의 상징 같은 전설의 무기가 숨겨져 있다.

밤낮으로 보초를 서며, 혹시 모를 외부인의 출입까지 금지한 상태.

하물며, 축제가 시작되는 이틀 동안은 전보다 훨씬 더 삼엄하고, 철저하게 피라미드를 지킨다.

당연히 숨겨 놓은… 보관하고 있는 것들의 안전을 위해서일 터.

살짝이 예상컨대, 피라미드 안에 보관 중인 것들은 축제가 무르익을 마지막 날에 공개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리나가 금속판에 대해 모르는 것을 보면, 합격자의 포상이 아닐 수도 있고, 대중 앞에 공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뭐가 됐든 간에,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에 아무런 제약 없이 발할라를 찾는 외부인들로부터 그것을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

그런데 그것을 누군가 망쳐 놨다.

누가?

내가….

들어가지 말라고 떡 하니 보여 주고, 들어가면 안 된다고 굳건히 막아서는 것을 어기고 몰래 피라미드에 침투했다.

우연이긴 했지만… 또한, 일단은 변태스럽다고 못을 박은 상태였지만, 나름의 안전장치라 볼 수 있고, 여자들만 있는 발할라에서는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잠금장치 시스템도 뚫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소중하고, 굉장하며, 뭔가 있어 보이는 것 두 개를 훔쳤다.

음….

솔직히, 이 부분에서는 조금 억울한 면도 있었다.

까놓고서 금속판은 내가 훔친 게 맞다.

하지만, 궁니르는 아니었다.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저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려는데, 갑자기 붉은빛의 구가 멋대로 달려들어 내 가슴을 꿰뚫… 정확히는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을 말이다.

물론, 가까이 다가가 살펴본 후에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인다면 무조건 챙겼을 게 분명했다.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 버려 하나씩만 챙긴 꼴이 되었지만, 그런 일들 없이 무난한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아니, 필시! 금속판 열 개와 붉은빛 구 다섯 개를 모두 들고 나왔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피라미드를 빠져나온 뒤, 축제는 시작됐다.

뭐, 낮 동안에는 자동으로 석실의 문이 닫혀 버린다니,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이나 보관 중인 물건들이 사라진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축제가 막 시작되어 들뜨고 바쁜 탓에 신경을 쓰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저녁… 해가 지면서 다시 석실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 보관 중인 것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던 순간에 난리가 나고,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바로 오딘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오딘이 알기 전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발키리들이 먼저 나서서 일을 벌인 것일 수도 있었다.

뭐,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다만, 일을 해결하는 방식이 너무나 과하다는 게 내 딴에는 불만이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씨바… 가져간 것을 돌려달라고 하면 누가 안 돌려주나?’

그랬다.

‘우리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물건이다. 가져간 것을 알고 있으니, 돌려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신사적(?)이고, 평화(?)롭게 다가왔더라면, 분명히 모두 다 돌려줬을 것이다.

아, 물론 처음에는 내가 안 가져갔다고 발뺌을 좀 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냥 기념으로 줄 수 없느냐 거나, 순순히 돌려줄 테니까 다른 것이라도 하나쯤 달라고 했을지도….

흠흠!

그런데, 이건 뭐 말도 없고, 따지거나 확인조차 제대로 없이 그냥 쳐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인간… 외부인 중에서도 이방인들만 골라 인정사정없이 죽이고부터 보는 끔찍한 악수를 뒀다.

이러면 무서워서라도 더 내놓지 않고, 도망부터 칠 생각을 하지 않을까?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헐….”

모든 사실과 상황을 알게 된 리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민망함과 멋쩍음이 몸 둘 바를 모르게 했다.

“대체, 어쩌시려고….”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뭐….”

“하아아….”

리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물어왔다.

“오빠, 지금도 돌려달라면 돌려줄 생각이 있으세요?”

“당연하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누구보다도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이라도 정중히… 나긋나긋하게 달래는 투로, 물건들을 돌려 달라고 한다면, 순순히 돌려줄 의향이 있었다.

“진짜요?”

“어! 대신에 내게 아무런 책임을 묻지도 않고, 해코지 또한 하지 않겠다는 믿음과 신뢰의 약속을 해 준다면, 바로 내놓을 거야!”

그럴 분위기… 오버액션을 취할 상황이 아닌 듯했지만, 주먹을 불끈 쥐고, 눈까지 빛내며 말했다.

리나는 물론, 린까지 가세한… 마치, 철없는 아들을 보는 엄마의 안타깝고, 안쓰러운 뉘앙스의 표정에 바로 풀이 꺾였다.

훅 떨어져 버린 기세에 흘리듯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럴 기회나 회유의 상황 따위는 없을 것 같지?”

“네. 저 같아도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목에 칼부터 들이대지 않을까 싶네요. 그게 더 빠를 테니까요.”

“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리나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도 너무나 쉽게 나왔다.

잠시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말없이 있던 린이 조심스럽게 침묵을 깨며 의견을 내놓았다.

“주인님. 먼저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자수를 하면 광명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죄질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상당 부분 정상참작이 되어 형량이 가벼워지기도 한다.

린의 의견에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그래 볼까?”

“네. 미안하다, 실수였다. 하면 이대로 끝날지도 몰라요.”

“그렇겠지? 어쨌든 목적은 물건을 찾는 것일 테니까.”

“네, 그럴 것 같아요.”

작게나마 희망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런 가녀리고, 작은 불씨를 리나가 훅 불어 꺼 버렸다.

“아니요. 절대요! 아까도 말했지만, 일단 눈앞에 보이는 순간 검이 날아들걸요?”

“에?”

“발키리들은 냉정해요. 성격도 급하고요.”

발키리들의 냉정함은 인정.

급한 성격은 ‘완전 인정’이었다.

눈앞에 있는 리나가 그 표본이었으니까.

“아, 그럼 어쩌라고?”

“숨어야죠. 맞서 싸우거나… 가능하다면요.”

말이 쉽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막장이라 여긴다면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그런 전제를 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가장 좋은 방법은 발키리들 몰래 사냥을 하고, 떡 하니 귀환석 하나를 얻은 후, 이곳 자트란드를 완전히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것 또한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니 문제지만….

이쯤에서 나의 지랄 같은 인성에 대해 생각하거나 이미 욕을 바가지로 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네가 저지른 일 때문에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 나 몰라라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치거나 저만 살 궁리를 한다고 말이다.

나도 안다.

내가 이러면 안 된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는 거다.

아닌 척하지만, 아니라고 하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가진 이기적인 마음…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피해를 보지 않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런 마음.

지금 내 심정이 그랬다.

뭐, 이 일의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진행되고, 마무리될지는 알 수 없었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질지도 모르고,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이들의 희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에 눈앞에 발키리들이 나타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래서… 그러므로….

일단은 나부터 살고, 나부터 챙길 생각이다.

끝내 목숨을 잃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그 뒤에… 나 때문에 애꿎은 목숨을 잃은 이들에게 사죄할 생각이다.

아무리 나를 욕하고, 탓해도 나는 그럴 것이다.

‘젠장….’

….

아무튼.

살아남기 위한 최선책의 방법을 실행에 옮겨야 할 시간이었다.

‘제발….’

드롭률이 지랄 같이 극악인 귀환석이 한시라도 빨리 떨어지길 기도했다.

왕울이에게도 부탁했지만, 나 역시 동물적 감각을 최대한 넓게 펼치며 주변의 기척에 정신을 집중했다.

혹시 모를 발키리들의 접근이나 움직임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방비책이며, 목표가 되는 사냥감들의 수색을 겸한 것이었다.

“흐음….”

“왜 그러세요, 주인님?”

자못 심각한 내 표정과 반응에 린이 물어왔다.

“이상해….”

“…?”

“전혀 기척이 잡히지 않아.”

주변에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만 그런가 싶어 곧장 왕울이를 향해 물었다.

“왕울아, 넌 어때? 뭔가 잡히는 게 있어?”

내 물음에 왕울이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발키리들을 피해 우리가 숨어든 곳은 사냥터 숲의 깊은 곳이었다.

한낮에 들어와도 빽빽한 나무들에 조금은 어둑하고, 습하며, 음산하기까지 했다.

또한, 축축한 바닥과 장애물에 사냥터이지만, 사냥을 하기에는 적당치 않았다.

해서, 인적이 드물었다.

반면, 그만큼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서식하는 괴물들의 수는 많았다.

동물적 감각이 아니더라도… 그냥 맨눈으로 살피고, 조금만 이동해도 다양한 괴물들과 맞닥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나와 왕울이가 최대한 넓게 펼친 동물적 감각으로도 어떠한 기척 하나, 희미한 파장조차도 잡히는 게 없었다.

“주인님….”

“응?”

“혹시, 저것 때문일까요?”

린이 검지를 세워 위쪽을 가리켰다.

고개와 시선을 들어 위를 쳐다봤다.

시뻘겋고, 우중충하며, 괴기스럽기 그지없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린이 하늘을 가리키며 ‘저것’이라 말은 했지만, 그 안에는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내가 저지른 일, 발키리의 습격 같은 것들 말이다.

내 심정을 어느 정도 헤아린 린이 그렇게 돌려 말했다는 걸 충분히 알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럴지도….”

나 역시 모두 다 알고는 있지만, 일부러 모른 척, 아닌 척, 내색하지 않으며 감정과 말을 숨겼다.

‘젠장…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최선책으로 생각했던 귀환석을 이용한 탈출은 불가능… 물 건너간 듯했다.

다음의 방법 내지는 계획을 서둘러 세워야 했다.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크륵!”

왕울이가 고개를 번쩍 쳐들며 반응했다.

곧장 내가 펼쳐 놓았던 동물적 감각에도 뭔가가 잡혔다.

“이, 이런… 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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