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03)
습격의 전조는 일찍부터 있었다.
“주인님….”
“알아, 그냥 평소처럼 행동해.”
너무나 티가 나도록 따라붙는 미행이었다.
어차피 자잘한 놈들뿐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밤에는 순서를 정해 보초를 서며 습격에 대비했다.
아차!
켄지 일행이 다녀간 날, 놈들에게서 빼앗은 무기들을 죄다 팔았다.
예상보다 비싼 값에 팔 수 있었다.
길드의 핵심 인물들이라더니 꼴 같지 않게 비싸고, 좋은 무기들을 가지고 다녔던 모양이었다.
‘그래 봤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지… 뭐, 난 좋아! 흐흐!’
식당 수리비로 준 돈보다 훨씬 많았다.
때아닌, 횡재를 한 것은 오식이었다.
“오식아, 오늘 이 형님이 거하게 한 번 쏜다!”
마음껏 먹어치우는 오식이의 ‘위’대하고, 엄청난 식성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고도 돈이 꽤 남았다.
나머지는 미리 쓸 곳을 정해 놓은 상태였다.
위자료… 그동안 고생한 엘리자에게 줄 생각이었다.
‘약속을 지켰군. 하긴, 쪽팔려서라도 못 붙어 있겠지.’
놈… 마에다는 자트란드를 떠났다.
일주일이 지났고, 엘리자와 던전 마을 주민들은 놈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엘리자는 서서히 안정적인 삶을 찾아간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켄지가 다녀가고, 울트라 닛폰 놈들의 미행이 시작된 지 열흘이 흘렀다.
* * *
“산책을 좀 해 볼까?”
저녁 식사 후,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산책을 제안했다.
오식이는 곧장 귀찮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린의 눈빛 한 방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님, 배낭은 어쩔까요?”
산책에 배낭은 딱히 필요가 없었다.
단순한 산책이라면 말이다.
‘역시….’
눈치 빠른 린의 행동에 미소로 칭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챙겨, 혹시 모르니까.”
“네.”
준비를 마치고는 여관을 나섰다.
금세 사방에서 분주함이 느껴졌다.
‘많이도 모였군.’
평소보다 확실히 많은 수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숨어 있었다.
더불어 자잘함을 넘어선 놈들도 몇 끼어 있었다.
그래 봤자,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했지만….
“이쪽으로 가 볼까?”
일부러 사방이 탁 트인 공터로 향했다.
평범한 산책 루트였고, 미행과는 적합지 않았으며, 다수와의 싸움에서는 불리한 장소였다.
저벅저벅….
멈칫….
공터의 중간 지점쯤에 멈춰 섰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주변은 조용했다.
가볍게 몸을 풀었다.
툭툭!
뚜둑! 뚜둑….
완벽한 컨디션이었다.
‘훗! 불쌍한 것들….’
상대를 걱정하며 뒤로 돌아섰다.
이어, 목소리를 높였다.
“준비 다 됐다. 그만 숨고 나와!”
공터가 외침으로 쩌렁쩌렁했다.
반응은 없었다.
아니, 잔뜩 긴장한 기색들이 느껴졌다.
한 번 더 소리를 질렀다.
“어서 나오라니까? 아님, 그냥 간다!”
조금 더 동요하는 기색들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한 놈이 크게 움직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헛….”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놈의 모습을 보고 흠칫했다.
‘니, 닌자?’
여전히 일본 하면 떠오르는… 눈만 겨우 드러낸 복면을 뒤집어쓰고, 활동하기 편해 보이는 옷을 입은 모습이 더도 덜도 아닌 닌자 그 자체였다.
스윽… 스으윽….
뒤이어, 다른 놈들도 한 명씩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헐….”
다른 놈들도 똑같은 차림이었다.
머릿수는 모두 열다섯이나 되었다.
‘뭐, 정확하군.’
어설프게 숨어 있던 기척으로 놈들의 수를 이미 헤아린 상태였다.
더불어 놈들의 수준 하나하나까지도 파악했기에 열다섯이란 숫자는 콧방귀도 나오지 않을 만큼 미천한 것이었다.
확실히 닌자 차림인 것이 더 쇼킹하긴 했지만….
“그나저나… 대체, 저런 것들은 왜 달고 나온 거야?”
하도 어이가 없어 투덜대듯 혼잣말을 했다.
여전히 닌자 차림으로 등장한 것에 놀란 것은 인정이다.
그러나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낸 놈도 그렇고, 진심으로 별 볼 일 없는 나머지는 물론, 그보다 더 문제인… 가장 앞에 서 있는 다섯의 수준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었다.
애초에 미행을 하면서 자신의 기척조차도 제대로 숨길 수 없는 수준의 놈들이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약한 존재감과 수준에 기척이 숨겨지는 꼴이었다.
그런 놈들이 열다섯 중에 다섯… 1/3이었다.
“린, 저놈들 레벨이 몇이나 될 것 같아?”
“음… 확실치는 않지만, 10레벨을 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린을 향해 놀라움을 발했다.
“헐, 그렇게나 높게 본다고?”
내 반응에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인 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실은… 그보다 훨씬 낮아 보이지만, 일부러 힘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나서는 것이 이상하니까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아무리 제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길드에 충성한다 해도, 결과가 뻔히 보이는 싸움에 저리도 멍청하게 나서는 이들은 드물지 싶었다.
뻔한 수준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일부러 힘을 숨기고 있다거나 아니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거나 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미 내 얘기나 놈을 혼내 준 사건을 들었을 거 아냐?’
길드의 핵심 인물들을 작살 낸 나였다.
해서, 내게 미행을 붙였다.
길드의 명이기는 해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야 할 테고, 소문도 제법 돈 듯하니, 귀만 열고 있어도 나에 대해 자연스레 파악될 터였다.
진짜 실력이나 레벨까지는 몰라도, 30레벨 중후반의 각성자 다수를 단숨에 피떡으로 만든 실력자라는 걸 알았다면, 알아서 몸을 사리는 게 정상 아닐까?
물론, 미행까지는 별다른 일이 없을 테니, 그나마 안심이란 걸 할 수 있다.
나야 알면서도 모른 척했지만, 놈들 딴에는 제대로 미행에 성공하고 있다 믿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큰 실수를 한다거나 먼저 나서지 않으면, 나와 붙을 일이 없으니 안전하다 여기는 게 옳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허접한 것들만 몇 명 따라다니다가 갑자기 인원이 늘고, 나름의 실력자(?)도 합류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막 시작하려던 시점부터 놈들의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
해서, 예정에도 없고, 평소에 하지도 않던 산책을 하게 된 것.
아, 잠시 말이 샜는데….
아무튼, 내가 놈들의 그런 움직임을 느끼고 준비를 했다면, 놈들로서는 더욱더 지금의 상황을 먼저 알았을 것이다.
아무리 길드의 명이고, 나름의 실력자가 곁에 있으며, 머릿수도 제법 된다지만, 나라면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뒤로 빠지거나 도망칠 궁리부터 할 듯했다.
그런 놈들을 버젓이 앞세우고 있는 꼴이라니….
울트라 닛폰 길드의 수준도 참 알 만하다 싶었다.
‘에휴, 어쩌겠어? 뭣도 모르는 하수인 게 죄지!’
불쌍하고, 안쓰럽지만, 용서하거나 봐줄 마음은 없었다.
그것도 제 복이고, 팔자일 테니까, 귀중한 경험이라 여기도록 최선을 다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몰랐다.
긴가민가 확실치 않았던… 그래도 10레벨 전후쯤은 되지 않겠느냐, 힘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없다 등으로 고민했던 놈들의 수준이 그냥 보고, 느낀 대로 최하였을 줄 말이다.
그랬다.
놈들의 레벨은 채 5를 넘지 않았다.
진심, 대충 휘두르는 오식이의 주먹질에 스치기만 해도 사경을 헤맬 것이 분명하고, 수십이 떼거리로 달려든다 해도 우리 중 하나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놈들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런 허접하기 그지없는 놈들에게 보기 좋게 당할 줄은 정말이지 꿈에서조차 상상하고,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것을 내가 해내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놈들의 술수에 제대로 걸려든 꼴이었다.
“다들 적당히 해, 죽이면 안 되는 거 알지?”
딱히 작전이나 계획도 필요가 없었다.
죽이지만 말라 하고는 냅다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나마 인정이란 게 있는 내가 미리 다독여 주는 것이 저 허접하고 불쌍한 놈들을 위하는 길이라 여겼다.
채애애앵!
앞으로 내달리며 허리춤에 찬 아수라 스워드를 힘껏 뽑아 들었다.
공터의 군데군데에 켜 있는 조명의 빛을 받아 아수라 스워드가 반짝였다.
조명의 빛이 희미하고, 연약한 탓에 아수라 스워드의 칼날 위로 서린 광채가 차갑고 서늘한 느낌이 들어 왠지 더 살벌하게 느껴졌다.
“크읏!”
나와 곧 마주칠 놈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딱히 물러섬은 없었다.
뭐, 들고 있던 검을 제대로 겨누지도 못하는 것이 완전히 굳어 버린 듯했다.
‘걱정하지 마라,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스윽….
아수라 스워드를 살짝 비틀었다.
검의 날이 아닌 면을 이용해 타격할 요량이었다.
그렇게 넘치는 인자함과 배려를 아끼지 않으며, 놈을 향해 아수라 스워드를 휘둘렀다.
휘이익….
내친김에 휘두름의 속도와 힘까지 한껏 조절해 낮췄다.
그런데도 놈은 여전히 얼어붙어 방어나 회피는커녕,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쯧!”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그때였다.
쩡!
정수리에 묵직하고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마치, 쇠망치나 혹은 벼락을 맞은 것만 같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
머릿속이 하얀 백지… 아니, 그 이상의 하얌으로 물들었다.
아무런 사고나 생각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몇 초쯤 흘렀을까?
잠시 꺼졌던 정신이 돌아왔다.
“…?!”
의아한 현상에 고개를 갸웃하려던 찰나, 이상한 느낌에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크으으!”
보이지는 않지만,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며, 잔뜩 힘을 주고 있는 듯한 놈의 신음이 먼저 들려왔다.
이어, 눈에 들어온 건 놈의 정수리… 뒤집어쓴 복면의 윗부분이었다.
‘언제 이렇게 다가온 거지?’
분명,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곧게 뻗으며 휘두르던 내 팔의 길이와 아수라 스워드의 길이를 합친 만큼… 물론, 놈을 타격할 만큼의 거리를 빼긴 해야 했지만 말이다.
또한, 놈은 완전히 얼어붙어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충격과 하얗게 꺼져 버린 정신의 시간이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사이에 꽤 많은 일이 있었던 듯싶었다.
‘그나저나 넌 뭐하냐?’
마치, 똥이라도 싸듯 여전히 힘을 주며 신음하는 놈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답을 찾기도 전에 복부에서 뜨겁고 축축한 느낌이 일고 있음을 먼저 느꼈다.
“…?”
미간이 좁혀졌다.
놈이 그제야 끙끙댐을 멈추고는 뒤로 물러났다.
더욱더 짜릿하고, 뜨거우며, 축축한 느낌이 일었다.
복부만이 아닌, 척추와 뒷덜미를 넘나드는 지랄 같은 느낌이었다.
주르르륵….
뜨끈하고, 걸쭉한 것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내 배에서부터였고, 다름 아닌 시뻘건 내 피였다.
놈이 들고 있는 검에도 내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헛….”
바람 빠지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동시에 머리가 핑 돌았다.
“어, 어떻게….”
놈을 향해 물었다.
놈이 대답해 주길 기대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답도 알고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65레벨이다.
놈은 끽해야 10레벨쯤 된다.
단순히 생각하면 놈이 나를 공격해 이토록 큰 상처를 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레벨의 격차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게임 등과 같은 곳에서나 통용되는 얘기다.
꽤 오래전부터 누차 얘기했었다.
레벨이 올라도 신체적인 변화는 거의 없다고 말이다.
오로지 타고난 것에 노력을 더해서 발전시켜야만 향상이 된다.
오식이 때문에 남들보다 빠르게 근력을 키울 수 있었고, 그로 인한 힘도 가지게 됐다.
해서, 웬만한 타격이나 충격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검과 같은 날붙이는 얘기가 달라진다.
얼마나 날카롭고, 뾰족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리 단단한 근육질이라도 인간의 피부이기에 찌름에 약할 수밖에 없다.
예리한 날의 벰에는 더없이 취약할 수밖에 없고 말이다.
휘청….
한쪽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주저앉아야만 했다.
완전히 꺾인 무릎이 지면에 쿵 하고 부딪혔지만,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복부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통증 때문이었다.
“주, 주인님!”
린의 외침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이어, 앞에서도 핏대 세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죽여! 죽여 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