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16)
가슴이 뜨거웠다.
팔과 다리는 저릿했다.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호흡은 답답했다.
“일… 형… 죽….”
어디선가…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커다란 울림과 끊이지 않는 메아리가 고막을 괴롭게 했다.
‘수, 숨… 숨 쉬고… 싶어….’
답답한 호흡이 거의 끝에 다다라 있었다.
이대로는 질식사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떻게든 숨을 쉬어야겠다는 마음에 크게 입을 벌렸다.
부우욱!
갑자기 막대한 양의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폐에 다 담지도 못할 만큼이었고, 순식간에 풍선처럼 몸뚱이가 부푸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더욱더 답답하고 괴로운 탓에 몸부림을 쳤다.
“커, 컥… 커커컥… 커허어억….”
그 순간, 묵직한 무언가가 잔뜩 부푼 내 몸뚱이를 짓눌렀다.
그에, 폐 속에 한계를 넘어 차 있던 공기가 강제로 빠져나갔다.
“푸하아아악!”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고 있던 눈도 떴다.
아니,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켜 세운 게 먼저였나?
뭐가 됐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에 들어오는 주변 상황을 인지하려 애를 썼다.
“허억! 허억! 허억….”
오식이가 가장 먼저 보였다.
왕울이도 보였고, 린도 보였다.
다들 심각할 정도로 울상이 되어 있었다.
“괜찮냐, 형님?”
오식이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가슴에 가져다 댔다.
2초쯤 지나, 붉은빛의 구에 내 가슴이 뚫렸었다는 걸 떠올렸다.
가슴에 가져다 댄 손을 문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슴은 멀쩡했다.
‘뭐지?’
의아함이 들었다.
급히 고개를 들고는 내게 달려들었던 붉은빛의 구를 찾았다.
다시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뭐야? 내가 왜 여기 있지?’
나는 분명히 다섯 개의 붉은빛 구 중에서 첫 번째… 가장 왼쪽에 있는 사각기둥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와 녀석들이 모여 있는 곳은 중앙의 사각기둥 근처였다.
거리상으로 따진다면 10미터도 더 떨어진 곳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린에게 물었다.
린은 오식이를 쳐다봤다.
고개를 돌려 오식이를 봤다.
머뭇거리던 녀석이 띄엄띄엄 말했다.
손짓과 발짓은 물론, 격앙된 투까지 선보였다.
“형님, 부웅 날았다… 콰당했다… 형님, 번쩍했다… 눈 또 아팠다… 형님, 죽었다… 나 슬펐다….”
“오식 씨,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하세요.”
린이 오식이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녀석의 상태는 점점 더 심해졌다.
짧게 한숨을 내쉰 린이 대신 말했다.
“휴우…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땐, 오식 씨와 왕울 씨가 주인님 곁에서 안절부절못하고 계셨어요. 심각성을 느끼고 다가갔더니, 주인님이 숨도 쉬지 못하고 쓰러져 계셨죠.”
“흠….”
“일단은 숨을 쉬도록 해야 했기에 오식 씨보고 주인님 입에다가 숨을 불어 넣어 달라 했어요. 그랬더니, 주인님 배가 이만큼 부풀더라고요.”
린이 조금은 과장된 몸짓으로 양팔을 들어 배가 부푼 모양을 흉내 내고는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배가 부풀기만 하고 다시 꺼지지 않기에 오식 씨보고 눌러보라 했어요. 그러자 다행히 주인님이 숨을 쉬셨고, 정신을 차리셨어요.”
들어 보니, 참으로 적절한 조치를 한 것 같았다.
알지도 못하고, 알려 준 적도 없는 인공호흡을 어쨌든 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린이나 오식이가 딱히 거짓말을 할 리는 없고,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던 내 기억의 단편과도 얼추 맞아떨어지는 것도 그렇고, 상황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오식이가 내게 입을 맞추고, 숨을 불어 넣어 줬다는 게 조금 찝찝할 뿐이었다.
“흠….”
오식이를 쳐다봤다.
녀석의 입술로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크고, 두툼하고, 거친 녀석의 순대 같은 입술을 보고 있자니, 속이 슬슬 뒤집히려 했다.
나도 모르게 팔을 들어 옷소매로 입을 벅벅 닦았다.
“고, 고맙다.”
행동과는 다르게… 하지만, 진심은 담아서 오식이에게 말했다.
녀석이 쑥스럽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제 머리통을 긁었다.
스윽….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내게 달려든 붉은빛의 구가 있던 사각기둥을 향해서였다.
가까이 가지 않았던 네 개의 붉은빛 구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여전히 강렬한 기운을 뿜어낸 채였다.
하지만, 내게 달려들었던 붉은빛의 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금 가슴에 손바닥을 대고는 슬슬 문지르며 확인했다.
처억… 문질문질….
어떠한 문제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가슴은 물론, 전투 타이츠나 겉옷에도 아무런 흔적조차 없었다.
이렇다 할 통증 같은 것도 전혀 없었고 말이다.
“거참, 이상하네….”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해야만 했다.
“넌 좀 어때?”
뒤늦게 린을 상태를 물었다.
안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억지 미소와 힘겨운 말투.
아직 상태가 온전치 못한 게 분명했다.
“좀 더 쉬도록 해.”
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춰서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경을 헤맨 것 치고는 너무나 멀쩡했다.
아니, 강제로 숙면(?)을 당했기 때문이었을까?
컨디션이 더 좋아진 듯했다.
“흠….”
여전히 이해 못할 상황에 어깨를 으쓱했다.
한 번 더… 붉은빛의 구로 다가갈 생각이었다.
하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만, 아직 네 개나 남은 상태.
게다가 사지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고 해도 영문 모를 상황에 어디 하나 특별히 다친 곳도 없고,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으니 겁날 것도 없었다.
‘그래, 녀석들도 한 번 겪었으니까, 이번에는 더 잘 케어하겠지.’
오식이의 인공호흡이 살짝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당한(?)다면 뭐….
“후우우… 좋아!”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어, 노려보던 붉은빛의 구를 향해 한 걸음을 막 내딛으려는 찰나.
린의 곁에 있던 왕울이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크륵!”
본능적으로 녀석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석실의 입구 쪽… 벽으로 가로막힌 곳이었다.
그 너머에는 우리가 이곳으로 들어왔던 통로가 있었다.
위기를 느끼고는 급히 최소화 모드의 동물적 감각을 넓게 펼쳤다.
‘…?!’
긴가민가한 느낌으로 어렴풋한 기척 하나가 잡혔다.
미약하기가 너무나 그지없어, 자칫 놓치거나 무시할 수도 있을 만큼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기척은 진짜였다.
마치, 미약한 자신의 존재를 알려 주기라도 하려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거든.
“루루라라… 룰루루….”
빵빵한 에코 덕에 제법 괜찮게 들리는 콧노래가 빠르게 가까워지며, 우리를 긴장시켰다.
두려움 따위의 긴장이 아니라 벌여 놓은 일과 상황에 대한 긴장…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느낌의 긴장이었다.
“숨….”
목소리를 최대한 낮게 깔아 숨으라는 명령을 내리려 했다.
그러나 이내 멈추고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밀어 넣었다.
제대로 된 상태에서도 살짝이 간당간당한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중에서 가장 빠르고, 몸집도 작아 제일 잘 숨을 수 있는 린의 상태가 메롱이었다.
어차피 거릴 거, 괜히 오버하고,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저질러 놓은 일… 처음 석실에 들어왔을 때와 지금의 상태는 누가 봐도 침입자의 흔적이 넘치고 흘렀다.
해서, 작전을 바로 변경했다.
녀석들에게는 따로 지시하지 않은 채, 그대로 몸을 날렸다.
여전히 영문은 모르겠지만, 좋아진 컨디션 덕분에 깃털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빠르게 석실의 입구 곁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어차피 먼지만도 못한 놈이다. 단숨에 제압하고서 튀면 돼!’
석실 입구 옆 벽면에 몸을 바짝 붙이고 숨을 죽였다.
손만 뻗으면 석실 입구로 들어오는 이의 목을 움켜쥘 수 있는 거리였다.
“룰루루… 랄라라… 흥얼흥얼….”
잠시 뒤 벌어질 일을 전혀 알 리가 없고, 능력 밖이라 낌새도 차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존재의 발랄한 콧노래 소리가 바로 지척에서 들려왔다.
‘하나… 둘….’
속으로 타이밍을 계산했다.
셋을 헤아림과 동시에 미약한 존재가 석실 입구로 들어서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였다.
일단, 거기까지만 확인했다.
곧장 손을 뻗고, 몸을 움직여 소녀의 등 뒤로 바짝 붙었다.
“헛!”
눈앞의 전경… 그럴 리 없을 사각기둥이 가동되어 난장판(?)이 된 석실 안의 상태 보고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전혀 예상하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않았을…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낯선 불청객들의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갑작스레 자신의 뒤로 다가와 대놓고 위협적인 기세를 들이대는 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녀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입 밖으로 토해 내며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쉿! 조용히 해!”
목소리를 낮게 깔고는 제대로 된 으름장을 놓았다.
동시에 팔을 앞으로 뻗었다가 꺾으며, 소녀의 목을 휘감았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무엇이… 어디서부터가 잘 못 된 것인지,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 버렸다.
휘익! 휙!
터억….
“…?”
“…?”
일단은 내가 먼저 이상함을 느꼈다.
이어, 소녀도 이상함을 느끼며 몸을 흠칫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진심, 진짜, 명백히, 단연코, ‘레알’로다가 소녀를 제압하기 위해 팔로 목을 감쌀 생각이었다.
단지 그뿐이었고, 얼핏 따져 봐도 이 상황에서 할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하늘에 맹세코 이 말은 사실이었다.
만약,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마른하늘에서 떨어지는 날벼락을 연속으로 100번 맞으라 해도 나는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고, 맹세도 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나는 결백했는데….
어째서인지 내 팔이 소녀의 목이 아니라, 몸통을 끌어안게 됐다.
뭐, 그뿐이라면 사실 그렇게 문제가 되지도 않고, 앞서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댄 변명과 억울함의 밑밥 깔기도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손이었다.
이 빌어먹어도 시원찮고, 막돼먹은 녀석이 글쎄! 아, 글쎄! 그러니까 글쎄!
소녀의 그곳… 닿아서는 안 될 가슴에 턱 하니 달라붙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엇….”
당황의 반응을 보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지만, 문제의 손도 바로 뗐다.
스으윽….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소녀는 당황과 황당의 어이없음이 바탕에 깔려 있고, 그 위로 원망이 토핑처럼 뿌려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미, 미안….”
나도 모르게 사과했다.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과의 말이 도화선이라도 된 것처럼 소녀가 날카롭게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다급하게 손을 뻗어 소녀의 입을 가로막으려 했다.
실패했다.
이미 크나큰 실수로 인한 난감함으로 몸이 삐걱 대고 있었다.
또한, 이미 예견된 순서였을지는 모르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터진 비명에 당황하여 움직임에 위축이 들었다.
해서, 또 한 번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미끄덩….
터억….
소녀의 턱을 스치며 미끄러진 손이 하필 또다시 그곳에 안착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정확히 그곳이 아닌 정중앙….
썅!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 또 미안….”
바로 또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당연히 손도 바로 뗐다.
소녀의 얼굴에 토핑처럼 얹어져 있던 원망이 두 배쯤 늘어났다.
사슴같이 커다란 눈에는 눈물도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었다.
소녀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이잇….”
미간이 좁혀졌다.
목이 움츠러들었다.
이어질 상황이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너 뭐야? 이 변태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에 가까운 절규.
질끈 감은 눈에 맺혀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그 순간!
소녀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헛!”
교감의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