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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189화 (189/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89)

“땡큐!”

여종업원이 기쁘게 팁을 챙겼다.

살짝 부담스러운 윙크도 날려줬다.

잠시 후, 맥주와 안주를 가져왔다.

“꼴깍, 꼴깍… 캬아아!”

맥주는 시원하고 맛있었다.

생긴 것도 감자튀김이고, 맛도 비슷한데, 이름만 ‘와타’인 안주도 괜찮았다.

이곳에 온 이유를 잠시 망각한 채 그것들을 즐겼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소란스러움 속에서 미미한 수준의 정보들이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

술집에서 한 3시간쯤 있었던 것 같다.

맥주를 두 잔이나 추가로 시켰고, 안주도 한 번 더 시켰다.

물론, 팁은 주지 않았다.

쓱쓱 삭삭….

술집도 이제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쉬지 않고 소란스러웠던 사람들은 거의 다 돌아갔고, 몇몇 사람들만 남아 있었다.

조용히 대화하는 이들과 잔뜩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이들이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 볼까?’

들인 시간이나 노력(?)과 비교하면 그리 크지 않은 소득이었다.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았으며, 오랜만에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 들은 것 같아 좋았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다는 생각도 이미 하고 있던 터라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했다.

그때였다.

드르륵….

요란한 기척을 내며 의자를 끌어당긴 여종업원이 내 앞에 앉았다.

양손을 펼쳐 꽃받침을 한 채 턱을 괴고 말이다.

“…??”

당장에 의아함을 표했다.

여종업원이 웃으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당황스러움에 말문도 열지 못했다.

계속해서 웃고만 있던 여종업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 참 순진한 사람이구나?”

다시금 얼굴에 물음표가 그려지려 했다.

이게 뭔가 싶었고, 어찌 반응해야 할지 고민했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여종업원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내 이름은 엘리자. 오빠는?”

“아… 서, 선우. 나선우.”

어리바리함을 감추지 못하고 답했다.

엘리자가 더욱더 환하게 웃고는 앞으로 기울이고 있던 상체를 조금 더 앞으로 기울인 뒤,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나 이제 곧 끝나거든? 먼저 나가서 기다릴래? 건물 옆 골목 알지?”

다시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해답을 찾기도 전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엘리자가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멍하게 있다가는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

엘리자가 말한 골목에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대체 이게 뭔가 싶고, 이래도 되나 싶었다.

초조함과 어떤 기대감에 빠져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골목 밖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 기다렸지?”

“네? 아, 아니요.”

“후훗! 가자.”

엘리자가 대뜸 내 팔에 매달렸다.

깜짝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긴장으로 굳은 몸과 어색한 걸음걸이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이끌려 어딘가로 향했다.

10여 분쯤 걸어 도착한 곳은 한적한 공터였다.

낮에 왕울이가 식사를 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술집이나 시장통은 물론이고, 오는 길과 공터에도 군데군데 등이 켜져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부스럭부스럭….

자리를 잡고 앉은 엘리자가 처음부터 들고 있던 것을 주섬주섬 앞에 꺼내 놨다.

술과 안주였다.

병에 담긴 술은 맥주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매콤한 냄새를 풍기는 안주의 재료는 고기처럼 보였다.

“일단 짠!”

챙겨 온 컵에 술을 따른 엘리자가 건배를 제안했다.

얼떨결에 술잔을 부딪쳤고, 입으로 가져갔다.

과일 향이 먼저 코끝을 자극한 술은 입술에 닿는 순간부터 강렬한 도수를 자랑하며 혀와 목구멍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크으….”

절로 구겨지는 인상을 어찌하지 못한 채 손에 든 술잔과 엘리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엘리자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호호호! 역시, 순진한 오빠라니까?”

떨떠름한 입맛을 다시며 조심스레 술잔을 내려놨다.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한 모금 더 마신 엘리자가 물음을 던졌다.

“오빠, 이방인이지?”

“네?”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 말이야.”

오해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세계란 표현이 산 넘고 물 건너쯤 있는 타국을 말함이 아닌 듯했다.

확인이 필요했고, 뭐라 물어야 할지 고민했다.

이번에도 그녀가 먼저 선수를 쳤다.

“행색을 보면 알 수 있어. 우리랑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란 것쯤은….”

“아….”

“못 보던 얼굴인데, 이곳엔 언제 왔어?”

“오, 오늘.”

“그렇지? 어쩐지.”

엘리자가 상당히 뿌듯해했다.

잠시간의 틈을 이용해 술을 한 모금 더 마신 그녀가 다시 물음을 던졌다.

“오빠도 강해? 그 레벨인가? 그건 얼마나 돼?”

레벨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게이트 너머의 세상이나 각성자에 대해 인지하고 있음이 조금 더 확실해졌다.

“육십….”

“어머! 정말?”

대답을 다 하기도 전에 엘리자가 호들갑을 떨며 말을 끊었다.

이어진 반응은 조금 이상했다.

“에이, 거짓말!”

“…??”

“순진한 줄만 알았더니, 역시 오빠도 남자였구나?”

“그게 무슨….”

“허세 말이야, 허세! 으이그, 남자들이란….”

당황스러웠고, 억울했다.

그것을 표현하고 토로하기도 전에 또다시 그녀가 선수를 가로챘다.

“오빠, 썬더 길드라고 알아?”

“아니요.”

“이곳에서 두 번째로 큰 길드 이름이야.”

“….”

“거기 간부 아저씨 중 한 명이 얼마 전에 50레벨이 되었다고 축하 파티를 했거든?”

“…??”

“근데, 뭐? 오빠가 60레벨이라고? 오늘 처음 봤다고 날 너무 우습게 아는 거 아냐? 거짓말을 해도 적당히 해야 믿고, 허세를 부려도 예의와 상도가 있게 부려야지, 참나….”

씨X… 더 억울했다.

할 수만 있다면 상태창을 확 까서 보여 주고 싶었다.

아니면, 어디 가서 실력을 좀 확인시켜 주든가….

억울해하는 내 속내는 아랑곳없이 엘리자가 멋대로 내 레벨을 정해 줬다.

“그냥 어디 가서는 그 절반인… 한 30레벨쯤 된다고 해. 그래야 씨알이라도 먹히지. 그보다 레벨이 낮다면 금방 들통이 나겠지만.”

“….”

“솔직히 말해 봐. 그 정도는 되지?”

물음과 말투에 어떤 기대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눈치를 살피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엘리자가 웃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 정도는 돼야지. 그래야 나도 어디 가서 어깨 좀 펴고 살지.”

또다시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누가 들어도 뉘앙스가 이상했다.

내 레벨이 30인데, 왜 그녀가 어깨를 펴고 살까?

아니, 그 전에… 나는 왜 지금 이곳에서 그녀와 이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는 걸까?

“저기….”

한참 만에 용기를 내어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고, 어이 마저 없는 것이었다.

“오빠가 먼저 날 유혹했잖아?”

“제, 제가요?”

“그래!”

“어, 언제요?”

“아까 가게에서. 계속 날 뚫어지게 쳐다보고 흐뭇하게 웃었잖아!”

하늘에 맹세코 그런 적이 없었다.

내가 술집에서 한 일이라고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여 귀를 기울인 것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뭔가 단단히 오해했거나 착각을 한 듯했다.

“그게….”

사실을 말해 주고 오해를 풀려 했다.

그러다 문득,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대로 말하면 상처받겠지? 아니, 상처까지는 아니더라도 쪽팔리기는 하겠지?’

더불어 이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듣자 하니, 이것 저거 주워 들은 게 많아 아는 것도 제법 있는 듯했다.

오해가 있긴 했지만, 내 유혹(?)에 넘어가 이렇게 호감을 표할 정도라면, 일도 제법 쉽게 풀릴 듯했다.

해서, 사실을 고하려던 말을 접고는 본격적으로 뻐꾸기를 한번 날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아, 들켰었군요?”

“…??”

“부끄럽고, 창피하네요. 그렇게나 티가 났다니….”

엘리자는 내게 몇 번이고 순진하다는 말을 했었다.

제대로 순진남 콘셉트를 잡으며 분위기를 달구었다.

연기나 연애에 재능이 있었는지, 엘리자는 너무나 쉽게 넘어왔다.

‘아, 유혹이나 연애라는 게 이렇게 쉬운 거였어?’

왠지 그동안 세상을 잘못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조잘조잘.

까르르, 까르르!

하하호호….

밤새도록 엘리자와 얘기를 나눴다.

나름의 고백과 유혹으로 밑밥을 깔고는 이곳에 관한 것들을 차근차근 물었다.

내가 물어보는 것 외에도 그녀는 제가 알아서 이것저것 숨김없이 다 털어놨다.

시시콜콜한 것들부터 상당히 유용한 정보들까지 얻어 낼 수 있었다.

어느새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어머,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네?”

“하하, 그러네? 너무 즐거워서 나도 몰랐어.”

“후훗!”

우리는 몇 날 며칠을 사귄 연인처럼 알콩달콩함을 과시했다.

나야 연기에 가까웠지만, 엘리자의 표정이나 말투는 거의 진심이었다.

“이제 갈까?”

“응….”

엘리자의 대답에서 미련이 묻어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것을 멈추고는 물었다.

“왜? 아쉬워서?”

“응….”

“하하, 그랬구나. 솔직히 나도 그런데….”

말은 그렇게 했어도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점점 피로가 어깨를 눌렀고, 졸음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엘리자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고,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래? 그럼….”

“…??”

“우리 집에 갈래?”

“에?”

“아니면, 오빠가 머문다는 여관도 괜찮고….”

엘리자가 겁나 당당하게 말하는가 싶더니만,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말도 그렇고, 하는 행동에서 모든 것이 느껴지고, 드러났다.

순간, 나도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심장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절로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흐미… 이, 이래도 되나? 뭐, 어때? 아니야, 그러지 말자! 에이, 그래도… 아아, 안 돼!’

이성과 본능의 치열한 공방이 혼란스럽게 이어졌다.

엘리자는 여전히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채, 내 대답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

내 대답과 결정에 따라, 오늘이 나와 그녀에게 역사적으로 기록될 날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아, 어쩌지?’

고민했다.

아니, 고민하는 척했다.

이미 마음은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져 있었다.

….

“들어와.”

“어, 어… 그럼 실례….”

예의를 차린답시고 고개를 꾸벅이고는 엘리자가 열고 서 있는 문을 통과했다.

그리 넓지 않은… 여관의 작은 방보다 조금 더 큰 집이었다.

“사는 게 좀 그렇지?”

“아, 아니! 아담하고, 아기자기하고… 깔끔하니, 좋은데?”

어색하게 칭찬을 늘어놨다.

내가 듣기에도 티가 났지만, 엘리자는 모른 척했다.

“이쪽으로 앉아.”

“으응….”

엘리자가 권한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한 번 더 방 안을 둘러봤다.

계속된 어색함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실 것 좀 줄까?”

“어? 아아, 응.”

엘리자가 작은 주전자에 담긴 것을 따라 줬다.

그냥 물은 아닌 듯했고, 어떤 종류의 차라고 여겼다.

코를 가져다가 냄새를 맡았는데, 그리 나쁘지 않아 살짝 맛을 봤다.

맛도 역시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마, 맛있네. 무슨 차야?”

“와타 차야. 숙취에 좋아.”

“아아….”

고개를 끄덕이고는 찻잔을 내려놨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생겼고, 분위기는 다시금 어색해졌다.

한참 만에 침묵을 깨고 엘리자가 입을 열었다.

“아, 씨, 씻을래?”

“으응? 꾸,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하마터면 기침까지 할 뻔했다.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괘, 괜찮아….”

“그래? 그럼… 나 먼저 씻을게.”

“헉!”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는 급히 딴청을 부렸다.

분위기가 더욱더 어색해지고, 민망해졌다.

엘리자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이 분명해 보이는 문을 열고 사라졌다.

“오, 마이 갓….”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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