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92)
그것의 존재는 아직 밝히지 않을 것이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한 것도 아니고, 아직은 나만의 비밀… 내지는 즐거움과 기대감으로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궁금하고, 치사해도 어쩔 수 없다.
때가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터.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있었다.
진짜로 높고 험한 산 두 개와 그사이에 놓인 깎아질 듯 아찔한 절벽을 넘어야 하기도 했지만, 여기서 말한 넘어야 할 산은 기간 또는 기한의 한정된 ‘때’를 말하는 문제였다.
그랬다.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그것을 만나거나 볼 수 없었다.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날짜… 게다가 일 년 중에 딱 일주일이라는 그때와 기간에만 그것이 가능했다.
‘그래, 그때까지 무조건 존버다!’
….
오늘도 무사히… 아니, 열심히 사냥에 임했다.
원하던 귀환석은 얻지 못했지만, 마정석은 제법 모을 수 있었다.
비록 성에도 차지 않고, 원하는 목표치까지 도달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양이었지만 말이다.
마정석을 처분하고 집으로 향했다.
식당 일을 마친 엘리자가 먼저 와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달링! 오늘도 힘들었지?”
아니라는 말이 무심코 튀어나올 뻔했다.
전혀 힘들지 않았고, 그럴 리조차 없었다.
오히려 엘리자가 하는 식당 일이 더 힘들지 않았을까?
“어, 어….”
“위험하진 않았어?”
이번에도 헛소리가 멋대로 튀어나오려 했다.
엘리자를 안심시키려는 의도로 차분하게 답했다.
“응. 안전하게 사냥했지.”
“그래, 절대로 무리하지 마.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으니까.”
“응, 알았어.”
엘리자는 나와 녀석들의 레벨을 30 아래라고 여겼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정도로 생각하더니만, 끝까지 그렇게 혼자서 믿고 있었다.
나처럼 젊은 사람은 레벨이 높을 리가 없단다.
술집을 드나드는 이방인들이 죄다 그렇다는 게 확신의 이유였다.
살짝 억울하기도 했고, 사실이 아님에도 자존심이 좀 상했다.
한 번쯤은 진짜 내 레벨을 확인시켜 줘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억울함을 풀고, 자존심을 세우고, 우쭐함을 뽐내며,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
그냥 참기로 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싶었다.
더불어 귀찮은 일에 엮일 듯도 싶었다.
새로운 이방인에게 쏠리는 당연한 시선들….
게다가 던전 주민 중에서 꽤 인기 있는 여자인 엘리자와 동거까지 하는 통에 많은 이들의 뜻하지 않은 관심과 시기,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그런 자가 레벨까지 높다?
그것도 이곳에 주둔하는 가장 큰 길드의 길드장보다 훨씬?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어떤 이로움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귀찮고 지랄 같은 일이 더 많을 게 분명했다.
‘지랄한다면 죄다 쓸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괜히 힘 빼고 걱정이나 고민할 게 뭐 있어? 그냥 얌전히만 있으면 되는걸.’
그랬다.
그냥 아무 소리 않고, 내 할 일만 알아서 하면 될 일이었다.
….
엘리자가 차린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오늘도 오식이는 진공청소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음식들을 싹쓸이했다.
“야야, 적당히 좀 먹어라. 으이그!”
“달링, 왜 그래? 나는 오식 씨가 너무 귀엽고, 좋은데.”
헐….
좋은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귀엽다는 좀 오버 아닌가?
어이가 없어 반문했다.
“쟤가 귀엽다고? 어디가? 대체, 어디가? 혹시, 이곳에선 귀엽다는 말의 의미가 다른 거야?”
“왜에? 너무 귀엽지 않아? 저 수줍어하는 눈망울도 그렇고… 게다가 내가 해 주는 음식들을 매일 같이 남김없이 먹어 주는 게 얼마나 기쁘고 좋은데!”
“….”
말문이 막혔다.
엘리자의 눈이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하다 여겼다.
앗!
그렇다면 나를 좋아하는 것도….
설마, 내 얼굴이 남들 보기에 흉하거나 이상했던 건가?
무척이나 혼란스러워졌다.
“흐흐흐!”
엘리자의 칭찬과 나의 당황하는 모습에 오식이가 실실거리며 좋아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는 녀석을 흘겨봤다.
폭풍 같이 쏟아 낼 잔소리가 목구멍에 장전됐다.
“잘 먹었습니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심상치 않게 변하려는 분위기를 다시 바꾸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자리를 피하려는 것인지 린이 설거지를 자처하며 일어났다.
엘리자도 영리하게 끼어들었다.
“땡큐, 린! 그럼 나는 달링이랑 산책이나 좀 할까?”
엘리자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커다란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좋은 밤이지?”
“응….”
“아직도 화난 거야?”
“아니….”
“에이, 화났는데?”
“아니라니까.”
살짝 목소리가 높아졌다.
바로 사과했다.
“아, 미안….”
“아니야, 괜찮아.”
“….”
“나 알아, 달링이 왜 그랬는지.”
“….”
“돈 때문이잖아. 식비….”
정답이었다.
사실, 그냥 먹고 쓰는 것뿐이라면 그렇게 문제 될 게 없었다.
게다가 우리끼리만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없으면 그만큼 덜 먹고 조금만 써도 그만이었으니까.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데, 토를 달 녀석들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엘리자가 껴 있었다.
우리 때문에 모자란 것을 그녀가 애를 쓰며 채우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그녀를 이용하자고만 생각했던 마음마저도 부끄럽고 미안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으응….”
“나는 지금이 너무 좋아! 달링이랑 이렇게 있는 것도 좋고, 오식 씨나 린, 왕울이랑 함께 하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해!”
엘리자의 말투와 표정에서 더없는 진심이 느껴졌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틈을 준 엘리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말했던가? 나는 늘 혼자였어. 부모님도 없고, 형제자매도 없고… 그래서 늘 외로웠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엘리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내 꿈이 뭐였는지 알아?”
“뭔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한 열 명쯤 낳고, 커다란 집에서 시끌벅적하게 사는 거였어.”
“헐… 여, 열 명이나?”
“헤헤, 열 명은 너무 많은가?”
많았다.
무슨 동물도 아니고….
“그래도 그러고 싶었어. 그래서 지금이 너무 좋아.”
“으응….”
“일을 하는 중에도 빨리 저녁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야.”
“그랬구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렸다는 고갯짓을 했다.
엘리자가 환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물어왔다.
다소 뜬금없고, 의미심장한 투의 물음이었다.
“자신 있습니까?”
“응? 뭐가?”
“아이 말이야.”
“…??”
“음… 달링이랑 나랑 포함 일단 다섯은 채웠으니까, 일곱만 더 낳으면 되겠다. 그치?”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농담 정도로 마무리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엘리자의 말투나 표정에선 전혀 농담의 뉘앙스가 없었다.
당혹스러웠고, 당황스러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물었다.
“저, 정말이야? 정말로 그럴 생각이야?”
“응! 정말이야. 내가 농담하는 것 같아? 나 그런 여자 아니야!”
엘리자가 단호함을 가득히 실어 말했다.
오히려 진지함이 조금 빠진 것처럼 느껴졌다.
헷갈림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나를 보고는 엘리자가 피식 웃었다.
그에, 더욱더 헷갈렸다.
잠시 틈을 준 엘리자가 눈빛과 말투에 끈적함을 더하며 말했다.
“그럼, 오늘 당장 하나 만들까?”
무엇을 만들자는 것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진심인지 농담인지 도통 알 수 없는 헷갈림과 당혹스러움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걸음을 빨리하며 회피를 시전했다.
“아, 뭐야? 왜 도망가? 같이 가, 달링!”
엘리자가 웃음기를 띤 말투로 소리치며 따라왔다.
조금 더 빨리 걸음을 옮겼다.
….
들어주고 싶다.
이뤄 주고 싶다.
엘리자의 꿈을 말이다.
아! 열 명의 아이 말고… 커다란 집에서 시끌벅적하게 사는 것 말이다.
하루라도 빨리 돈을 모아 큰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이유와 명분을 찾았다.
엘리자가 내게 베푼 친절과 희생, 그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갚을 길은 그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사냥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언제가 될지 몰랐다.
솔직히 막연하고, 막막함이 더 컸다.
‘그게 아니라면… 그래, 돌아가자!’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을 마정석으로 바꿔 한 아름 들고 말이다.
그렇게 하면, 바로 이곳에서 큰 집을 살 수가 있다.
수준 낮은 괴물들을 잡아, 쥐꼬리만큼의 돈을 모으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엘리자의 꿈을 이뤄 줄 수 있었다.
‘귀환석 하나면 되는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나만 있으면 됐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곳을 빠져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로 마음먹은 지 꽤 시간이 지났건만, 매일 같이 허탕만 쳐대고 있었다.
….
“젠장! 오늘도 꽝인가?”
오늘도 귀환석을 얻지 못했다.
벌써 일주일이 훌쩍 지나간 상태였다.
초조함에 짜증이 느는 게 절로 느껴졌다.
그때였다.
한쪽에서 무리 지어 사냥하던 이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앗싸! 드디어 나왔다.”
“오오, 축하축하!”
“오늘 제대로 한턱 쏘는 건가?”
직감적으로 그들 중 하나가 귀환석을 얻었다는 걸 알아챘다.
당장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저, 저기요.”
“네? 무슨 일이시죠?”
“혹시, 귀환석을 얻으신 건가요?”
“아, 네… 그렇습니다만.”
아직 뭔가를 한 것도 아닌데, 입꼬리가 올라가고, 어깨가 들썩이려 했다.
침착하려 애를 쓰며, 감정을 다스렸다.
“따로 쓸 일이 있으십니까?”
“네?”
“혹시, 이곳을 빠져나간다든가….”
“아, 아니요. 그냥 팔 생각입니다.”
“그래요? 그럼, 저한테 파시겠어요?”
쉽게 거래가 이루어졌다.
정확한 시세로 더 올려봤거나 에누리 없이 귀환석을 사고팔았다.
그동안 알뜰살뜰 모았던 돈이 반으로 줄었지만, 어차피 상관이 없었다.
“크으으! 이제 돌아갈 수 있다!”
완전히 들떠 버린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는 이 기쁜 소식을 한시라도 빨리 엘리자에게 전하기 위해 집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자! 엘리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엘리자의 이름을 크게 불러댔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엘리자가 깜짝 놀라서는 걱정을 담아 물어 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있고 말고!”
“뭔데? 무슨 일인데? 혹시, 안 좋은 일이야?”
“아니! 좋은 일이야! 아주아주 기쁜 일이야!”
“아이, 참… 뭔데?”
“드디어 귀환석… 아니, 이동석을 얻었어!”
“어머! 정말?”
“응! 정말! 이것 봐 봐!”
엘리자 앞에 손에 꼭 쥐고 있던 귀환석을 내밀었다.
놀라고,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귀환석을 쳐다보며 엘리자가 말했다.
“나 처음 봐. 되게 평범하게 생겼네? 이런 게 그런 신비한 능력을 발휘하다니….”
“하하! 좀 그렇긴 해?”
말처럼 귀환석은 정말로 평범했다.
길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그냥 네모나고 납작한 돌멩이로 알고서 지나칠 만큼 말이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 돌아갈 거야!”
밑도 끝도 없이 앞뒤를 다 빼고 말했다.
당연히 엘리자가 깜짝 놀라서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욱더 크게 떴다.
아차, 싶은 마음에 내 계획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제야 안심한 듯 엘리자가 투덜거렸다.
“아, 놀라라… 나 하마터면 눈물 쏟을 뻔했어.”
“흐, 미안 미안.”
바로 사과했다.
안정을 찾기 위해 잠시 틈을 주던 엘리자가 말을 이었다.
“근데, 꼭 가야 해?”
“왜? 내가 방금 다 설명했잖아.”
“응…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런데?”
“아니, 조금 걱정돼서….”
“걱정은 무슨! 금방 다시 돌아올 거야. 며칠만 기다리면 돼!”
엘리자를 안심시켰다.
그래도 뭐가 그리 불안하고, 걱정스러운지 엘리자는 심각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말이다.
….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한사코 따라나서겠다는 엘리자를 안심시키고 떼어 내느라 비지땀을 좀 흘렸다.
귀환석이 하나라 나 혼자 사용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녀석들을 봉인해야 하는데, 그 모습을 엘리자에게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이나 뒤를 살피며,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발을 디뎠던 쓰러진 기둥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이방인이 사용하는 귀환석은 그곳에서만 발동하기 때문이었다.
‘자, 가 볼까?’
목적지에 도착해 녀석들을 봉인하고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귀환석을 슬슬 문질렀다.
아내, 귀환석이 푸르스름한 빛을 발했고, 빠르게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