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93)
돌아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 이글거리는 사막의 모래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후덥지근한 공기를 들이마시다가 놀라서는 크게 뱉어 냈다.
“후아아….”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손바닥 위에서 푸른빛을 내던 귀환석은 사라진 상태였다.
잠시 지나간 기억들을 더듬었다.
꿈일 리가 없는데, 어렴풋이 그렇게 느껴졌다.
스스슷….
귀를 자극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
그제야 이곳이 샌드 웜의 서식지이며, 현재 내가 아무런 안전장치…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도 바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뭐, 그렇다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스윽… 척!
허리춤에 찬 아수라 스워드를 붙잡았다.
모래밭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샌드 웜을 주시했다.
스스슷….
파아앗!
빠르게 다가온 놈이 순간적으로 모래밭을 뚫고 튀어나왔다.
동시에 아수라 스워드를 뽑아 휘둘렀다.
촤아아아아아!
완벽한 반원의 궤적이 그려졌다.
발도의 스피드와 위력에 샌드 웜의 몸뚱이가 반듯하게 절단됐다.
전해지는 손맛도 없었다.
“시시하구만… 쯧!”
원래도 그랬지만, 이제 샌드 웜 정도는 껌 취급도 받을 수 없을 듯했다.
“소환!”
폼을 좀 잡아 보겠다고, 일부러 소리 내어 소환을 시전했다.
금빛의 선들이 빠르게 왕울이의 실루엣을 그려댔고, 이내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검지로 정면을 가리켰다.
“가자!”
부드러운 모랫바닥을 박차며 왕울이가 날 듯이 내달렸다.
….
던전을 빠져나왔다.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 큰 도시로 향했다.
“콜록콜록! 아, 죄송하… 콜록콜록!”
린이 연신 콜록대며 인상을 찌푸렸다.
몇 날 며칠을 대자연 속에서만 살다가 도심으로 나오니 목이 아픈 모양이었다.
“카드 속에 들어가 있을래?”
“아, 아니요. 괜찮… 콜록콜록!”
“그래… 힘들면 말해.”
“네, 감사합니다.”
오식이는 씩씩했다.
오랜만에 MSG에 찌든 요리들을 미친 듯이 먹어댔다.
나도 처음엔 자극적이라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온몸이 그것들을 받아들이며 약간의 흥분 상태를 만들어 줬다.
해서, 진심 배가 찢어질 정도로 식탐을 드러내는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거하디거한 식사 후에는 최고급 호텔의 VIP 룸에서 그동안의 피로와 묵은 때 등을 깔끔히 씻어 냈다.
“처어엉사아안리이이이이, 벼억계에수우야아아아아… 으으, 좋다.”
뜨끈한 온수에 몸을 담근 채, 절로 흘러나오는 가락을 흥얼거렸다.
문득, ‘그곳에 왜 다시 가야 하는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등의 유혹에 젖기도 했다.
하지만, 꼭 가야만 할 의무와 명분이 있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
간단하게 조식을 챙겨 먹은 후였다.
물론, 우리는 간단하게, 오식이는 거하게….
바로 마정석 거래소를 찾았다.
애초의 계획은 있는 돈을 죄다 털어 마정석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하지만, 양도 양이었고, 그렇게 한들 그곳에서 돈으로 바꿀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어서 오세요.”
“마정석 좀 사려고 하는데요.”
“아, 예. 이쪽에서 보시죠.”
여러 개의 마정석이 크기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레벨 순에 따라 정리한 것이었다.
그중, 눈에 익은 크기의 마정석을 찾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거… 20레벨짜리죠?”
“네, 맞습니다.”
“얼마죠?”
“어디 보자… 오늘의 마정석 시세가….”
20레벨짜리 마정석의 가격은 한국 돈으로 70만 원쯤이었다.
물론, 살 때 가격이었고, 팔 때는 65만쯤 받을 수 있었다.
한동안 미친 듯이 가격이 상승하다가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다시 떨어져 예전 가격대로 돌아왔다는 그다지 쓸데없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보다는… 그곳에서 내가 계산한 물가와 시세가 현실의 것과 얼추 맞아떨어졌다는 것이 더 신기하고, 뿌듯했다.
어쨌든.
일단, 20레벨짜리 마정석 스무 개를 먼저 샀다.
마정석을 배낭에 챙겨 넣고는 물었다.
“혹시, 40레벨짜리도 있나요?”
진열대에는 30레벨의 마정석까지만 있는 듯했다.
“물론 있죠. 보여드릴까요?”
“네.”
잠시 후, 그가 40레벨짜리 마정석을 가져왔다.
크기나 모양새가 자이언트 샌드 웜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긴, 다른 게 더 이상할 터.
“주세요.”
40레벨짜리 마정석도 하나 사고는 거래소를 빠져나왔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금 거래소였다.
“이것 좀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서 유통되는 금화와 은화를 하나씩 꺼내 내밀었다.
딱히 놀라는 것 없이… 아니, 거의 무표정한 얼굴로 금화를 집어 든 이가 별다른 확인조차 하지 않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비투네요.”
“네?”
의문을 표하자, 그제야 그가 얼굴에 표정을 만들었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비투라고… 던전에서 나오는 금화나 은화 등의 동전 아이템입니다. 모르셨습니까?”
몰랐다.
비투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다.
“흠… 어떻게 구하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그가 의심의 눈빛과 말투로 물었다.
살짝 당황했지만,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늘어놨다.
“아아, 처음 보는 거라 다른 아이템과 바꿨습니다.”
“흐음… 그러셨군요.”
그가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못한 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빠르게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혹시, 거래가 되나요?”
“네, 됩니다.”
“얼마쯤 하죠?”
그가 전한 대답은 놀라웠다.
금화는 개당 20만 원쯤이었고, 은화는 2만 원쯤이었으며, 내가 꺼내 놓지 않은 동화는 2천 원쯤 된다고 했다.
순간, 직전에 들른 마정석 거래소와 던전의 마을에서 했던 시세 계산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던전의 어디에선가 거래되는 마정석과 화폐의 등가교환 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전혀 모르고, 눈치챌 수 없을지언정, 세상은 참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뭐야? 그럼, 괜히 마정석을 산 거네?’
그랬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비투인지 뭔지 하는 금화를 사는 게 더 나을 뻔했다.
무게도 그렇고, 부피도 그렇고, 다시 교환해야 하는 이중의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앗! 아니네? 나는 더 비싸게 주고 산 거잖아?’
20레벨짜리 마정석을 살 때 가격은 70만 원이고, 팔 때 가격은 65만 원이다.
그곳에서 마정석을 팔아 받은 금화 세 개와 은화 세 개는 66만 원이다.
파는 값으로 계산하면 1만 원이 이득이겠지만, 사는 값으로 따지면, 개당 4에서 5만 원쯤이 손해다.
게다가 난 스무 개를 샀으니, 못해도 80만 원이나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자, 잠시만요.”
서둘러 금 거래소를 빠져나왔다.
곧장 마정석 거래소로 달려갔다.
환불을 요청했고, 작은 실랑이 후에 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었다.
“휴우… 다행이다.”
돌려받은 돈과 가지고 있던 돈으로 금화와 은화를 충분히 산 뒤, 샌드 웜의 던전이 있는 마을로 향했다.
‘엘리자, 곧 갈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준비는 끝났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
며칠 후.
금방 다시 돌아갈 줄 알았던 계획이 미뤄지고 있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 아니, 한시라도 빨리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름 완벽하다고 여겼던 계획과 진행 과정에서 한 가지를 망각한 것이 있었다.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그곳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비가 와야 했다.
비가 오고, 피라미드가 보이는 입구(?)가 나타나야만 그곳에 갈 수 있었다.
언제 비가 오고, 피라미드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세월아 네월아 주야장천 손가락만 빤 채 기다려야 했다.
“크으! 이런 멍청이! 아우우우우!”
수도 없이 자책했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후우우… 어쩔 수 없지.”
후회하고, 자책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마냥 놀고, 한숨만 쉬느니, 뭔가라도 하는 게 나았다.
샌드 웜도 잡고, 가끔가다 자이언트 샌드 웜도 사냥했다.
그 와중에도 젠장 맞을 마정석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또 며칠이 흐른 뒤.
“엇!”
드디어 때가 왔다.
아주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렇게나 기다리던 먹구름의 흔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 가자!”
감격스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왕울이의 등에 올라탔다.
먹구름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더 빨리! 더, 더!”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로 날아드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왕울이를 재촉했다.
먹구름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짐에도 초조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헥! 헥! 헥….”
“수고했어!”
혀를 길게 뽑아내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왕울이를 토닥였다.
배낭 속에 간직해 둔 40레벨짜리 마정석을 꺼냈다.
‘제발….’
간절함을 담아 마정석을 던졌다.
휘익… 툭….
“…??”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20레벨짜리 마정석이었다.
이후, 자이언트 샌드 웜에게서 얻은 40레벨짜리 마정석을 던지자 빛을 발하며 게이트가 열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40레벨짜리 마정석을 던졌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땅에 떨어진 마정석을 주워 다시 던졌다.
마찬가지였다.
“서, 설마… 에이, 그릴 리가….”
현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문득… ‘혹시나 피라미드의 게이트를 여는 마정석은 자이언트 샌드 웜에게서 나오는 것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란 의문 들었다.
그렇기에 자이언트 샌드 웜의 마정석 드롭률이 극악 중에서도 극악인지도 모를 일이라는 나름의 이유도 조심스레 떠올렸다.
해서, 어떻게든 놈들의 마정석을 하나 더 얻어 보자며 사냥에 몰두했다.
결과는 보시다시피….
“아아, 어쩌지?”
그렇게나 손꼽아 기다렸는데, 방법이 없음에 발만 동동 굴러댔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막막한 상황이었다.
아니, 그때까지도 자이언트 샌드 웜에게서 마정석을 얻지 못한다면?
“젠장!”
지랄 같은 마음에 애꿎은 모랫바닥을 발로 차며 짜증을 냈다.
그때였다.
하늘이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음을 일깨우는 일이 벌어졌다.
저 멀리서 한 무리의 각성자들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보, 봉인!’
재빨리 녀석들을 카드 속에 봉인했다.
이어, 그들이 빨리 이곳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했다.
서둘러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힐끔….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얼굴에 두꺼운 철판을 깔고서 말을 걸었다.
“안으로 들어가실 건가요?”
“네? 아아, 네… 그렇습니다만….”
“그러시면 저도 좀 데려가실 수 있겠습니까?”
내 청에 그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생각해 보면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닐 터였다.
생면부지… 서로 잘 알지 못하기에 신뢰나 위협도 등의 껄끄러움이 있기는 할 테지만 말이다.
“소문이 자자해서요. 구경이라도 한번 해 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놨다.
살짝 먹히는 분위기라 조금 더 주둥이를 털었다.
“절대 피해를 주거나 짐이 되지는 않겠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따로 움직여도 좋고, 뭐 하시면 그냥 버리셔도 됩니다.”
도움이 되면 됐지 짐이 될 리는 없었다.
따로 움직이거나 버려 준다면 오히려 내가 더 땡큐였다.
혹시나 나쁜 마음을 먹고, 해를 가하려 한다면… 도와준 고마움을 생각해서 목숨쯤은 살려 줄 수도 있었다.
“….”
몇 초가 흘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누군가 선뜻 말을 꺼내거나 의견을 내지도 않고, 다들 눈치만 보기에 바빴다.
아무래도 최후의 카드를 꺼내야 할 듯싶었다.
“사례로 이걸 드리겠습니다.”
그들 앞에 40레벨짜리 마정석을 내밀었다.
그들의 표정과 눈빛이 바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