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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218화 (218/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18)

‘조금만 더… 그래, 조금만 더… 아씨,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 거야?’

소녀의 공격을 피하는 건 여전히 어렵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제풀에 팍팍 지쳐 가는 탓에 오히려 더 여유로워졌다.

하지만, 어서 빨리 끝나기를 대놓고 기다리는 시간은 체감상 늦게 흘러가기 마련이었다.

‘아오! 그냥 죽일까?’

인내심이 폭발해 섬뜩한 생각까지 살짝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갔고, 마침내 때가 됨을 알리는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고! 경고!]

[스킬 ‘교감’의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대상(견습 발키리)과의 ‘서약’을 서두르세요.]

신비한 목소리에 촉박과 재촉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안심이 됐다.

살짝이 딴생각을 먹기는 했어도 어쨌든 간에 이루고자 했던 목표… 소녀에게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고, 제한 시간을 모두 보내자는 계획의 달성이 바로 코앞에 와 있었으니까.

‘그래, 이대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돼.’

완벽하고,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때였다.

거친 호흡에 헐떡이던 소녀가 갑자기 허공에 대고 악을 썼다.

“닥쳐어!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뭐가 제한 시간이고, 뭘 서두르라는 거야? 그딴 거 다 필요 없다고오오오오!”

소녀의 악다구니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그와 거의 동시에 영문도 모르겠고, 처음 겪는 현상이 이어졌다.

드드드드드드….

괴상한 소리와 함께 하얀색 공간이 비틀렸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비틀림도 심해졌다.

두두두두두두두….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당황스러움과 의아함이 미친 듯이 전해졌다.

영문 모를 괴현상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엔 더욱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을 연출해 냈다.

두두두두두둣….

쨍그랑… 와장창창!

마치,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하얀색 공간이 산산이 조각나며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화들짝 놀라 주저앉으며 팔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와 동시에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고! 경고!]

분명히 뭐라고 길게 떠들기는 했는데, 난리가 난 상황과 시끄러운 소리에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젠장,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난데없는 상황에 오늘의 일진이 더럽게도 지랄 맞음을 다시 한 번 느껴야 했다.

….

“….”

한참 만에야 요란스러웠던 상황이 끝났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무수히 떨어져 내렸던 하얀색 파편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에….

“워, 이건 또 뭐래?”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낮게 흘렸다.

사방이 온통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던 공간이 붉은색으로 넘실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것으로 변해 버린 탓이었다.

“헐….”

넋이 반쯤 나간 채로 주변을 계속 돌아봤다.

붉은색이 전해 주는 심각함과 살벌함이 스멀스멀 느껴졌다.

그러다가 잠시 잊고 있었던 소녀를 보게 됐다.

소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아! 하아….”

원래도 그랬지만, 뭔가 상당히 체력을 급격하게 소모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설마… 이거… 네가 한 거냐?”

“그렇다.”

소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나 당당하고, 단호해서 아니어도 그런 줄 믿어야 할 것 같았다.

다시 물었다.

“어떻게?”

“뭘 어떻게야? 봤잖아? 자꾸 시끄럽게 머릿속에서 떠들기에 닥치라고 한 거 못 들었어?”

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신비한 목소리의 알림이나 경고음이 소녀에게 들렸다는 건가?

“소리가 들렸어?”

“그래, 들렸다. 머리를 지끈거리게 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고!”

“헐….”

소녀의 대답과 앞선 상황들을 빠르게 조합했다.

얼핏, 돌아가는 상황과 영문을 몰랐던 이유가 밝혀지는 듯했다.

해서, 다른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그럼, 아까… 여기저기 다 깨지고, 떨어지고 할 때 뭐라고 하던 것도 들었어?”

“들었다.”

“그래? 뭐라고 했어?”

다급한 내 반응에 소녀가 잠시 움찔하더니만, 이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러고는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 말했다.

“너 못 들었구나?”

소녀의 반응에 아차 싶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냥 사실대로 대답했다.

“어, 하도 시끄러워서 그만… 그러니 뭐라고 했는지 알려 줄 수 있나?”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럴 이유는 없었다.

뒤바뀐 입장이었다면, 나 역시 말해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중요한 내용이라 나만 아는 비밀로 간직해야 할 수도 있었다.

궁금해하는 상대를 놀려 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귀찮음 때문에라도 분명 입을 다물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 입장이다.

무슨 말이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또한, 지금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힌트가 될 것 같기에 무조건 말을 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잖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좀 알려 주면 안 될까?”

정말로 어이없고, 노력의 흔적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뭐 같은 말이었다.

만약에 내가 소녀의 입장에서 이런 말을 들었더라면, 대답 대신에 지랄하지 말라며 쌍욕을 날려 줬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소녀는 내가 아니었다.

잠시 고민을 하듯 고개를 갸웃하더니만, 순순히 신비한 목소리가 했던 말을 전해 줬다.

“헐….”

소녀의 말을 듣고는 충격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녀의 말대로라면, 지금 나는… 아니, 우리는 엄청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교감의 제한 시간은 대략 10분에서 20분 사이다.

정확한 시간은 재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대충 그 정도였다.

그 시간 안에 서약을 맺든가 아니면, 제한 시간이 끝나고 페널티를 받든가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제한 시간의 룰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소란 중에 떠들어 댄 신비한 목소리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에이, 그럴 리가….’

솔직히 믿기 어려운 얘기였다.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나 전혀 거짓말을 할 것 같지 않은 소녀의 이미지, 더불어 너무나 진실처럼 말하는 모습에 자신 있게 아니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교감의 제한 시간을 알리는 신비한 목소리의 알림에 소녀는 닥치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댔다.

그에 반응하듯 갑자기 하얀색 공간이 깨지며, 지금의 붉은색 공간으로 변했다.

무조건 아니라고 하기에는 명분이나 이유의 아귀가 딱딱 들어맞았고, 사태의 심각성에 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반면, 소녀는 아주 신이 난 듯했다.

거칠었던 호흡도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고, 충분한 휴식도 취한 탓에 몸도 다시 가벼워져 있었다.

게다가 주어진 상황도 제가 원하던 것과 맞아떨어진 상태일 터.

“이제는 둘 중 하나가 끝장이 나야만 끝나는 거 알지?”

그랬다.

뭐가 됐든 끝장을 봐야 할 상황이었다.

소녀가 기대하는 끝과 내가 생각하는 끝의 결과가 완전히 반대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고, 그 때문에 내가 고민하고, 주저해야 한다는 상황이 지랄 같을 뿐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잔말 말고 검을 뽑아!”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자신감과 기고만장인 소녀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후우우… 왜 나랑 자꾸만 싸우려 들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당연히 네가 나를 욕보였으니까 그렇지!”

“아아, 그거… 그건 정말 실수였어. 미안해, 다시 한 번 사과할게.”

“닥쳐! 실수든 뭐든 상관없다! 난 널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소녀는 여전히 막무가내였다.

뭐, 그런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솔직히 이제는 저도 알 것 같은데, 이렇게 고집을 부린다는 건 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야야, 딱 봐도 모르겠냐? 넌 나 못 이겨. 너도 알 거 아냐?”

“시끄러워!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거야!”

“이미 충분히 대 봤거든? 어느 쪽인 긴지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거잖아?”

“이잇….”

소녀의 말문이 막혔다.

저도 인정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뭔가 먹힌 기분이라 조금 더 몰아붙였다.

“내가 진짜로 하면, 넌 크게 다칠 거야. 까딱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목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네놈에게 당한 치욕과 지금의 능욕이 내게는 더 크다!”

젠장,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소녀가 목검을 힘껏 틀어쥐고는 다시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오오, 미치겠네!’

속으로 짜증을 내며 소녀의 공격을 피했다.

몇 번쯤 피하다가 끝내 고민의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어쩔 수 없지.’

뒤로 크게 점프해 소녀와의 거리를 벌렸다.

이어, 허리춤에 찬 아수라 스워드를 뽑아 들었다.

스르릉….

그 보습을 본 소녀가 자신의 목검을 꼬나쥐며 히죽 웃었다.

“훗! 이제야 제대로 할 마음이 생겼나 보지?”

주제도 모른 채, 가당치도 않은 말을 지껄이는 소녀를 보며 안색을 바꿨다.

“오냐, 네 소원대로 해 주마. 하지만, 그 소원이 해피 엔딩일 거라는 기대는 마!”

….

소녀가 원하는 대로 해 줄 것이며, 빨리 이 지랄 같은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으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나와 소녀의 실력과 격차는 너무나 컸다.

결과 또한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하지만, 몇십 차례의 공방을 이어 나가도록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시간으로 따진다면, 아마 10여 분쯤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젠장, 미치겠네….’

빨리 이 상황을 끝내겠다고 마음먹기 전이나 후나, ‘미치겠네!’를 되뇌며 고민하고, 망설였다.

뭣도 모르고 불나방처럼 달려만 드는 소녀의 모습이 하도 어이가 없고, 안타까워서….

다름 아닌 소녀가… 한때, 누구보다 사랑하고, 애절했던 첫사랑이자, 그토록 만나고 싶어 간절하게 기대했던 발키리였으니까.

앞서 몇 번이나 말했던 고의 아닌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혹시나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내가 피라미드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소녀를 만날 일도, 실수를 할 일도, 상처를 입히거나 목숨을 빼앗아야 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

이런저런 것들이 굳게 다잡은 마음을 흔들어 놨다.

멍청하고, 어리석으며, 고구마를 억지로 목구멍에 처넣는 짓이라 욕해도 할 말이 없었다.

나조차도 내가 왜 이러나 싶을 만큼 짜증이 났다.

그러다 결국엔 사건이 터졌다.

“이야아압!”

거친 기합과 함께 소녀가 목검을 크게 휘둘렀다.

빈틈이 하도 많아 어떤 공격을 해도 먹혀들 찬스다.

하지만, 이제껏 하던 대로 아수라 스워드를 살짝 눕혀 검을 흘리듯 막아냈다.

이어서는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릴 생각이었다.

드르르릇….

철과 나무가 부딪치고, 긁히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지금껏 몇 번이나 들었던 소리였고, 겪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끝이 조금 달랐다.

드듯!

피이잇!

미끄러지듯 아수라 스워드를 긁고 흐르던 소녀의 목검이 어딘가 걸린 것처럼 멈칫하다가 이내 다시 흘러내렸다.

그 순간, 손톱만 한 파편이 튀어 올랐다.

목검의 내구도가 한계에 이르렀거나 아수라 스워드의 검 날에 그리됐지 싶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갑작스레 튄 파편이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는 것이었다.

‘…?!’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제대로 피할 새가 없었다는 소리다.

억지로 고개를 틀었고, 본능적으로 눈을 감는 게 다였다.

스칫!

따끔함이 왼쪽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팔을 들어 올렸다.

촤아아아악!

아수라 스워드를 들고 있던 손에 익숙하면서도 묵직한 손맛이 전해졌다.

“…?!”

감았던 눈을 뜨며 고개를 쳐들었다.

따끔함을 넘어선 욱신거림이 느껴졌고, 한쪽 눈밖에 떠지지 않았다.

그마저도 흐릿했다.

흐릿한 시야에 안 그래도 큰 눈을 더욱더 크게 뜬 소녀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게 들어왔다.

‘얘가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든 순간, 소녀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터억….

촤아아악!

사선으로 잘린 보호대 안에서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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