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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182화 (182/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82)

휙! 휙!

빠르게 좌우를 살폈다.

마찬가지였다.

“뭐야? 왜 안 보여?”

크게 마음먹고, 멘탈 관리 좀 하겠다는데, 상황이 이러니 당황스러웠다.

‘너무 먼가?’

처음 불길 속의 놈들을 발견하고서 1시간쯤 지났다.

화마가 집어삼키고 간 새카만 흔적이 제법 넓어진 상태였다.

그만큼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불길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도 멀어진 채였다.

하지만, 아직 가늘게 뜬 눈을 최대한으로 당기지 않았기에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이상하네… 앗!”

고개를 갸웃하던 중에 뭔가가 머릿속에서 번쩍였다.

저절로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입술이 벌어졌다.

바르르….

벌어진 입술이 떨려 왔다.

갈 곳 잃은 손끝도 마찬가지였다.

‘아, 아… 니… 겠… 지?’

부정하는 생각의 말조차 영향력을 잃고서 뜸하게 떠올랐다.

방금 떠오른 생각이 절대로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하지만, 왠지 그것이 옳을 것 같은 상황이라 그랬다.

“아, 아닐 거야!”

소리 내어 부정하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나 이미 모든 생각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게 옳다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껏 우리는 뭐를 한 거지?’

내가 떠올린 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지금껏 보낸 여러 날의 시간은 모두 헛짓거리… 밑 빠진 독에 물을 들이부은 꼴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절대로 내가 떠올린 생각이 옳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와, 왕울아!”

크게 소리쳤다.

왕울이뿐만 아니라 오식이와 린도 하던 짓을 멈추고는 나를 주목했다.

다다닷!

급한 상황임을 감지한 왕울이가 재빨리 내 곁으로 다가왔다.

말을 아끼며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달려! 언덕 아래로!”

왕울이가 지면을 박차며 날 듯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반동 때문에 하마터면 뒤로 넘어가 나뒹굴 뻔했다.

간신히 녀석의 털을 움켜잡고 버텼다.

다다닷….

경계선 부근부터 언덕을 반쯤 내려왔을 때쯤 가늘게 뜬 눈을 시전했다.

흔들림에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자, 잠시만!”

내 외침에 왕울이가 멈춰 섰다.

다시 초점을 잡고 불길 쪽을 주시했다.

‘아직인가? 아니면….’

사마귀 놈들의 실루엣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떠올린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다행스러움이 살짝 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 어느 쪽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좀 더 내려가 보자!”

왕울이가 곧장 움직였다.

그렇게 남은 언덕의 반 정도를 더 내려온 후에 다시 멈춰 서서 가늘게 뜬 눈을 시전했다.

번뜩!

거리를 조절하며, 초점을 막 맞추려던 그때였다.

흐느적….

시뻘건 불길 속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는 듯한 사마귀 놈의 시커먼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를 탄식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아아….”

온몸… 특히나 다리에 힘이 좍 빠졌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주, 주인님! 무슨 일이세요?”

“괜찮냐, 형님?”

뒤늦게 따라온 린과 오식이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대답할 기분이나 기운이 아니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더없는 망연자실함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몇 분쯤 흘러서였다.

지금껏 당혹스럽고, 어이가 없었던 적은 있지만, 이내 기쁘고 즐거울 수밖에 없었던….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도무지 기뻐만 할 수 없는 신비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

“이런, 젠장!”

크게 쓴소리를 토해 내며 애꿎은 바닥까지 발로 쾅쾅 찼다.

그 누구도 아닌 바보 같은 나를 향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아우! 이 돌대가리야! 아니, 어떻게 그런 기본 중에서도 기본적인 것을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냐고!”

그랬다.

나는 돌대가리에 바보, 천치, 단세포에 버금가는 똥 멍청이였다.

각성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하물며, 조금만 이쪽 일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도 아는 기초 지식이란 게 있었다.

그중 하나가 ‘경험치 획득 범위’였다.

말 그대로, 각성자가 잡은 괴물로부터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일정 거리 내지는 최대의 범위를 뜻한다.

이를 깊게 파고들자면, 원거리 타입의 각성자와 근거리 타입의 각성자로 나누고, 끝장을 보느냐 아니면 잡다가 마느냐 등등까지 꽤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들을 예로 들어야 하니 패스!

지금은 그저 경험치를 얻기 위한 거리와 범위가 있다는 기초적인 것만 알면 될 일이었다.

뭐, 그런 기본 중의 기본이자, 기초적인 룰을 완전히 까먹고서 멍청한 짓을 한 게 바로 나고 말이다.

여기까지만 말을 해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다들 알 것이라 믿는다.

그런 멍청하고, 한심한 짓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뭐가 그리 좋아 매일 같이 실실거리고, 따분하니, 지루하니, 살이 쪘느니 마느니 하는 농담 따먹기를 하던 나는 지탄받아 마땅했다.

“아아, 이 한심한 놈아! 대체 어쩌자고….”

아무리 나무라고, 자책해도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후회를 한다 해도 달라질 게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미 엎지른 물은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라도 흘리지 말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

그동안이 실수를 깨달았고, 앞으로 어찌해야 하는지 알기에 곧장 실천으로 옮겼다.

불길의 진행 속도에 따라 우리도 자리를 조금씩 전진하며 옮기는 일이었다.

“열기가 대단하네요.”

완전히 불이 꺼진 채 새카맣게 변해 버린 기다란 풀숲 구역으로 들어서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구역 밖에서도 열기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전혀 다른 공간에 있는 거처럼 말이다.

열기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새카만 잿더미 속에 있다 보니, 숨 쉬기도 버거웠고, 걷는 것도 힘들었으며, 조금만 크게 움직여도 나풀거리는 재들에 온몸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콜록콜록! 으으… 목 아파.”

쉼 없이 기침이 나왔다.

이미 목은 꽉 막히도록 갑갑했다.

나도 나였지만, 다른 녀석들도 저마다의 힘겨움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으으… 짜증 난다!”

먼저 오식이….

녀석은 남들보다 조심성이 없었다.

또한, 걸음걸이나 움직임도 크고, 힘찼다.

제 딴에는 최대한 조심을 한다고 해도 특별난 덩치와 무게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사알짜악… 퍽….

녀석이 한 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널찍한 발바닥과 묵직한 압력에 잿더미가 부욱 하고 일었다.

뭉게뭉게….

자욱하게 일은 잿더미에 녀석이 인상을 구겼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것이 재를 들이마신 모양이었다.

하긴, 워낙에 호흡이 크고, 거칠어야 말이지.

“크르르….”

낮게 으르렁거린 녀석이 다시금 발을 내디뎠다.

사알짜악… 퍼억….

뭉게뭉게….

더욱더 조심스러운 걸음이었으나 여지없이 잿더미가 녀석의 몸을 휘감았다.

그에, 녀석의 국숫발보다 가느다란 이성의 끈이 끊어진 듯했다.

“크아아아아앙!”

거친 포효와 함께 미친 듯이 발을 굴러댔다.

쾅! 쾅! 쾅!

퍼엉! 펑! 퍼어엉….

완전 난리가 났다.

폭격이라도 받은 듯이 주변 전체가 뭉게구름 같은 잿더미로 자욱하게 뒤덮였다.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으아악! 콜록콜록! 이 미친놈아! 우에엑… 그, 그만하지 못… 콜록콜록! 그만, 그만하라고!”

악을 써 가며 소리친 끝에 녀석의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러고도 한참 만에야 사태와 상황이 진정됐다.

“이 자식이 증말….”

참고 있던 화를 터트리려는데, 이번에는 옆에 있던 왕울이가 사고를 쳤다.

털 달린 짐승의 습성이나 본능과도 같은 몸 털기.

재를 흠뻑 뒤집어쓴 녀석이 습관처럼 몸을 털었다.

부르르르르….

강렬한 몸 털기에 녀석의 몸에 묻은 재는 물론이고, 주변의 재들까지 단숨에 솟구쳐 올랐다.

다소 진정이 됐던 주변이 다시금 잿더미 구름으로 뒤덮였다.

“콜록콜록! 아우우… 이 미친 것들! 제발 좀 얌전히 있어!”

옷소매로 입과 코를 막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뜩이나 목이 아픈 와중에 소리까지 지르니 진정 죽을 맛이었다.

이번엔 오식이 때문에 사고를 친 왕울이였지만, 녀석은 녀석대로 고통받고 있었다.

남다르게 발달한 녀석의 후각이 문제였다.

후각이란 녀석의 또 다른 특기인 동물적 감각처럼 제 마음대로 능력을 줄이고, 높일 수 없는 감각이었다.

호흡을 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발동하여 맡고 싶지 않은 냄새도 맡아야 한다는 소리다.

평균적인 인간의 후각을 가진 내가 맡기에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의 냄새는 그리 좋은 게 아니었다.

그저 풀이 불에 타고, 땅이 그을린 것의 냄새라 여긴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산이었다.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그러려니 하는 것이지, 이처럼 대량, 대규모로 불이 난 곳에서 나는 냄새는 그 차원부터가 다른 것이니 말이다.

유독가스라 칭하는 게 과할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그 정도는 되는 듯했고, 그 외에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머리를 지끈거리게 할 정도로 가득했다.

솔직히 이때는 이상한 냄새의 출처를 알 길이 없었다.

아니, 그냥 지독하고, 특이한 냄새라 여기기만 했지,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냄새의 원인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맞다.

사마귀 놈들이 타 죽으면서 남긴 냄새였다.

어쨌든.

이로 인해 왕울이는 한동안 콧물을 달고 살아야만 했다.

또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손이 없는 탓에 앞발로 벅벅 문지르다가 상처를 입어 코끝이 시뻘겋게 까지기도 했다.

그것을 보고 놀리며 웃던 오식이가 끝내는 왕울이에게 엉덩이를 물리고 말았던 어이없는 사건도 있었다.

나도 그렇고, 오식이나 왕울이도 그랬지만, 우리 중에 가장 고통받는 것은 다름 아닌 린이었다.

다른 녀석들처럼 린은 사고를 치지 않았다.

걸음걸이도 사뿐사뿐 조심스러웠고, 혹여 옷에 재가 묻어도 살랑거리는 몸짓으로 가볍게 털어 냈다.

후각도 나와 비슷한 터라 다소 괴롭기는 해도 고통의 수준까지는 아닐 터였다.

그런 린이 고통받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문제의 고통으로 말이다.

“아우, 어쩌지? 에휴, 미치겠네! 하우우….”

흡사 볼일이라도 급한 것처럼 안절부절못한 몸짓과 연신 흘려 내는 한숨 섞인 걱정의 혼잣말.

끝내는 자그마한 발까지 동동거리며, 울상까지 지어대는 린의 고통은 그녀의 선천적인 결벽증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랬다.

린은 시커먼 잿더미로 덮여 있고, 난잡에 복잡에 혼잡하기까지 한 이곳의 엄청난 더러움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었다.

“청소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굳이… 어차피 해도 표도 나지 않을걸?”

“그래도 하면 안 될까요?”

“참아, 이 상태에서 빗자루질을 하면 저 녀석들이 했던 것처럼 재만 더 날릴 거야.”

“아아, 제발요. 주인님….”

“후우우… 그럼, 한 번 해 보던가.”

린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아니, 애절한 바람으로 가득한 눈빛과 표정을 무시할 수 없었다.

처억!

내 허락을 받은 린이 당당하면서도 결의에 찬 느낌을 더없이 뿜어내며 멋들어지게 빗자루를 꺼내 들었다.

이어, 미친 듯이 빗자루로 바닥을 쓸어대기 시작했다.

쓱쓱! 삭삭!

쓱싹쓱싹! 스스스! 사사사삭!

간결하면서도 절도 있고, 빠르면서도 정확한 린의 빗자루질은 예술 그 자체였다.

보통은 물이라도 뿌려야 재가 날리지 않을 것 같은데, 그냥 빗자루질을 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오식이와 왕울이도 그 모습에 넋을 빼고 있었다.

쓱쓱! 삭삭!

우리가 그러는 동안에도 린의 신기에 가까운 빗자루질이 계속 이어졌다.

어느새 우리 주변 일대가 깔끔… 까지는 아니지만, 일단은 살 만하게 정리됐다.

“후우우….”

린이 잠시 빗자루질을 멈추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순간, 청소의 달인이자, 요리와 세탁… 모든 살림의 달인인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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