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31)
휙휙!
아무렇지도 않게 각성자 둘을 처리한 진 발키리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모든 발키리들이 신속함을 뽐내며 움직였다.
‘헛!’
한 번 더 그림자 숨기기를 써야 하나 싶었지만, 다행히 건물 위로 올라오는 발키리는 없었다.
샤샤샷!
다다다닷!
대부분의 발키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모습을 감췄다.
그중 한 팀… 진 발키리 하나와 발키리 다섯이 아직도 영업 중인 술집으로 들어갔다.
곧장 처절한 비명과 난장판의 잡음들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뭐, 뭐야아아아!”
“으윽! 사, 살려… 어어억!”
“저, 저리 가아아아아!”
급기야 술집 문을 박살 내며 누군가 튕겨 나왔다.
콰아아앙!
데굴데굴… 철퍼덕!
바닥을 구른 남자는 피투성이가 된 채 널브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죽은 것이 분명했다.
이어, 몇 사람이 부서진 술집 문으로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으아아아아아!”
“저, 저것들은 뭐야?”
“나도 모르지! 일단, 도망쳐!”
허둥대던 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 그들을 따라 두 명의 발키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 턱짓을 통해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은 발키리들이 당장에 자리를 박차며 양쪽으로 갈라졌다.
휘익!
휙!
건물을 돌아 시야에서 사라진 발키리 대신에 여전히 축제의 흥과 분위기를 이어 가고 있는 광장 쪽을 향해 뛰는 발키리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가늘게 뜬 눈이 필요했다.
“으아아아아! 오, 오지 마아아! 이, 이봐! 나, 나 좀 살려 줘어어!”
도망친 남자는 온갖 난리를 피우며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었다.
어차피 뒤를 바짝 쫓는 발키리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겠지만, 차라리 입을 닫고, 숨조차 쉬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일이었다.
어쨌든.
이전에도 잠시 느꼈지만, 정말로 이해할 수 없고, 상황과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광경을 또 한 번 목격해야만 했다.
부어라 마셔라, 웃고 떠들며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 있다.
그 속으로 한 남자가 뛰어들며, 살려 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남자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마치, 남자가 눈에 보이지 않고, 절규로 가득한 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제 할 일에 여념이 없다.
“이, 이봐! 나 좀… 아! 피에르! 나, 나야! 나라고!”
남자가 모여 있던 이들 중 아는 사람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자신을 어필했다.
그러나 피에르란 자는 옆에 있는 여자에게만 눈길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끝내는 남자가 피에르란 자의 어깨와 손을 잡으며 관심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남자의 행동은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휘익… 휙! 휙….
아무리 애를 쓰며 상대의 손과 어깨 등을 잡으려 해도 전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눈에는 보이지만, 잡거나 할 수 없는 허상처럼 말이다.
“어, 어… 아, 안 돼애! 으아아아아!”
남자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당황하다가 이내 좌절하며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런 남자의 등 뒤로 발키리가 바짝 다가섰다.
스윽….
피잉!
발키리의 검이 허공에서 빛을 받아 반짝였다.
한 점이던 빛이 사선의 긴 잔상을 그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끄으으으….”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며 숨이 끊어졌다.
그런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휘익!
남자를 단칼에 베어 버린 발키리가 꽤 멋지고, 시크한 폼으로 돌아섰다.
순간, 나를 향한 것만 같아 급히 몸을 숨겼다.
조심스레 호흡을 가다듬고는 다시 빼꼼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그사이에 어디로 갔는지 발키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물적 감각의 감도를 높이고, 영역도 넓혔다.
어지러운 파장들이 근처에서 어지럽게 잡혔지만, 나를 향해 다가오는 기척은 없었다.
“후우우….”
길게 숨을 뱉어 내고는 혼란으로 가득 찬 머릿속을 정리했다.
온갖 생각들로 뒤죽박죽이었다.
영문도 모르겠고, 이해도 되지 않는 일들이 겹쳐 정리도 쉽지 않았다.
그냥 세차게 고개를 가로젓고는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건물과 지붕을 타고서 이곳까지 달려왔던 루트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튀자!’
아무래도 그러는 게 좋을 듯싶었다.
한 번 더 신중하게 동물적 감각을 펼쳐 주변 상황을 체크했다.
지이이이잉….
역시나 어지러운 파장들이 곳곳에서 잡혔다.
그러나 내 주변만큼은… 더불어 내가 가야 할 루트로는 별다른 기척이 없음을 확인했다.
곧장 자세를 한껏 낮추고는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사사사삿!
휙! 휙!
다다다닷!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지붕 위를 걸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뛰어넘었다.
오식이와 멋진 팀워크를 보여 줬던 곳에 이르러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내달렸다.
“하아! 하아! 하아….”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던 자리에 도착할 때쯤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하지만, 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대로 자리를 지나쳤다.
이어, 눈앞을 가로막는 2미터가 넘는 마을의 외벽도 단숨에 넘어 버렸다.
조금만 돌아가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문이 있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며 사냥터로 이용되는 숲으로 숨어들었다.
* * *
한참이나 숲으로 들어온 다음에야 멈춰 섰다.
이미 턱 끝을 넘어 머리꼭지까지 다다른 가쁜 호흡을 억지로 다스렸다.
절로 허리가 앞으로 굽어졌다.
“하악! 하악… 우에엑!”
헛구역질이 나왔다.
머리도 핑핑 돌았다.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가 아예 바닥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하악! 하악… 아이고, 죽겠… 우에에엑! 컥! 컥… 후아아아….”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어느 정도 컨디션을 회복한 뒤에 녀석들을 모두 소환했다.
대강의 상황을 설명했고, 이유를 찾기 위해 리나에게 물었다.
“어찌 된 일인지 뭐 짐작 가는 거 없어?”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는 소리야?”
“네… 제가 알기로는 단 한 번도요.”
“흠….”
심각한 내 표정을 조심스레 살피던 리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딘 님은 특별한 힘을 가진 자들을 좋아하세요.”
“각성ㅈ… 아니, 이방인들 말하는 거지?”
“네.”
리나의 말을 듣고서 곧바로 확인차 물음을 던질 때까지는 딱히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과 괴물은 적대 관계다.
눈에 띄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사이다.
이상하게도 안전지대이며, 인간에게 너무나 우호적인 발할라의 발키리도 그렇고, 지금껏 이름만 들었지, 만나 본 적 없는 오딘도 따지고 보면 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얼핏 자트란드의 던전 마을 사람들처럼 상호 간의 어떤 룰이 적용되는 동맹, 또는 게임의 NPC쯤 되는 정도로 여길 수도 있었지만, 지금껏 겪은 상황으로는 아니라고 보는 게 옳았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리나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만약, 리나가 괴물이 아니었다면 나와 교감을 통해 서약을 맺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또한, 발키리들이 괴물이 아니라면, 갑자기 떼로 몰려와 각성자들을 죽이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발키리들의 수장인 오딘이 인간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유는? 오딘이 그들을 왜 좋아하는데?”
“그거야 특별한 힘을 갖고 있고, 강하며, 전투를 좋아하니까요.”
“아… 아아!”
리나의 당연하다는 듯한 설명에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오딘에 관해서라기보다는 발키리에 관한 정보들을 찾다가 알게 된 내용으로… 일전에도 내가 살짝 얘기한 적이 있기는 한데,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해서, 한 번 더 얘기하자면….
발키리들은 오딘의 명령을 받고서 전사자… 전쟁을 치르다가 죽은 자들을 모아 오딘에게로 인도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는 이유는 오딘이 심각한 ‘전쟁광’이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오딘과 발키리에게 선택(?)받은 이들은 어떤 특별한 장소에서 온종일 전투를 치르게 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끔찍하고, 절로 힘겨움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생각이고… 다른 시각에서 보면 전혀 예상과 다를 수 있었다.
전쟁광인 오딘과 전쟁의 여신이라 불리는 발키리들에게 선택된 인간들이다.
그들 또한 전쟁과 전투에 미쳐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런 자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
이미 죽은 상태이기에 다시 죽을 일도 없고, 제법 괜찮은 장소도 준비되어 있을 것 같고, 무기들도 입맛대로 골라 사용할 수 있다면, 그들로서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지 않을까?
더불어 승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술과 고기, 재물이나 여자 등과 같은 포상까지 주어진다면 일종의 동기부여도 확실히 될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만의 축제 같은 ‘대환장’ 파티가 열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에 관한 새로운 가설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오딘이 시킨 일이겠지?”
“그렇겠죠? 발키리들은 오딘 님의 명령만 따르니까요.”
“아니… 전사자 대용으로 말이야.”
“네?”
“그들만의 ‘대환장’ 파티를 위해서 모자란 인원을 충원하려고 각성자들을 잡아가는 거 아닐까?”
“에… 그게 무슨… 그들만의 ‘대환장’ 파티가 뭐죠?”
리나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린도 비슷한 얼굴이었다.
신화나 전설의 내용을 모르고 있으니 그런 듯했다.
짧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아아, 그런 일이….”
이야기를 다 들은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린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음… 그런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게다가 뭐 하러 그런 짓을 해요?”
“응?”
“오빠도 참… 생각해 보세요. 굳이 전쟁에서 진 사람들을 뭐 하러 데려오고, 그런 특혜를 주냐고요. 그들보다 훨씬 더 용맹하고, 출중한 발키리들이 넘치고 넘치는데요.”
“그렇기는 하지만… 뭐, 죽은 목숨 데려다가 뽕을 뽑을 때까지 달리게 하는 거라면….”
“그러니까 뭐 하러요. 어차피 발키리들은 오딘 님 말씀이라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어요. 차라리 그런 발키리들을 모아서 ‘대환장’ 파틴지 뭔지를 하는 게 더 나은 거 아닌가요?”
듣고 보니 그랬다.
스포츠도 아마추어들만의 특별한 재미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프로들이 하는 경기가 재밌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키리들은 일정 수준 이상… 아니, 타고난 전사였고, 오딘의 입맛에도 더없이 딱 맞아떨어질 터였다.
게다가 굳이 힘들여서 전사자의 영혼을 데려올 필요도 없어진다.
발키리도 영혼이 있고, 영혼은 죽지 않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도 엄청 불어날 테니까.
“흠….”
“다시 말하지만, 오딘 님께서 전사자의 영혼 따위를 모아 전쟁놀이인지, ‘대환장’ 파틴//파티인지를 한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봤고요. 그런 일을 위해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네요.”
“쩝! 그럼 왜….”
씁쓸해진 입맛을 다시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에, 신경을 쓴 것인지 리나도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상한 일이기는 하네… 대체, 왜 이런 짓을… 흐음….”
옆에서 가만히 있던 린도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하늘이 갑자기 빨개진 것도 이번 일과 연관이 있을까요?”
린의 물음에 나 대신 리나가 반응했다.
“그러고 보니까, 이런 일도 처음인데… 분명, 무슨 일이 있긴 한 것 같은데… 흐음….”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리나가 갑자기 나를 쳐다봤다.
의미심장한 눈빛이었다.
이어, 나를 부르는 말투에도 뭔가가 깃들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오빠.”
“으응?”
“그러고 보니까, 오빠는 오딘 님도 아닌데, 어째서 궁니르를 사용하는 거죠?”
리나의 물음에 심장 부근이 뜨끔했다.
이런 걸 두고 정곡을 찔렸다고 해야 하나?
리나를 향한 내 눈빛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