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95)
기다란 풀숲 구역의 중간 지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언덕을 내려와 사냥을 시작한 지 5시간이 채 넘지 않은 시점이었다.
‘엄청 빠르네.’
빨랐다.
그것도 상당히… 아니, 엄청나게!
빅너트를 이용해 불을 지르는 사냥법도 빠르다.
그러나 구역 자체가 워낙에 넓다 보니, 빠르기보다는 대규모 타격에 편안함을 더 쳐준다.
게다가 시작 지점부터 거대 사마귀가 있는 끝 지점까지 당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24시간을 웃돌기에 지금의 속도와 비교하면 그리 빠른 것도 아니었다.
직접적인 사냥은 뭐….
전투와 사냥 경험이 풍부하고, 서로 간의 호흡마저 뛰어난 50레벨 초반의 3인과 40대 중반 레벨의 괴수가 조합된 팀이 1시간을 겨우 버티는 수준이다.
솔직히 몇 미터를 전진하기도 쉽지가 않다.
뭐, 사마귀 놈들을 일일이 상대하지 않고, 앞만 본 채 달리면서 사냥을 한다면 빠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계속해서 덤벼드는 놈들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법.
그보다는 다시 돌아올 때 감당해야 할 문제점과 리스크가 너무 크기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옳았다.
기다란 풀숲 구역은 그런 곳이었다.
이곳에 서식하고, 침입자를 노리는 사마귀 놈들은 그런 놈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단순히 샌드 웜의 속살을 멀리 집어 던지고, 잠시 사마귀 놈들의 괴로움을 지켜보다가 슬슬 전진해 거의 다 죽어 가는 놈들을 손쉽게 처리한다.
그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나서는 다시 앞선 과정을 되풀이한다.
놈들에게 군침이 도는 먹이이자 치명적인 독이라는 샌드 웜의 속살 대부분은 재활용도 할 수 있다.
쓸모없을 정도로 작아졌거나 사마귀 놈들의 사체가 남아 회수하지 못하는 수량은 넉넉할 정도로 가지고 있는 새것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그런 단순하고, 안전하며, 편안한 방법으로 사냥이 진행되다 보니,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이런 엄청난 속도가 나오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선 설명 중에 눈치를 챈 이들도 이미 있을 것이다.
그랬다.
사마귀 놈들의 가장 큰 특징이자, 무섭고, 지랄 같은 부분… 바로 엄청날 정도로 이어지는 리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곳이 발견된 초기에는 진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던전이든 간에 마땅한 공략법이 나오지 않을 초반에는 맨땅에 헤딩하듯 이리저리 부딪치고 깨져야만 한다.
이곳도 그랬다.
해서, 많은 이들이 도전했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큰 발전과 노력이 없는 일본 헌터들의 수준과 비교해 다소 높은 사마귀 놈들의 레벨, 거기에 무한에 가까운 리젠 속도는 그저 재앙이라 봐도 좋았다.
‘들어가면 죽는 곳’,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 등으로 불리며, 한동안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넘치는 호기심과 무모한 도전의 성취감을 즐기는 종족.
하지 말라는 짓,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되풀이하고, 끝내는 그것을 극복한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바로 ‘샌드 웜 속살 공략법’이었다.
이런 엄청난 공략법이 발견됐으니 붐이 일어야 마땅했다.
뭐, 초기에는 분명히 그랬었다.
하지만, 반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언제 열릴지 모르는 던전의 입구와 입구를 통과할 때 필요한 열쇠… 자이언트 샌드 웜에게서 얻어야 하는 마정석의 극악에 가까운 드롭률 등이 문제였다.
단시간에 폭발적일 만큼의 경험치를 나름 손쉽게 얻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 이전의 과정이 너무나 버거운 것이다.
엄밀하게 따질 것도 없다.
차라리 다른 던전에 들어가서 꾸준히 사냥을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고, 빠를 터였다.
해서, 지금은 순간의 광렙을 경험해 보고 싶은 이들이나, 이곳 너머의 구역… 또 다른 세상을 즐기거나 체험해 보고 싶은 이들만이 도전하고, 이용하는 중이었다.
‘훗! 빅너트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 상황이 달라질걸?’
샌드 웜의 속살을 이용한 공략법이 무척이나 편하고, 안전하며, 이동 속도 또한 빠르다는 건 무조건 인정이다.
전진할수록… 기다란 풀숲 안으로 들어올수록, 샌드 웜의 속살을 먹고 사경을 헤매는 사마귀 놈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기에 그만큼 많고, 충분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빅너트로 불 지르기’와 비교하면 사실상 게임이 되지 않았다.
빅너트를 이용해 불 지르기 외에는 거의 할 것도 없는 편안함.
어차피 불길이 뜨거워 가까이 다가갈 일이 없으니, 혹여 있을 사마귀 놈들의 공격조차 당할 일 없는 안정성.
뭐, 지랄 같이 생성되는 잿더미 밭을 뚫고, 다소 느릿하게 이동해야 하는 부분이 단점이기는 했다.
하지만, 놈들의 특징인 빠른 리젠 덕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얻어지는 막대한 경험치는… 그것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한 메리트가 있고도 남았다.
이 방법이 세상에 공개되면, 이 던전이나 이곳과 같은 던전은 각성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바글바글 넘쳐 날 게 분명했다.
모르긴 몰라도, 국가나 해당 국가의 헌터 협회에서 철저하게 관리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때는 몰랐다.
절대로… 평생을 가도 이 던전이나 이곳과 같은 던전을 국가나 헌터 협회에서 나서서 관리할 일이 없을 거라는 걸 말이다.
또한, 내가 발견한 사냥법들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당연히 타당한 이유는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밝혀질 일이니, 때가 되면 다시 이야기를 꺼내도록 하겠다.
어쨌든.
벌써 레벨이 올랐다고 환호하는 이들과 함께 기다란 풀숲을 빠르게 이동하며, 점점 피라미드에 다가서고 있었다.
곧 놈이 등장할 시간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
부스럭부스럭….
다른 이가 메고 있던 배낭을 풀었다.
새것 같은 샌드 웜의 속살이 나왔다.
“이제 거대한 놈이 나옵니다. 저만한 샌드 웜의 속살을 한 번에 집어삼킬 만큼 큰 놈이지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암, 놈이라면 저 정도 사이즈는 돼야지!’
동시에 일반 사마귀 놈들처럼 거대 사마귀에게도 샌드 웜의 속살이 먹히려나 싶었던 의문도 해소됐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엑!”
놈의 기괴하고, 커다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굉장하지요?”
무리의 대장이 실실거리며 물어왔다.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가 실실거림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실물을 보면 더 놀라실 겁니다. 어마어마하거든요.”
“아, 네….”
“그런데 말입니다.”
“―??”
“놈은 속이 빈 깡통입니다.”
“그게 무슨….”
내 반응에 그가 히죽 웃으며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이제 곧 보시겠지만, 정말이지 놈은 엄청납니다. 크기도 그렇고, 레벨도 높지요. 그만큼 강하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는 익히 아는 내용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기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입술을 주시했다.
“하지만, 경험치가 짭니다. 물론, 맨티스 놈보다는 많이 주지만, 비교할 바는 못 되지요.”
“그렇군요.”
“그래서 놈을 빈 깡통이라고도 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여기 때문입니다.”
그가 검지 끝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의 말과 행동을 바로 이해했다.
“놈이 바보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것도 엄청날 정도로요. 하하하.”
그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거대 사마귀를 직접 상대해 본 입장에서 놈이 바보 같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때우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적절히 이용하고, 대응할 줄 알기에 오히려 생각이 좀 있는 놈이라 여겼다.
“직접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그가 다시금 히죽거리고는 피라미드 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잠시 후, 엄청난 점프와 묵직한 착지를 선보이며 놈이 등장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웅!
기다란 풀들이 폭풍을 맞은 듯이 휘청이고 꺾였으며, 놈의 육중하고 거대한 몸에 무참하게 짓눌렸다.
이제는 상대가 되지 않는 놈이었지만, 그래도 엄청나고 압도적인 위용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키이이이이이익!”
거대 사마귀 놈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낮게 흘리며 우리를 훑어봤다.
그 순간, 대기하고 있던 이가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놈을 향해 손에 들린 것을 집어 던졌다.
그 모습이 마치, 육상경기 중 투척 종목인 해머던지기와 똑 닮아 있었고, 당연히 그가 던진 것은 새로운 샌드 웜의 속살이었다.
희끄무레하고 커다란 덩어리가 거대 사마귀 놈의 머리 쪽을 향해 날아갔다.
휘이이익….
거의 부딪치나 싶던 순간, 놈이 거대한 앞발을 빠르게 휘둘렀다.
쉬이이이익!
퍼억!
낫처럼 생긴 뾰족한 놈의 앞발 끝에 샌드 웜 속살 덩어리가 제대로 꽂혔다.
제 실력에 만족한 것인지, 놈이 웃는 듯한 소리를 냈다.
“키이이익!”
이어, 앞발에 꽂힌 샌드 웜의 속살을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눈으로 살폈고, 냄새도 맡았다.
신중함과 호기심을 동시에 발하는 느낌이었다.
“어서 먹어라, 꿀떡하고 삼키라고.”
내 옆에서 무리의 대장이 놈을 재촉하듯 말했다.
물론, 놈에게 들릴 리 없을 정도로 작은 혼잣말이었다.
“키이익….”
그의 바람을 이루어 주듯 거대 사마귀 놈이 샌드 웜의 속살을 입으로 가져갔다.
위아래가 아니라, 양옆으로 벌어지는 놈의 주둥이가 참으로 흉측했다.
“찌걱찌걱… 찌걱찌걱….”
놈이 야금대듯 샌드 웜의 속살을 맛봤다.
그러다가 이내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커다란 덩어리가 반 이상 사라졌다.
“옳지 잘한다, 잘해! 흐흐흐!”
무리의 대장이 손뼉까지 칠 기세로 놈에게 응원(?)과 칭찬을 날려댔다.
그러는 사이, 놈이 샌드 웜의 속살을 모두 먹어 치웠다.
“키이이익!”
거대 사마귀가 기대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치명적인 독을 먹고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맛 좋은 먹이를 먹고 흡족해하는 모습이었다.
‘아닐 거야.’
실수나 문제가 있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주변 사람들이 너무나 평온하고, 여유로웠다.
역시나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던 거대 사마귀 놈이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키이이… 키이이… 키이이이….”
일단, 뱉어 내던 소리가 심상치 않아졌다.
약간의 호흡곤란을 겪는 것도 같았고, 제 몸에 이상을 느끼며 조심스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상체를 곧추세우며 깜짝 놀란 듯이 우리를 쳐다봤다.
“키이익?!”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살며시 키득거렸다.
무리의 대장은 대놓고 낄낄거렸다.
“왔구나, 왔어! 맛이 어떠냐, 요놈아? 키키키킥!”
여전히 여유로운 그들과 달리, 나는 슬쩍 날아드는 불안감에 미간이 구겨졌다.
눈치를 살피다가 한쪽 발을 뒤로 빼고서 물러나기까지 했다.
여차하면 더 멀리 도망치거나 녀석들을 소환할 생각까지도 해 둔 상태였다.
“키이이이익!”
이상 반응과 함께 우리를 노려보던 거대 사마귀 놈이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아차 싶은 마음과 함께 발뒤꿈치에 힘을 모았다.
놈이 성남과 흥분을 대놓고 표출하며 거대한 낫 모양의 앞발을 미친 듯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이익! 휘이익! 휘익!
“…??”
레벨이 낮아 위험 상황의 감지나 반응도 느린 걸까?
놈이 발광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던 다음 순간….
내가 했던 걱정과 불안 등은 모두 기우였음을 알게 됐다.
휘이이익!
허공에 휘둘러대던 놈의 앞발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이며, 묘한 궤적을 그렸다.
‘뭐지?’ 싶은 마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거의 동시에 놈의 거대한 대가리도 갸웃해졌다.
그런 줄 알았다.
아니었다.
옆으로 기운 놈의 거대한 대가리가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는가 싶더니만, 그대로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쿠우우웅….
“헐….”
“보십시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놈은 뇌가 없는 완전 깡통이라니까요? 하하하하!”
무리의 대장이 그것 보라며 크게 웃어댔다.
다른 이들의 낄낄거림도 커졌다.
“사람도 뭔가를 잘 못 먹거나 해서 목에 걸리면 이렇게 손을 목에 가져다 대지 않습니까, 놈도 그런 겁니다. 놈의 손이 저렇게 생긴 게 문제일 뿐이죠.”
그의 친절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렇지….’
허무한 놈의 자결 퍼포먼스에 허탈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