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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200화 (200/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00)

고개를 숙이고 있던 탓에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역시나 그… 아니, 놈이었다.

놈은 건방진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놈의 옆과 뒤로는 서너 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다.

하나같이 지랄처럼 생겨 먹었고, 표정 또한 그러했다.

“아까는 잘도 까고 튀었겠다? 얍삽한 새끼! 그때는 내가 술에 좀 취해서 실수했는데, 이제는 그 빚 좀 받아야겠다. 일어나, 이 새끼야!”

그러고 보니, 꼬여 있던 혀가 풀려 있었다.

말끝마다 새끼를 붙이는 입은 더 더러워진 듯했다.

뭐가 됐든 간에 놈이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르륵….

일부러 의자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들이 살짝 움찔했지만, 큰 반응은 없었다.

대가리 수도 많고, 꼴에 각성자들이라고 쫀 티는 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나야 더 좋지!’

미리부터 겁을 먹고 쫄아 버리면, 살려는 의지에 소심해지기 마련이다.

제대로 덤벼들 생각도 없이 본능적으로 몸을 사린다.

어떻게든 도망을 치려고 눈치를 본다.

반면, 자신이 우세하다고 여기는 순간, 일단은 용감하고, 무식하게 덤벼든다.

거기에 남자들의 특성인 허세까지 깃들여진다면, 웬만한 위험 경고는 덮어놓고 무시한 채, 대가리부터 처 들이밀기 마련이다.

“하, 이 새끼 눈깔 뜨는 거 보소? 봐 봐, 내가 그랬지? X나게 건방진 새끼라고 말이야.”

놈이 자신의 뒤와 옆에선 이들에게 떠들어댔다.

그에, 다른 놈들이 키득거렸다.

나도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히죽거렸다.

“어쭈, 웃어? 네 놈이 지금 웃을 처지가….”

“야, 너!”

놈의 말을 끊었다.

낮고, 작지만 힘이 깃들여 있었다.

당황했는지 움찔한 놈이 인상을 구겼다.

개의치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자.”

“…??”

“때렸냐? 엘리자를 한 번이라도 때린 적 있냐?”

내 물음에 놈이 심각한 얼굴을 하더니만 이내 가소롭다는 표정을 억지로 지으며 말했다.

“왜? 그게 왜 궁금한데?”

“내가 먼저 물었잖아. 대답이나 해!”

“하아, 참 나 원… 볼수록 시건방진 새끼라니까? 그래, 때렸다. 뭐? 내가 내 여자 좀 때린다는데, 그게 뭐? 어쩌… 윽!”

놈의 지랄 같은 주둥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생각 같아서는 곧장 모가지를 잡고 비틀었어야 했는데, 둘 사이를 막고 있는 테이블이 문제였다.

아무튼.

갑작스러운 공격에 뒤로 밀려난 놈이 다른 놈들의 부축을 받으며 벙찐 얼굴을 해댔다.

다른 놈들도 돌아가는 상황이 당황스러운 듯했다.

타닷!

처억!

뒤로 반 발짝쯤 물러나 자세를 잡았다.

익숙하게 허리춤에 찬 아수라 스워드로 손을 뻗었다.

“…?!”

허전했다.

‘아차… 여관에 두고 왔지.’

살짝 민망해져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뭐, 상관은 없었다.

꼼지락거리던 손가락을 꾹 말아 쥐었다.

“뭣들 하고 있어? 잡아! 죽여!”

놈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그제야 제일 바깥쪽에 있던 놈이 정신을 차리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채앵!

날이 30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는 다소 짧은 검이었다.

이렇게 넓지 않은 곳에서 근접전을 펼치기에는 좋아 보였다.

“이야아압!”

놈이 기합과 함께 내게 달려들었다.

이런 상황을 많이 겪은 것인지, 제법 능숙하게 검을 휘둘러댔다.

휘익! 휙! 휙….

하지만, 느렸다.

놈의 움직임이나 검의 궤적이 모두 보였다.

어렵지 않게 놈의 공격을 피해 냈다.

그만큼 놈과 나의 격차는 뚜렷했다.

“이 새끼… 덤벼! 덤비라고!”

약이 올랐는지 놈이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제풀에 지쳐가기도 했다.

가뜩이나 느려터진 움직임이 의미 없이 커져 버렸다.

부우웅!

크게 휘두른 검이 한참이나 비켜 나갔다.

검을 회수하거나 몸을 추스르려면, 놈에게는 그만큼의 큰 동작과 시간이 필요했다.

당연히 그것이 내게는 크나큰 기회로 이어졌다.

그대로 발을 뻗어 놈의 텅 빈 옆구리를 걷어찼다.

뻐어억!

제대로 된 소리와 묵직한 반응이 일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놈의 몸이 옆으로 훅 꺾였다.

이어, 허공에 살짝 뜬 놈이 저만치 날아가 그대로 처박혔다.

우당탕탕….

놈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멍청한 놈들!’

적을 눈앞에 두고서 시선은 물론, 고개까지 완전히 돌리고 넋을 뺀다는 것은 그냥 죽겠다는 소리와 같은 것이었다.

꽈아악!

양쪽 주먹을 꽉 쥐고는 무릎을 굽히며 기마 자세를 취했다.

다리와 발바닥에도 힘을 모았다.

고오오오오….

급격히 충만해진 힘과 기운을 느끼며 상체를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이어, 한가득 힘이 실린 오른쪽 발바닥을 강렬하게 튕겼다.

파앗!

촤아아아아아악!

몸이 쏟아지듯 앞으로 튀어 나갔다.

자연스럽게 한쪽 어깨가 세워졌다.

스킬 ‘돌격!’.

오식이 때문에 얻게 된 가공할 숄더 어택이 여전히 한눈을 팔고 있는 놈들에게 작렬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볼링공에 맞은 볼링핀처럼 놈들이 죄다 나가떨어졌다.

테이블과 의자는 물론, 공간을 나누기 위해 세워 둔 간이 벽까지 부서지며 한순간에 난장판이 됐다.

“꺄아아악!”

“아이고, 아이고오!”

늦은 시간이라 애초부터 식당에 손님은 없었다.

주방에서 일하던 여자와 식당 주인 여자만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비명과 탄식을 질러댔다.

“끄으응….”

“으윽! 내, 내 다리….”

“크으읏!”

나가떨어지고, 저희끼리 뒤죽박죽 엉켜 버린 놈들은 저마다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기에 바빴다.

말 그대로 한방 컷!

이대로만 둬도 끝은 확실했다.

하지만, 아직 나의 분이 풀리지 않았다.

엘리자가 겪었을 고통과 힘겨움에 비교하면 아직도 멀었다.

저벅저벅….

놈들… 아니, 놈을 향해 걸어갔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놈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나를 발견했다.

순간, 귀신이라도 본 듯이 놈의 눈이 커졌다.

차마 새어 나오지 못하는 말을 어버버거리며 벌린 입을 어쩌지도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덥석!

꽈아아아악!

놈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힘을 가했다.

그대로 끌어올리듯 억지로 놈을 일으켜 세웠다.

다른 놈 때문에 발이 걸리고, 스스로 몸을 주체하지 못해 힘겨워했지만, 그딴 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으읔! 사, 살려 줘….”

놈이 작은 소리로 애원했다.

그런 놈을 싸늘하게 쳐다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놈 좀 때린다는데, 그게 뭐 어때서?”

놈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 주고는 늘어져 있는 놈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어어억!

“흐억!”

놈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뱉어 내며 몸을 꿈틀거렸다.

내게 머리채를 잡힌 채, 축 늘어져 있던 상태라 그 모습이 참으로 기괴했다.

당연히 한 방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연속으로 놈의 복부를 후려쳤다.

퍼어억! 퍽! 퍽! 퍽….

“윽! 헉! 흑….”

때리면 때리는 대로 소리를 내고, 몸을 비틀거나 꿈틀대던 놈이 점점 반응을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반쯤 감긴 눈꺼풀 속에서 서서히 꺼져 가려는 놈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장 이곳을 떠나. 다시 한 번 내 눈에 띄면, 그때는 진짜 죽을 줄 알아!”

내 말에 놈은 제대로 된 대답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두려움으로 가득히 흔들리는 눈동자를 통해 듣지 못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쐐기를 박아 넣기도 했다.

“네놈들도 마찬가지야. 내가 네놈들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싸늘하게 둘러보는 내 시선을 놈들은 애써 피했다.

놈들의 침울하고, 비굴한 표정과 행동들이 내 말을 잘 알아들었다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한 번 더 깊게 쐐기를 박고,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각인시켜 주기로 했다.

당연히 대상은 놈이었다.

으드드득!

놈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있는 팔에 힘을 줬다.

팔뚝의 힘줄들이 탱탱하게 솟고, 힘찬 맥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상태에서 무언가를 집어 던지듯 놈을 힘껏 던져 버렸다.

부우우웅….

콰아아아아앙….

버버버버버버버버벗….

식당 입구의 문을 요란하게 부수며 날아간 놈이 거리의 바닥을 거칠게 훑고는 그대로 널브러졌다.

지나가던 행인들의 비명과 소란스러움이 이어졌다.

“후우우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속의 응어리가 풀린 듯 만 듯….

죄책감과 답답함이 조금 가신 듯 만 듯….

모호하기 그지없고, 갈수록 텅 빈 것처럼 헛헛해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 채 돌아섰다.

….

식당을 나섰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오셨습니까, 주인님.”

린이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방 안의 분위기는 더없이 차분하고, 얌전했다.

그 와중에 더 놀라운 것은 오식이의 모습이었다.

녀석이 글쎄, 점잖은 아이처럼 양반다리를 하고서는 왕울이의 등을 쓰다듬고, 털을 골라 주고 있었던 것.

그것이 편하고 좋았는지, 왕울이는 턱을 바닥에 붙인 채 잠들어 있었다.

“….”

말을 잊었다.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다가 곁에 있는 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와 눈을 맞춘 린이 따스한 미소를 얼굴에 그렸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라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대신에 가득히 짊어지고 온 것들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오식이를 불렀다.

“오식아! 이것들 좀 저쪽에 가져다 놔줄래?”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오식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에, 꾸벅꾸벅 졸던 왕울이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아랑곳없이 오식이가 쿵쾅거리며 다가왔다.

순간, 린이 고개를 뒤로 휙 돌렸다.

흠칫!

오식이가 움찔하며 그대로 멈춰 섰다.

그러다가 더없이 얌전하고, 차분한 몸짓으로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다시금 적응 안 되는 광경에 놀라 할 말을 잃고, 넋을 뺐다.

그런 나를 향해 린이 물었다.

“주인님, 이것들은 뭐죠?”

“응? 아아… 내다 팔 거야. 그리 비쌀 것 같지는 않지만….”

내 말에 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어깨를 한 번 으쓱해줬다.

내가 짊어지고 온 것은 몇 자루의 검들이었다.

출처는 식당에서 혼내 준 놈들이었다.

난동으로 식당을 부숴 놨으니, 변상을 해 줘야 했다.

수리비가 얼마나 나올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냥 주머니 속에 있던 동전들을 모두 꺼냈다.

금화 세 개와 은화 두 개가 전부였다.

아무리 봐도 모자라 보였다.

‘나 혼자 책임질 필요는 없지!’

쓰러진 놈들의 주머니를 뒤졌다.

거지 같은 놈들이 돈도 얼마 없었다.

먼지까지 탈탈 털어 식당 주인 여자에게 건넸다.

이어, 쿨하게 돌아서려는데, 내가 낸 돈이 아까웠다.

해서, 다시 놈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죄책감 없이 삥을 뜯었다.

그렇게 들고 온 것이 딱 봐도 싸구려 같아 보이는 놈들의 검이었다.

….

“후우우….”

잠이 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몸을 뒤척였다.

아무리 자세를 바꿔도 불편했다.

몸도 그랬지만, 마음이 더 그랬다.

엘리자의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잘 살겠지?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혼쭐이 났으니, 놈은 엘리자의 곁을 떠날 것이다.

만약에 놈이 내 말을 어긴다면, 반드시 내가 했던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다.

어느 쪽이든 그렇게만 된다면, 엘리자는 그간의 일들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건… 나 역시,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겠다는 다짐과 그녀를 잊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 그게 옳아.’

어차피 또 떠나야만 했다.

그게 당장 내일이 될지, 몇 날 며칠이 걸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별의 시간은 무조건 정해져 있었다.

일이 잘 풀려, 다시 엘리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후의 이별… 지금도 이렇게 힘들고, 마음이 쓰이는데,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 후의 이별에는 더 큰 힘겨움과 아픔이 있을 게 분명했다.

차라리 지금 그녀를 잊고, 보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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