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11)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는 좀 더 발할라 안을 돌아다녔다.
마치, 관광객처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했고, 서로 장난도 치며 오랜만에 여유롭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기념품 내지는 장신구를 파는 노점 앞에 섰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것을 발견한 까닭이었다.
“이건 뭐죠?”
“묘네트 꽃으로 만든 목걸이입니다.”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가득하지만, 곱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노파가 친절하게 답해 줬다.
“린, 이리 와 봐! 이거 어때?”
“어머, 너무 예뻐요.”
“그래? 하나 사 줄까?”
“정말요? 감사합니다.”
목걸이를 린에게 직접 걸어 줬다.
린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들여다보고, 먹는 것 외에는 관심도 없는 오식이에게 자랑까지 해 댔다.
“얼마죠? 이거면 될까요?”
주머니에서 마정석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3레벨짜리였고,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작은 사이즈였다.
음식값도 그렇고, 오식이가 입에 달고 살 듯 먹어 대는 군것질거리도 모두 마정석으로 살 수 있었다.
던전 코인도 받는 듯했지만, 그만큼 비싼 것을 팔거나 바가지(?)스러운 가격은 없었다.
뭐, 이곳으로 오는 동안 허접스러운 괴물들을 종종 사냥한 덕에 나름 사치스러운 관광객 흉내를 낼 수 있을 정도로 낮은 레벨의 마정석은 충분한 상태였다.
“너무 많군요. 여기 거스름돈이요.”
노파가 1레벨짜리 마정석을 두 개 내밀었다.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었다가 다시 거둬들였다.
“다른 것들도 좀 볼게요.”
“네, 그러세요.”
금세 오식이 주먹만 한 꽃장식이 달린 머리핀과 린에게 사 준 것과 같은 사이즈의 목걸이를 골랐다.
머리핀은 왕울이의 정수리에 달아 줬고, 목걸이는 싫다고 말하면서도 앞으로 내민 팔을 거둬들이지 않는 오식이의 손목에 걸어 줬다.
이상한 듯하면서도 제법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왕울이가….
“크륵….”
역시나 린이 가장 신이 났다.
이리저리 비교도 하고, 뿌듯해하는 것이 마냥 귀엽게만 보였다.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를 하는 노파를 향해 고개를 꾸벅했다.
자리를 뜨려다가 멈춰 서서 질문을 하나 던졌다.
“할머니도 발키리시죠?”
내 물음에 노파가 싱긋 웃더니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친절하고, 인자한 느낌에 조금 더 말을 섞었다.
“젊으셨을 때, 엄청 미인이셨겠어요. 물론, 지금도 어어엄청 고우시지만요, 하하!”
넉살을 과감하게 털어 내자, 노파의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 냈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젊고, 예쁘고, 건강하던 때 가요.”
노파는 말을 하며 살짝이 높고,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마치, 꿈을 꾸듯… 지난날의 추억에 잠긴 듯한 아련한 눈빛으로였다.
기회를 틈타, 묻고 싶은 것들을 더 물었다.
기대처럼 노파는 친절하게 답을 해 줬다.
‘음, 사실이었군.’
노파에게 묻고, 들은 얘기는 던전 마을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맥주 한 잔과 안주 하나에 이것저것… 특히나 발키리에 대한 정보를 거침없이 털어놓았던 이가 해줬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그가 말해 준 것과 같아 의심의 여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확인차 노파에게 넉살까지 떨며 물었던 것이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곳 발할라에는 어린 여자아이부터 노파에 이르기까지 온통 여자들만 산다.
전해 내려오는 신화나 전설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었고, 스웨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대외적으로 공개됐던 던전과도 분명히 달랐다.
신화에서처럼 전쟁에 나갔다가 죽은 자들을 데려오거나 하지 않았고, 여타의 다른 던전 괴물들처럼 인간에게 달려들지도 않았다.
그러한 이유는 내가 서 있는 이곳 발할라가 일종의 이벤트 던전과 같기 때문이었다.
던전에 서식하는 괴물 대부분… 거의 99%쯤은 인간을 공격하고, 게이트를 넘어 지구마저 노린다.
그러나 나머지 1%… 뭐, 그보다 더 적은 수치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괴물… 아니, 존재들도 있었다.
엘리자나 알버트 같은 던전 마을 사람들 말이다.
다들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에게 매우 우호적이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도 한다.
스웨덴에서 등장한 발할라 던전의 발키리들은 분명 괴물이었다.
놈들로 인해 수많은 각성자들이 죽어 나갔고,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어렵사리 정화를 시켰다.
하지만, 이곳의 발키리들은 다르다.
1%… 던전 마을 주민들처럼 우리에게 친절하고, 하나같이 상냥한 그런 존재들이었다.
대놓고 안전지대임을 말해 주는 그런 곳이었다.
평소에는 찾을 수도 없고, 존재조차 드러내지 않는 이곳 발할라에서 일 년에 딱 한 번, 일주일간 진행되는 특별한 이벤트.
그것은 바로 오딘의 ‘진짜 발키리’들을 선발하는 것이었다.
뭐, 진짜니 뭐니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냥 오딘의 정예 부대 내지는 전투를 담당하는 발키리를 말하는 것이라 보면 될 듯하다.
아무튼.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대한 문을 지나 처음 봤던 어린 여자아이들.
그 아이들이 모두 진짜 발키리의 재목들이다.
아이들이 성장하여 일정 나이가 되면, 다음으로 봤던 소녀들처럼 강도 높은 수련을 하게 된다.
이후, 20대의 어엿한 처녀가 되면, 진짜 발키리가 된다.
이곳에 온 지 겨우 반나절이 조금 더 지났을 뿐이지만, 어린 여자아이도 봤고, 10대의 소녀들도 봤고, 3, 40대의 누님들과 그보다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와 할머니도 봤다.
하지만, 20대의 발키리들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20대의 그녀들이 이곳 발할라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지금 우리가 가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그 어떤 곳에서 진짜 발키리가 되기 위한 시험을 치르는 중이었다.
노파가 말하길, 시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렵다고 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시험 도중에 목숨을 잃기도 한단다.
직접 보거나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할 수 없고, 진실 여부 또한 따질 수 없으니,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겨야 할 부분이었다.
시험이기에 탈락과 합격도 존재한다.
시험에 합격하면 당연히 진짜 발키리가 된다.
뭐, 탈락해도 발키리는 발키리다.
시험에 응시하는 20대의 그녀들 수가 몇 명이나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수련하던 소녀들의 수를 봤을 때, 못해도 수백은 족히 될 터.
그 많은 인원 중에 최종 합격자는 딸랑 열 명이다.
그녀들은 최고임을 인정받아 오딘의 정예 부대 ‘진 발키리’가 되고, 10년간 명예와 특혜를 누린다.
시험에 탈락한 이들은 진 발키리 아래서 활동하는 부대원이 된다.
역시나 그녀들의 군 생활(?)도 10년이다.
‘하, 10년이라….’
10년간이나 강제적으로 군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고, 가슴마저 갑갑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일 뿐… 그녀들로서는 최고로 화려하고, 멋진 시간이자, 인생의 전성기라 여기는 것이기에 전혀 반대되는 얘기였다.
‘그나저나 엄청난 규모네.’
매년 선발하는 열 명의 진 발키리.
무조건 10년이란 시간을 채워야 하기에 누적 인원은 백 명이 된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60대 레벨이 백 명이라고 하면 느낌부터가 달라진다.
나나 오식이… 아니, 여자인 린만으로 이루어진 백 명의 부대가 내 휘하에 있다면 더없이 든든할 것이고, 만약 적으로 만난다면 그것보다 끔찍한 일도 없어 보였다.
그것으로 끝도 아니다.
수백은 족히 될 발키리 부대도 있다.
그 또한, 10년의 기간 동안 누적이 되니, 수천이 될 터였다.
얼핏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만으로도 뜨헉 하며 입이 벌어질 수준이었다.
10년간의 군 생활을 마친 발키리들은 평범한 생활로 돌아간다.
행복하고 즐거운 얼굴로 축제 준비를 하고, 평화롭고 여유롭게 노점이나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등의 일들 말이다.
하다 보니까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지금 이곳 발할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축제 준비는 시험에 합격하여, 진 발키리에 오르게 되는 이들을 축하하는 이벤트의 준비 과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진정으로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던 진짜 발키리의 모습은 내일… 아니, 모레나 되어야 볼 수 있다는 소리.
뭐, 지금 현재로서는 그것마저도 크게 감흥이 없고, 기대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란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킁!”
….
별다른 계획 없이 돌아다녔다.
해서, 같은 곳을 몇 번이나 지나치기도 했다.
그렇게 구경은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진짜, 발할라의 구석구석까지 전부 다 돌아봤다.
아!
한 곳만 빼고….
관광지나 여행지에는 ‘명소’ 내지는 ‘명물’ 등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그곳에 가면 꼭 들러야 하고, 봐야 하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남겨야 하는 등의 특별한 곳 말이다.
이곳 발할라에도 그런 곳이 있었다.
거대한 문 너머에서만 빼고, 그 어느 곳을 가든 시야에 잡히는 바로 그곳… 피라미드였다.
당연히 우리도 그곳으로 갔다.
저절로 발걸음이 옮겨진 것은 아니지만, 이리저리 구경하고 돌다 보니까 그 앞에 도착했다.
뭐, 앞이라고 해도 네 개의 면이 똑같아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도통 헷갈리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앞에서 우린, 이곳에 와서 처음 ‘제지’라는 걸 당했다.
“이곳은 출입 제한 구역입니다.”
“외부인은 들어가실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세요.”
간소하지만, 나름 무장까지 한 10대 소녀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어리지만, 단호한 말투나 슬금슬금 뿜어내는 기운이 제법이었다.
또한,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피라미드 주위를 빙 두르고 있는 것이 결코, 단 한 명도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게 할 수 없다는 어떤 굳건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듯했다.
‘뭐야? 왜 이렇게 살벌해?’
느껴지는 살벌함이나 단호함만큼 호기심도 동했다.
아니, 갑작스러운 제지에 기분이 좀 상했고, 오기도 발동했다는 게 좀 더 옳았다.
솔직히 말해서, 피라미드를 빙 두르고 있는 소녀들 전원이 덤벼든다 해도 우리를 막을 수 없을 듯했다.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가면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게 없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해서,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일체 그것에 관해 언급은 물론, 내색조차도 하지 않았다.
뭐, 다른 녀석들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피라미드에서 멀리 떨어져 다른 곳들을 구경했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식당에 들러 음식들을 초토화해 버렸다.
당연히 오식이가 선봉에 서서 8할은 먹어치웠다.
“넌 진짜 엄청나게 ‘위’대한 녀석이야. 종일 군것질을 하고도 이게 다 들어가다니….”
입안 가득히 고기를 우걱거리면서도 양손으로 다른 것들을 집어 드는 오식이를 보며, 감탄과 핀잔을 교묘히 섞어 말했다.
그러자 녀석이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말을 당당하게 던졌다.
“형님,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기가 막혔지만, 그게 오식이의 특징이고, 특기이며, 장점이자 단점이기에 쓴 웃음을 짓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래, 많이 먹어라. 이것들 좀 더 시켜 줄까?”
“두 개… 아니, 세 개 다, 형님!”
“오냐, 알았다.”
….
거하디거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음식값이나 기타의 것들도 그랬지만, 던전 마을의 여관보다 훨씬 더 좋은 시설에 가격은 반값밖에 하지 않는 방을 얻었다.
“으으… 피곤하다.”
엄청나게 피곤했다.
산을 넘은 뒤에도 쉬지 않고 달려 발할라에 도착했다.
도착 후에도 온종일 구경이다 뭐다 하며 돌아다녔다.
솔직히,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쉴 수 있는 곳에 들어오니, 쌓여 있던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해서, 씻지도 않고 잠이 들었다.
잠시 쉰다는 게 그리됐다.
그러다 눈을 떴다.
밖을 보니, 여전히 밤이었다.
정확히는 자정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역시나 피로에 지쳐 완전히 뻗어 버린 녀석들을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