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26)
발할라로 향하는 외부인들은 거의 다가 던전인들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복장에 딱히 볼 것 없는 일반인들이 대다수였으며, 일부는 무장을 한 이들도 있었고, 조금은 특이하게 생긴… 척 봐도 인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한 이들도 있었다.
어쨌든, 거대한 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동하는 중에 본 이들은 던전인이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대쪽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움직이며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대한 문 앞에 서서 잠시 지켜본 결과가 그랬고, 아마도 내 예상이 맞을 터였다.
하지만, 거대한 문을 정면으로 두고 걸어오는 이들은 조금 달랐다.
역시나 90% 이상은 던전인이었지만, 나머지는 이방인… 각성자들이 섞여 있었다.
혼자서 오는 이도 있고, 두셋씩 짝을 지어 오는 이들도 있었다.
문제는 그들 중에 길드 마크를 달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썬더 길드와 레드 길드는 물론, 울트라 닛폰 놈들도 있었다.
다행히 나를 알아보는 이들은 없었다.
나름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일 수도 있고, 다들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뭐, 사고를 치기는 했지만, 시간이 꽤 지난 만큼 나라는 존재의 관심이 떨어지거나 척살령 같은 것이 해제되어 더는 찾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혹시라도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일부러 마주칠 필요는 없지.’
괜히 모습을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
다들 발할라로 향하는데, 혼자서 되돌아가는 것도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던전인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였지만, 호기심 많은 각성자들은 분명 이상하게 여길 게 분명했다.
가장 빠른 길이기는 했지만, 정면을 포기하고 측면을 통해 빙 돌아가기로 한 이유였다.
….
계획처럼 거대한 문의 왼쪽으로 쭉 직진했다.
“허, 뒤에서도 오고 있었네?”
정면과 좌우에서만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여겼었다.
멀리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방에서 발할라로 향하고 있었다.
“제가 그랬잖아요. 곳곳에서 엄청나게 많이들 온다고요.”
리나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혼잣말처럼 말을 흐렸다.
“흠… 저쪽으로 가면 다른 곳으로도 넘어갈 수 있으려나?”
엘리자가 있는 던전 마을과 사냥터의 자트란드도 꽤 넓었다.
정확지는 않지만, 구역의 경계선으로 여겨지는 두 개의 높은 산과 그 사이에 있는 골렘의 계곡도 만만치 않았고, 발할라를 중심으로 한 드넓은 이곳도 장난이 아니었다.
이미 내가 아는 던전의 일반적인 크기를 넘어섰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너머에 또 다른 구역과 세상이 있다?
절로 고개가 가로저어질 만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구만큼… 아니, 그 반의반에서 반의반만큼이나 된다면 또 모를까… 아, 그것도 좀 큰가?’
어쨌든,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에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하긴, 상식 같은 게 통하지 않는 곳이 던전이기는 했지만….
‘게이트가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네.’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게이트가 그 끝에 존재한다면, 상식 밖이고, 이해 불가고 할 것 없이 그냥 말이 되기도 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쪽으로 향한다거나 다른 세상으로 넘어갈 일은 없을 터였다.
살짝이 이는 호기심이 귓가에 슬슬 부채질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무조건 참기로 했다.
‘일단, 목표는 이뤘어. 아니, 애초의 목표보다 훨씬 더 큰 것들을 얻었지!’
원래의 목표는 꿈에 그리던 첫사랑 발키리를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발키리를 동료로 삼았고, 오딘의 무기인 궁니르까지 얻게 됐다.
솔직히 이상적인 발키리보다는 한참이나 모자란 리나에 궁니르와 버금가는 네 개의 무언가를 눈앞에서 놓친 것이 미련으로 남았지만, 여기서 더 바라는 것도 지나친 욕심일 수 있었다.
‘그래, 일단은 딴생각 말고 돌아가자.’
발할라를 벗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귀환석을 이용해 자트란드까지 빠져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거대한 문에서 왼쪽으로 쭉 이동한 뒤, 사람들의 시야에서 얼추 벗어났다 싶을 즈음, 다시 방향을 틀었다.
거대한 산이 보이는 방향이었다.
어느새 해가 슬슬 저물어가고 있었다.
“맞다, 리나!”
별다른 대화 없이 걷기만 하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리나를 불렀다.
린과 나란히 걷던 리나가 뒤를 돌아봤다.
린도 걸음을 늦추며 관심을 보였다.
“넌 피라미드에 왜 들어왔던 거야?”
누군가 파 놓은 비밀의 땅굴을 이용해 몰래 피라미드로 잠입한 리나였다.
축제나 피라미드에 관련된 어떤 임무나 업무를 목적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란 얘기다.
우리가 피라미드에 들어간 것과는 결이 좀 다를 수 있었지만,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에… 그게….”
살짝이 머뭇거리던 리나가 사실을 털어놓았다.
“구경이요. 피라미드 최상층에 엄청난 것들이 숨겨져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피라미드 최상층의 엄청난 것들.
당연히 내가 놓치고 나온 미련과 안타까움의 그것들을 말함이었다.
숨겨져 있다는 얘기는 그 변태스러운 시스템을 말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그걸 꼭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몰래 들어갔던 건데….”
“너보다 먼저 들어온 우리와 떡 하니 마주친 거구나?”
“네… 누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말도 마라, 우리도 엄청 놀랬거든?”
어색하고, 멋쩍은 분위기가 잠시 일었다.
짧은 한숨으로 그런 분위기를 날려 버린 리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후우, 사실은 이틀 전에도 들어왔었거든요.”
“그래? 근데 왜 또 들어온 거지?”
“못 찾았으니까요. 아무리 뒤져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얼마나 꼭꼭 숨겨 둔 것인지….”
리나가 진심으로 애석해했다.
듣자 하니, 사각기둥을 가동하는 법… 변태스러운 시스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스윽….
자연스럽게 리나의 가슴께로 시선이 돌아갔다.
절로 한숨과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하아… 알았어도 보지 못했을 거야.”
“네?”
내 혼잣말에 리나가 바로 반응했다.
아차 싶어 곧장 아니라고 말했다.
“아, 아니야. 그냥 나 혼자 한 얘기야.”
“네….”
“그래도 보긴 봤잖아?”
“뭘요?”
“우리랑 만났을 때, 석실이 바뀌어 있던 것 못 봤어?”
“아아….”
“우리가 그 변… 아니, 시스템을 가동해서 숨겨진 것들을 꺼내 놨잖아.”
“그, 그러셨군요? 어떻게 찾으신 거예요?”
리나의 물음에 다시금 가슴께로 시선이 갔다.
지레 놀라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는 대충 말을 늘어놨다.
“그냥 어쩌다 보니까… 우리도 우연히 찾았어.”
“네.”
“어쨌든 봤으니까, 된 거지?”
말을 돌리고,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하지만, 리나가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무리를 거부했다.
“휴우우… 그럴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얼핏 보기는 했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하죠.”
그런 리나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제는 내 사람이기에 희망을 심어 주기로 했다.
“다시 볼 날이 있을 거야.”
“네?”
“다시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이곳에 와야 할 일이 있거든.”
“정말이요?”
“응. 그러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네! 꾹 참고 기다릴게요.”
리나가 벅찬 믿음과 기대의 눈빛을 내게 보내왔다.
그 모습에 히죽 웃었다.
그러다가 뭔가가 생각났다.
“아, 맞다. 이게 있었지?”
걸음을 잠시 멈추고는 등에 멘 배낭을 풀었다.
안을 뒤적여 바닥에 잘 챙겨 놓은 금속판을 꺼냈다.
리나가 앞으로 내민 금속판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죠?”
“이게 피라미드 안에 숨겨져 있던 것 중 하나야. 이것 말고도 똑같은 게 아홉 개나 더 있었어. 물론, 다른 것도 있었지만.”
“아아… 자세히 봐도 될까요?”
“물론!”
흔쾌히 금속판을 리나에게 건네줬다.
무척이나 소중한 것을 다루듯 리나가 조심스레 금속판을 받아서 황홀한 눈빛과 표정으로 이리저리 살폈다.
“이 날개 문양… 발키리의 표식이죠?”
“응, 그런 것 같아.”
처음 봤을 때는 뭔가 싶었던 금속판의 날개 문양이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혹시나 발키리를 상징하는 표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내 첫사랑이라 여기며 그렇게나 찾아봤던 수많은 발키리의 자료 중에 날개라는 포인트가 다수 존재했다는 걸 기억해 낸 까닭이었다.
그중에는 날개 달린 하얀 백마를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도 있었고, 천사처럼 등에 날개를 단 발키리도 있었다.
심지어는 날개가 달린 투구와 부츠는 물론, 들고 있는 검이나 창, 방패 등에도 날개가 장식되어 있거나 새겨 있기도 했었다.
뭐, 날개나 치장한 모습보다는 순수하게 발키리에 빠진 터라 금속판의 날개 문양을 보고도 바로 연관을 짓지 못했던 것이라면, 나의 우매함이 좀 가려지려나?
킁!
어쨌든.
리나도 날개 문양이 발키리의 표식이라 여기고 있었다.
심증은 갔지만, 정확한 물증도 없고, 확인할 길이 없어 잠시 접어 뒀던 가설에 약간의 힘이 실리는 순간이었다.
‘가능성이 조금 더 커졌군.’
오딘의 정예부대를 뽑는 발키리들의 시험과 합격자를 위한 축제.
삼엄한 경비 속에 특별한 방법으로까지 숨겨 놓은 비밀의 아이템.
발키리와 연관이 되는 날개 문양에 최종 합격자의 수와 딱 맞아떨어지기까지 하는 열 개의 금속판.
내 추측이기는 했지만, 그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였다.
상장? 상패? 상품?
뭐가 됐든, 그런 것 중 하나일 게 분명했다.
‘어쩌면….’
설레발을 치는 것 같아 조심스러운 가설이 또 하나 있기도 했다.
만약, 그 가설이 옳다면, 진짜 대박 중의 대박….
이미 엄청남을 인정한 궁니르를 얻은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대단한 것을 가진 셈이 되는 것이었다.
두근두근….
상상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되는 그것은 바로 ‘발키리의 진화템’이었다.
‘아아, 그만!’
아직 확실한 것은 없었다.
괜히 설치고 나대다가 산통이 깨지고, 크나큰 실망감에 좌절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확실해지는 날이 올 때까지는 그냥 생각을 접은 채, 얌전히 있는 게 좋을 듯싶었다.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기대감을 억지로 눌러 놓은 채, 일부만 꺼내 놓고서 린을 쳐다봤다.
“린, 이것 좀 살펴봐 주겠어? 나는 물음표만 가득하더라고.”
“아아, 네, 알겠습니다.”
린이 리나에게서 금속판을 받아들었다.
금속판을 양손에 올린 린이 살며시 눈을 감고 집중했다.
“뭐 하는 거죠?”
“쉿! 기다려 봐, 곧 알게 될 테니까.”
성급한 리나를 조용히 시킨 후, 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잠시 후, 눈을 뜬 린이 아이템 감정 결과를 알려 왔다.
도리도리….
“저도 물음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주인님. 죄송해요.”
린의 말에 가슴이 찌릿했다.
다행이었다.
기대감을 일부만 꺼내 놓은 것이 말이다.
조금 더 기대했더라면 결과에 충격을 받고 거품을 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기대감도 더 커졌다.
나야 아직 아이템 감정이 스킬로 지정되지 않은 상태라 물음표로 표시되는 게 많다.
하지만, 이미 스킬로 사용할 수 있는 린에게도 물음표로만 보였다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현재 린이 감정할 수 있는 아이템의 등급은 ‘A’였다.
정확히는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 가장 높은 등급이 A라 거기까지 밖에 확인이 안 됐다.
그러나 3단계가 마스터인 숙련도에서 2단계에 도달했으니, 그보다는 높은 등급… 아마도 ‘S’까지 확인할 수 있으리라 예상 중이다.
그런데 감정이 되지 않고, 물음표로 표시가 된다?
그렇다는 것은 이 금속판이 S 등급 이상… 히든이나 아티팩트 급이란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앞서 말했던 설레발의 양념을 곁들인다면 더더욱 확정적이었다.
“아, 괜찮아. 실망할 것 없어. 오히려 더 좋은 일이니까.”
내 반응에 린과 리나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히죽 웃었다.
그때였다.
“…?”
불길한 기운이 갑자기 치솟았다.
“주, 주인님. 하, 하늘이….”
석양으로 물들어 주홍빛이어야 할 하늘이 그 도를 넘어서 시뻘겋게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