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86)
수십 일이 지났다.
아마, 몇 달은 흘렀지 싶다.
이제는 날짜를 헤아리는 것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늘 똑같은 일상의 반복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레벨은 65가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몇 배나 빠른 레벨 업이었다.
아니, 최소 몇 년은 잡아야 오를 수 있는 경지였기에 몇십 배는 빠른 것이었다.
내심 ‘이래도 되나?’ 싶은 걱정까지 해야 할 만큼 말이다.
분명, 그랬는데….
갑자기 레벨 오르는 속도가 거짓말처럼 느려졌다.
63레벨에서 64레벨, 다시 64레벨에서 65레벨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을 따졌을 때, 이미 66레벨에 오르고도 남았을 시간이건만, 어째서인지 그러지 않고 있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이상함을 느꼈다.
그 이유를 사흘 전에야 비소로 알게 되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딱히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매일 똑같은 일과의 반복에 그저 그러려니 하게 되어 버린 탓에 확인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우연히 확인하면서였다.
“어, 없잖아?”
그랬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춤을 추며 타 죽던 사마귀 놈들의 시커먼 실루엣이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처음에는 거리 계산을 잘못한 줄 알았다.
아니었다.
이전과 똑같은 거리와 위치에서 배율까지 높여 시전한 가늘게 뜬 눈으로 살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내, 거리를 좁혀 불길과 더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도 했지만, 역시나 사마귀 놈들의 실루엣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헐….”
살짝 멘붕이 왔다.
당연히 들어야 할 의문… ‘왜 사마귀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에서 시작해, ‘대체 언제부터 보이지 않았던 거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뭐, 사마귀 놈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이런 상황이었느냐와 비교하면 말이다.
“하루? 아니, 이틀? 아니지… 만약, 65레벨에 오른 뒤부터라면… 커헉!”
생각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는 일이었다.
빅너트를 이용해 기다란 풀숲에 불을 지르고, 대량의 경험치를 얻는 방법을 알게 된 직후부터 한동안 저질렀던 크나크고, 뼈아픈 실수가 있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자책하고, 후회하고, 반성했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실수를 또 한 번 저지르고 만 것일지도 몰랐다.
“에이, 아닐 거야… 아니겠지? 크으….”
애써 아니라며 나를 옹호했다.
그래 봤자, 인상이 구겨지고, 가슴 한쪽이 콕콕 찌르듯이 아프고, 속까지 쓰린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금 저질러 버린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한참을 괴로워하다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피라미드를 향해 물끄러미 시선을 던졌다.
“그래, 이제 때가 된 걸지도 몰라.”
….
피라미드로 들어가기에 앞서… 아니, 그전에 거대 사마귀와의 결전을 앞에 두고서 이틀을 푹 쉬었다.
그동안에도 딱히 몸을 크게 놀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진정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온전히 휴식을 취한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었다.
“다들 어때?”
“좋다! 힘이 넘친다!”
“준비되었습니다, 주인님.”
“크르르!”
꿀맛 같은 하루의 휴식에 다들 제대로 충전이 된 모양이었다.
대답뿐만 아니라, 얼굴색과 표정에서도 확실하게 느껴졌다.
“좋아! 가 보자!”
충만한 자신감만큼 활기차고,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
얼마 후, 언덕 아래의 기다란 풀숲 구역 앞에 도착했다.
“왕울아.”
이름을 부르자, 녀석이 곧장 앞으로 나와 윈드 커터를 날려댔다.
촤아아아아아….
스스스스스스슷….
시원하게 뚫린 길을 따라 그대로 전진했다.
기다란 풀숲에 숨어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던 사마귀 놈들의 습격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상태였다.
왜냐고?
더는 이곳에 사마귀 놈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시뻘건 불길 속에서 사마귀 놈들의 실루엣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다음 날…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여긴 후 맞은 휴식의 첫째 날에 잠시 이곳을 찾았었다.
확인해 볼 게 있어서였고, 그것이 바로 사마귀 놈들의 유무 상태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시작부터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기다란 풀숲 안으로 들어오면 여지없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던 놈들이 한참을 들어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왕울이의 동물적 감각을 최대한 이용해 살폈지만, 개미 새끼 한 마리의 흔적이나 기척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도 그랬다.
기다란 풀숲의 초입부터 동물적 감각을 펼쳤다.
거슬리는 게 하나도 없었다.
‘정말 다 타 버린 모양이군.’
그렇다고 보는 게 옳을 듯했다.
그동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잡아낸 사마귀 놈들의 수가 수천은 될 테니, 씨가 마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뭐, 활성화 던전의 룰을 따진다면,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귀찮은 사마귀 놈들의 습격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이동했다.
앞을 가로막는 기다란 풀들을 베고, 정리하며 나아가는 것이 살짝 귀찮기는 했지만, 타들어 가는 불길을 따라 뜨거운 잿더미 밭을 이동하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이지 일도 아니었다.
이동 속도도 훨씬 빠르고 말이다.
‘흠… 놈은 나타나겠지?’
사마귀 놈들은 분명히 없었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거대 사마귀 놈의 유무는 확인할 수 없었다.
‘꼭 나타나라!’
일전의 복수와 앙갚음을 위해서라도 놈이 꼭 나타나 주길 바라고 있었다.
어느새 피라미드가 한층 가까워졌다.
이제 곧 놈과 만났던 곳에 도착할 터였다.
….
“멈춰!”
잘 가던 걸음을 멈춰 세웠다.
곧장 왕울이를 찾았다.
“왕울아, 널찍하게 자리 좀 마련해.”
거대 사마귀 놈과의 두 번째 결전을 위한 무대를 만들기로 했다.
“놈이 느껴지세요?”
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왔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아무것도….”
이미 동물적 감각을 최대한으로 넓혀 사방으로 뿌려대고 있었다.
역시나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가 없었다.
직전까지 왕울이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었다.
“혹시, 놈도 사라진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몰라. 그래도 혹시나 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속으로는 씁쓸했고, 아쉬웠다.
촤아아아아….
스스스스슷….
촤아아아아아….
스스스스스스슷….
왕울이가 열심히 윈드 커터를 날려 기다란 풀들을 잘라 냈다.
이내 널찍하고, 충분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녀석이 공간을 만들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활보했지만, 어떠한 기척이나 낌새조차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 정말로 사라진 건가? 췟!’
더욱더 입맛이 씁쓸해졌다.
“흐음….”
왕울이가 만들어 낸 공간의 중심에 섰다.
넉넉잡고 1분쯤 그곳에 가만히 서서는 상황을 지켜봤다.
빌어먹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진짜로 없어진 모양이에요.”
“응… 그런 것 같네. 하아, 아쉽다.”
“네? 아쉬우세요?”
“어? 아… 조, 조금….”
전혀 안 그런 척하다가 끝내는 속내를 들키고 말았다.
부끄럽기보다는 짜증이 좀 났다.
“에이, 어쩔 수 없지. 없어진 놈을 어디서 찾겠어? 분풀이는 피라미드에 들어가서 하자!”
거대 사마귀에게 풀어야 할 복수심과 앙갚음을 끝내는 포기한 채, 피라미드를 향해 이동하기로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은 것이 무거운 걸음으로 이어졌다.
저벅저벅….
그렇게 놈과의 결전 무대로 만든 공간의 끝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크륵!”
내 옆에서 나란히 걷던 왕울이가 반응을 보였다.
이내, 나도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있었구나. 흐흐!’
당장에 뒤로 물러나라는 명령을 내리려 했다.
왕울이와 내 반응을 눈치챈 오식이와 린이 먼저 뒤로 물러나며 전투 모드에 들어서고 있었다.
처억!
척!
“좀 더 뒤로 간다.”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놈을 기다리던 공간의 중앙 부근까지 물러났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엑!”
놈의 지랄 맞고, 기괴한 울음소리가 높게 울려 퍼졌다.
‘어서 와라! 기다리다가 지쳤단 말이다.’
내 속내를 듣기라도 했는지, 제법 큼직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놈의 신형이 기다란 풀숲 너머에서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파아아아아아아앗!
츄하하아아아아아악!
모두가 고개를 위로 쳐들고는 놈을 주시했다.
머리 위에 뜬 태양을 살짝 가린 놈의 실루엣이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묵직한 굉음과 충격을 일으키며 바닥으로 착지했다.
쿠우우우우우웅!
이내, 착지의 여파로 인한 거센 바람이 우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자식, 요란스럽기는!”
투덜거리듯 말하고는 어깨에 멘 엘프의 활을 꺼내 들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놈이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거대한 낫 모양의 앞발을 양옆으로 벌리고, 허공을 향해 고개를 쳐든 당당한 모습이 너무나 재수 없었다.
“꼴값은… 이제는 네놈이 그렇게 당당하고, 거만할 자리가 아니란 걸 모르겠냐?”
비아냥의 말을 흘리며, 장전한 활을 놈에게 겨눴다.
빠른 조준과 함께 거칠 것 없이 활시위를 놓았다.
티잉! 팅!
쐐애애액! 쐐애액!
두 발의 화살이 놈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놈이 피할 새도 없이… 아니, 반응할 틈도 없이 놈의 몸뚱이에 화살이 꽂혔다.
퍼억! 퍽!
당연히 파탄의 폭발도 이어졌다.
퍼어어어엉!
불시에 공격을 받은 놈이 당황의 빛을 역력히 드러내며 괴성을 질러댔다.
“끼에에에에에에엑!”
거대한 낫 모양의 앞발을 이리저리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크게 소리쳤다.
“다들 공격!”
내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식이와 린이 앞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나 역시, 엘프의 활을 거두고는 놈을 향해 내달렸다.
다다다다닷!
놈을 향해 빠르게 치고 나가던 오식이.
그런 오식이를 린이 금세 따라잡더니만, 이내 앞서 나갔다.
파바바바밧!
“크르르….”
뒤처진 오식이가 살짝 으르렁거리고는 자세를 낮췄다.
꾸우우우욱….
온몸에 한껏 힘을 주고 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돌격!’
머릿속에 녀석의 돌격 스킬이 그려졌다.
잠시 그대로 있던 녀석이 그 힘을 폭발시키듯 하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마치, 잔뜩 조였던 스프링을 풀어 놓은 것 같은 실로 엄청난 속도였다.
콰과과과과과과과!
속도뿐만 아니라 굉장한 파워도 깃들어 있었다.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 깊고 긴 흔적이 남을 정도였다.
녀석을 제치고 앞서 나갔던 린이 급기야 따라잡히기도 했다.
“어멋!”
뒤에서 무서운 속도로 거칠게 따라오는 오식이 때문에 깜짝 놀란 린이 급히 몸을 옆으로 피했다.
그런데도 녀석은 아랑곳없이 무시무시한 속도를 유지한 채, 거대 사마귀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연속으로 다섯 번을 사용할 수 있는 돌격 스킬의 세 번째 박참이 이어지고 있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
마음에 두고 있는 린까지 제치며 무지막지하게 펼쳐낸 오식이의 돌격 스킬.
그런 녀석의 공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거대 사마귀 놈은 여전히 파탄의 여파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타이밍상, 다섯 번째 돌격의 박참에 엄청난 부딪침이 일어날 듯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
콰아아아아아아앙!
예상대로 오식이의 가공할 숄더 어택이 거대 사마귀 놈의 몸뚱이에 작렬했다.
울림 가득한 굉음이 고막을 자극했다.
놈의 찢어질 듯한 비명은 다음이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엑!”
크기만큼이나 육중한 놈의 몸뚱이가 휘청거렸다.
놈의 시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야아압!”
기합과 함께 린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린의 손에는 기다란 먼지떨이가 들려 있었다.
오식이의 숄더 어택에 맞아 균형을 잃고, 반 이상이나 아래로 떨어져 내린 놈의 대가리를 향해 린의 먼지떨이가 날카롭게 적중했다.
쩌어어어어어어억!
끔찍한 소리만으로도 놈의 대가리가 박살 났음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큰 충격을 입었는지, 놈은 계속해서 질러대던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키이익… 키익, 키이익….”
그런 놈을 향해 더욱더 박차를 가하며 달려들었다.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함이었다.
빠르게 내달리던 다리에 힘을 주며 힘껏 뛰어올랐다.
파아아앗!
동시에 아수라 스워드를 빼 들며 그 힘을 이용해서 크게 휘둘렀다.
아수라 스워드가 허리춤에서부터 머리 위로 크고, 똑바른 반원의 궤적을 그렸다.
드드드듯!
묵직한 손맛이 짜릿하게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