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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220화 (220/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20)

앞뒤를 다 잘라 낸 지극히 짧은 물음이었다.

하지만, 앞선 상황들로 인해 소녀가 내게 무엇을 묻고 있는지 바로 파악이 됐다.

더불어 그 짧은 물음 속에는 온갖 것의 감정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고, 말투에서 모자라게 느껴지는 감정들은 소녀의 싸늘하고, 무표정한 얼굴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해서,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거나 거짓을 고한다면 정말로 큰일을 치르게 될 것 같았다.

“아, 아니….”

긴장한 탓일까?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약간의 ‘삑사리’도 났다.

사실이기는 했지만, 소녀가 듣기에 썩 와닿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헛기침과 함께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다시 말했다.

“흠흠! 안 봤어, 절대로! 맹세해!”

맹세 뒤로 ‘그리고 그거 봐서 뭐하게?’라는 말을 덧붙이려다가는 참았다.

쓸데없는 사족을 붙이지 않은 것도 그렇고, 상처를 살피지 않는 것도 참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

소녀가 말없이 내 얼굴과 표정을 진중하게 살폈다.

전혀 찔리는 게 없으니 당당하게 소녀와 눈을 맞췄다.

한참이 지나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일단은 내 말을 믿어 준 듯했다.

분위기도 살짝 풀어진 느낌이라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좀 일어나도 될까?”

실수였다.

아직 때가 일렀던 모양이다.

처억!

소녀가 들고 있던 아수라 스워드를 고쳐 잡으며 내 목에 바짝 들이댔다.

다소 느슨해졌던 긴장감이 확 일어났다.

“움직이지 말랬잖아!”

“아, 미, 미안….”

사과와 함께 바닥에 붙은 몸을 더욱더 바짝 붙였다.

속으로는 성급했던 나를 질책했다.

또다시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잠시 후, 이번에도 소녀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어찌 됐건 이제 끝을 봐야지?”

소녀의 말에 당황했다.

그리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이런 터무니 없는 결과까지 예상한 건 아니었다.

흥분 지수가 훅하고 치솟았고, 곧장 억울함을 토해 냈다.

“뭐야? 이런 게 어딨어? 기껏 다 죽어 가는 거 살려 놨더니만, 뭐? 끝장을 보자고?”

속사포처럼 쏟아 낸 내 항변에 소녀도 지지 않았다.

“누가 살려 달라고 했어? 그리고 나도 너 살려 줬거든?”

“뭐? 언제? 네가 나를 언제 살렸는데?”

“네가 잠든 사이에! 그때 그냥 죽여 버리려다가 참았거든?”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까지 막혔다.

정말이지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었다.

“와,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억울함과 기막힘을 토해 내며 기회를 살폈다.

그래도 좀 찔리는 게 있었는지 소녀가 살짝 반응을 보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서 옆으로 뻗어 있던 팔을 힘껏 아래로 내리쳤다.

소녀의 발목을 노린 것이었다.

퍼억!

흔들!

소녀의 몸이 휘청였다.

작전이 성공한 듯싶었다.

아니었다.

“이잇!”

소녀가 이를 악문 소리를 뱉어 내며 휘청이는 몸을 비틀었다.

내 목을 겨누고 있던 아수라 스워드가 잠시 목표를 잃었다.

위기를 벗어날 찬스나 타이밍이었지만, 그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거의 찰나나 다름없던 기회가 지나가고, 다시 아수라 스워드가 내 목 위로 겨눠졌다.

아니, 내 목 위를 검 끝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이는 마치, 갑자기 튀어 오른 목검의 파편에 눈을 다치며, 내가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던 것처럼, 소녀도 휘청이는 제 몸을 가누다가 저도 모르게 검을 휘두른 것과 같았다.

스스슷….

“크읏!”

따끔함을 동반한 싸늘함….

뭐, 그보다는 본능과도 같은 움직임에 손으로 목을 감쌌다.

미끈한 액체가 살짝 만져졌다.

‘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뜨거움과 그 양을 더해 가는 미끈한 액체에 생각이 바뀌었다.

목을 감쌌던 손을 들어 눈으로 확인했다.

새빨간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다시금 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새 흘러나온 양이 더 많아져 있었다.

‘젠장….’

속으로 쓴소리를 뱉어 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며 또 다행이었다.

피가 배어 나오고는 있어도 목은 온전하게 붙어 있었으니까.

정말이지 아슬아슬하고, 간당간당한 스침… 진심, 몇 밀리미터만 더 깊었어도 돌이킬 수 없는 대형 사고가 터졌을 게 분명했다.

갑작스러운 내 기습에 휘청이며 저도 모를 짓을 저지른 소녀가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는 나를 내려다봤다.

돌아가는 상황에 잠시 동요하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아니, 훨씬 더 기고만장해진 듯했다.

“후훗! 드디어 네놈의 피를 보는구나! 맛이 어떠냐?”

그런 소녀를 어이없이 쳐다봤다.

절대로 자신의 실력으로 나를 어찌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비슷한 상황에서 나는 사과라도 했지….

“후우우….”

침착함을 찾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목이 부풀면서 따끔함이 일었다.

한쪽 눈썹이 절로 꿈틀거렸다.

찾아오던 침착함이 살짝 흐트러졌다.

스윽….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목의 따끔함을 예상한 채, 조심스럽지만 더 큰 심호흡을 이어 갔다.

잡생각 따위는 모두 다 버리고, 오로지 평온함과 평정심만을 도모했다.

그때였다.

모두 비워 낸 머릿속과 눈을 감아 시커먼 시야의 경계(?)쯤에서 붉은색 점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 밝거나 선명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착시나 어떤 잔상의 일부라고도 여겼다.

‘뭐지?’

의문과 동시에 붉은색 점이 천천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사라지기 전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진해진 느낌이기도 했다.

어쨌든, 붉은색 점이 그 속도를 빨리하며 점멸하기 시작했다.

깜빡… 깜빡… 깜빡깜빡… 깜빡깜빡깜빡….

딱히 어떤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점멸의 속도에 맞춰 삐빗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삐빗!

삐빗!

삐비빗!

삐비비빗….

점점 더 가속화되는 점멸 현상과 환청의 사운드가 어느새 최고치에 이르렀다.

색과 밝기도 어느새 또렷함이 들 만큼 확실히 변해 있었다.

그렇게… 여기서 더 빨라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려던 바로 그 순간!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역시나 환청의 사운드와 함께 진하고, 밝게 빛나던 붉은색 점이 사그라들 듯 빠르게 사라져 갔다.

머릿속에 뜻 모를 단어 하나를 남긴 채 말이다.

‘응?’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몸짓에 잠시 나가 있던 정신이 돌아왔다.

천천히 눈을 떴다.

나를 내려다보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기도는 끝났냐?”

소녀의 물음에는 빈정거림이 가득했다.

그러나 별다른 동요가 일지 않았다.

그냥 차분했고, 평온했다.

“그럼, 이제 죽어라!”

소녀가 거꾸로 잡은 아수라 스워드를 높이 쳐들었다.

그대로 내 가슴을 향해 내리찍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역시나 어설퍼….’

한쪽 눈이 좀 불편하고, 목을 살짝 긁힌 것뿐이었다.

바닥에 누워 있는 자세가 조금 그렇기는 했지만, 팔과 다리는 물론, 몸을 움직이는 것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더군다나 실력의 격차도 확연하게 티가 날 정도로 큰 상태.

그런 상대를 앞에 두고서 이토록 큰 동작을 취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막말로 발목부터 시작해 목 아래에 이르기까지 얼핏 보고 찾아낸 빈틈만 열 군데가 넘었다.

당장에 몸을 움직여 어떤 액션을 취한다면 상황을 바로 역전 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자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은 느낌?

아니, 쓸데없이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마음이랄까?

나름의 고질병 같은 귀차니즘이나 포기 같은 게 아니었다.

당장에 닥친 상황에서 이런다는 게 나도 좀 이상했지만, 그냥 좀 여유로웠고, 느긋할 뿐이었다.

꽈아아악!

소녀가 팔을 최대한 높게 쳐든 채, 아수라 스워드를 붙잡은 손에 힘을 줬다.

이어, 내 얼굴을 한 번 힐끔거리고는 이내 검으로 내리찍을 목표인 내 가슴께에 시선을 고정했다.

“잘 가라….”

소녀가 나지막한 끝인사를 흘렸다.

그와 동시에 내 입에서도 혼잣말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직전, 점멸하던 붉은색 점이 사라지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뜻 모를 바로 그 단어였다.

“%&@….”

뜻 모를 단어를 뱉어 내자마자 몸에서 무언가 훅하고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커다란 물주머니의 아랫부분이 찢기거나 터지며, 그 안에 가득 차 있던 물이 좍하고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로 인해 빵빵했던 물주머니가 아래로 푹 꺼지는 것처럼 내 몸도 묵직하게 바닥으로 눌어붙는 듯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내 몸에서 훅하고 빠져나간 무언가는 느낌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려 주듯 내 몸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세찬 바람을 일으켜 주변의 것들을 날리고, 밀어내듯이 말이다.

만약, 붉은색으로 변한 교감의 공간에 먼지 같은 게 쌓여 있었다면, 조금 더 시각적인 효과가 크지 않았을까 싶었다.

뭐, 먼지 대신에 날려 버리거나 반응을 확인할 것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으읏!”

갑자기 불어닥친 거센 바람에 이제 막 내 가슴에 아수라 스워드를 박아 넣으려던 소녀가 휘청거렸다.

그러다가 급기야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기도 했다.

그만큼 내 몸에서 빠져나가 바람으로 변한 무언가의 힘은 강렬한 것이었다.

“이이잇!”

소녀가 양팔로 얼굴 앞을 막아선 채 자세를 한껏 낮추고는 자신을 힘껏 밀어내고 있는 거센 바람에 맞서느라 안간힘을 썼다.

그런 소녀를 주시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스으윽….

완전히 일어나 똑바로 선 채 자세를 잡았다.

여전히 날아드는 바람에 맞서 안간힘을 써 내는 소녀를 향해 마주 섰다.

그러고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스윽….

그러자 그에 맞춰 내 몸 주위로 퍼지며 거세게 불던 바람이 한곳으로 빠르게 모여들었다.

슈하아아아아악!

그 모습이 마치, 회오리바람을 연상케 했다.

보통 바람이란 것은 형체도 없고, 색도 없다.

하지만, 주변의 먼지나 기타의 것이 흩날리는 모습으로 대강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앞서 말한 회오리바람이 그런 예였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 교감의 공간에는 쌓여 있는 먼지 같은 게 없었다.

뭐, 아예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눈에 확 띌 만큼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 몸에서 빠져나가 거센 바람으로 변하고, 이제 막 한곳으로 모여들어 하나의 회오리바람처럼 변해 버린 바람은 어떤 색이나 형태를 가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바람은 분명히 색과 형태란 걸 가지고 있었다.

처음… 그러니까, 내 몸 주변에서 격하게 퍼져 나가며, 소녀의 몸을 뒤로 밀고, 막아낸 바람을 봤을 때는 그저 착시나 착각, 선입견 등으로 그렇게 보이는 줄만 알았다.

아주아주 옅은 색이었지만, 바람에 회색의 빛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손짓에 맞춰 한곳으로 모여들고, 이내 소녀와 나 사이에서 미친 듯이 돌고 있는 회오리바람을 보고 있자니, 그것이 내 착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눈앞에서 돌고 있는 회오리바람이 만화나 영화 등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분명하고, 또렷한 짙은 회색을 띠고 있었거든.

‘흠….’

회오리바람을 주시한 채, 다시금 오른손을 움직였다.

위로 향하고 있던 손바닥을 아래로 뒤집는 간단한 동작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회오리바람이 곧장 반응을 보였다.

슈우우욱….

그리 큰 폭은 아니었던 회오리바람의 둘레가 점점 더 줄어들었다.

마치, 젖은 빨래를 비틀어 짜는 듯한 느낌.

꽈아아악!

빠르게 비틀리고, 폭을 줄이던 회오리바람이 끝내는 멈춰 섰다.

그냥 보기에도 최대한으로 비틀려 더는 꼬아지지 않을 것 같았고, 그로 인해 단단하기가 굉장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색도 좀 더 진해져 있었다.

형태는 5센티미터쯤 되는 지름에 150센티미터쯤 되는 길이의 막대기… 아니, 막대의 양쪽 끝이 뾰족한 것이 ‘창’이라고 하는 게 좀 더 어울릴 듯했다.

둥둥….

제자리에서 회전하던 바람이 창으로 바뀌고는 이제 내 몸 주위를 천천히 맴돌았다.

마치, 나를 지켜 주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단단함도 그랬지만,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도 무척이나 듬직했다.

“…?”

그런 바람의 창을 뚫어지게 보는 소녀의 얼굴도 가관이었다.

무슨 귀신이라도 보고 있는 듯한 얼굴이랄까?

넋을 뺀 소녀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구, 궁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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