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25)
“주인님, 밖이 엄청 시끌벅적해요.”
본격적으로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니 그럴 거라 예상했다.
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 일부러 뒷골목을 이용하는 등 애를 쓰기도 했었다.
“재미난 구경거리도 많고, 구경 오는 사람들도 많아요. 일 년에 한 번 있는 큰 축제니까요.”
리나의 덧붙임에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란 모름지기 그런 것이었으니까.
리나의 말에 린이 맞장구를 치듯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전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넘어갔을 일이었다.
“맞아요, 다들 즐거워 보이더라고요. 여자들만 있는 곳에 남자들이 섞여 있는 별것 아닌 모습도 신기하더라니까요?”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다가 이상해서 물었다.
“엥? 남자가 있다고? 여기 발할라에?”
내 물음에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네, 그리 많지는 않지만 곳곳에서 구경 중이던데요?”
린에게서 리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기다렸다는 듯 리나가 입을 열었다.
“축제 때는 구경 오시는 외부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외부인들 때문에 피라미드의 경비가 삼엄해진다고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다시 린을 보며 물었다.
“그 남자들… 어느 쪽 사람들이지? 지구인? 아니면 던전인?”
“네? 아, 지구 사람들도 있고, 던전 사람들도 있던데요.”
린의 말이 끝나고, 잠시 틈을 엿보던 리나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지구인이라는 게… 그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요?”
“…?”
“음…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오딘 님의 축복을 받은 진 발키리들과 비슷한 힘을 가진 이들 말이에요.”
얼추 이해가 되는 얘기였다.
일반인과 다름없는 던전 사람들도 각성자를 보며 특별한 힘을 가진 이방인이라 칭했으니까.
“어어, 맞아.”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리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발할라의 축제에 외부인들이 구경을 오는 일은 늘 있던 일입니다.”
오다가다 우연히 발할라를 찾은 사람도 있고, 빛기둥의 신호를 따라 호기심에 이곳을 찾은 이도 있다고 했다.
이는, 리나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계속됐다고 하니, 상당히 오래된 역사라 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렇게 발할라를 찾아 축제를 구경하는 이들은 죄다 던전 사람들뿐이었다.
놀라운 건 이곳 자트란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던전인들도 이곳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힘을 가진 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예요.”
그러던 중, 특별한 힘을 가진 이들이 발할라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한둘… 다음 해에는 서넛… 그다음 해에는 열을 훌쩍 넘었다고 했다.
“작년에는 정말로 굉장한 분도 오셨어요.”
“굉장한 분?”
“네! 친선 시합이었지만, 시험을 갓 통과한 진 발키리 셋을 거뜬하게 이기신 분이에요.”
“헐….”
“그 때문에 오딘 님께서 친히 선물까지 주셨는걸요.”
“선물이라니?”
“환영의 문이요.”
“그게 뭔데?”
환영의 문은 일종의 게이트 소환 장치(?)를 말함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어느 곳에서 사용하든 간에 이곳 발할라 근처로 이동이 가능한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녹색의 네모난 석판을 말함이었다.
“언제든 발할라에 오는 걸 환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오딘 님이 인정하신 분이니 대우도 극진할 게 분명해요.”
“그렇겠군… 그 사람 이름이 뭔데?”
“이름이요? 아, 죄송합니다. 그거까지는 잘 모르겠어요.”“뭐,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대신에 다른 건 알아요.”
“뭐?”
“그분도 그렇고 함께 오신 분들도 죄다 여기 가슴에 빨간 점이 새겨진 문장을 가지고 있었어요.”
리나가 자신의 왼쪽 가슴께를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이내 떠오르는 게 있어 재빨리 물었다.
“혹시, 이렇게 네모난 하얀색 한가운데에 이만한 빨간 점이었어?”
“네, 맞아요. 어찌 아세요?”
“헐….”
하얀색 네모의 한가운데 빨간 점 하나.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를 말함이었다.
더불어 이곳 자트란드에서 활동하는 울트라 닛폰 길드의 마크이기도 했다.
그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히데….’
그가 분명했다.
진 발키리 셋과 싸워 너끈히 이기고, 오딘에게 인정을 받은 것은 물론, 나름의 환영과 대우가 예정된 남자.
‘허, 대단한데?’
이래저래 그의 이름과 이야기를 여러 번 듣게 됐다.
자트란드라는 한정된 곳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만큼은 명성이 자자하다는 뜻으로 여겨도 문제가 없을 듯했다.
그래 봤자, 내게는 조만간 만나 한바탕 푸닥거리를 해야 할 썩을 놈이었지만 말이다.
“린, 짐 챙겨!”
“네?”
갑작스러운 내 말에 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반문했다.
“이유는 가면서 말해 줄 테니까, 일단 짐부터 챙겨!”
“네, 네!”
린의 주도하에 다들 서둘러 짐을 챙겼다.
뭐, 딱히 챙길 게 많지 않기에 10분도 채 되지 않아 준비가 끝났다.
“너희는 눈에 너무 띄니까, 잠시만 카드 안에 들어가 있어!”
오식이와 왕울이를 카드 속에 봉인했다.
길잡이의 리나와 혹시 모를 상황에 대처할 린은 남겨 뒀다.
어차피 여자들이 넘치고 바글대는 곳이니 둘은 무엇보다 자연스러울 터였다.
….
숙소 밖으로 나왔다.
먼저, 저 멀리에 있지만 워낙에 거대하고, 눈에 띌 수밖에 없는 피라미드가 시야에 잡혔다.
“쩝!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분명히 대단한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들을 끝내는 포기하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함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래, 나중에 또 기회가 있겠지. 그때는 꼭 다 털어 버리겠어!’
그러기를 바라며, 굳게 다짐했다.
그러나 어젯밤과 오늘 새벽 사이에 찾아왔던 것이 마지막 기회였음을 이때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더불어 이 때문에 벌어질 앞으로의 엄청난 사건도 전혀 알 턱이 없었다.
* * *
리나의 도움을 받아 그나마 사람들이 적은 길을 통해 움직였다.
그래 봤자, 여기저기 사람들이 밟히고, 깔릴 만큼이라 딱히 의미는 없어 보였다.
“그새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축제를 구경하러 온 이들은 정말로 많았다.
외부인과 내부인의 구분도 어렵지 않았다.
남자들이야 죄다 외부인일 테니 패스.
여자들도 얼굴이나 몸매 등의 외모를 따져 가려낸다면 95% 이상의 확률로 외부인을 찾아낼 수 있을 듯했다.
‘확실히 발키리들이 예쁘긴 하네.’
단 몇 시간 만에 질려 버렸던 발키리들의 외모와 환상이 다시금 일깨워지는 기분이었다.
이 또한, 살짝이 미련과 아쉬움을 남기는 일이 되었지만, 어차피 도움이 될 것도 아니었고, 다음번에 또 기회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탈탈 털어 내 버렸다.
게다가 내 곁에는 진짜 발키리… 아직 덜 컸다는 게 좀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리지널인 리나가 있으니, 어느 정도의 만족스러움도 있었다.
‘그나저나 얘는 언제 크려나?’
리나의 성장…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됨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그 부분도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그렇게 되면 훨씬 더 좋은 일이겠지만, 그 부분은 좀 욕심을 내려놔야 할 듯싶었다.
왜냐고?
얘들… 오식이나 린, 왕울이는 나이를 안 먹는 듯했으니까.
오식이와 함께 한 지가 3년이 넘었다.
린과도 벌써 2년이나 됐다.
그런데, 녀석들은 나와 처음 만났을 때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물론, 오식이는 진화를 통해 크나큰 변화가 있었고, 린도 이전보다 훨씬 세련되어진 게 사실이지만, 기본 바탕 자체가 변함이 없었다.
뭐, 몇 년 사이에 나이를 먹고, 안 먹고의 차이를 격하게 느끼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
선천적으로 티가 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이라도 그런 기미나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물며, 나는 그동안에 개고생을 하도 많이 해서인지 아니면 세월과 시간을 비켜 갈 수 없어서인지, 피부도 예전 같지 않았고, 몸도 하루가 다름을 느끼고 있었다.
고작해야 이제 28살밖에 먹지 않은 젊은 놈이 별소리를 다 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나이를 먹고 있음을 여실하게 체감하고 있다는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녀석들은 시간이 지나도 노화되거나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았고, 리나 또한 그럴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해서, 내가 말한 리나의 성장은 레벨 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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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리나
타입: 인간형
속성: 무
레벨: 15
견습 발키리.
좋아하는 것: 수련, 강함, 명예, 인정.
싫어하는 것: 치욕, 굴욕, 패배.
스킬: 검술의 기초.
호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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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의 프로필이었다.
딱히 볼 것 없는… 평범보다 아래인 수준의 것이었다.
이 중에서 내가 신경을 쓰고, 눈여겨본 것은 리나의 레벨이었다.
현재 레벨이 15라는 것은 리나의 최종 레벨이 30이라는 말과 같았다.
나와 서약을 맺으면 최종 레벨의 1/2에서 시작을 하니 말이다.
겨우 30레벨이었다.
65레벨인 나나 오식이, 린과 비교하면 만렙을 찍어봤자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물며, 45레벨인 왕울이랑 비교해도 한참이나 모자랐다.
막말로 얘기해서 전혀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오히려 짐이 될 가능성이 차고 넘칠 만큼 큰 수준이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진화.
오식이도 그랬고, 린이 그랬던 것처럼, 진화를 하면 지금의 레벨이 몇이건, 최종 레벨이 겨우 30이건 간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최종 레벨이 30인 게 좋기도 했다.
그만큼 금방 진화의 준비 단계에 오를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진화를 하면 나이도 먹을지 몰라.’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오식이처럼 아예 모습이 변화한다면 말이다.
물론, 지금도 예쁘고, 귀엽지만, 성인이 되면 훨씬 더 예뻐질 게 분명했다.
‘그래, 얼른얼른 크자. 아주 그냥 광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초고속 버스를 태워 주마!’
뭐, 나 때야 진심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이제 30레벨을 찍는 것은 우습지도 않을 일이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만이라는 게 또 문제였다.
앞서, 너무나 쉽게 말했지만, 진화란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나도 알고, 그대들도 알지 않은가.
진화를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일지 전혀 모르니, 그것을 찾고 준비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지금부터 걱정이었다.
더불어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에 이르려면 그 뒤로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후아아아….”
생각만으로도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아니, 분명히 이곳에 또 와야 할 거야!’
오식이도 그랬고, 린도 그랬다.
왕울이도 그래야 할 거라 예상했고, 언제가 될지는 아직 정해 놓지 않았지만, 이미 진작부터 일정을 생각해 놓기는 한 상태였다.
진화에 필요한 것과 실마리 등을 얻기 위해서는 해당 녀석의 서식지나 연관된 장소 등이 필수였으니까.
‘에휴, 복잡하다.’
생각이 거듭될수록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세차게 머리를 흔들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은 이곳을 한시라도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
얼마 뒤.
처음 발할라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넘었던 거대한 문을 통과했다.
우리와 반대로 거대한 문을 통과해 발할라 안으로 들어가려 꾸역꾸역 모여드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많기도 하네.’
거대한 문을 정면으로 보고 다가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좌우에서 꺾어지듯 오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이동했다.
“주인님, 이쪽으로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린이 거대한 문의 반대편을 가리키며 물었다.
원래는 그쪽으로 가야 하는 게 옳았다.
그쪽이 우리가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아니! 이쪽이다.”
고개를 가로젓고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쪽으로 가는 이유가 궁금하지?”
“네.”
린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금 피식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