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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205화 (205/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05)

흠칫!

오식이가 당하는 모습을 본 린이 흔들렸다.

머뭇거리던 놈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동시에 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휘익!

촤아악!

채앵! 챙!

린이 어설픈 놈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바로 뒤에 상처 입은 내가 있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었다.

해서, 놈들의 공격을 막아내기만 할 뿐, 추가적인 공격은 하지 못했다.

놈들도 너무나 쉽사리 막혀 버린 공격에 놀라서인지 더는 달려들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사이….

고통에 울부짖던 오식이가 발광하듯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제대로 된 공격은 아니었지만, 그 위용만큼은 대단했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바람을 가르는 묵직하고, 난잡한 주먹질에 녀석의 복부를 찌른 놈이 결국 한 방 얻어맞았다.

뻐어어어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목이 옆으로 꺾였다.

거의 동시에 커다란 몸이 살짝 떠올라 튕기듯 날아갔다.

근처에 있던… 괴현상으로 오식이의 숄더 어택에서 살아남은 놈이 제 편의 몸뚱이 어택에 맞고는 크게 나뒹굴었다.

쿠당탕탕….

데굴데굴….

“크으으….”

“으으윽!”

신음으로 뒤섞인 난장판에 다른 놈들의 우왕좌왕까지 겹쳐 진심 난리도 아니었다.

“크르르르….”

오식이가 당하는 동안에도 멀뚱멀뚱하게 서 있기만 하던 왕울이가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으르렁거림과 함께 앞으로 자세를 한껏 낮춘 녀석이 곧장 앞으로 튀어 나갈 준비를 했다.

순간,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녀석에게 바로 신호를 날렸다.

―멈춰!―

날아든 신호에 왕울이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나를 쳐다봤다.

빠르게 다시 신호를 보냈다.

―튄다. 나부터 옮겨!―

왕울이가 숙이고 있던 고개와 방향을 내 쪽으로 돌리고는 쏜살같이 뛰어왔다.

“끄응….”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몸을 억지로 끌며, 왕울이의 등에 올라탔다.

거의 걸쳐 있다는 표현이 옳을 만큼 추한 모습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곧장 오식이를 쳐다보며 봉인 스킬을 시전했다.

스르르르릉….

빛무리와 함께 눈앞에서 사라지는 오식이를 본 놈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고개를 돌려 린의 이름을 불렀다.

“리, 린!”

놈들과 끝까지 대치하며 린이 뒷걸음질 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놈들도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때를 놓치지 않고, 린이 왕울이의 등에 올라탔다.

불안하게 등에 걸쳐 있는 나를 붙잡은 린이 왕울이에게 소리쳤다.

“왕울 씨, 됐어요.”

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왕울이가 지면을 박차며 힘껏 내달렸다.

다다다다닷….

놈들의 아우성이 빠르게 멀어져 갔다.

….

순식간에 마을을 벗어나 멀리 도망쳤다.

나와 린을 태우긴 했지만, 왕울이의 속도를 놈들은 따라올 수 없었다.

달빛밖에 의지할 수 없는 어두운 숲 어느 곳에 다다라서야 멈춰 섰다.

폴짝.

린이 왕울이의 등에서 가볍게 뛰어내린 뒤, 조심스럽게 나를 부축해 바닥에 눕혔다.

그제야 왕울이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배를 깔고 누웠다.

“헥! 헥! 헥….”

녀석이 내달리는 동안, 계속해서 받은 충격에 심각해진 복부의 통증을 잠시 다스렸다.

그러고는 오식이를 소환했다.

“크르르르….”

오식이도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오식이를 향해 린이 말했다.

“오식 씨… 회복 물약 좀 드세요.”

그제야 녀석이 생각났다는 듯 품에서 회복 물약을 꺼내 마셨다.

“주인님도 한 병 더 드릴까요?”

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다 복용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써는 두 병, 세 병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진짜 진짜 진짜로 아팠거든.

배낭에서 회복 물약을 꺼내 준 린이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며 경계를 섰다.

우리가 있는 곳이 공공연한 사냥터였기 때문이었다.

그래 봤자, 우리를 해할 만한 수준의 괴물이 돌아다니지는 않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

‘흠….’

얌전히 누워 회복을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이따금 쿡쿡 찌르고, 온몸을 찌릿하게 하는 통증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딱히 할 것도 없는 터라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대체, 그게 뭐였을까?’

제일 궁금한 것은 괴현상… 린과 오식이가 보여 줬던 영문 모를 ‘멈춤’이었다.

“왜들 그랬던 거야?”

내 물음에 린과 오식이가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어, 린이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며 말했다.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변했어요. 그 뒤로는 아무런 기억이 없고, 정신을 차려 보니 주인님 품에 안겨 있었어요.”

린의 말에 번뜩하는 게 있었다.

빠르게 물었다.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고? 충격을 받은 것처럼 말이지?”

“네.”

“오식이 너도?”

“그렇다. 머리가 쾅 했다.”

오식이가 제 머리끝… 정수리를 주먹으로 치는 동작을 했다.

그제야 나도 녀석들과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도 그랬지? 제일 처음에 말이야. 나도 갑자기 멈춘 것 맞지?”

내 다급한 물음에 린이 뭘 새삼스럽게 묻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을 위해 한 번 더 물었다.

“둘 다 멈춰 있던 것은 기억에 없는 거야?”

린과 오식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세 명 모두가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은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며 정신을 잃는다.

몸 또한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한동안 이어지고, 다시 움직이기 전까지는 기억도 할 수 없다.

“헐… 뭔지 몰라도 완전 엿 같은 상황이잖아?”

너무나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생각해 보라.

목숨을 건 사투의 현장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정신을 잃고, 몸까지 멈춰 버린다면 어찌 되겠는가?

‘어찌 되긴 뭘 어찌 돼? 이미 경험 했구만….’

그랬다.

이미 우리는 그런 엿 같고, 치명적인 상황을 겪은 후였다.

결과는 나와 오식이가 크게 상처를 입고, 그런 허접스러운 것들에게서 다급하게 도망까지 치는 굴욕을 당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유가 뭘까? 대체, 왜 그런 거지?’

무조건 이유를 찾아내야 했다.

괜히 그런 괴현상이 일어날 리는 없었다.

만약, 이유가 없다면… 흐미… 그런 건 절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나도 겪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왕울이가 넌지시 끼어들었다.

“나도 머리에 충격을 받고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식이가 내 앞을 막아 주고 있었다.”

왕울이의 말에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놈들과 사투를 벌이던 오식이의 뒤에서 녀석이 멀뚱멀뚱하게 멈춰서 있던 모습이었다.

“아, 그래서 그때… 그랬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됐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녀석이 전혀 생각지 않은 말을 꺼냈다.

“한 번이 아니다. 여러 번 그랬다.”

“엥?”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오식이도 그랬다.”

“정말이야? 오식아….”

“맞다, 형님. 머리 쾅! 많이 했다.”

새로운 사실에 눈이 절로 커졌다.

몇 번을 되묻고, 자세하게 캐물었다.

확실히 녀석들은 괴현상을 여러 번 겪은 모양이었다.

“헐….”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사투 중에 단 한 번 일어나도 극도로 치명적인데, 같은 현상이 수시로 일어난다면… 이건 말해 봤자 입만 아플 뿐이었다.

“근데,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멀쩡한 거 아닌가?”

그것도 조금 이상했다.

여러 번 겪었다는 괴현상 속에 오식이가 입은 치명상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내가 목격한 바로 그 상황에서 말이다.

조금은 엉뚱하고, 오식이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있는 내 물음에 왕울이가 대답했다.

“놈들이 너무 약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나름 확고하고, 단호하게 대답한 것 치고는 영양가가 별로 없었다.

해서, 살짝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치, 그건 나도 알아.”

잠시 틈을 준 왕울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건 느끼지 못했나?”

“응?”

“놈들에게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 말이다.”

고개가 갸웃해졌다.

당연히 그런 걸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린 왕울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나도 확실치는 않다. 하지만, 놈들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떤….”

“음… 너나 바깥세상의 인간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

“마치, 나나 오식이, 린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녀석의 말에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바로 물어봤다.

“혹시, 괴물들과 같은 느낌을 말하는 거야?”

“그건 아니다.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녀석이 단호하게 못 박았다.

잠시 틈을 준 녀석이 더욱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곳에 사는 이들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에? 이곳이라면 던전 마을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그렇다. 하지만 그들과도 분명히 다르다.”

“…?”

“음… 뭐랄까… 이곳에 사는 이들과 우리… 나를 포함한 오식이와 린의 중간쯤이라 하면 이해가 되려나?”

이해는커녕 더 어려워진 느낌이었다.

솔직히 ‘그게 뭐야?’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쩝….”

씁쓸해진 입맛을 다시는데 이번에는 린이 나섰다.

“주인님, 실은 저도 왕울씨와 비슷한 느낌을 살짝 받았어요.”

“엥? 너도?”

“네.”

“그런데 왜 말을 안 했어?”

“그게… 너무나 이상하긴 한데, 확실치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그래, 어떤 느낌이었는지 다시 말해 줄래?”

고개를 끄덕인 린이 말을 이었다.

왕울이가 했던 말과 비슷한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비슷하긴 한데, 그들에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투기 같은 게 서려 있는 듯하다 할까요?”

계속되는 녀석들의 이해할 수 없는 말 속에서 문득 뭔가를 캐치했다.

처음엔 그것이 뭔지를 몰라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떠올렸다.

“아, 맞다!”

고개를 번쩍 들면서 소리쳤다.

유레카 같은 내 반응에 다른 녀석들이 하나같이 물음표를 얼굴에 그리며 나를 주시했다.

“그래… 그렇다면… 맞아… 그렇지….”

포인트를 제대로 잡았는지,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살짝 어긋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맞아떨어지는 퍼즐을 빠르게 완성해 나갔다.

내가 이곳 던전 마을에 와서 겪었던 일 중에 가장 황당하고, 아쉬웠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엘리자와의 므흣므흣에 관한 것이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방인들은 던전 마을 주민들과 어느 정도 선까지만 공존할 수 있었다.

같이 살고, 밥을 먹고, 잠은 잘 수 있지만, 남녀 사이의 마지막 정점까지는 찍을 수 없었다.

아니, 그보다 더 기준이 엄격하여, 알몸을 보는 것 자체도 불가했다.

그런 상황이 되면, 무조건 강제적으로 정신을 잃게 되고, 깨어나면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뒤였다.

물론, 상대의 기억과 상황은 이미 모든 걸 다 하고 난 뒤라는 것이 정말로 억울하고, 미쳐 버릴 일이었고 말이다.

그와 비슷한 현상이 또 있었다.

이방인들이 던전 마을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게 될 경우였다.

폭력과 무력을 행사하려 할 때는 당연했고, 죽이겠다는 수준의 독한 마음을 먹기만 해도 정신을 잃게 된다.

뭐, 직접 경험을 한 적은 없었다.

내가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딱히 위협도 되지 않고, 피해도 주지 않는 던전 마을 사람들을 괜히 해코지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저, 앞선 엘리자와의 므흣므흣이 너무나 억울하고, 황당해서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듣게 된 이야기였다.

어쨌든.

그런 경우라면, 괴현상의 발동이나 상황이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이방인이 던전 마을 사람들을 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도 이방인을 공격하거나 덤벼드는 일 따위는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흐음… 이상하네….”

내가 들은 정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이는 분명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절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방인의 공격이 던전 마을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 룰도 깨진 상태였다.

몇 번의 실패는 있었지만, 분명히 오식이를 멈추게 했던 놈들을 끝내는 날려 버렸으니 말이다.

“허, 거참….”

아무래도 머리를 더 쥐어짜야만 할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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