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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217화 (217/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17)

이상하게 꼬여 가는 상황과 난데없는 교감의 빛.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빠른 판단으로 소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당장에 소녀가 상체를 격하게 움직여 내 손을 털어 내려 했다.

그러나 내 쪽이 조금 더 빨랐다.

집중과 함께 머릿속으로 교감의 스킬을 떠올렸다.

‘교감!’

….

잠시 멍해졌던 정신이 돌아왔다.

언제 감았는지 모를 눈을 천천히 떴다.

사방이 하얀색으로 도배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소 다급한 상황이었는데, 제대로 교감 스킬이 발동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그나저나 오랜만이군.”

왕울이와 서약을 맺은 것을 끝으로 처음 들어서는 교감의 공간이었다.

그리움 따위가 있을 리도 없지만, 그렇다고 어색하거나 불편한 느낌도 없었다.

저주받은 저택 던전을 클리어한 직후, 50레벨을 찍음과 동시에 교감 스킬의 봉인된 옵션이 해제됐었다.

그에, 강제적으로 진행되던 교감을 수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교감 스킬에는 발동 조건이란 게 있었다.

우선, 자동으로 진행되는 교감은 나와 파장이 95% 이상 맞아떨어져야 했다.

제한 자체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꽤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알아서 발동됐다.

반면, 수동의 교감은 50% 이상 파장이 일치해야 했고, 거리 제한도 50센티미터 한도였다.

또한, 직접 상대의 몸을 터치한 상태에서만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자동으로 교감이 진행되던 때에는 딱히 특별하다고 할 만한 전조 증상이 없었다.

그러나 수동으로 바꾼 뒤에는 나와 파장이 맞는 괴물들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직전에 소녀의 몸에서 난데없이 빛이 흘러나온 것처럼 말이다.

그동안, 이와 같은 현상을 꽤 여러 번 목격했다.

하지만, 그냥 무시하고 외면했다.

왜?

동료로 받아들여 같이하고 싶다거나 부하로 여기며 부릴 놈들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샌드 웜이나 자이언트 샌드 웜은 물론, 사마귀 같은 놈들을 데리고 다니기는 아무래도 뭣 하지 않을까?

게다가 교감을 통해 서약을 맺게 되면, 자동으로 경험치를 공유해야 하는데, 딱히 도움도 되지 않는 놈들이 대부분이라 굳이 동료로 삼을 필요가 없었다.

“흠….”

나와 마주한 소녀를 찬찬히 살폈다.

그 난리 통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외모라고 여겼는데,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니 훨씬 더 예쁘게 생겼다.

하긴, 발할라에서 본 여자들치고 예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나이는 아무리 많게 잡아도 17세를 넘지 않을 것 같았다.

풍성한 금발에 새하얀 피부가 이국적이면서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사슴같이 커다란 눈에 앙증맞은 코와 입술의 조화도 훌륭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눈길을 끄는 것은 소녀의 눈동자였다.

소녀의 티 없이 맑은 하늘빛 눈동자는 들여다볼수록 신비함을 더해 주고, 혹여 정신을 놨다가는 이내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키는 확실히 린보다 작아 보였다.

그러니 160센티미터는 넘지 않을 게 확실했다.

몸매는 왜소했다.

거의 일자 수준이라고 봐야 했다.

뭐, 보기에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살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살짝이 안쓰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착용하고 있는 의상과 행색은 앞서 커다란 공터에서 봤던 소녀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입고 있는 전투 타이츠처럼 몸에 쫙 달라붙는 얇은 소재의 옷을 베이스로 입고, 천과 솜을 덧대어 만든 하급의 경량급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솔직히 갑옷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뭐 했고, 그냥 보호대 정도로 부르는 게 더 정확할 듯했다.

또한, 허리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목검도 하나 매달려 있었다.

보호대와 목검이 꽤 닳아있는 것이 무진장 열심히 수련을 했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소녀의 몸을 위아래로 찬찬히 훑던 눈길을 한 곳에 고정했다.

별다른 문제나 큰 난리 없이 넘어갈 수 있었던 상황을 어쩌다 보니 극으로 몰고 간 원인…. 소녀의 가슴을 향해서였다.

난리 통에 실수로 소녀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이다.

해서, 오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진심으로 내 모든 것을 걸고서 말하는데, 진정한 실수였고, 그 어떤 노림수 또한 일절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억울함이 있었다.

반면, 소녀의 입장도 이해는 됐다.

오해였고, 실수였다지만, 생판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소중한 가슴을 터치했으니, 당연히 난리를 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소녀의 입장은 소녀가 알아서 어필해야 할 일이다.

나는 내 억울함만 토로하면 될 일이고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사실, 소녀의 가슴은 빈약했다.

딱 봐도 그래 보였고, 자세히 살펴도 그랬다.

막말로 ‘아스팔트 위의 껌딱지!’라 말해도 누구 하나 태클을 걸 사람이 없을 터였다.

더한 막말을 던져 보자면, 이건 뭐 만져도 티가 나지 않을… 읍읍!

“후우우….”

뭐, 몸에 쫙 달라붙는 타이츠 형태의 옷과 단단히 동여맨 보호대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절대로 아니었다.

없다.

결단코, 없다!

‘앗! 그러고 보니….’

만져도 티가 나네, 안 나네 하면서 막말을 던지기는 했지만, 솔직히 감각이 살아 있는 손바닥이 닿았는데, 어떤 느낌도 나지 않았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정신없고, 당황스러운 상황이라 정확지는 않지만, 그 순간에 뭔가 물ㅋ… 아니, 푹신한 느낌은 있었다.

그 때문에 당장 사과했고, 미안한 마음을 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까, 나의 사과는 성급했고, 미안한 마음도 크게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 순간에 내 손바닥으로 전해진 느낌의 정체는 소녀의 가슴이 아니라, 솜이 채워진 보호대의 촉감이었을 가능성이 100%… 아무리 낮게 잡아도 98%쯤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물컹이 아니라 푹신이었지!’

내 일이나 입장에서가 아니라 사실이 그래 보였다.

그렇다 보니, 더욱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앞서도 말했던 소녀의 입장에서 본다거나,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미성년자 추행 등을 걸고넘어진다면, 무조건 내 잘못이긴 했다.

그러나 이곳은 던전 안의 세계다.

더불어 엄밀하고 정확히 따진다면, 소녀는 인간이 아닌 괴물로 분류해야 한다.

지구에서는 범죄자나 쓰레기로 불린다 해도 딱히 할 말이 없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나름의 변명이나 하소연도 충분히 먹힐 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 더 당당하고, 억울한 게 옳았다.

그나저나….

오늘은 왜 이렇게 가슴에 관한 일들이 많은 걸까?

누님의 다이너마이트 급 보디로 인해 그림자 숨기기가 해제될 뻔한 것도 그렇고, 사각기둥을 작동시키는 열쇠로 린의 가슴을 이용한 것도 그렇고 말이다.

“췟! 별스러운 날이군… 그렇다고는 해도 넌 끼어들 틈이 없어. 그러기에 솔직히 너무 부족하잖아? 이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아니, 납작 가슴아!”

투덜대며 막말을 작렬했다.

뭐, 억울함에 좀 들으라고 한 말이기는 하지만, 넋이 나간 듯이 마네킹처럼 서 있는 소녀였기에 큰 문제나 어떤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꿈틀!

소녀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순간, 나도 움찔했다.

사아악….

소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딱 봐도 열이 받은… 분명히 내 말을 듣고 화가 난 게 분명해 보였다.

더욱더 놀라운 일이 바로 이어졌다.

처억!

소녀가 허리춤에 찬 목검을 잡았다.

당연히 이내 빼 들기도 했다.

뭉툭하게 닳은 검 끝이 나를 향해 똑바로 겨눠졌다.

소녀의 입술이 움직이며, 살벌함 가득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인다.”

진짜로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반 발자국쯤 뒤로 물러나기도 했다.

당황스러움도 더해져 뭐를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나를 향해 소녀가 달려들었다.

“이야압!”

제법 단단한 기합 소리를 내며, 손에 든 목검을 냅다 휘둘렀다.

휘이익!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살짝 늦게 떠올랐다.

하지만, 몸이 본능적으로 소녀의 목검을 피했다.

“감히, 내 검을 피해? 이얍! 이야압! 합!”

약이 오른 소녀의 거침없는 공격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이미 정신을 차린 터라 충분한 여유를 갖고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허, 이게 뭔 일이래?’

황당함의 연속이었다.

지금껏 이런 일은 없었다.

좋아하는 것을 준다거나 원하는 어떤 것을 들어준 적은 있지만, 다짜고짜… 뭐, 내가 그렇게 만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죽이겠다며 달려든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아! 하아… 피, 피하지만 말고, 너도 덤벼!”

혼자서 공격을 이어 가던 소녀는 제풀에 지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게 소리쳤다.

그에, ‘그 실력으로 감당이 되겠냐?’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애써 잘 참아 냈다.

상황이나 소녀의 성향으로 봤을 때, 그런 이죽거림은 더 큰 화로 날아들 게 분명했다.

어쨌든, 잠시 소강상태인 듯해서 분위기를 바꿀 의도로 말을 건넸다.

“이봐, 갑자기 왜 이래? 우리 지성인답게 말로 하면 안 될까?”

나름 다독이는 말투와 얼굴에 미소까지 그리며 말했다.

하지만, 화가 덜 풀린 것인지, 오히려 역효과가 난 듯했다.

“갑자기 왜 이러냐고? 네놈이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에… 그러니까 그게….”

이유를 알지만, 선뜻 입 밖으로 뱉어 내기가 뭐 했다.

이건 뭐, 당당히 말을 하면 긁어 부스럼이 될 듯했고,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난감한 그런 상황이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젠장!’

나도 모르게 입술을 삐죽였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소녀의 입장은 완고했다.

“딴소리 말고, 어서 검을 뽑아라!”

“꼭 이래야만 하겠어?”

어떻게든 회유하고, 상황과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소녀는 막무가내였다.

“닥쳐! 긴말은 필요 없다!”

쉴 만큼 쉰 것인지, 소녀가 또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그래 봤자, 어설픈 실력이라 턱도 없는 공격일 뿐이었다.

‘하, 난감하네….’

계속 피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곧 교감의 제한 시간도 다가올 터였다.

걱정을 끝내기가 무섭게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고!]

[스킬 ‘교감’의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대상(수습 발키리)과의 ‘서약’을 서두르세요.]

상황이 더욱더 난감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교감의 제한 시간이 그냥 끝날 게 분명했다.

서약에 관한 어떠한 딜도 해 보지 못하고서 말이다.

무척이나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상황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는 했다.

서약을 맺지 못한 채 교감이 끝나 버리면 페널티를 받게 된다.

하얀색 공간을 빠져나와 현실 세계로 돌아간 직후, 10여 초 간의 경직이 바로 그것이었다.

뭐, 평소라면 이 부분 또한 문제가 되고 신경이 쓰였겠지만, 지금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소녀의 실력이나 들고 있는 목검 정도라면, 10여 초 동안 내게 심각할 정도의 피해나 대미지를 주기가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게다가 내 곁에는 뒤를 맡겨도 좋을 든든한 녀석들이 포진해 있었다.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당장에 나를 보호하고, 적을 향해 달려들 터였다.

살짝 걱정되는 부분이라면, 린이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해서, 다른 두 녀석이 눈치껏 움직여야 했는데, 눈치라고는 바닥인 오식이와 딱 하고 떠오르는 이미지와 다르게 상당히 수동적인 왕울이라는 게 문제였다.

‘뭐, 알아서들 잘하겠지.’

녀석들을 믿고, 소녀의 어설픈 실력을 믿으며, 결국에는 시간을 흘려보내기로 했다.

보험 삼아, 소녀를 공격해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수도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앞선 내 실수도 있고 해서, 소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고나 할까?

‘앗!’

그런 의미라면, 교감이 끝나고 10초의 경직 시간에 녀석들이 소녀를 공격하는 것도 문제였다.

‘젠장….’

더해진 걱정에 심란해하며 소녀의 공격을 피했다.

더 큰 문제… 놀라운 상황이 바로 앞에 줄줄이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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