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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180화 (180/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80)

어둠이 깔린 대지에 아른거리는 붉은 물결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부터 시작한 것이 여태껏 이어지고 있었으며, 앞으로도 끝나지 않고서 계속될 터라 여겨졌다.

날이 저물기 전, 우리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새카맣게 타 버린 흔적들이었다.

오식이의 키를 훌쩍 넘기며, 우리의 전진을 막고, 왕울이의 윈드 커터로 길을 내야만 했던 기다란 풀들은 붉은 불길에 휩싸였다가 삽시간에 재가 되어 사라져 갔다.

더불어 그 안에 숨어 있던 사마귀 놈들까지….

그것이 우리가 멍하니 불구경을 하다가 난데없이 레벨 업을 한 이유인 듯했다.

말 그대로 우리는 어떠한 짓도 하지 않았고, 한 적도 없었다.

아니, 딱 하나… 우연한 실수로 불붙은 빅너트를 언덕 아래로 굴러가게 했을 뿐이었다.

그것이 기다란 풀숲까지 당도해 엄청난 화마를 일으켰고, 지금껏 꺼지지 않은 채 온 천지를 태우고 있을 뿐이었다.

뭐, 그것이 이유와 조건이 되어 사마귀 놈들을 처리하는 것으로 간주 되고, 이렇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대량의 경험치를 얻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경험치를 얻고 있었다.

결코, 흔할 리 없는 일… 대박 이상의 행운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기막혀하고, 어떤 시기와 질투를 할지도 모르겠지만, 운이 좋았던지 우리는 이런 경험을 이전에도 한 적이 있었다.

바로 저주받은 저택에서였다.

정확히는 저주받은 저택의 정원.

그곳에 깔아 둔 단순한 트랩에 걸려 저희끼리 자빠지고, 엎어지며 난리를 쳐대던 정원사 놈들이 당시로써는 쏠쏠하기 그지없는 경험치를 매일 같이 우리에게 선물했었다.

“흐음….”

기쁘기가 한이 없는 와중에 의문과 걱정이 들었다.

‘언제까지 계속될까?’

의문이라고는 했지만, 이미 답은 얼추 나와 있었다.

좀처럼… 아니, 절대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만큼 화마의 불길은 사그라질 기미조차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기다란 풀숲 전체를 다 태우고 날 때까지… 더 나아가서는 너무나 멀리 있어 흐릿하게 보이는 피라미드까지도 모두 불태울지 모를 일이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까?’

누가 봐도 어마어마한 피해 규모였다.

싸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왕울이가 윈드 커터로 풀들을 잘라 낸 것이나 괜히 욕심을 부려 늘 먹고 남길 만큼 과일 등을 따던 것과는 아예 차원조차 다른 수준이었다.

해서, 다음 날 동이 트면 온전하게 예전 상태로 돌아오는 이곳의 원상 복구 현상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됐다.

‘뭐, 내일이면 알게 되겠지.’

그럴 터였다.

앞으로 몇 시간 후면 자연스레 알게 될 일이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이건 뭐, 두고 볼 것도 없이 땡잡고, 판쓸이는 물론, 전 판에 나가리 되어 묻어 둔 돈까지 죄다 긁어 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일단 돌아가자.”

쿨하게 몸을 돌려 정글로 향했다.

….

정글 안에 나름으로 꾸미고 마련한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평소처럼 저녁 식사를 했고,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오후에는 불구경만 했을 뿐, 몸을 움직이지 않아 피곤이 덜한 탓이었고, 내일 마주하게 될 상황의 기대감과 어쩔 수 없이 병행되는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뒤척… 뒤척….

몇 번이나 몸을 이리저리 돌려대다가 간신히 잠에 빠져 들었다.

밤새도록 기억도 나지 않는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

“주인님… 주인님….”

나를 부르는 린의 목소리에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으음….”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어… 아아… 어어.”

컨디션이 완전히 헝클어진 듯했다.

온몸이 젖은 빨래처럼 묵직했다.

간신히 잠든 것보다 더 힘겹게 깨어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잠시 침대에 걸터앉은 채,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괜찮으세요?”

린이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괘, 괜찮아… 후우우우….”

긴 한숨을 뱉어 내고는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어 냈다.

날은 완전히 밝아 있었다.

아침 식사 준비도 이미 다 되어 있었다.

나와 눈을 맞춘 오식이가 배고프니 빨리 오라는 듯한 뉘앙스를 눈빛과 표정에 가득 담아, 무척이나 애절하게 날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피식하고서 당연하게 들어줄 청이겠지만, 오늘만큼은 녀석의 청을 뒤로 미뤄야 했다.

“미안한데, 아침 식사는 조금 있다가 하자.”

“아, 먼저 확인부터 하시려고요?”

역시, 린은 내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또한, 역시나 오식이는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듯… 세상이 무너졌거나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날 쳐다봤다.

“얼른 일어나!”

하지만, 가차 없고, 단호한 내 명령에 고개를 푹 떨구다가 미적미적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이 어쩜 그렇게 측은하고, 안쓰러워 보이던지….

녀석의 먹을 것에 대한 애정과 식욕의 즐거움을 새삼 깨닫게 했다.

“휴우…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겨. 가면서 먹든가 가서 먹든가 하자.”

결국엔 한 발짝 양보하며, 기대감과 불길함으로 가득 찬 확인의 길에 올랐다.

….

“허….”

언덕에 올라 시선을 두자마자 나도 모르게 뱉어 낸 소리였다.

이어, 양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앗싸! 만세에에에에에!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

떠나갈 듯, 숨이 가빠지도록 토해 낸 커다란 웃음은 덤이었다.

언덕 아래로 황금빛 물결의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어디를 둘러봐도 새카맣게 변해 있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뜨거움이 전해지는 화마의 불길과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완전 복구… 말 그대로 어제의 아침과 하나도 달라진 점 없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그대로 돌아왔네요?”

“응.”

“바라신 대로 된 거죠?”

“응!”

“기쁘신 거죠? 축하드립니다.”

“응응!”

웃음과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기쁨으로 두근대는 심장의 요동 또한 즐겁게 여겨졌다.

“린! 바로 준비하고 시작하자!”

“네, 주인님!”

곧장 어제의 장소… 경계선의 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리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린이 파이어 스틸로 모닥불을 피웠다.

모닥불의 불길이 안정을 찾을 때쯤, 오는 중에 오식이가 다 먹어 치우려는 걸 제지하고 남겨 둔 빅너트 세 개를 굽기 시작했다.

“빨리 붙어라.”

주문처럼 빅너트가 불길에 휩싸이기를 중얼거렸다.

조바심에 평소보다 더딘 것 같아 발도 굴러댔다.

“주인님, 다 된 것 같아요. 한 번 보세요.”

“응… 그래, 잘 붙었네.”

빅너트가 충분하리만큼 불타오르고 있었다.

겉은 물론, 살짝 벌어진 껍질 속에서 흘러나온 유분기가 웬만한 방해에도 화력을 잃지 않게 해 줄 만큼이었다.

“자, 이제 굴려 보자!”

“네.”

린이 들고 있던 막대기로 불붙은 빅너트를 건드려 언덕 아래로 굴렸다.

데굴… 데굴….

어제 봤던 것처럼 울퉁불퉁한 언덕의 지면을 간신히 타고서 빅너트가 굴러갔다.

린이 굴려 낸 빅너트는 두 개였다.

혹시 몰라, 하나는 남겨 둔 상태.

뭐, 재수가 없어 굴러가는 도중에 불이 꺼진다든가, 언덕 아래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든가 하는 불상사 등을 대비한 것인데, 사실 세 개의 빅너트가 모두 실패해도 상관이 없었다.

오고 가는 길이 귀찮아서 그렇지, 정글 안에 빅너트는 널리고 널렸으니 말이다.

데굴데굴… 툭….

혹시나 하던 불상사가 일어났다.

잘 굴러간다 싶었던 빅너트 하나가 유독 튀어나온 듯한 돌부리에 걸려 멈춰 섰다.

“이런….”

미간이 절로 찌그러졌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순탄하게 굴러 내려갔고, 점점 더 탄력을 받아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그래! 너는 마음껏 달려라! 힘차게 달려서 골인해! 다 불태워 버리란 말이야!”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빅너트를 응원했다.

데구르르르르….

나의 간절한 바람과 응원을 받은 빅너트는 한 치의 배신 없이 언덕 아래에 다다랐고, 이내 엄청나게 화려하고 웅장해질 불꽃 쇼의 스타트를 보기 좋게 끊었다.

화륵….

화르르르르르….

“좋았어! 나이스으으으으! 아자, 아자!”

더없는 기쁨과 쾌감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불끈 쥔 두 주먹을 절도 있게 흔들었고, 그 타이밍에 맞춰 요염한 하체를 앞뒤로 흔들어댔다.

얼핏 저질스러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식아! 너도 해 봐! 이렇게! 이렇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오식이를 동참시켰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녀석이 어정쩡하게 동작을 흉내 냈다.

“아니, 이렇게… 좀 더 강하게 허리를 튕겨야지!”

머리통을 긁적이던 녀석이 다시금 나를 흉내 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모습이었다.

“엇….”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나 저질스럽고, 흉측했다.

순간, 내가 그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이내, 하던 짓거리를 멈췄고, 어색함에 딴청을 부렸다.

“흠흠… 오, 오식아… 너도 그만해.”

“크륵?”

“내, 내가 미안하다.”

“크륵?”

오식이가 상황 파악을 못 한 채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씁쓸해진 입맛을 다시며 린에게도 사과했다.

“미안… 몹쓸 꼴을 보였네.”

“네? 뭐가요?”

린도 고개를 갸웃했다.

나만 이상하게 여겼나 싶은… 나름 괜찮았던 것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고는 상황을 얼버무렸다.

“아, 아니야… 패스!”

린과 오식이가 계속해서 얼굴에 물음표를 그리고 있었다.

그에,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그냥 넘어가자고, 이것들아!”

괜히 성질을 부리며 소리치고는 남아 있는 빅너트에 화풀이를 했다.

뻐어어엉!

빅너트를 힘껏 발로 차 버렸다.

당연히 그 자리에서 깨질 것이라 여겼지만, 제대로 발끝에 걸린 것인지 빅너트가 멋들어진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몇십 미터를 가볍게 넘긴 빅너트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제야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다.

“…?!”

그 모습을 보고 번뜩인 게 있었다.

‘뭐야? 이런 식이면 굳이 굴릴 이유가 없겠는걸?’

그랬다.

불붙은 빅너트를 언덕 아래로 굴리고, 혹여라도 어디에나 걸릴까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나나 오식이가 제대로 걷어차 빅너트를 날려 버린다면, 훨씬 더 빠르게 언덕 아래로 내려 보낼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조금 더 거리를 좁힌다면 아예 다이렉트로 기다란 풀숲에 불붙은 빅너트를 처박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좋아, 이건 시도해 볼 가치가 있겠어!’

당장에 확인키로 했다.

가만히 있어도 꽁으로 얻어지는 경험치가 아깝기는 했지만, 앞으로는 매일 같이 대량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기에 그리 안달할 것까지는 없었다.

게다가 저녁까지 버티려면 어차피 먹을 것을 충분히 가져다 놓는 것도 좋을 터였다.

해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

정글로 돌아가 주변의 과일과 빅너트를 잔뜩 털었고, 다들 들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들고서 다시 언덕으로 돌아왔다.

“잘 타고 있구만! 흐흐!”

여전히 화마는 엄청난 위력을 과시하며 기다란 풀숲을 새카맣게 잡아먹고 있었다.

일단은 늦은 아침부터 해결했다.

오며 가며 수시로 먹어대던 오식이가 본격적으로 먹성을 발휘했다.

“야야, 적당히… 빅너트는 최대한 남겨야 한다고!”

내 타박에 녀석이 입을 삐죽이며 막 잡으려던 빅너트 대신에 과일을 집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바로 테스트에 들어갔다.

한쪽에서는 린이 빅너트를 단계별로 구웠다.

나와 오식이는 제대로 된 슈팅 자세를 연습했고, 이내 실전에 돌입했다.

뻐엉!

뻐어엉!

뻐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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