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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185화 (185/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85)

‘와, 왕울아….’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굳게 닫힌 놈의 날개는 왕울이를 잘근잘근 씹어 먹듯 꿈틀대고 있었다.

‘불러들여야 해.’

곧장 봉인을 떠올렸다.

하지만, 놈의 날개에 둘러싸인 왕울이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봉인 스킬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다, 다른 녀석들은?’

도움을 줄 다른 녀석들을 찾았다.

건너편에 있을 린은 놈에게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식이는 반쯤 무릎이 꺾인 채 주저앉아 있었다.

많이 지친 듯했고, 상처를 입은 듯했다.

‘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제야 영문도 모르게 잠시 넋이 나갔던 사이, 굉장한 일들이 벌어졌음을 다시금 인식했다.

“크읏!”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아니, 조금이라도 움직여 보려 애를 썼다.

욱신….

삐그덕….

뼈 마디마디와 온몸 구석구석에 전기 찜질을 하는 듯한 통증만 일뿐,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제엔자앙….’

질끈 깨문 아랫입술로 비릿한 핏물이 흘러나왔다.

끔찍하게 당하고 있는 왕울이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슬펐고, 그런 나 자신이 말할 수 없이 초라했으며, 원망스러웠다.

그때였다.

연신 꿈틀대던 놈의 날갯짓이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만, 그 안에서 주홍색의 빛이 새어 나왔다.

이어, 강렬하기 그지없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헐….’

손끝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감각들도 망가지거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이 당연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만큼이나 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에너지의 크기나 위력이 실로 어마무시함을 보여 주는 증거나 다름이 없었다.

고오오오오오오….

에너지의 위력이 점점 더 강해졌다.

조금 이상한 점이라면, 그냥 느끼기에도 강렬하기 그지없는 에너지가 일부러 위력을 감추거나 축소하려고 애를 쓰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마치, 자신을 감추려 온몸을 찌그러뜨리거나 잔뜩 웅크리려는 듯한 느낌이랄까?

‘대체 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의문이 들었다.

찾을 길 없는 의문의 해답으로 고민하는 사이에도 에너지의 위력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더는 감추고 싶어도 감춰지지 않고, 이내 터져 버릴 것 같은 풍선처럼 위태위태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두근! 두근….

두근두근두근두근….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숨도 좀 가빠졌다.

복잡하기 그지없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오르려 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

‘그게 뭐였지?’라는 의문과 함께 머릿속에 떠오르려는 무언가에 집중했다.

‘아….’

기억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막 장식할 즈음이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오….

한계에 다다른 강렬한 에너지가 그 힘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다.

주변을 온통 하얗게 물들일 정도의 밝은 빛과 함께였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엄청난 굉음에 귀가 먹먹해졌다.

밝은 빛에 눈이 멀었고, 귀도 기능을 반쯤 상실한 상태에서 더욱더 강력한 후폭풍의 피해가 날아들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땅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느껴지는 무식한 땅의 진동은 훨씬 더 강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마치, 그대로 무너져 땅속으로 꺼져 버릴 것만 같은 느낌… 아니, 착각과 혼란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촤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뜨겁고 묵직하며 거칠기까지 한 폭풍의 물결도 날아들었다.

뭔지도 모를 것들이 마구잡이로 얼굴과 몸을 난도질하듯 스치고 지나갔다.

“크으읏….”

끝내는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고, 몇 미터쯤을 날아가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쳤다.

터엉… 텅….

쿠구구구구구구구구궁….

이미 만신창이에 가까웠던 몸 상태가 이제는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목숨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아, 안 돼… 저, 정신 차려… 으으으….’

가물가물 꺼져 가는 정신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애를 썼다.

그러나 어떤 노력을 하기도 전에 눈앞이 완전히 캄캄해졌다.

….

“….”

한참 만에야 정신을 차렸다.

솔직히 한참인지 금방인지 알 길이 없었다.

정신도 제대로 차린 게 아니었다.

눈조차 뜨지 못할 정도로 상태는 엉망이었다.

“주, 주인님….”

다급하고, 걱정스러운 린의 부름을 들을 수 있었다.

대답도 하지 못했고,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린의 부름을 듣는 순간,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또 한참인지 어떤지… 시간이 지난 후에 깨어났다.

‘으으….’

직전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더 나아진 상태였다.

그래 봤자 뭐….

“주인님… 괜찮으세요?”

린의 부름이나 목소리도 좀 더 길게 들을 수 있었다.

여전히 대답은 할 수 없었지만, 약간의 반응 정도는 보여 줄 수 있었다.

“아아… 흑흑….”

린이 어떤 서러움을 물씬 풍기며 흐느꼈다.

마음이 짠해졌고, 뭐라도 더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또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

세 번, 네 번, 다섯 번….

정신을 잃고, 깨어나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몇 초, 몇십 초에 불과하던 깨어남의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

그만큼 몸이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렇게 몇 번째인지 모를… 마지막 깨어남에서 드디어 입 밖으로 말을 뱉어 낼 수 있었다.

절로 새어 나오는 신음과 함께 거의 흘렸다고 봐도 좋았다.

“으으… 무, 물….”

당장에 입가로 촉촉하고, 달콤한 것이 흘러들어 왔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것이 물이 아님은 알 수 있었다.

뭐를 따지거나 말거나 할 처지가 아니기에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액체를 목구멍으로 받아들였다.

향기로운 달콤함이 가득했고, 끝 맛으로 약간의 새콤함이 전해졌다.

“하아아….”

길게 숨을 내쉬었다.

타들어 가던 갈증과 축 늘어지도록 지친 몸이 그나마 좀 편안해지고, 일말의 생기를 얻은 것에서 오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린이 작은 소리로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아무런 대답이나 반응도 못 하고 내가 또다시 정신을 잃을까 하는 걱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으응….”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하는 듯 마는 듯했지만, 고개까지 끄덕여 줬다.

“아아, 다, 다행이에요. 흑흑….”

린이 감동과 감격에 마지않는 울음을 터트렸다.

기절했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사이, 얼마나 내 걱정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나저나 여긴….’

또렷하지 않은 시야로 낯익은 풍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낮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리 밝지 않은 곳.

짙은 푸르름으로 더없이 충만하며, 축축함과 음습함이 물씬 스며 있는 곳.

이곳은 정글… 너무나 익숙한 우리의 보금자리였다.

….

한참이 지났다.

아마도 몇 시간쯤?

다시 정신을 잃지는 않았기에 이번엔 한참이 지난 지 확실했다.

그사이… 내가 쓰러진 날로부터 무려 5일이나 지났다고 했다.

다들 정상이 아닌 탓에 이틀이나 걸려 겨우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단다.

“오식 씨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처음에는 오식이의 상태도 최악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놀라운 회복력이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나와 린은 물론, 왕울이까지 모두 업고는 하루 이상을 꼬박 이동했다.

이후에는 린이 그나마 움직일 수 있게 되어, 나름의 짐을 덜었다지만, 그래도 엄청난 수고와 고생을 한 것은 고마워하고, 칭찬함이 마땅했다.

“맞다. 왕울이는 괜찮아?”

“네, 지금은요.”

“…??”

“처음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뭔가 대답의 뉘앙스가 이상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잊고 있던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거대 사마귀 놈의 날개에 갇힌 왕울이.

그때 터져 나온 주홍빛의 강렬한 에너지와 이어진 대폭발은 녀석의 최종 스킬인 ‘핏빛 달의 분노’가 분명했다.

맞다.

예전, 녀석이 귀염둥이라 불리던 시절에 보여 줬던 실로 어마무시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필살기 말이다.

당시의 녀석은 레벨 측정도 되지 않았던 꼬맹이였다.

그 상태에서도 주변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고, 다수의 와일드 울프 놈들을 거의 흔적조차 남지 않게 날려 버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벽한 성체인 데다가 스킬의 숙련도까지 맥스였으니, 그 위력이 얼마나 될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터였다.

‘자식… 한 번만 보여 달라고 할 때는 죽어도 못한다고 잡아떼더니만… 쩝!’

그랬다.

나와 서약을 맺은 이후, 핏빛 달의 분노를 써 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아무 때나 쓸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처음엔 그깟 거 가지고 뭘 그리 튕기나 싶었다.

그러나 갖은 협박에 회유까지 했음에도 한사코 거절에 같은 이유를 대는 것이 심상치 않아 그러려니 넘기고, 구경하는 것을 포기했다.

뭐, 그래도 좀 고깝고, 지랄 같다는 생각에 앙금을 남겨 두긴 했지만….

어쨌든.

나중에 정확히 들은 얘기지만, 녀석이 이유로 댄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없다’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더불어 녀석이 괜찮냐는 물음에 이상한 뉘앙스를 풍기며 답하고, 놀랐다고 덧붙인 린의 말을 내가 살짝 오해했던 것 같다.

린의 말을 나는 왕울이의 필살기 위력이 대단했고, 거대 사마귀로부터 녀석이 당한 상처가 커서 놀라고, 걱정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실상은 한참이나 지나 정신을 차리고 난 후에 보게 된 왕울이의 상태(?)를 두고 한 말이었다.

무슨 뜻인고 하니….

위기의 순간, 핏빛 달의 분노를 시전해 거대 사마귀 놈을 물리친 왕울이는 늠름한 성체의 모습에서 퇴화(?)하여, 예전의 귀염둥이 때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던 것.

그랬다.

아무 때나 핏빛 달의 분노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위기의 순간… 절체절명의 마지막 순간에만 써야 한다는 뜻이었고, 그 이유는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소모된 에너지만큼 녀석의 몸에 무리가 가는데, 이번 같은 경우에는 모습 내지는 급이 확 떨어질 만큼이나 바닥까지 죄다 긁어서 에너지를 썼다는 결론.

그렇게 귀염둥이의 모습으로 돌아간 왕울이를 처음 본 린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말이다.

“작고 귀여운 모습으로 종일 잠에 빠져 있다가 어제저녁에야 비로소 깨어났어요. 이후,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했고요.”

“그랬구나… 그런데, 그 전에는 어떻게 된 거지?”

거대 사마귀 놈의 뒷다리를 공격하려던 중에 갑작스럽게 상태가 이상해졌던 이유를 물었다.

린이 바로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날개였어요.”

“날개?”

“네, 놈이 갑자기 날개를 펴고 공격해 왔어요. 처음 것은 간신히 피했지만, 이어진 공격에 당했습니다.”

아수라 스워드를 휘두르려던 찰나, 머리 꼭대기에서 들렸던 놈의 날갯짓 소리가 생각났다.

린은 그것을 한 번 피했고, 나는 첫 타에 당했던 모양.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들었던 린의 비명이 그때의 시차와 상황을 얼핏 말해 주고 있음이었다.

“흐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몰랐던 사실과 깨달음을 얻었다.

알아낸 사실은 왕울이의 비밀.

깨달음이란, 아직 이곳을 벗어나거나 클리어 하기에 우리의 수준이 한참이나 떨어진다는 것과 레벨 45라고 살짝 무시… 아니, 배제했던 왕울이 덕에 모두가 살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 썩어도 준치라잖아? 하물며, 무리의 왕이었고, 던전의 최종 보스였는데… 나란 놈이 뭐라고 녀석을 저평가한 건지… 쩝!’

진심으로 깊이깊이 반성했다.

더불어 녀석도 빨리 진화의 단계를 밟게 하고 싶었다.

‘아마, 그곳에 가면 어떤 답이 나오겠지?’

녀석이 있던 던전을 다시금 방문해야 할 듯했다.

전에, 이곳부터 빠져나가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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