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94)
그들을 따라 게이트를 넘었다.
눈을 뜨기도 전에 습한 기운이 날아들었다.
그리운 느낌은 아니었다.
“이곳은 안전합니다.”
무리의 리더가 친근감 있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웃었다.
“가시죠.”
그들과 함께 정글 안쪽으로 이동했다.
여러 번 이곳에 들어왔던 것일까?
이동하는 모양새나 진형이 꽤 익숙하고 능숙했다.
반면, 레벨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쉴까요?”
잠시 쉬기로 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쉰다는 말에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생각 같아서는 그들과 헤어져 혼자 가고 싶었지만, 일단은 따르기로 했다.
“으쌰! 훅! 훅!”
무리 중 하나가 나무를 기어 올라갔다.
빅너트 나무였다.
키가 작고 날쌔 보이긴 했는데, 원숭이나 다람쥐처럼 잘도 나무를 탔다.
잠시 후, 하늘에서 시커먼 빅너트가 떨어져 내렸다.
“드셔 보세요. 보기와는 달리 아주 맛있습니다.”
반으로 쪼개진 빅너트를 건네받았다.
맛있는 거야 당연히 알고, 더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 주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가만히 대세를 따랐다.
‘그나저나 돈이 좋긴 좋구만, 크큭!’
마정석 하나에 머뭇거리던 고민도 금세 털어 낸 채 팀에 넣어 준 것은 물론, 더없는 친절함까지 선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우스웠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원체 자신의 것들을 감추고, 공개하기를 꺼리는 일본인들의 ‘종특’적 습성을 무시하듯 그들의 친절은 계속됐다.
특히, 무리의 대장이 가장 심했다.
마치, 알고 있는 것을 말하지 못하면 입이 근질거려 어쩌지 못하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것처럼 말이다.
‘설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과잉 친절 뒤, 호되게 뒤통수를 치는 건 아닌가 의심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
30분 정도를 쉬고서 다시 이동했다.
이동 중에 무리의 대장이 내게 물어왔다.
“레벨이 30대 중반이라 하셨죠?”
게이트를 넘기 전, 레벨이 몇이냐 하기에 그렇게 말했었다.
괜한 문제의 사전 방지… 그들에게 내가 고수 내지는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다.
“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네?”
“소문으로 들으셨겠지만, 경험치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아아….”
곧 만나게 될 사마귀 놈들이 꽤 많은 경험치를 준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놈들을 어찌 사냥하느냐였다.
매일 밤, 일본과 한국을 가리지 않고 온갖 정보 사이트들을 샅샅이 뒤졌다.
샌드 웜 밭에 나타나는 비와 먹구름, 그리고 피라미드와 사마귀에 관한 것들까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말했던, 비밀 공유를 쉽게 하지 않는 일본인의 특성 때문이었다.
뭐, 한국에서는 등장도 하지 않은 던전과 괴물들이라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아무튼.
해서, 정확지는 않지만, 우리가 경험하고 상대한 바로 사마귀 놈들의 레벨은 40 전후였다.
샌드 웜처럼 자신의 레벨과 비교해 많은 경험치를 주었고, 선공에 동족형 타입이며, 범위 감지까지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특징은 상상을 초월하는 ‘리젠’ 속도.
거의 한 놈이 죽자마자, 다른 개체가 생성된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그로 인해 무한에 가까운 웨이브 어택이 가능했고, 놈들보다 10레벨이나 높은 우리조차 겨우 1시간을 버티다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기에 나를 빼고 여섯 명으로 구성된 이들 무리의 평균 레벨은 40이 채 되지 않아 보였다.
이 역시 그들 스스로 공개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움직임 정도만 봐도 대충 티가 나는 것이기에 얼추 맞을 터였다.
그런 그들이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사마귀 놈들을 상대한다고?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고, 사뭇 걱정도 되지만, 내심 기대도 되는 것이 정확한 내 심경이었다.
‘뭐, 두고 보면 알겠지.’
….
정글을 빠져나와 언덕에 도착했다.
한 번 더 휴식 시간을 가졌다.
과일과 빅너트를 먹고, 충분히 쉬었다.
―형니이이이임! 나 배고프다아아아아아아!―
녀석들과의 교신 상태를 잠시 켰다가 난리를 치는 오식이 때문에 급히 꺼 버렸다.
“이제 내려가 볼까요?”
드디어 때가 왔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기대와 걱정의 순간에 심장이 살짝 두근거렸다.
자박자박….
언덕의 경계선을 넘었다.
배려 차원인지 가장 뒤에 배치된 채, 그들을 모습을 유심히 살피며 따라갈 수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이나 행동은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멈칫!
언덕을 다 내려와 기다란 풀숲이 시작되는 부근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그들의 행동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뭐냐, 얼른 꺼내 놔 봐라, 너희들의 히든카드를 말이야!’
무리 중 하나가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풀었다.
고개를 빼꼼하게 빼고는 주시했다.
부스럭부스럭….
다소 방정맞은 비닐봉지 소리가 났다.
커다란 배낭 하나를 가득히 채우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새카만 색의 비닐봉지였다.
“끄응!”
두 사람이 힘을 보태 배낭 안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크기도 크고, 묵직해 보였다.
게다가 꼼꼼하리만큼 몇 겹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찌이익….
그가 꼼꼼하게 포장된 것이 무색하게 비닐봉지를 양손으로 잡고 거칠게 뜯어냈다.
이내, 뜯어진 비닐봉지 사이로 희끄무레한 덩어리가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냥 봐도 물컹해 보이고, 축축해 보였다.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바로 헛구역질을 할 듯한 그런 비주얼이었다.
처억.
슥삭슥삭.
배낭 주인이 반쯤 밖으로 나온 덩어리를 칼로 잘라 내기 시작했다.
딱히 정해진 크기는 없는 듯했지만, 주먹보다 조금 큰 사이즈였다.
여전히 그것의 정체는 오리무중이었다.
누군가 먼저 얘기라도 해 줄까 기다렸지만,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어 곁에 있던 무리의 대장에게 속삭이듯 물어봤다.
“저게 뭐죠?”
그가 시선도 주지 않고 대답했다.
“샌드 웜입니다.”
“네? 샌드 웜이요? 그 사막에 있는?”
“네, 맞아요. 그 샌드 웜입니다.”
그의 대답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덩어리로 시선이 옮겨졌다.
그러고 보니 샌드 웜의 몸뚱이 어딘가처럼 보이기는 했다.
그가 추가적인 설명을 이어 갔다.
“정확히는 샌드 웜의 속살입니다. 겉껍질을 벗겨 내고, 내장까지 제거한 순살이지요.”
뼈가 없어 먹기 편하다는 이유로 즐겨 먹던 순살 치킨이 생각났다.
속이 뒤집히려 했다.
추태를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억지로 참아 냈다.
‘그나저나 저걸 가지고 뭘 하려는 거지?’
갑자기 샌드 웜의 속살이 등장한 것이 너무나 이상했다.
‘설마, 먹으려는 건 아닐 테고… 놈들에게 먹이려는 건가?’
먹으려고 꺼낸 것은 아닐 듯했다.
아니, 아니어야 했다.
그래도 그런다면, 나는 절대로 사양할 생각이었다.
반대로 놈들에게 먹이려 한다는 생각도 조금 이상했다.
굳이 왜? 뭣 하러?
하지만, 이상하게 여긴 그 생각이 옳았다.
휘익! 휘익!
그들이 주먹만 하게 잘라 낸 샌드 웜의 속살을 기다란 풀숲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스슷! 스스슷!
기다란 풀들이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바람이 불어 기다란 풀들을 한쪽으로 흔들거나 기울게 하는 것과는 다르게 여기저기서 난잡하게 흔들려 댔다.
그러다가는 갑자기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개가 아니었고, 들려오는 방향도 각양각색이었다.
“키이익!”
“키익! 키이이….”
“키에에에엑!”
분명, 사마귀 놈들의 울음소리였다.
하지만, 지겹도록 듣던 놈들의 기세등등하고, 살기 어린 그것과는 전혀 다른…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울음소리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기다란 풀숲에 가려져 안쪽의 상황이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진행된 상황들로 미루어 봤을 때, 사마귀 놈들이 샌드 웜의 속살을 먹고는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만 예상할 수 있었다.
“맨티스 놈들 괴로워하는 소리가 참 듣기 좋지 않습니까? 이 맛에 여기 들어온다니까요. 하하!”
무리의 대장이 진심으로 기분 좋다는 뉘앙스를 팍팍 드러내며 말했다.
정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옆모습만으로도 어째 사이코패스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그나저나 놈들의 이름이 맨티스였어? 검색해도 안 나오더만… 쩝!’
놈들의 정보를 찾기 위해 당연히 사마귀의 영문 단어도 검색했었다.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곤충 사마귀에 관한 정보들만 나왔었다.
뭐, 그랬었다.
스스슷! 스슷! 스슷!
기다란 풀들이 더욱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아니, 쓰러지고 있었다.
한동안 영문모를 난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갑시다!”
그제야 그들이 움직였다.
대장 하나를 빼고는 거의 방관자 수준으로 가만히 있던 이들이 갑자기 서두르는 이유도 궁금해졌다.
어쨌든, 그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기다란 풀들을 빠르게 제거하며 길을 텄다.
사삭! 삭….
스슷! 슷! 슷….
얼마쯤 가자, 기다란 풀들이 여기저기 베어져 있는 게 보였다.
더불어 그 근처에는 사마귀 놈들이 쓰러져 있었다.
보아하니, 놈들의 낫처럼 생긴 앞발에 풀들이 베어진 듯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얼떨결에 말이지….
“키에에엑….”
“키히이이익….”
아직 죽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놈들을 향해 여섯의 무리가 서둘러 다가가 껄떡거리는 숨통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뭐 하고 계세요? 어서 한 놈 잡고 목을 치세요.”
“네? 아아, 네….”
얼떨떨한 상황과 상태에서 아수라 스워드를 뽑아 들고는 다른 이들이 차지하지 않은 사마귀 놈을 향해 다가갔다.
“키이익… 키익….”
정말이지, 다 죽어갈 만큼 신음하고 있는 사마귀 놈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뭐, 그런다고 한들 동정심 같은 게 생길 리 없고, 살려 둘 마음도 없기에 아수라 스워드를 휘둘렀다.
그사이, 다른 이들은 완전히 신을 내며, 쓰러져 있는 사마귀 놈들을 죄다 처리했다.
“…?!”
내가 죽인 사마귀 놈이 사라진 자리에 하얀 덩어리가 남았다.
놈들에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나 전리품은 없었다.
가끔 사라지지 않는 놈들의 사체에서 뭔가를 채취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따로 뭔가를 떨어뜨린다거나 남기지 않았다.
수백, 수천 마리의 놈들을 불태워 죽이기 전까지는 일일이 맞서 싸웠던 경험이 있기에 100% 그렇다고 봐도 좋았다.
해서, 이게 뭔가 싶어 쪼그려 앉아 그것을 들여다봤다.
표면이 살짝 녹아내려 있었고, 시큼털털한 냄새도 났다.
손가락을 가져다 대거나 집어 들기는 싫어 계속 눈으로만 확인했다.
자박자박….
그런 나를 향해 누군가 다가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무리의 대장이었다.
“한 번 던져 보시겠습니까?”
“네?”
“그거… 샌드 웜의 속살 말입니다.”
“앗!”
그제야 그것이 샌드 웜의 속살임을 알았다.
당연히 바로 알아챘어야 했는지도 모를 것을 한참이나 몰라보다니….
그보다는 더럽고, 못 볼 꼴을 대하듯 뒤로 물러나다가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 더 쪽팔리긴 했다.
“맨티스 놈들에게 샌드 웜의 속살은 군침을 흘리게 하는 특식입니다. 냄새만 맡아도 환장을 하지요.”
“아아….”
“하지만, 엄청난 독이기도 합니다.”
“…??”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냄새만 맡아도 환장할 정도의 특식이면서 치명적인 독이라니… 너무나 모순적인 말이 아닌가?
하지만, 다음으로 이어진 그의 추가적인 설명… ‘복어’를 예로든 설명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다 연결된 느낌이네….’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이 샌드 웜의 접근을 막아 준다.
샌드 웜의 속살은 사마귀 놈들에게 치명적인 독이 된다.
게다가 이곳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자이언트 샌드 웜이 주는 마정석이 필요하다.
그 외에 또 뭐가 있을까?
분명,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더 있을 듯했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