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99)
남자와 헤어지고 식당으로 향했다.
몇 시간 만에 녀석들을 카드 속에서 꺼내 줬다.
“형님! 나 배고….”
“오식 씨, 이쪽으로….”
투덜거림을 뱉어 내는 오식이를 린이 다독였다.
눈치 없는 오식이를 제외하고, 분위기를 감지한 린과 왕울이는 조용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실로 조용하기 그지없는 식사가 이루어졌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값을 내기 위해 계산대로 갔다.
“얼마죠?”
음식값을 계산하던 식당 주인 여자가 넌지시 내게 물어왔다.
“그래, 엘리자는 만나 보셨나요?”
다소 뜬금없는 물음에 그녀를 쳐다봤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한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아까 찾기에 물어본 거예요.”
“아아, 네….”
“그런데 둘이 어떤 사이신지….”
여자의 호기심 어린 표정에 쓴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녀는 나를 알고 있었다.
한두 번 본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나와 엘리자의 사이도 알았었다.
이제는 과거형으로 말해야 하는 이 상황이 씁쓸했다.
“아, 그냥… 조금….”
“아, 그래요?”
“네….”
“에휴, 난 또….”
“왜요?”
“아니에요.”
여자는 뭔가 있을 것처럼 굴더니만 말을 아꼈다.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큰 관심을 보인다거나 집요하게 파고들기가 좀 그랬다.
해서, 마음을 접으려는데, 여자가 여지를 던졌다.
“에휴, 그것도 참 불쌍하지….”
확실히 뭔가가 있음이 확실했다.
바로 주머니에서 금화 세 개를 꺼냈다.
“여기 음식값이요.”
“아, 잠시만요. 잔돈이….”
“나머진 그냥 넣어 두세요.”
“에?”
“음식이 맛있어서요. 팁이라고 생각하세요.”
“아이고, 감사해요.”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돈을 챙겼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슬쩍 말을 건넸다.
“저기… 뭐 좀 여쭤 봐도 될까요?”
“뭐요? 뭐든 물어보세요. 모르는 것 빼고는 내 다 알려드릴 테니까.”
“아, 그럼… 잠시만요. 곧 다시 오겠습니다.”
“네? 아, 그래요.”
식당을 빠져나왔다.
바로 여관으로 향했다.
거의 뛰다시피 하면서였다.
“어서 오세….”
“바, 방 좀 주세요.”
“네? 아, 예… 어떤 방으로 드릴까요?”
“큰 방! 큰 방 주세요! 금화 한 개죠?”
서둘러 방값을 내고는 재빨리 3층으로 올라갔다.
짐은 거의 내동댕이치다시피 했다.
“너희들은 여기서 쉬고 있어.”
“식당에 다시 가시는 거죠?”
“응, 금방 다녀올게.”
“네.”
린과 빠르게 대화를 마치고는 돌아섰다.
순간, 오식이가 시야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다시 몸을 돌려세웠다.
“오식이 너는 사고 치지 말고, 린이 하라는 대로만 해! 알았지?”
“크륵… 아, 알았다, 형님.”
“잘 좀 부탁해, 린.”
“네, 주인님. 안심하고 다녀오세요.”
살짝 걱정이 됐지만, 마음이 급해서 그냥 방을 나섰다.
날 듯이 뛰어 다시 식당으로 향했다.
….
식당에 도착해 주인 여자와 자리를 함께했다.
넉넉하게 준 팁 때문인지, 여자는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아니, 내가 자기보다 어리기 때문인지, 슬쩍 말을 놓기도 하면서 엄청나게 친한 척을 해댔다.
그렇게나 자주 들락날락하며 나름 친분을 키웠음에도 단 한 번의 공짜가 없었는데, 향긋한 차까지 내주는 것 또한 놀라웠다.
어쨌든.
주인 여자의 입을 통해 내가 없는 동안, 엘리자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엘리자는 잘 지내고 있는 거죠?’라고 물으며 운을 띄웠을 뿐이었는데, 주인 여자 혼자서 봇물 터지듯 전부 다 털어놓았다.
뭐, 원래도 좀 수다스럽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었다.
“엘리자 걔가 전적이 좀 있어서 그렇지, 실은 엄청나게 여리고 착해요.”
엘리자의 전적이란 것이 아마도 술집에서 일했던 일을 얘기하는 거라 생각됐다.
여리고 착한 것은 나도 보장할 수 있는 부분이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식당 주인 여자가 말하는 그녀의 착함은 다른 것에 있었다.
“자기도 어렵게 살면서 먼 곳에 있는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식재료 같은 걸 보내 주곤 했다니까?”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이어, 추가된 여자의 말에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걸 또 내가 싸게 팔아 줬잖아. 알다시피 우린 식당을 하니까, 식재료를 싸게 들여올 수 있거든. 호호호!”
엘리자가 이곳 식당에서 식재료들을 사 온 것은 나와 녀석들을 먹이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주인 여자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얘기가 전혀 다른… 나는 전혀 모르는 어떤 아이들을 위한 기부와 선행으로 변해 있었다.
‘헐… 설마, 그게 이렇게 바뀐다고?’
이방인이 이곳을 떠나 약 일주일이 지나면, 던전 마을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진다는 룰.
해서, 나도 그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고, 사라졌다.
뭐, 나와 크게 연관이 없는 이들은 그다지 문제 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사이에 한집에서 함께 살기까지 했던 엘리자의 경우는 다를 수밖에 없었고, 달라야만 했다.
함께한 시간이 많으니, 흔한 일상 자체에서도 혼란이 올 수가 있을 테니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일종의 ‘기억조작’인 모양이었다.
당사자의 행동과 상황의 이유에 걸맞은 다른 사건을 심어 주어 자연스럽게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인지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 말이다.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엘리자의 남편은 이방인이에요.”
알고 있었다.
딱 봐도 그렇게 보였다.
“매일 같이 식당에 드나들었지. 엘리자를 보겠다고 말이야. 지극 정성에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니까?”
듣자마자,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본 그는 물론, 둘의 분위기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엘리자는 눈길도 주지 않았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말이지. 뭐, 나중에는 부담스러워서 거짓말을 했다고 했지만….”
처음부터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를 잊게 되면서 그것이 그냥 부담스러움의 거짓말로 변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그 사람은 끈질기게 구애했고, 결국에는 엘리자도 넘어가 버렸지. 워낙에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라 그렇게 챙겨 주는데 어찌 반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얼마 뒤, 둘은 결혼했어.”
끄덕이던 고개를 바로 멈췄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빨랐고, 성급했다.
‘뭐가 그리 급해서… 쯧!’
상황이 그러니 이해를 해야 했지만, 밀려드는 배신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 표정을 살피며 차를 홀짝이던 식당 주인 여자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엘리자의 남편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 결혼과 동시에 그동안 감추고 있던 본성을 드러냈지.”
‘내 그럴 줄 알았다’와 ‘개자식!’이란 생각이 연이어 떠올랐다.
미간이 꿈틀댔고,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늘 술에 취해 있었고, 일도 하지 않았지. 게다가 엘리자도 더는 식당에 나오지 못하게 했어.”
잠시 말을 끊은 식당 주인 여자가 주변을 한 번 힐끔 돌아봤다.
혹여, 누가 듣기라도 할까 조심스러워하는 행동이었다.
이어, 마주한 내게 다가서듯 상체를 가까이 기울이더니, 목소리까지 잔뜩 줄이며 속삭였다.
“소문에는 엘리자를 집에 감금하다시피 하면서 어디도 못 나가게 한다는데, 그 이유가 매일 같이 때리고, 괴롭히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야.”
꿈틀대고 좁혀졌던 미간이 더욱더 구겨졌다.
꽉 깨물고 있던 어금니는 부서질 것 같았다.
이런 내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식당 주인 여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불쌍하고, 안쓰럽지. 그런데 막상 나서서 도와주기도 그렇잖아? 남의 가정사인데 말이야.”
이해가 되면서도 또 그렇지 않았다.
간신히 끓어오르는 것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도움을 주는 게….”
“에이, 그래도는 무슨… 총각도 이방인이니 알 것 아니야?”
“…??”
“왜, 우리랑은 다르게 힘도 세고 하잖아.”
“아, 네…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나서? 그 남자 성격이 포악하고, 거칠다는 걸 다 아는데. 괜히 나섰다가 무슨 큰일을 치르려고.”
“흠….”
“이방인들이 좀 도와주면 좋겠지만, 알다시피 이방인들은 이방인들끼리 편이라서….”
식당 주인 여자가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내 눈치를 보는 것도 같았다.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아 바로 말했다.
“아, 저는 괜찮아요. 어차피 이방인들과 친한 사람들도 없고, 친해질 생각도 별로 없어요.”
“그, 그렇지?”
“네, 그러니 안심하시고 말씀하세요.”
“그래, 내가 보니까 총각은 다른 이방인들하고 좀 다른 것 같아. 그러니까 이런 얘기도 묻고, 내가 또 다 얘기하는 거 아니겠어? 호호호!”
살짝이 어색함이 흘렀다.
이제 거의 다 식은 차를 연이어 홀짝인 그녀가 다시 입을 열어 말을 이어 갔다.
“이방인인 남자가 무섭기도 하지만, 엘리자가 어릴 때부터 가족도 없이 혼자 살고, 술집에서 일했다는 과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멀리하는 것도 있지. 사실, 그게 좀 그렇잖아?”
꿈틀!
풀어졌던 미간의 주름이 다시 좁혀졌다.
잘 나가다가 옆길로 한 번 새더니만, 완전히 코스를 이탈해 버린 실수.
식당 주인 여자는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괜히 덧붙여 내 심기를 건드린 게 되어 버렸다.
‘씨바….’
생각해 보니, 점점 더 화가 났다.
진짜, 별걸 다 가지고 지랄들이다.
가족이 없고 싶어 없었나?
혼자 살고 싶어서 혼자 살았느냔 말이다.
술집에서 일한 것도 그렇다.
막말로 엘리자가 술집에서 일을 하며, 남자들한테 몸을 판 것도 아니고, 그저 술과 안주를 서빙만 했다.
그런 것도 흠이 되나?
그런 것이 불쌍하고,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를 여자를 모른 척할 이유가 되느냔 말이다.
뭐,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던전의 룰이 있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 듣기에는 엘리자를 그렇고 그런 여자로 보며, 더럽다 여기는 것은 물론, 어째 저희… 던전 마을 주민들끼리 좋고, 편해지자는 뜻에서 방관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도와줄 게 아니면, 차라리 걱정도 하지 말고, 수군덕거리지도 말든가!’
꽈아아악….
피가 거꾸로 솟았다.
하도 주먹을 세게 쥐어서 피가 맺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크으으! 그래, 이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어… 죄인은 나지, 내가 죄인이지.’
그랬다.
모든 게 다 나 때문이었고, 내 잘못이었다.
내가 이곳을… 엘리자의 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그런 거지 같은 놈을 만나지 않았을 터였다.
아니다.
내가 엘리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지 않았다거나 애초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인생은 분명히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아아, 어째야 하지?’
어떻게든 상황을 돌려놓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인 시점으로….
그게 아니라면, 내가 이곳을 떠나기 전 시점으로라도 시간이 돌아갔으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될 리가 없었다.
방법도 없었고, 가능성도 없었다.
‘미안… 정말 미안해, 엘리자… 내가 미안해….’
이마가 테이블에 닿도록 고개를 푹 숙인 채,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엘리자에게 사과했다.
찢어질 듯 괴로운 마음이 도무지 가실 줄을 몰랐다.
“아, 나는 그만 일어나야겠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식당 주인 여자가 심각한 분위기를 느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어지는 그녀의 발걸음에 꾹꾹 눌러 참았던 눈물이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진짜, 그녀가 자리를 뜨지 않았다면 어깨를 들썩이는 것은 물론이고, 엉엉 소리 내어 울며 추한 꼴을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이었다.
우르르르….
흠칫!
저벅저벅….
둔해진 감각으로도 충분히 느껴지는 난잡한 기척에 삐져나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이어, 심기를 제대로 건드리는 지랄 같은 음성이 날아들었다.
“이 새끼, 여기 있었구만? 그런 줄도 모르고 한참 찾았잖아, 이 개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