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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198화 (198/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98)

알버트의 반응에 벙쪄 버렸다.

얘가… 아니, 이 사람까지 왜 이러나 싶었다.

나도 모르게 울상이 되어 그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며 말했다.

“왜 그래, 알버트? 지금 장난하는 거지? 그렇지? 나 지금 정말 심각해. 그러니 이런 짓궂은 장난은 그만둬, 제발….”

하지만, 나를 향한 알버트의 표정과 눈빛은 농담을 한다거나 장난을 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등에 소름이 돋으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헉! 서, 설마… 이곳은 내가 알던 곳과 전혀 다른 곳인가?’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지금 상태로는 그럴 가능성이 가장 컸다.

시공간의 터널 같은 게이트를 몇 번이나 넘었다.

첫 번째 게이트 너머인 샌드 웜 밭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뭐, 대부분의 던전들이 그런 형식이니까,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게이트부터는 달랐다.

일단은 입구가 열리는 시점부터가 랜덤이다.

그것이 큰 영향을 끼쳤는지 확실치 않지만, 이러한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었다.

게이트를 넘어 도착하게 되는 정글, 그리고 언덕과 기다란 풀숲 구역으로 나뉘는 맵의 전반적인 순서는 같았다.

그러나 그 형태와 모양새는 달랐다.

몇 개월을 오가며 지냈던 터라 확실하게 눈에 익었던… 특히나 보금자리부터 언덕까지 향하는 길은 대충 그림으로 그리라 해도 그려 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른 이들과 함께 지나올 때는 낯익음이라고는 하나 없는 모습이었었다.

해서, 내가 몇 개월을 살았던 곳과는 다른 곳이라 보는 게 옳을 듯했다.

완전히 씨를 말려 버린 사마귀 놈들이 다시 등장한 것부터도 그렇고 말이다.

그렇게 세 번째 게이트를 넘었다.

커다란 돌기둥이 있던 입구부터 던전의 마을로 향하는 언덕의 길은 물론, 마을 안의 전경도 모두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하물며, 제일 먼저 찾았던 식당이나 지금 서 있는 마정석 가게, 주택가의 골목들을 몇 개나 빠져나가야 나타나는 엘리자의 집까지 틀린 점이 없었다.

하지만, 엘리자나 눈앞에 있는 알버트가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 취급한다.

뭣 하나 틀리지 않은 같은 모양새의 공간이지만, 애초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또 다른 세계 내지는 세상.

나도 잘 모르는 부분이지만, 멀티버스… 다중우주나 평행우주 같은 이론의 그런 것들이 적용된 상태가 지금 내가 겪는 현실이고, 이곳이지 않을까 싶다.

‘뭐야? 그렇다면… 내가 있던 곳을 찾기 위해서는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건가?’

귀환석을 얻어 돌아간다.

다시 자이언트 샌드 웜의 마정석을 얻고, 먹구름의 입구가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사마귀 놈들을 물리치고, 빨간색 게이트를 넘어 던전 마을로 온다.

내가 있던 곳이 아니라면 다시 반복.

“헐….”

무엇하나 쉬운 게 없었다.

쌍벽으로 극악의 드롭률을 자랑하는 귀환석과 마정석을 얻는 것도 그렇고, 먹구름의 입구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그렇다.

더불어 같은 모양새지만, 다른 세상인 던전 마을의 수가 몇 개나 될지 알 수 없었다.

대박으로 운이 좋아 한두 번 만에 내가 있던 곳으로 떨어진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 또한 확률적으로 극악의 수준… 아니, 그 이상이 될 가능성이 컸다.

한 번뿐인 경험이었지만, 그것을 토대로 계산했을 때, 못해도 한 달에서 두 달쯤의 시간이 걸릴 것이고, 몇 번만 실패해도 1년이란 시간이 훌쩍 넘어갈 터였다.

‘워, 끔찍하다.’

생각만으로도 진저리가 쳐졌다.

그곳에서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고 있을 엘리자를 생각한다면 몇 번이고 도전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보내고, 겪어야 할 수많은 시간과 노력도 따지고 봐야 할 일이었다.

“흐음….”

그래서는 안 될 일일 수도 있었지만, 나도 사람이다 보니까 여러 모를 따지고 저울질했다.

시작부터 그렇게 평행하지도 않았던 저울의 기울기가 빠르게 한쪽으로 치우쳐졌다.

엘리자에게는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으나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는 것과 견줄 만한 확률에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는 건 아무래도 아닌 듯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상황을 직시하고, 내가 내린 결정을 두둔하며, 엘리자에게 드는 미안한 마음을 애써 지우려 노력하던 그때였다.

벌컥!

짤랑짤랑!

가게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알버트가 인사를 했다.

“어서 오….”

“어!”

“…??”

알버트의 인사를 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하며 반응했다.

자신을 향한 내 반응에 상대는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에게 물었다.

“저기… 저 기억하시나요?”

“누구시죠?”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바로 설명했다.

“왜, 얼마 전에 사냥터에서 얻으신 귀환석을 샀던 사람입니다.”

그랬다.

그 사람이 이 사람이었다.

빠르게 눈치를 살폈다.

그의 어리둥절하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아, 아아! 아이고, 안녕하세요.”

그가 나를 기억해 냈다.

머리 주변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기뻤다.

“아앗! 기억하시는군요?”

“그럼요, 당연히 기억하죠. 하하하!”

그가 호탕하게 웃어댔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웃음을 멈추고는 물었다.

“아, 혹시 바깥에 다녀오셨습니까?”

“네?”

“그 귀환석으로 탈출… 그러니까, 샌드 웜 밭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신 건가요?”

“아니요. 저는 그때부터 여기 쭉 있었는걸요. 굳이 나갈 일이 없어서요.”

문득 든 생각에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돌아온 대답이 전혀 예상과 달랐다.

혼자서 거의 역대급의 시나리오를 써 가며 세웠던 가설이 쓰레기가 됐다.

‘아니… 그럼,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해야 하는 건데?’

정말이지 미치고 팔딱 뛸 일이었다.

….

마정석 가게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가 거래를 마칠 동안 기다리는 중이었다.

거래 후에 잠시 얘기를 나누자고 미리 약속한 상태였다.

‘흐음….’

묻고 싶은 게 산더미 같았다.

결코, 차분해지지 않는 마음을 다스리며, 기다리는 동안 질문의 내용과 순서를 정리했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네, 수고하세요.”

그가 거래를 마쳤다.

돌아서는 그와 눈을 맞췄다.

함께 마정석 가게를 나왔다.

“뭐라도 마시면서… 아니면, 식사라도 같이할까요?”

“아, 제가 선약이 있어서….”

“아, 네… 그럼, 빨리 물어볼게요.”

“그러시죠.”

시간이 촉박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를 기다리며 잘 정리했던 질문의 내용과 순서들이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됐다.

대충 떠오르는 대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물음을 던졌다.

“혹시, 멀티버스라고 아십니까?”

“네? 그게 뭐죠?”

“아, 그게 그러니까….”

막상 뱉고 보니, 어째 쓸데없을 것 같은 얘기가 먼저 튀어나왔다.

무르기도 뭐 하고 해서, 가뜩이나 없는 시간을 꽤 잡아먹으며 그에게 설명했다.

“아아, 그런 거군요. 그런데요?”

“혹시, 이곳이 그런 곳은 아닌가요?”

“네? 그게 무슨….”

“그러니까….”

또다시 길고 긴 설명을 늘어놨다.

한참이나 묵묵히 듣던 그가 한 답변은 간단했다.

“아닌데요. 제가 알기로는 빨간색 게이트를 넘으면, 무조건 이곳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 그렇습니까?”

“네.”

그가 단언하듯 말했다.

사실,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는 그가 내 앞에 등장하고, 나를 알아본 시점에서부터 이미 멀티버스니 뭐니 하는 이론과 가설은 개똥과도 같은 것이었다.

코끝을 한 번 찡긋거리고는 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애써 세운 가설이 쓰레기라는 걸 짐작하면서부터 내 머릿속과 멘탈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해서, 이번에도 그냥 튀어나오는 대로 지껄인 수준이었다.

“그럼, 혹시… 엘리자라고 아십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차 싶었다.

이딴 걸 물어서 뭐 할 것이고, 그가 엘리자를 알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이 의외였다.

“아, 그 술집에서 일하던 여종업원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아, 네. 아시는군요?”

“당연히 알죠. 미인에다가 몸매도 좋고, 성격도 좋잖아요.”

“그, 그렇죠. 하하!”

“그런데, 그분은 왜요?”

“아니, 그게….”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는 끝내 상황을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어쩌고저쩌고… 이렇게 돼서 저렇게 됐는데….”

얘기를 늘어놓다 보니, 살짝 흥분도 되고, 열도 났다.

그런 와중에 속이 좀 후련해지는 것도 있었다.

어쨌든,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피식 웃어댔다.

나를 한심하다 여기며 놀리거나 비웃는 것 같지는 않았고,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해서, 그의 입술을 주시했다.

그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매우 놀라고 당황하셨겠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랍니다.”

“…??”

“혹시, 사마귀 놈들을 상대하던 곳의 비밀을 알고 계십니까?”

“네? 어떤 비밀 말씀이시죠?”

“음… 하루에 한 번, 그러니까 동이 틈과 동시에 일대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신기한 현상입니다만….”

“아,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요.”

“…??”

“여기도 그렇습니다. 대신에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이죠.”

그가 계속 설명을 이어 갔다.

참으로 놀라운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댔다.

요점은 이랬다.

귀환석을 통해 이곳을 탈출한 순간부터 대략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면, 이곳 던전 마을의 주민들 기억 속에서 해당 이방인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곳에 있는 동안 그 어떤 짓을 하고, 어떻게 살았건 간에 다 필요가 없었다.

일주일만 지나면 아주 그냥 깔끔하게 리셋 되어 버린다.

바꿔 말해, 일주일 안에만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기존의 삶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정황상 그게 지랄 같이 어려워서 문제지만 말이다.

당연히 던전 마을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만 사라진다.

이곳에 들어온 이방인… 각성자들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얘기다.

던전 마을 주민인 엘리자나 알버트는 나를 기억 못하고, 내 앞에 서 있는 그는 똑똑히 기억하는 게 그 예였다.

더는 물어볼 게 없었다.

아주 그냥 깔끔하게 모든 것이 이해됐다.

내가 이곳을 떠난 지는 한 달도 넘었다.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부터 나는 엘리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이후, 엘리자는 다른 남자… 술에 절어 고주망태가 된 그 남자와 만나고,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 뒤에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나타나 다짜고짜 끌어안고, 지랄 염병을 해댔으니, 나를 완전히 잊은 엘리자의 입장에서는 기겁을 하고 난리를 피우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우,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전혀 몰랐던 상황에서 저지른 짓이기는 하지만, 미안한 일이었고, 사과해야 할 일이었다.

아니지, 이런 짓을 저지르고 다시 엘리자 앞에 나타나는 게 더 미안한 일이 되려나?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찌할 줄을 몰라 하던 차에 남자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엇!’

알버트였다.

그가 가게의 창문에 바짝 붙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그에게도 미안한 짓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놈이 갑자기 나타나 아는 척, 친한 척은 물론, 반말지거리를 찍찍 했으니 말이다.

스윽….

손바닥을 펴 살짝 들어 올렸다.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그렸다.

알버트에게 보여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스윽….

알버트가 이내 창가에서 물러나며 사라졌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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