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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219화 (219/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19)

“어어….”

당황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쓰러져 있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야, 괘, 괜찮아?”

딱 봐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를 초점 없는 시선과 창백해진 얼굴… 반쯤 벌린 입에서는 곧 끊어질 것 같은 느낌의 신음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꺼어… 끄….”

오른쪽 옆구리부터 시작해 왼쪽 어깨까지 이어진 또렷한 사선의 흔적.

소녀의 몸은 검붉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분수처럼 터지고, 솟아올랐던 피는 일단 멎은 상태였지만, 소녀가 몸을 꿈틀거리거나 들썩일 때마다 조금씩 울컥거리며 흘러나왔다.

“아아….”

눈을 어디에다가 둬야 할지, 손으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안절부절못했다.

실수가 많은 날이었다.

지금의 것도 그랬다.

눈으로 튄 목검의 파편에 나도 모르게 팔과 손을 허우적거렸고, 그것이 공교롭게 소녀를 베고 말았다.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만….

자세나 위치는 물론이고, 아수라 스워드의 예리함과 그냥 허우적거렸을 뿐인 휘두름의 자연스러움이 딱 들어맞아 벌어진 끔찍한 결과였다.

나도 재수가 없었지만, 소녀로서도 참 재수 없는 하루이지 싶었다.

‘아니지… 지금은 그런 변명 따위를 생각할 게 아니야….’

지금 상황에서 전혀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만 떠오름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대로 두면 분명히 죽는다.’

이미 거의 죽었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다.

소녀가 죽게 되면, 제한 시간의 룰이 깨진 교감의 상태 또한 깨질 게 분명했다.

마음을 다잡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망설이며 질질 끌던 상황이 알아서 종료될 터였다.

냉정하게 말해서 내게는 나쁘지 않은 결과이기도 했다.

‘안 돼, 싫어! 살려야 해, 살리고 싶다.’

어떻게든 소녀를 살리고 싶었다.

그 때문에 이 교감의 공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 따위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도 될 일이었다.

‘어쩌지? 어째야 하지?’

심란하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계속 방법을 찾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도무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아, 미치겠네… 뭐라도 좀 생각해 봐, 이 바보 천치야!’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쥐어 박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마침내 방법을 생각해 냈다.

‘아아!’

소녀를 살려야겠다는 생각… 아니, 소녀가 쓰러지며, 피의 분수를 터트렸을 때 바로 떠올렸어도 무방하리만큼의 기본적인 방법이었다.

그런 것을 인제 와서야 떠올리다니, 나는 정말 멍청이였던 모양이었다.

아니, 그만큼 당황하고, 놀랐다는 게 그나마 나를 위한 변명이리라.

어쨌든.

당장에 안주머니에서 회복 물약을 꺼냈다.

‘상처와 회복엔 빨간 약!’이란 광고 문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다치거나 상처를 입었을 때, 회복 물약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꽤 비싼 값에 마음껏 사용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그 맛을 알거나 효과를 본 사람이라면 주저 없이 챙기고, 적절하게 사용한 것이 보통이었다.

뭐, 나나 녀석들도 그 효과를 톡톡히 본 덕에 어디를 가든 무조건 한 병 이상은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런 걸 다 알고, 여분으로 가지고 있기까지 하면서 곧장 생각을 못했으니, 내가 나를 멍청이라 한 것이고 말이다.

‘괜찮아, 이제라도 생각했으면 됐지. 아직 안 늦었어!’

끝까지 나를 위한 옹호와 변명을 하며, 회복 물약을 소녀의 입에 흘려 넣었다.

약간 흘러넘치기는 했지만,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털어 넣었다.

이후, 조용히 경과를 지켜봤다.

….

“흐음….”

한참이 지났지만, 소녀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괜찮아진 듯싶으면서도 어찌 보면 아닌 듯 애매했다.

“상처가 너무 깊은가?”

아무래도 그런 듯싶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었지만, 묘안이라 여겼고, 기대감을 더한 회복 물약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함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소녀를 살리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마음도 커져만 갔다.

‘아니야, 나쁜 생각 하지 말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래! 좀 더 먹여 보자. 그러면 되겠지!’

아직 남은 회복 물약이 더 있었다.

심각한 상처와 비교해 회복 물약이 다소 적었을 거라 위안을 삼으며, 당장에 허리춤에 찬 힙색을 열었다.

지이익….

작은 힙색 안은 잡동사니들로 꽉 차 있었다.

석실에서 챙겨 넣은 금속판이 가장 먼저 보였다.

걸리적거리는 금속판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는 다시 안쪽을 살폈다.

예비로 가지고 다니는 회복 물약이 눈에 들어왔다.

뒤적뒤적….

눈에 들어온 빨간색의 회복 물약을 꺼내는 와중에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헛!”

나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다시 말하지만, 상처와 회복에는 빨간색의 회복 물약이 특효였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좋은 게 있었다.

회복 물약에 살짝이 가려져 있어 곧장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마치 자신을 좀 봐 달라는 듯 반짝이는 노란색의 유리구슬….

그랬다.

바로 생기의 미약이었다.

‘이런 멍청이!’

하나만 알고, 둘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나를 진심으로 꾸짖었다.

그 와중에 슬쩍 하나를 알아낸 것도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미천하기 그지없는 짓일 뿐이었다.

달그락….

손끝에 들려 나오던 회복 물약을 내려놓고, 생기의 미약을 꺼냈다.

이어, 바닥에 내팽개치듯 내려놓은 아수라 스워드에 달걀을 깨듯 생기의 미약을 두드렸다.

톡톡!

둥근 표면에 실금이 갔고, 한 번 더 두드리자 조그마한 구멍이 났다.

이내, 구멍으로 안에 든 노란색 연기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재빨리 소녀의 입으로 가져가 연기가 흘러나오는 쪽을 물려 줬다.

“야! 힘들겠지만, 숨 좀 깊게 들이마셔 봐!”

소녀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알아들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꺽꺽대는 신음과 불규칙한 호흡 속에 노란색의 연기가 그런대로 소녀의 입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건 좀 효과가 있겠지?’

미약의 효과를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할 상황이었고, 기대도 하고 있었다.

이미 효과가 검증된 상태이기도 했다.

꽤 심각했던 오식이의 상처도 눈 깜짝할 새에 치료가 됐으니까.

하지만, 그 때문에 약간의 불안감도 있었다.

누구보다 빠른 회복력을 자랑하는 오식이였다.

웬만한 상처쯤은 그냥 둬도… 막말로 침만 발라도 몇 시간 안에 멀쩡해지는 수준이었다.

또한, 꽤 심각하다고는 했지만, 소녀가 입은 상처와는 차원이 달랐다.

주먹의 살점이 까지고, 피가 나고, 뼈가 살짝 보이는 정도와 몸뚱이가 크게 베어져 분수 피를 쏟고, 피범벅이 된 것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제발, 제발….’

어느새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간절하게 기도까지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10분쯤 흘렀을까?

거의 꺼져 가던 소녀의 호흡과 신음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오오….”

미약의 효과에 감탄했다.

마음 같아서는 사선으로 잘린 보호대 안의 상처를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또다시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꾹 참았다.

그나마 소녀의 꿈틀대고, 들썩이는 몸짓에도 더는 피가 울컥거리지 않는 것이 상처 또한 어느 정도 아물었다는 걸 말해주는 듯해 마음이 놓이기는 했다.

‘아, 다행이다.’

안도와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급히 미간을 좁히며 치솟는 감정을 억눌렀다.

“후우우….”

그제야 긴장도 좀 풀렸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를…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자세를 풀며, 엉덩이를 바닥에 깐 채 편한 자세를 취했다.

“아우, 너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냐?”

소녀를 향해 친근감이 깃든 투덜거림을 날렸다.

속으로는 ‘그래도 살아줘서 고맙다’라고 말해 줬다.

“아차!”

가장 큰 걱정이었던 소녀의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는 것을 확인하니, 그제야 생각난 것이 있었다.

소녀의 심각한 부상만큼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었다.

맞다.

아수라 스워드에 튀어 버린 목검의 파편과 그로 인해 찢긴 왼쪽 눈꺼풀 말이다.

진작부터 눈이 불편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한쪽 눈으로만 봐야 했으니까.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소녀의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끔뻑끔뻑….

일단, 눈을 떴다가 감기를 반복해 봤다.

살짝이 욱신거렸고, 눈꺼풀이 떠지지는 않았다.

뭔가가 눈꺼풀을 꽉 붙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스윽….

눈꺼풀 위를 손끝으로 매만져 봤다.

생각보다 상처의 깊이나 크기가 큰 듯했다.

뭐, 피는 다 말라붙었고, 얇은 딱지까지 생겨난 뒤였다.

‘이것 때문인가?’

말라붙은 피나 딱지 때문에 눈꺼풀이 열리지 않는 듯했다.

달라붙은 피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그냥 닦아 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딱지 때문이라면 상처가 완전히 아물고 딱지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말이지….

“이건 내가 마셔야겠네.”

힙색에 들어 있던 회복 물약을 꺼내 살짝 흔들어 보고는 이내 시원하게 들이켰다.

“으으으….”

어느새 긴장이 완전히 풀렸는지 몸이 나른해졌다.

회복 물약 덕인 것도 같았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듯 아예 바닥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여전히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공간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괜히 심란한 기분이 들어 눈을 감아 버렸다.

그렇게 몇 분쯤이 흘렀을까?

아니, 그보다 더 됐으려나?

뭐가 됐든 간에, 발끝으로 전해지는 툭툭거림에 정신을 차렸다.

‘아, 잠들었었나?’

깜빡하고 잠이 든 것도 알아챘다.

절로 구겨지는 인상에 뻑적지근한 몸을 늘이며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움찔!

잊고 있던 눈꺼풀의 욱신거림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아직도 안 나은 거야?’

생각보다 더딘 회복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나를 소녀가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다 나은….”

기쁜 마음에 말을 건네며,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우려다가 멈췄다.

목에 닿은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의 느낌 때문이었다.

그제야 소녀의 손에 들리고, 내 목에 겨눠진 아수라 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다소 어이없는 상황에 소녀를 빤히 쳐다봤다.

무표정한 소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움직이지 마!”

일단은 소녀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듯싶었다.

표정과 말투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무겁고, 짙은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한참만의 침묵을 깨고서 소녀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소녀의 물음에 잠시 고민했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헛기침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흠흠… 일단, 너를 공격한 것은 실수였어. 미안하다.”

“실수? 넌 실수를 밥 먹듯이 하는구나? 미안하다는 말도 너무 쉽게 하고.”

뭔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을 말하고, 진심을 담아 사과한 것이었지만, 전혀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소녀의 자세도 문제였다.

그에, 가슴이 콱 막히도록 답답함이 생겼지만, 침착하게 말을 이어 갔다.

“쓰러진 너를 그냥 둘 수 없었어. 때마침, 내게 특별한 약이 있어서 널 살릴 수 있었다.”

“이걸 말하는 거냐?”

소녀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 가슴 부근으로 툭 하니 던졌다.

속이 비어 투명해진 생기의 미약이었다.

“어, 맞아. 생기의 미약이라고 하는데… 알지?”

다들 알다시피, 생기의 미약은 계곡의 골렘에게서 얻은 것이었다.

근처라고 하기에는 뭐 한… 아니, 한참을 내달리고, 험한 산도 하나 넘어야 하는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그나마 이곳 발할라에서 가장 가까운 사냥터이기도 했다.

해서, 소녀가 생기의 미약에 대해 알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뭐, 내 착각이었다.

“모른다.”

“아… 상처 치료에 특효약이야.”

멋쩍음에 간략한 설명으로 말을 끝냈다.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한 소녀가 어느새 말라 버린 피로 뒤덮인 제 몸뚱이로 손을 가져갔다.

정확히는 기다란 사선의 흔적을 손으로 천천히 매만졌다.

그러다가 나를 보며 물었다.

“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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