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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181화 (181/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81)

수차례에 걸쳐 빅너트를 차 날렸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가지고 온 빅너트의 수량이 가장 큰 문제였다.

“흠… 뭐, 기회는 많으니까….”

더 많은 준비와 내일을 기약하며 일단은 마무리를 지었다.

….

오늘도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내심 기대를 했던 레벨 업은… 없었다.

‘하긴, 하루에 1씩 레벨이 오르면 그게 밸런스 붕괴지….’

당연한 일이었고, 충분히 이해도 갔지만, 슬그머니 피어오른 서운함과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한 것도 별로 없는데 찌뿌둥해진 몸을 토닥이며 정글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보금자리로 와서는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는 각자 맡은 일을 진행했다.

오식이와 왕울이가 커다란 나뭇잎과 넝쿨들을 모아왔고, 나와 린이 그것들을 이용해 그물 형태의 커다란 배낭을 만들었다.

대량의 빅너트 운반에 사용할 용도였다.

….

다음 날.

나름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언덕에 도착했다.

역시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황금빛 물결의 평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자박자박….

언덕을 내려갔다.

어제와 그제, 모닥불을 피웠던 곳을 지나쳐 더 아래로 향했다.

어젯밤, 문득 떠올린 것이 있었다.

‘왜? 굳이 왜, 그 먼 곳에서부터 불붙은 빅너트를 굴리고, 날려야만 하는가?’였다.

그랬다.

언덕을 내려가 기다란 풀숲과 가까이… 아니, 애초부터 기다란 풀에 직접 불을 붙이면, 중간에 빅너트가 걸릴까 하는 조바심이나 그에 따른 슈팅 자체의 문제가 사라지게 된다.

그런 단순한 이치를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게 참으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쨌든.

언덕을 모두 내려가 기다란 풀숲 바로 앞에 섰다.

“린, 시작해.”

“네!”

린이 곧장 파이어 스틸을 꺼내 들었다.

나머지는 혹시 모를 사마귀 놈들의 습격에 대비했다.

틱… 틱….

틱틱틱….

긴장이라도 한 것일까?

누구보다 능숙하게 파이어 스틸을 다루던 린이 계속해서 실수를 해댔다.

“아, 이상하네? 이게 왜 이러지?”

당황한 듯한 혼잣말을 해대던 린이 다시금 파이어 스틸을 긁어댔다.

하지만,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래?”

“그게… 이상하리만치 불이 붙지 않아요.”

“그래? 내가 한번 해 볼까?”

그럴 리가 있냐는 생각에 앞으로 나섰다.

약간의 허세를 장착하고는 넘겨받은 파이어 스틸을 힘차게 튀겼다.

틱!

단번에 불이 활활 붙을 것처럼 소리는 완벽했다.

그러나 불꽃이 전혀 튀지 않았다.

“얼라? 이거 왜 이래?”

당황과 당혹감에 손놀림이 급해졌다.

틱! 틱! 틱….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쪼그리고 앉았던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흠….”

잠시 고민을 하다가 슬쩍 언덕 위를 쳐다봤다.

이제는 척 봐도 눈에 들어오는 경계선 부근에 시선을 뒀다.

‘설마….’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다.

언덕을 오르는 중에도 몇 번이나 파이어 스틸을 사용해 봤다.

결과는 마찬가지였고, 머릿속을 스친 가설에 점점 확신이 깃들어갔다.

그렇게 언덕을 올라 이제 막 경계선을 넘을 때쯤이었다.

틱! 틱! 파지짓….

아무리 힘을 주고 긁어도 반응 없던 파이어 스틸이 반짝이는 불꽃을 날렸다.

떠올렸던 가설이 맞았음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뱉어 냈다.

“역시!”

확실한 증명을 위해 다시 경계선 안으로 들어가 파이어 스틸을 긁었다.

차이는 극명했고, 결과는 확실해졌다.

“이런 장치가 있었군.”

왠지 이유를 알 것만 같은 방어 장치(?)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몇 가지 의문도 이어졌다.

극소수의 마법 각성자들이나 불 속성을 가진 스킬에도 방어 장치가 작동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스킬이 없으니 확인해 볼 방법이 없어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부분이었다.

이후, 몇 가지를 더 알아냈다.

경계선 밖에서 불을 피운 뒤, 그것을 직접 들고 경계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불이 붙은 그 어떤 것도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

정확히는 이전 날 내가 파탄을 쏴 낭패를 봤던 것처럼 불붙은 무언가를 경계선 너머로 보내려 하면, 경계선의 벽이 그것을 그대로 튕겨 냈다.

직접 다 실험해 볼 수 없기에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황상으로 빅너트만이 유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불길을 머금고 유일하게 경계선의 벽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빅너트뿐이었다.

그런 빅너트도 직접 들고서는 경계선을 넘지 못했다.

굴리든, 던지든, 발로 차든 간에 경계선 밖에서만 그런 일이 가능했다.

“아무튼, 운빨 하나는… 크크크!”

이곳에 들어왔던 이들 중에서 분명 어느 지점까지는 생각이 닿은 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 해답이 빅너트뿐이고, 경계선 밖에서부터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까지 도달하기에는 어렵지 싶었다.

우연과 우연들이 겹쳐 대박에 이른 나는 정말 행운아 그 자체였다.

‘그나저나 저것들은 뭐에 쓴담?’

수북하게 쌓인 빅너트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괜한 것에 꽂혀, 괜한 짓거리를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터였다.

단순히 굴러가는 속도와 일부의 장애물만 피하면 될 일을 가지고, 굳이 한 방에 끝장을 보려 하다니… 지나친 욕심이 부른 헛짓거리였을 뿐이었다.

‘뭐, 어쩌긴 어째? 오식이 배나 채우면 되지!’

실수를 문제 삼거나 탓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나 혼자 민망해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 * *

며칠 후.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일과를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함이 더해 갔지만, 딱히 할 일이 없고, 그렇다고 일을 만들어 할 필요도 없기에 그냥 그렇게 지냈다.

“으으… 린!”

“네, 주인님.”

“나 요즘 살찐 거 같지 않아?”

“조금요. 하지만, 보기에 좋습니다.”

“그래?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이건 뭐, 맨날 놀고먹으니… 이 배 좀 봐!”

“후훗! 보기에 좋다니까요. 인자해 보이세요.”

“헉! 이, 인자함?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쁜 단어였어?”

“네?”

“아, 안 되겠다. 조금이라도 움직여야지. 이러다가 나중에는 굴러다닐지도 몰라!”

이런 태평스러운 대화나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제 슬슬 레벨이 오를 때가 된 것 같은데….”

정확지는 않지만, 왠지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오늘이 그날이라 여기며 기분 좋게 언덕으로 향했다.

“오식아, 오늘도 시원하게 날려 봐라!”

“알았다, 형님!”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오식이가 축구선수 못지않은 슈팅 실력을 뽐내며 불붙은 빅너트를 발로 차 날렸다.

뻐어어엉!

슈우우우우….

데굴데굴….

신기록에 가까운 비거리를 날아간 빅너트가 바닥을 빠르게 구르다가 기다란 풀숲으로 사라졌다.

이내,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오늘도 멋들어진 화마의 불꽃 쇼가 시작됐다.

“오오, 굉장한데?”

“으하하하하!”

오식이가 의기양양하게 웃어댔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하던 린이 아침 식사 준비가 다 됐음을 알려 왔다.

“다들 식사하세요.”

조금이라도 더 경험치를 얻고자, 아침 식사는 물론 점심과 저녁까지 이곳에서 해결한 지가 꽤 된 터였다.

아, 그런 의미로 낮과 밤 모두를 이곳에 있다 통이 틀 무렵에 맞춰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돌아오는 짓도 해 봤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때려치웠다.

왕울이 덕에 얻은 동물적 감각이 거대한 불길에 반응하며 신경을 거슬리게 했고, 피로가 누적되면서 컨디션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었다.

뭐, 하루 이틀쯤이야 괜찮다거나 참을 수 있다지만, 굳이 내 몸을 버려가면서까지 무리할 이유는 없었다.

모두가 모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유 없이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순간적으로 ‘불’멍에 빠져들었다.

평소에도 늘 하던 짓이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조금 더 자세히 볼까?’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득 떠올랐고, 못할 이유가 없기에 그냥 그렇게 했다.

번뜩!

가늘게 뜬 눈을 시전했다.

적당하게 거리와 초점을 맞추고 타오르는 불꽃의 춤사위에 빠져 들었다.

그때였다.

시뻘건 불길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너울대는 시커먼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

처음엔 그것이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확인을 위해 더욱더 자세히 살폈다.

그것은 마치, 춤을 추듯 꿈틀대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추며 사라졌다.

‘뭐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금 그것과 비슷한 실루엣이 포착됐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 아니, 셋… 넷, 다섯….

그제야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감이 잡혔다.

바로 사마귀 놈들이었다.

‘하, 저렇게 죽는 거였어?’

따지고 보면 당연한 그림이었다.

기다란 풀숲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타오르는 불길이 덮치니, 그냥 타 죽을 수밖에 없을 터.

“으으으….”

나도 모르게 신음까지 흘리며 진저리를 쳤다.

당해 본 적은 없지만, 뜨거운 불길에 휩싸여 타죽는 고통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된 까닭이었다.

딴짓에 빠진 나를 린이 깨웠다.

“주인님, 안 오시고 뭐 하세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가늘게 뜬 눈을 거뒀다.

오식이의 재촉이 이어졌다.

“배고프다. 빨리 와라, 형님!”

“어, 미안.”

빠른 사과와 함께 다시 걸음을 옮겨 자리로 향했다.

“뭐 하셨어요?”

“응? 아, 아니, 그냥….”

린의 물음에 말을 얼버무렸다.

린이 어깨를 살짝 으쓱하고는 잘 익은 빅너트를 내 앞으로 건네줬다.

불이 붙어있지는 않았지만, 새까맣게 그을린 빅너트의 표면과 지글지글 끓어 오르는 하얀 속살이 다시금 불길 속의 사마귀 놈들을 떠올리게 했다.

“겁나 뜨겁겠지?”

“네, 그러니 조심해서 드세요.”

나도 모르게 흘린 혼잣말에 린이 친절하게 답을 해 줬다.

분명, 서로가 생각하는 것이 달랐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진 대화였다.

그로 인한 결과의 대미지는 나만 받아야 했고 말이다.

“우욱!”

울렁거리는 속을 어쩌지 못하고 구역질을 했다.

“어머, 괜찮으세요?”

린이 다급히 말하며 잽싸게 내 옆으로 다가왔다.

곧장 손바닥을 펴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하지만, 울렁거림이 멈추지 않아, 한 번 더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우웁!”

….

결국에는 아침 식사를 걸러야만 했다.

사실, 별것 아닌 일일 수도 있는데, 유난을 떤 것 같아 부끄러웠다.

“젠장….”

나지막하게 쓴소리를 뱉어 내고는 활활 잘도 타고 있는 불길로 물끄러미 시선을 던졌다.

직전의 일 때문에라도 다시 보고 싶을 마음이 없어야 할 텐데, 어째서인지 자꾸만 눈길이 갔다.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고, 눈길을 줬다가 피하기를 반복했다.

내가 하고는 있지만, 도무지 왜 이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야이, 멍청한 놈아! 놈들이 고통받거나 말거나 뭔 상관이야? 어차피 괴물들이고, 적인데… 오히려 손에 피 안 묻히고 다행이지!’

쓸데없는 감성 모드에 빠져 버린 나를 채찍질했다.

그래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아, 더욱더 강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래, 지켜보자! 놈들이 괴롭게 죽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즐기자!’

괴로움을 보며 즐기자는 것이 다소 변태스럽고, 사이코패스처럼 여길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괴물들에게 그런 감정을 갖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하고, 웃긴 일이었다.

아니, 막말로 지금껏 내 손으로 죽인 괴물들이 어디 한둘인가?

갑자기 이런 지랄 같은 감정과 상황에 빠진 것이 훨씬 더 미친놈 같았다.

번뜩!

가늘게 뜬 눈을 시전했다.

바로 사마귀 놈들을 찾았다.

“얼라리?”

아무리 살펴도 놈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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