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79)
오전 분량… 정확히 두 번의 사냥을 마치고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경계선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언덕의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던 것은 꽤 오래전에 그만둔 상태였다.
뭐, 거기나 여기나 안전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현재도 우리를 향해 곧장 달려들 듯 아우성치는 몇 마리의 사마귀 놈들이 있지만, 놈들을 완벽하게 막아 주는 경계선의 벽에 괜한 짓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린, 오늘도 맛있게 잘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린에게 식사를 부탁하고는 비스듬한 자리… 진즉부터 내 자리로 찜을 해 둔 곳에 등을 깔고 누웠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을 쳐다보고 있자니, 저절로 눈이 스르륵 감겨 왔다.
틱… 틱….
화르륵….
파이어 스틸 소리에 이어 모닥불을 피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식이가 바쁘고, 다급하게 언덕을 뛰어 내려오는 소리는 그다음이었다.
“가져왔다.”
그래도 혹시 몰라, 과일과 먹거리 등은 언덕의 정상에 뒀다.
그것을 오식이가 가지고 온 것이었다.
“아, 고마워요. 오식 씨. 이쪽에 두시고 좀 쉬세요.”
“배고프다.”
“알겠어요. 금방 만들어드릴게요.”
두런두런한 말소리에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곧 있으면 먹게 될 스페셜한 요리의 맛이 떠올라서이기도 했다.
뭐,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요리라 하기도 그랬다.
하지만, 그 맛은 정말이지 끝내줬다.
그것은 단순하고, 우연한 발견이었다.
반쯤 먹다 남은 시커먼 대포알… 마치, 아몬드나 땅콩 같은 맛을 내기에 ‘빅너트’라 명명한 것을 그저 장작처럼 쓰려고 모닥불에 던졌다.
겉면의 단단함은 나무보다 오래 탈 듯했고, 속살의 유분기는 화력을 높여 주리라 여기면서 말이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러나 그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 있었다.
빅너트의 속살이 불길의 열을 받으며 풍겨 낸 미칠 듯한 고소함의 향이 바로 그것이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향보다 몇십 배는 강해졌다고 해야 할까?
향뿐만이 아니었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자태도 범상치 않았다.
직전, 배가 터질 때까지 먹었건만, 다시금 식욕을 들끓게 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당연히 먹었다.
충격이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여태껏 먹었던 그 어떤 음식들보다 맛있었다.
도무지 말이나 글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뒤로는 매번 빅너트를 불에 익혀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먹고 난 뒤에도 바로 또 먹고 싶은 그 맛에 완전히 중독된 상태였다.
그저 먹을 생각만으로도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고, 입가에 웃음이 그려지는 지금처럼 말이다.
“흐음… 킁! 킁! 크으… 죽겠구만.”
콧속으로 날아드는 빅너트 구이의 향기에 더는 참지 못하고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오식이와 린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아직 멀었냐는 말을 하려던 그때였다.
티딕, 틱… 타닥, 탁….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 들어 있던 빅너트가 제법 요란한 소리를 냈다.
원래도 그랬으니, 거기까지는 뭐….
하지만, 곧장 이어진 상황이 목구멍을 넘어서던 내 외침을 막아섰다.
타닥, 탁… 탁!
조금 더 요란한 소리를 낸 빅너트 하나가 스스로 몸을 박차듯 위로 튀어 올랐다.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는 높이였다.
그러나 함께 불 속에 몸을 담그고 있던 다른 빅너트의 몸을 지지대 내지는 점프대 삼듯 하기에는 충분했다.
툭… 기우뚱….
튀어 오른 빅너트가 다른 빅너트의 위에 서커스를 하듯 올라섰고, 이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누군가 잡아 주길 원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끝내 중심을 잃은 빅너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굴렀다.
“….”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만 봤다.
나도 그랬고, 오식이와 린도 그랬다.
왕울이는 어쨌는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아무튼.
데굴데굴….
데구르… 데구르….
빅너트가 다소 울퉁불퉁한 언덕을 어렵사리 구르며 내려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충분히 굴러 내려가는 빅너트를 잡을 기회와 타이밍이 있었다.
제법 거리가 있던 나는 어려웠겠지만, 가장 가까이 있던 오식이나 재빠른 린이었다면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사고나 상황은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방심이나 순간의 판단 착오 내지는 깜빡하는 실수 등에 의해 벌어진다.
우리도 그랬다.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다.
다들 뭐에라도 홀린 것처럼 온몸에 불을 붙인 채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빅너트를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어, 어… 엇!”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어렵사리 구르던 빅너트가 탄력을 받아 속도를 높이려던 순간이었다.
“오, 오식아!”
오식이를 불렀다.
녀석이 빅너트에서 눈을 떼고는 나를 쳐다봤다.
상황 파악이 안 된 건지 어정쩡하고, 어리바리함 그 자체인 눈빛으로 말이다.
바로 크게 소리쳤다.
“자, 잡아!”
그제야 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곁에 있던 린도 일어났고, 왕울이도 반응했다.
데구르르르르….
이미 빅너트는 엄청난 속도로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고, 점차 가속도를 붙이며 점점 더 빨라지려 하고 있었다.
파앗!
오식이가 지면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린이 바로 뒤를 따랐고, 이내 녀석을 앞질렀다.
왕울이는 물론, 나도 내달렸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겁나게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굴러가는 빅너트를 잡아야 하는지까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단순히 굴러가니까 잡아야지 정도?
어쨌든.
린이 날 듯이 빅너트를 따라잡았다.
왕울이도 린의 뒤를 바짝 따랐다.
‘그래, 조금만 더….’
곧 굴러가는 빅너트를 붙잡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럴 때 꼭 일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나타나기 마련.
샤샤샤샷!
시커먼 실루엣들이 재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린의 앞을 가로막았다.
다름 아닌 사마귀 놈들이었다.
경계선의 벽에 가로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우리를 향해서 지랄 같은 아우성만 쳐대던 바로 그놈들 말이다.
“이잇!”
린이 순간적으로 날아드는 사마귀 놈들의 공격을 간신히 피하며 몸을 옆으로 굴렸다.
대여섯 걸음 뒤처졌던 왕울이는 그대로 돌진하며 앞발을 거칠게 휘둘렀다.
휘이익….
캬갸갸갸걍!
왕울이의 발톱과 사마귀 놈의 칼날 같은 앞발이 부딪치며 쇳소리를 냈다.
한 방에 나가떨어지지 않은 놈을 향해 왕울이가 신경질적으로 으르렁거렸다.
“크르르르!”
이내, 놈들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왕울이를 둘러쌌다.
“캬갸갹!”“스하. 스하아….”
바닥을 구르다가 몸을 추스른 린이 곧장 놈들을 향해 달려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왕울 씨! 물러서세요.”
린의 빗자루가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사마귀 놈들의 뒤를 노렸다.
촤아아아아아….
어쩔 수 없이 놈들이 물러서며 틈을 벌렸다.
그 틈을 왕울이가 놓치지 않고 포위망에서 빠져나왔다.
그사이, 나와 오식이도 뒤늦게 합류를 마쳤다.
“썩을 놈들이….”
이를 갈며 허리에 찬 아수라 스워드를 힘차게 뽑아 들었다.
….
사마귀 놈들을 처리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각자 두세 마리씩 맡아 놈들의 대가리를 몸통에서 영원히 분리해 버렸다.
“아, 맞다.”
순간적으로 잊었던 일을 떠올리며 언덕 아래로 굴러가던 빅너트를 찾았다.
언덕 아래까지의 거리도 거리였지만, 듬성듬성 나 있는 풀과 돌덩이 등에 파묻혀서 빅너트를 찾을 수 없었다.
재빨리 가늘게 뜬 눈을 시전했다.
번뜩!
거리감을 조절하며 빅너트를 찾기에 집중하던 그때였다.
“…?!”
어정쩡하게 줌인 된 시야의 왼쪽 끝에서 어떤 번쩍임 같은 게 보였다.
곧장 시선을 왼쪽으로 이동했고, 바로 그 순간!
화륵….
빨간 불길이 훅하니 일었다.
“어….”
뭐라 할 말을 찾으려 얼버무리던 타이밍과 함께 불길이 화끈하게 치솟았다.
화르르르르르!
불길은 엄청났다.
마른 풀이 더 잘 타기는 할 테지만, 그에 못지않았다.
때마침 불어온 살랑거리는 바람도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
단언컨대, 왕울이가 윈드 커터로 베어 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풀들이 불길에 쓰러지고, 사라져 갔다.
“와우….”
놀라움과 황당함, 대단함 등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다른 녀석들도 완전히 넋을 빼며, 엄청난 화마의 위력을 감상하고 있었다.
뭐,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불구경하고, 남의 싸움 구경이라 하니, 그럴 만도 했다.
솔직히 이보다 더 황당한 일은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연히 모닥불 속에 넣고 굽던 빅너트가 튀어 오르고, 그것이 길고 긴 언덕을 끝까지 굴러 내려가 예정과 예상에도 없던 엄청나고, 거대한 불을 내다니 말이다.
게다가 몇 번이나 그것을 막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뭐에라도 홀린 것처럼 그러지 못했음은 물론, 마지막 기회… 거의 다 잡은 기회마저도 지랄 같은 사마귀 놈들에 의해 저지당할 줄이야.
정말이지 골 때릴 만큼 어이없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랍고, 황당한 일이 다음으로 벌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거세지고, 위력을 더해만 가는 엄청난 화마의 휩쓺에 모두가 넋을 빼고 있던 그 순간!
갑자기 신비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에?”
빠져 있던 넋이 돌아왔다.
놀랍고, 황당하고, 어이없음에 다른 쪽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52레벨을 찍은 지 열흘이 채 되지 않았다.
계산상으로 아무리 빨라야 20일 이후… 늦으면 30일 이후에나 올라야 할 레벨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불구경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당연히 뭔가 오류가 있거나 헛것을 들었다고 여겼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뒤에 바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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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나선우
나이: 25세
레벨: 53
클래스: A
직업: 카드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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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도 아니었고, 헛것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 53이 찍혀 있었다.
“와… 이게 말이 되나?”
이러한 현실이 여전히 믿기 힘든 건 사실이었다.
다시금 정신이 멍해지려 했다.
그렇게 얼마쯤….
좀 더 정확히는 5분쯤?
또 한 번 나를…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엥?”
또 한 번 들려온 신비한 목소리에 반응했다.
린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나를 쳐다봤다.
이어, 어이없음을 곁들인 채 말했다.
“주인님, 저 레벨이 올랐는데요?”
“어… 드, 들었어.”
“어머! 그러고 보니, 주인님도….”
“응, 나도 좀 전에 올랐어.”
“아아, 그런데 어떻게….”
대답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나 역시 영문을 파악하기 전이었다.
아니, 하도 놀랍고, 황당한 일들의 연속이라 정신이 들락날락 한 탓에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게 옳았다.
‘대체, 어찌 된 일인 거지?’
그제야 정신을 바로 잡고는 어떻게 된 일인지를 따지려 했다.
그러나 뭐를 떠올려 보기도 전에 방해를 받았다.
다시금 들려온 신비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움찔!
오식이가 몸을 들썩거렸다.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이내 고개를 돌리는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직전의 린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크륵….”
“어, 축하해.”
영혼이라고는 1도 없는 축하의 말 던지고는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활활 타고 있는 화마의 뜨거운 불꽃 쇼가 이어지고 있었다.
“…!!”
한 줄기 빛이 머릿속을 관통하며, 자연스럽게… 너무나 그럴싸한 가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허… 그런 건가?’
모르긴 몰라도 그것이 정답일 듯했다.
아니, 확실해 보였다.